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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72화 (172/1,214)

172화. 모두를 놀라게 하다

심협은 경매에 나서지 않았지만, 다른 귀물들은 체면 불고하고 펄쩍펄쩍 뛰며 경쟁을 시작했다.

“62개!”

“65!”

“70!”

1각도 채 지나지 않아, 음화연환진의 가격은 선옥 100개 이상으로 올랐다.

“흠, 썩 괜찮아 보이는군.”

흑문이 아래턱을 문지르며 낮게 읊조리자, 핏빛 옷의 시종이 말했다. 그 목소리는 날카롭고 가늘어 마치 여인 같았다.

“벽곡 중기의 수사(修士)도 그 안에 걸려들면 목숨을 잃을 수 있지요. 마음에 드신다면 사시면 됩니다, 도련님.”

흑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을 들었다.

“선옥 110개!”

주위의 귀물들이 한 차례 술렁이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하지만 경쟁에 참여했던 이들 중 장작개비 마냥 바싹 마른 귀물이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115 개를 내겠소!”

그러자 흑문이 사나운 눈빛으로 그 귀물 쪽을 쓱 훑어보더니 차갑게 말했다.

“120!”

마른 귀물은 몸을 한번 떨더니, 더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이가 없자, 경매 탁자 뒤의 키 작은 가면은 음화연환진의 소유권을 선포했다.

“백염 도우, 어째서인지 다른 이들이 저 흑문이라는 자를 두려워하는 것 같군요.”

심협이 여전히 옆에 서 있는 백염에게 조용히 물었다. 사우흔 또한 그게 궁금했는지, 귀를 기울이며 가까이 다가왔다.

“심 도우께서는 인계에서 오셨으니 흑문 소주(少主)의 명성을 들어본 적이 없겠지요. 그는 유명산의 거두, 흑산노요의 적손자입니다. 그러니 누가 감히 미움을 사려하겠습니까? 두 분 도우께서도 그와 절대로 다시는 부딪치지 마십시오.”

백염은 흑문 쪽을 흘끗 보더니, 모기 소리처럼 가느다란 목소리로 재빨리 말했다.

‘흑산노요!’

꿈에서 만났던 귀물 얘기를 여기서 듣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심협은 심장이 덜컥했다. 그러나 재빨리 마음을 가다듬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경매는 계속 진행돼, 어느새 대여섯 개의 보물이 경매에 붙여졌다. 하나하나가 귀시의 다른 상점에서는 볼 수 없는 진귀한 물건들인 데다 낙찰가도 만만치 않았는데, 단 한 번도 경쟁에 뛰어들지 않은 것은 심협과 사우흔 그리고 이상뿐이었다.

심협과 사우흔은 안목을 크게 넓힐 수 있었지만, 기다리던 벽곡기 파경단약은 나오지 않았다.

“……그다음 경매품은 삼원진수(三元眞水) 1병입니다. 물 속성 공법을 수련하는 응혼기 대수(大修)께서 수년의 시간을 들여 무진창해(無盡滄海)에서 제련해낸 것이지요.”

키 작은 가면이 꺼낸 다음 상품은 길이가 몇 촌밖에 안 되는 하얀 옥병이었다.

그런데 그가 이 병을 탁자 위에 가볍게 올려놓자, 쿵 하는, 크고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보기와 달린 매우 무거운 것 같았고, 병 안에서 묵직한 물의 영기 파동이 전해져왔다.

심협은 몸 안의 법력이 한 차례 일렁이는 것을 느끼고는 번득이는 눈으로 그 작고 하얀 병을 바라보았다.

“이 진수는 무기와 단약을 만드는 데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효능은 물 속성 공법의 수련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아무런 부작용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경맥을 따뜻하게 보호하는 효능을 지니고 있답니다. 여러분 중 물 속성 공법을 수련하시는 분이 있다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되지요.”

키 작은 가면이 계속해서 설명했다.

귀물은 음에 속하는 만큼 물 속성 공법을 수련하는 이도 많았기에, 적잖은 귀물이 관심을 드러냈다.

한데 그때까지 경매에 일절 참여하지 않았던 이상이 눈썹 꼬리를 치켜세우며 입을 열었다.

“삼원진수? 그 물은 오직 연기기와 벽곡기 수사에게만 소용이 있잖소. 혹시 당신네는 이원진수(二元眞水)와 일원진수(一元眞水)도 있소? 있다면 내가 전부 사겠소.”

키 작은 가면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상 도우께서는 농담도 잘하십니다. 이원진수와 일원진수가 어떤 보물입니까? 본각에서도 보유만 하고 있을 뿐, 경매에 내놓지는 않습니다.”

이상은 그 말에 실망하는 기색이 스치더니,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한편, 하얀 옥병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심협은 가슴이 맹렬하게 뛰었다.

그가 수련하는 무명공법이 바로 순수한 물 속성 공법이니 삼원진수와 지극히 잘 맞을 터였다. 지금 그의 몸에서 꿈틀거리는 법력이 그 증거였다.

‘만약 저 삼원진수를 얻을 수 있다면 나의 수련 속도는 크게 증가할 터! 그러면 빠른 시일 안에 벽곡기에 접어들 수도 있다!’

그는 지금 백가에 있어 아무런 위험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춘추관이 멸문을 당한 것은 분명 겉모습처럼 그리 단순하지가 않을 터였다. 거기다 꿈속에서 겪은 여러 경험들로 인해, 그는 편안할 때일수록 위기에 대비해야 함을 알게 됐다. 그러니 반드시 하루빨리 실력을 끌어올려야만 했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원진수가 물 속성 공법의 수련 속도를 빠르게 해준다고 했소?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오.”

목소리의 주인은 흑문이었다. 그는 삼원진수에 큰 관심이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에 심협은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키 작은 가면은 기다렸다는 듯이 결인을 했다. 그러자 콩알만 한, 투명한 구슬 하나가 작은 병 안에서 날아가 그의 손바닥에 내려앉았다. 이어서 그가 다른 손을 뒤집어 휘두르자, 손에 뽀얀 단약 하나가 생겨나며 짙은 약향(藥香)을 풍겼다.

“삼원진수 한 방울의 효능이 이 형원단(馨元丹)의 약효와 거의 비슷하지요. 이 병 안에는 적어도 10여 방울이 들어 있으니, 한 병이면 도대체 얼마나 큰 효과가 있겠습니까? 제가 따로 설명드리지 않아도 모두들 아시겠지요?”

키 작은 사내의 설명에 사우흔은 눈을 반짝거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형원단! 그 약은 벽곡기 수사로서도 쉽게 얻을 수 없는 수련 영약인데!”

그러나 그녀는 안색이 곧 다시 어두워졌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은 말에 심협은 마음이 동했지만, 여전히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삼원진수를 사느라 선옥을 썼다가 나중에 벽곡기 파경단약이 나타난다면 어찌 한단 말인가?’

그때, 그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옥관이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이 시선이 허공에서 서로 부딪힌 순간, 옥관이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심협은 어리둥절했으나, 이내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제 경매를 시작하지요. 최저가는 선옥 70개 입니다. 호가를 하실 때는 최소 선옥 5개 이상을 올리셔야 합니다.”

심협이 머뭇거리는 동안, 키 작은 가면이 좀 전에 꺼냈던 물방울을 다시 옥병에 집어넣고는 선포했다.

“선옥 75개!”

“80!”

“88!”

귀물들 상당수가 흥미를 보이면서 삼원진수의 가격은 금세 선옥 120개까지 치솟았다. 그 마지막 값을 제시한 것은 바로 흑문이었다.

가격 자체도 높아진 데다가 흑문의 배경 또한 두려웠기에, 다른 귀물들은 손을 떼기로 했다. 이에 흑문은 오만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였다.

“선옥 130개!”

누군가의 목소리가 불쑥 울려 퍼졌다. 동시에 흑문의 미소도 차갑게 굳었다.

이번에 호가를 한 사람은 바로 심협이었다. 그는 고민을 거듭했지만, 이 삼원진수는 놓치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후에 벽곡기 파경단약이 나온다면,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생각이었다.

심협이 귀시에 온 목적을 잘 알고 있던 사우흔은 깜짝 놀란 기색이었다. 하지만 심협 자신이 결정한 일에 참견할 수는 없었기에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한편, 그 자리에 있던 귀물들은 모두 의아한 눈으로 심협을 쳐다보았다. 가격에 놀란 것이 아니라, 인간 수사가 감히 흑문에게 맞서리라고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150!”

흑문은 곱지 않은 눈길로 심협을 노려보더니 단숨에 값을 끌어올렸다.

“선옥 160개!”

심협은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답했다.

“애송이가 감히 나와 겨루려 하다니! 180개!”

흑문은 눈을 희번덕거리더니 다시 한번 값을 올렸다.

심협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흑문도 삼원진수를 꼭 손에 넣고야 말겠다는 각오인 듯했다.

‘이래서야 답이 나오지 않겠군. 어쩔 수 없지.’

이리저리 생각하고 계산을 끝낸 심협은 손가락을 쫙 편 채 한 손을 들었다.

“230개!”

단번에 무려 50개의 선옥을 올린 것이다!

이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심지어 이상조차도 표정이 약간 변했다. 단번에 50개의 선옥을 올린 것은 지금까지 교역회에서도 단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이었다.

오직 옥관만이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심협의 행동이 전혀 부적절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심협의 표정은 평온해 보였지만, 실은 내심 흑문의 거동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사실 그가 지닌 선옥은 그게 전부였다. 그러나 삼원진수가 자신의 생각만큼의 값어치가 있다면 전혀 아깝지 않을 터였다. 어쨌든 선옥은 다시 벌 수 있지만, 이 귀시가 지나면 언제 다시 삼원진수를 구할 기회가 올지 알 수 없으니까.

‘흑문이 여기서 더 값을 올리면 나도 어쩔 수 없지만…….’

한편, 흑문은 불쾌한 듯 인상을 확 찌푸리더니 뒤에 있던 붉은 옷의 시종에게 낮은 소리로 물었다.

“혈시(血侍), 선옥이 얼마나 더 있느냐?”

“앞에 몇 가지 구입하신 것들을 제하면, 이제 300여 개가 남았습니다.”

붉은 옷의 시종이 말했다.

“겨우 그것밖에 안 남았다고?”

흑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도련님, 아직 사야 할 것도 있으니 여기서 더 써버리시면 일이 좀 번거로워질까 걱정입니다.”

붉은 옷의 시종은 그렇게 속삭이고는 이상을 힐끔 쳐다봤다.

“네 정보가 확실하냐? 이상이 정말 그 물건을 가지고 있다고?”

흑문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믿을 만한 정보원에게서 얻은 정보입니다. 믿으셔도 좋습니다.”

붉은 옷의 시종이 단호하게 말하자 흑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심협을 흘끗 노려보았다.

“네 이놈! 내 너를 기억할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눈을 감은 채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협은 마치 흑문의 위협을 듣지 못한 것처럼 평온한 표정이었다.

키 작은 가면은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이가 없자, 삼원진수의 소유권을 선포했다.

‘휴우…….’

심협은 속으로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상각 사람이 삼원진수를 가져다주었고, 선옥을 지불한 심협은 하얀 옥병을 받아 들었다. 병을 받고 보니 묵직한 것이, 급히 손에 힘을 주고서야 단단히 잡을 수 있었다.

‘이 조그만 옥병 하나의 무게가 수십 근이라니!’

심협이 마개를 뽑고 들여다보니, 안에 담긴 끈적하고 투명한 액체가 짙은 영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물 속성의 영기였다.

심협은 기쁜 기색으로 병마개를 잘 막은 뒤 옥병을 품 안의 석합에 넣었다.

교역회는 계속 진행되어 온갖 보물이 연이어 나왔다. 그중에는 진귀한 법기며 단약도 꽤 많았고, 경매장 분위기는 점차 무르익어갔다.

완전히 빈털터리가 된 심협은 그저 흥미롭게 구경할 수밖에 없었고, 경매는 반 시진쯤 더 계속된 후에야 끝났다.

하지만 끝내 그가 원했던 벽곡기 파경단약은 나오지 않았고, 이에 심협은 은근히 초조해졌다.

“심 도우, 조급해하지 말아요. 아직 후반부 자유교역이 남았으니까. 더구나 저 귀물들은 모두 권세가 좀 있는 듯하니 직접은 아니더라도 주위에 벽곡기 파경단약을 가진 사람, 아니, 귀물 하나쯤은 있겠죠. 다만, 그걸 살 정도의 선옥이나 보물이 있어야겠지만…….”

사우흔이 심협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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