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60화 (160/1,214)
  • 160화. 수라괴뢰귀(修羅傀儡鬼)

    구혼필이 막 고치에 꽂히려던 때였다. 검은 고치에서 갑자기 금빛 한 줄기가 수직으로 번쩍이며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곧장 거대한 틈이 벌어졌고, 그 안에서 커다란 손이 하나 뻗어 나와 구혼필을 잡아챘다. 그러자 구혼필의 붉은 빛이 크게 떨렸고, 붓끝은 고치를 찌르려 애썼으나, 철로 된 집게 같은 커다란 손이 꽉 움켜쥐자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그 순간, 쩌적 하는 소리에 이어 고치 전체가 터져 나갔다. 그리고 그 안에서 훤칠한 체격의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온몸에 황금 갑옷을 두른 청년의 등 뒤로는 신선이나 부처의 후광 같은 금륜(金輪)이 걸려 있었는데, 그 위에는 금색과 붉은색 불꽃 문양 장식이 있었다. 머리에 쓴 금 투구에는 날개가 달렸고, 중앙에는 세로로 된 눈동자 같은 진홍색 정석이 박혀 있었다. 투구 아래로 드러난 얼굴은 더없이 준수하여 여러 모로 선가(仙家)의 출중한 장수 같았다.

    심협은 그 양쪽 관자놀이와 뺨에 문신 같은 검은 문양과 한 쌍의 시뻘건 눈동자에 가득한 음산하고도 사악한 기운에 흠칫 떨었다. 분명 선량한 자는 아닐 터였다.

    “수라괴뢰귀(修羅傀儡鬼)!”

    구혼마면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내뱉고는 온몸에 불이 붙은 듯한 붉은 빛을 뿜어냈다. 그는 어느새 장안법(障眼法)을 걷어치우고 말 머리를 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심협은 그런 구혼마면의 모습에 현재 상황이 좋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때, 구혼마면의 목소리가 심협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심협, 저 수라괴뢰귀는 수라전신(修羅戰神)을 본떠 만들어낸 꼭두각시 귀신이다. 비록 실력은 그 본체의 만분지 일도 되지 않으나, 요풍과 합쳐져 이루어진 것이기에 대적하기 쉽지 않을 듯하구나. 내 저놈과 맞붙기 시작하면 너를 챙기지 못할 것이니, 수살을 막지 못하겠거든 혼자 도망치거라. 나에 대해서는 신경 쓸 것 없다.”

    그는 아직 목소리를 전하는 법술을 할 줄 몰랐기에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수라괴뢰귀는 두 사람 사이의 소통을 알아챈 듯, 심협 쪽을 향해 머리를 기계처럼 돌리더니 입을 쩍 벌리고 음산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별안간 눈을 번득이며 손에 든 구혼필을 표창처럼 내던졌다.

    순간, 공기를 가르는 듯한 소리에 이어 붉은 구혼필이 곧장 심협의 미간을 향해 날아들었다.

    심협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와중에도 거의 반사적으로 사월보를 시전하여 재빨리 옆으로 피했다.

    하지만 그는 구혼필이 육안으로 거의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수정 실에 묶여 있어, 수라괴뢰귀가 방향을 조종할 수 있음을 알아차렸다. 땅에 내려서는 순간 머리에 구멍이 뚫릴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구혼마면이 너른 옷자락을 펄럭이며 날아와 심협의 앞을 막아섰다. 그는 한 손으로 쏜살같이 날아오는 구혼필을 잡아채고, 다른 손으로는 손가락을 칼처럼 모아 구혼필에 묶여 있던 수정 실들을 끊어냈다.

    심협이 몸을 추스르고 고개를 돌리자 구혼마면이 한 손으로 붓을 쥔 채 손가락을 움직이며 허공에서 한 바퀴 도는 모습이 보였다. 이는 일종의 기예를 선보인 것으로 눈을 즐겁게 하려는 의도도 있는 듯했다.

    “이제 네 몸은 네가 챙기거라!”

    구혼마면은 심협에게 엄하게 주의를 준 뒤, 몸을 벌떡 일으켜 수라괴뢰귀에게로 곧장 달려들었다.

    수라괴뢰귀는 두 손을 몸 뒤에서 비볐다. 그러자 양손에 금강항마저(金剛降魔杵)가 하나씩 생겨났다. 한 자루는 양끝이 등롱처럼 둥글고, 다른 한 자루는 모서리처럼 날카로웠다. 가운데 손잡이 부분에는 흉악한 귀신의 얼굴이 새겨진 것이, 항마(降魔) 법기라면 마땅히 지녀야 할 밝은 기운이 조금도 없었다.

    금빛과 붉은빛, 마귀와 음신이 공중에서 만나 한데 얽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접전을 벌였다.

    구혼마면이 심협의 곁을 뜨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수살이 심협을 향해 시뻘건 입을 벌린 채 칠흑같이 검은 물화살을 쏘아 보냈다.

    줄곧 그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심협은 사월보로 수월하게 피해 어느새 멀지 않은 곳에서 소뢰부 세 장의 효력을 발동시키고 있었다.

    부적에서 빛이 번뜩이자 세 줄기의 하얀 번갯불이 화살처럼 날아가 수살의 복부에 꽂혔다.

    가죽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수살의 복부가 터져나가며 구멍이 생겼고, 그 틈으로 검은 액체가 왈칵 흘러나와 땅으로 뚝뚝 떨어졌다.

    심협은 공격이 효과를 보이자 기뻐하며 이번에는 소뢰부 다섯 장을 꺼내 들었다. 부적에서는 또다시 굵직한 벼락이 한 줄기 뿜어져 나와 수살을 내리쳤다.

    수살은 화가 난 듯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며 고개를 돌려 물화살을 내뱉었다. 물화살은 허공에서 번개와 충돌해 우렛소리와 함께 폭발했다.

    수살은 물화살을 연달아 쏘면서 정면으로 돌진해왔고, 심협은 사월보로 끊임없이 벽을 내딛으며 피해냈다.

    물화살이 연달아 동굴 벽과 땅에 꽂혔고, 그때마다 주먹만 한, 부식된 듯한 깊은 구멍이 생겨나면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수살은 갈수록 속도가 빨라졌고, 물화살도 끊임없이 날아와 심협은 멈춰 서서 법술을 시전할 틈조차 내기 힘들었다. 손에 쥔 여러 장의 소뢰부는 사용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심협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난 겨우 연기기 7층 수사일 뿐이다. 지난번에는 사월보의 신묘한 보법 덕분에 어느 정도 맞설 수 있었지만, 지금은 요풍이 몸에 다시 응결되면서 거의 벽곡기 중기에 가까운 실력을 갖게 됐으니, 시간을 끌수록 내겐 더욱 불리해질 거야.’

    심협은 갑자기 공격해오는 물화살 하나를 막 피해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쉭!

    그가 미처 제대로 균형을 잡기도 전에 발밑에 느닷없이 거대한 힘이 몰아치더니, 수살이 어느새 칠흑 같이 긴 꼬리를 몇 배로 늘인 채 뒤로 돌아가 기습을 해왔다.

    “헛!”

    심협은 꼬리에 쓸려 바닥에 나뒹굴었다. 꼬리에 맞은 곳에서 후끈한 통증이 느껴져 거의 몸을 일으킬 수 없을 정도였다.

    심협이 몸부림치며 다시 일어서려 애쓰고 있을 때, 수살이 다시 한번 커다랗고 시뻘건 아가리를 벌렸다. 그러자 시커먼 물화살이 응집되어 형태를 갖추어갔다. 보아하니 곧 심협의 머리로 날아올 모양새였다.

    심협은 망설임 없이 소매 안의 귀소환을 움켜쥔 채 체내의 법력을 주입했다.

    귀소환의 검은색 고리 위 부적 문양이 빛을 발하자, 흉악하게 생긴 귀신의 머리가 떠올랐다. 입에서는 귀를 찢는 매서운 비명이 터져 나왔고, 시커먼 음파가 솟구쳐 곧장 지면을 때렸다.

    쿠르릉!

    거대한 반동이 지면에서부터 일어나면서 심협은 공중으로 튕겨나갔다.

    거의 동시에 칠흑 같은 물화살 하나가 지면에 바짝 붙은 채 날아들어 심협의 옷자락에 주먹만 한 구멍을 내고는 저 뒤편 동굴 석벽에 꽂혔다.

    심협은 몸이 떨어지는 순간, 홀연히 왼손을 앞으로 내밀어 수살을 가리키면서 온 힘을 다해 무명공법을 운공했다.

    수살의 몸은 검은 액체가 응결되어 만들어진 것이라 본질적으로는 물에 속했다. 비록 심협의 어수지술(御水之術)로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었으나, 슬쩍 끌어당기는 정도는 가능했다.

    어수지술의 힘이 끌어당기자 수살의 몸이 앞으로 약간 기울었다. 단지 그뿐이었지만, 심협은 그 기세를 몰아 다치지 않은 오른쪽 다리로 땅을 찍고 수살을 향해 곧장 몸을 날렸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수살은 돌연 다시 시뻘건 입을 벌렸다. 그 안에서는 커다란 빛 덩이가 맺히기 시작했다. 빛 덩어리 안쪽에는 빛줄기가 어렴풋하게 휘감겨 있었고, 몹시 짙은 음살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팟!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검은 빛 덩이가 살수의 입안에서 솟아나와 심협의 얼굴로 돌진해왔다.

    심협은 크게 두 손을 떨쳐 일고여덟 장의 소뢰부를 동시에 쏘아 보냈다. 그러자 번쩍이는 백색광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콰쾅!

    고막이 터져나갈 듯한 우렛소리에 이어, 폭발이 일어난 곳에서 팔뚝만큼이나 굵은 번개가 나타나 새하얀 빛의 창처럼 검은 빛 덩어리를 꿰뚫었다.

    퍼펑!

    폭발음과 함께 칠흑 같은 빛 덩어리의 중심에서부터 하얀 빛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고, 이내 빛 덩어리는 거대한 구멍이 생겨나며 찢겨 나갔다.

    심협은 혼신의 힘으로 무명공법을 운공했고, 그의 몸 앞에 푸른 빛이 생겨나 물의 방패가 응결되어, 검은 빛 덩어리가 폭발한 여파를 모조리 막아냈다.

    이어서 그는 수살 바로 앞까지 돌진해갔다. 그리고는 물방패를 수살의 몸에 받쳐놓고 그 탄성을 이용해 허공을 가르며 수살의 등 위를 지나면서 10여 장의 부적을 뿌렸다.

    부적들은 수살의 머리 바로 위에 떨어지면서 휘황찬란한 백색광을 내뿜었다. 뒤이어 허공에서 지금까지보다 배는 더 굵은 하얀 번개가 나타나 눈부신 빛과 함께 수살의 머리에 내리 꽂혔다.

    꽈르릉!

    격렬한 폭발음과 함께 수살의 머리가 터져나갔고, 끈적한 검은 액체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 안에 담겨 있던 한 가닥 검붉은 마기(魔氣)도 번갯불에 쓸려 흩어져버렸다.

    “캬아아!”

    이 마기와 수라괴뢰귀는 미묘하게 연결되어 있었는지, 수살과 마기가 섬멸되는 순간, 괴뢰귀 역시 사나운 비명을 내질렀다. 뒤이어 성난 눈초리로 심협을 노려봤는데, 시뻘건 눈동자에는 놀람과 분노의 기색이 가득했다.

    괴뢰귀가 왼손의 항마저를 크게 휘두르자, 흐릿한 그림자가 둥근 금빛 방패를 펼친 것처럼 구혼필이 그려낸 부적의 공격을 막았다. 뒤이어 오른팔을 맹렬히 휘두르자, 양끝이 송곳처럼 뾰족한 항마저가 심협을 향해 폭발하듯 튀어나갔다.

    “헛!”

    왼쪽 다리에 제법 큰 부상을 입은 탓에 사월보를 시전할 수 없었던 심협은 도저히 공격을 피할 수 없어 시시각각 날아드는 항마저를 그저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쉭!

    날카로운 소리가 나더니, 별안간 구혼마면의 소매에서 검은 안개에 휘감긴 선홍색 쇠사슬이 쏜살같이 날아들어 영사(靈蛇)처럼 심협의 허리를 휘감고 잡아당겼다.

    “괜찮으냐?”

    구혼마면이 자기 곁으로 끌려 온 심협에게 물었다.

    “약간 다쳤을 뿐입니다. 괜찮습니다.”

    심협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답했다.

    구혼마면이 그런 심협에게 막 뭔가를 당부하려는데, 느닷없이 세찬 바람을 일으키며 괴뢰귀가 재차 공격해왔다. 구혼마면은 어쩔 수 없이 곧장 튀어나갔다.

    수라괴뢰귀가 무어라 낮게 읊조리자, 왼손의 항마저가 일순 강한 금빛을 발하더니 열 배는 더 큰 거대한 형상의 그림자를 응결시켜 구혼마면의 머리를 내리쳤다.

    “흥!”

    구혼마면은 콧방귀를 뀌더니 구혼필을 허공으로 내던졌다. 그러자 구혼필이 거침없이 휘둘러졌고, 허공에 붉은 글자가 한가득 떠올랐다. 필획과 필획이 서로 연결된 글자들은 피처럼 붉은 거대한 그물로 변해 항마저가 만들어낸 그림자를 완전히 뒤덮었다.

    그와 동시에 구혼마면은 남은 손의 소맷부리를 한 차례 휘둘렀다. 그러자 검은 안개가 감긴 핏빛 쇠사슬이 다시 한 번 튀어나가 곧바로 항마저를 돌아 수라괴뢰귀 몸에 감겼다.

    수라괴뢰귀는 이미 대비하고 있었던 듯, 남은 항마저를 장심에서 빠른 속도로 회전시켰다. 그러자 항마저에서 쇠붙이 소리가 울리며 휙 하고 손을 떠나 쇠사슬을 향해 매섭게 날아가 부딪쳤고, 둘 모두 바깥으로 튕겨나갔다.

    그러나 항마저의 기운은 더욱 거세진 듯, 살짝 뒤로 물러났다가 이내 쐐액 하는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맹렬히 회전하며 구혼마면에게로 돌진했다.

    구혼마면은 한 손에 구혼필을 든 채 붉은 그물이 줄어들도록 조종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박귀삭연(*縛鬼索鏈: 귀신을 결박하는 쇠사슬)을 당기는 중이었다. 이 순간, 자신에게 날아드는 항마저를 막을 수는 없을 듯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끼야아아!”

    처참한 울부짖음이 울리더니, 검은 음파의 고리가 항마저를 때렸다.

    쿵!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항마저는 금빛으로 번득이며 음파를 흔들어 깨뜨리고는 잠시 호흡을 고른 후 다시 구혼마면을 공격해갔다.

    그러나 구혼마면은 피하기는커녕 도리어 더욱 힘을 쏟아내 구혼필의 효력을 발휘시켰다. 그러자 그가 그려낸 거대한 붉은 그물이 마치 새빨간 입처럼 항마저를 통째로 집어삼키며 괴뢰귀를 향해 날아갔다.

    수라괴뢰귀는 독하게 마음을 먹었는지, 숨거나 피하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전력으로 구혼마면을 향해 항마저의 위력을 쏟아부었다.

    둘은 약속이나 한 듯,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맞붙으려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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