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51화 (151/1,214)
  • 151화. 예상 밖의 일

    사람들이 급히 길을 비켜주자 사우흔은 임무 게시판으로 다가가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팍 하는 소리와 함께 부서진 옥패가 탁자 위에 떨어졌는데, 놀라운 음기가 발산되고 있었다.

    심협도 멀리서 이 옥패를 봤는데, 자신이 가지고 온 붉은 옷소매보다 더욱 짙은 음기를 풍겼다.

    “성 서쪽 의장(義庄)에서 사람을 해치던 귀신을 처리했습니다.”

    사우흔이 담담히 말했다.

    “듣자 하니 의장의 귀신은 거의 벽곡기에 이르렀다고 하던데, 사우흔은 다치기는커녕 옷매무새조차 흐트러지지 않았으니, 손쉽게 죽인 모양이군.”

    “역시 백가 최고의 객경일세! 대단하구나, 정말 대단해!”

    “내 기억이 맞는다면, 사우흔은 벌써 두 번째 임무를 완수한 것일 게야!”

    근처의 객경들은 감탄하며 술렁였다.

    이를 통해, 심협은 사우흔의 실력에 대해 더 잘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대단하십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금방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탁자 뒤에 앉아 있던 백가의 집사 두 사람은 공손히 말했다. 그중 한 사람은 목록을 꺼내 기록했고, 다른 한 사람은 내당으로 들어가 옥합 하나를 가지고 와, 사우흔에게 건넸다.

    “사 객경, 임무의 포상입니다. 받아주시지요.”

    사우흔은 옥합을 살짝 열어 안을 보더니, 냉랭하던 얼굴에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마치 만년설산이 녹아내린 것처럼, 보고 있던 주변 사람들은 순간 넋이 나가버렸다.

    하지만 곧이어 그녀의 표정은 다시 냉랭한 상태로 돌아갔다. 옥합을 챙기고 뒤돌아 임무 게시판을 살피는 것으로 보아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려는 듯했다.

    멀리서 지켜보던 심협도 앞으로 나아갔다.

    한편, 심협이 다가오는 것을 본 초려는 갑자기 비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체면이 땅에 떨어져 불쾌했던 참에 심협이 나타나자 분풀이를 하고 싶어진 것이다.

    “어이구, 심 객경님 아니신가? 홍엽진 임무를 수행하러 가신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어째 벌써 돌아오셨는지?”

    초려가 잔뜩 과장된 말투와 목소리로 외치자 사람들의 시선이 심협에게로 향했다.

    “허! 정말 빨리도 돌아왔군.”

    “임씨 집안의 구양삼걸도 홍엽진 임무를 수행하러 간다고 들었는데, 그놈들에게 된통 당한 모양이지?”

    “그래도 싸지. 주제에 무슨 홍엽진 임무를 맡겠다고……. 살아 돌아온 것만 해도 운이 좋다고 봐야지.”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심협을 비꼬고 깎아내리기 바빴다.

    “심협, 우리 건업성과 자네가 지냈던 곳은 차이가 큰 것으로 알고 있는데? 둘째 도련님께 빌붙었다고 해서 백가 객경으로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냐?”

    초려는 자신감을 되찾은 듯 주위를 둘러보며 냉소했다. 사실상 심협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말로, 동조를 끌어내기 위한 얕은 수였다.

    하지만 심협은 그들을 무시한 채, 탁자로 가더니 찢어진 소매를 올려두었다.

    “홍엽진 임무를 완수했소. 여기 그 증거요.”

    심협의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가 깔린 순간, 장방에는 적막이 내려앉았다. 모든 사람의 시선은 심협과 붉은 소매에 집중됐다.

    초려는 비웃던 표정 그대로 거의 넋이 나가 멀거니 서 있었는데, 그 꼴이 꽤나 우스웠다.

    임무 게시판을 살피던 사우흔도 심협을 돌아보았다.

    두 집사도 멍하니 심협을 바라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붉은 소매를 살폈다.

    “귀신의 음기가 담긴 핵심임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홍엽진 임무의 그 귀신이 맞는지는 조사가 필요합니다.”

    집사 한 사람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조사가 필요하다니? 그럼 방금 사 객경의 증거는 어찌 확인하지 않았소?”

    심협은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임무 게시판을 살피던 사우흔이 다시 심협을 바라봤다.

    “그건…… 사 객경은 수련이 높고, 평소 일처리도 온당했던 데다가…… 오늘도 벌써 두 번째 임무를 완수하셨으니 조사할 필요도 없지요. 심 객경의 임무 완수는 약간의 조사가 필요한데, 그냥 절차에 불과합니다.”

    백가 집사가 급히 대답했다.

    “네놈을 어찌 사 객경과 비교를 하느냐? 집사, 샅샅이 조사해야 하오! 이 붉은 소매는 어쩌면 주워온 것일지도 모르니, 절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오!”

    초려가 끼어들었다. 그러자 집사는 그는 노려보며 답답히 답했다.

    “여러분의 임무 모두 조사할 겁니다. 누구도 이 절차를 생략할 수 없으며, 누구도 박대하지 않을 테니 그리 아시오.”

    이 말에 초려의 눈이 분노로 이글거렸지만, 입은 꾹 다물었다.

    “심 객경, 마음 놓으시지요. 이는 그저 절차일 뿐입니다. 이 임무를 심 객경께서 완수하신 것이라면, 포상은 거처로 보내드릴 겁니다.”

    다른 집사가 미안한 기색으로 심협에게 말했다.

    “그럼 수고해 주시오.”

    심협은 두 집사에게 포권으로 예를 갖추고는 뒤돌아 거처로 향했다.

    잠시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사우흔도 다시 시선을 거두었다.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 객경들은 그다지 상관하지 않았지만,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하고 돌아온 초려 같은 자들은 심협이 임무를 완수했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심협의 뒷모습을 의심 어린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때, 멀리서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성큼성큼 다가왔다. 백수 도장과 오동이었다.

    “백수 도장, 오동 도우! 그대들도 홍엽진 임무를 수행하러 간다고 했던 것 같은데, 어찌 되었소? 완수하였소?”

    초려는 마침 잘됐다는 듯 물었으나, 백수 도장과 오동은 어두운 얼굴로 서로를 한번 쳐다볼 뿐, 입을 꾹 다물었다.

    “어째 아무 말이 없소? 설마 정말 심협이 완수한 것이오?”

    풍릉이 접선을 흔들며 반신반의하듯 물었다. 그리고 초려는 두 사람의 표정을 보고 불안한 기색으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렇소. 심협이 완수했소.”

    백수 도장은 가볍게 탄식하며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방금 전까지 심협을 의심하던 자들이 뒤통수라도 얻어맞은 듯 입을 쩍 벌렸다.

    “정말 그가 했다니, 그게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그는 고작 연기 중기라 하지 않았던가? 홍엽진 물귀신은 최소한 연기 후기의 수사(修士)와 맞먹는 수준이라고 들었는데……?”

    “설마 그에게 특별한 수단이 있단 말인가?”

    초려가 화끈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 누군가가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

    “확실히 본 것이오? 그 심협이 어떻게 홍엽진의 물귀신을 죽인 것이오?”

    질문을 던진 것은 사우흔이었다.

    백수 도장은 심협이 물귀신을 죽인 과정을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음, 부적의 힘을 빌린 것이었군.”

    사우흔은 백수 도장의 설명에 다소 실망한 기색이었다. 그녀는 심협이 진짜 실력을 감추고 있는 것이라 여겨 흥미가 생겼던 것이다. 그러나 그게 다량의 부적 덕이었다니, 흥미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 * *

    거처로 돌아온 심협은 눈을 감고 숨을 골랐다. 그리고 법력이 회복되자 마당으로 나와 품에서 귀소환을 꺼내 살폈다. 비실비실 새오나오는 웃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홍엽진 임무를 수행한 것은 화린목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많은 소뢰부를 사용한 것인데, 내심 아까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구혼마면에게 귀소환을 얻게 되었으니, 이는 화린목보다도 훨씬 값진 성과였다.

    귀소환이 비록 법기는 아니나, 보통의 부기보다는 훨씬 뛰어났다. 그러니 제대로 다룰 수 있게 된다면 필살기가 하나 늘어나는 셈이다. 앞으로 다가올 수련의 길에서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심협은 생각에 잠긴 와중에도 귀소환에 계속해서 법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잠시 후, 귀소환에 검은 빛이 번득이면서 세숫대야만 한 검은 귀신 머리 환영이 나타났다.

    법력을 더 주입하자 귀신 머리는 더욱 뚜렷하고 커졌다. 그렇게 맷돌만하게 커진 후에야 더 커지는 것을 멈추었다.

    귀신 이마에는 뿔이 하나 나 있었는데, 그 얼굴은 보기만 해도 오금이 지릴 만큼 흉측했다. 또한 귀소환을 처음 시험해봤을 때보다 훨씬 뚜렷했다. 심협은 법력을 무려 이 할이나 소모한 상태였다.

    심협은 깊이 숨을 들이마신 채 귀소환을 꽉 쥐었다. 그리고 마당에 있는 작은 가산(假山) 방향으로 맹렬히 휘둘렀다.

    “끼야아아!”

    귀신의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와 함께, 그 입에서 검은 음파가 뿜어져 나왔다. 음파는 순식간에 십여 장을 넘어 가산에 충돌했다.

    꽈광!

    거대한 굉음이 울렸다!

    족히 석 장은 되는 높이의 가산이 맹렬히 흔들렸고, 음파에 적중된 부분이 폭발하면서 흙먼지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잠시 망설이던 심협은 귀소환을 장심에 걸고는 다시 한번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역시 귀신의 비명에 이어 검은 음파가 발사되더니 회전하면서 길이 1장 정도의 음도(音刀)가 되어 마당에 있던 또 다른 가산을 공격했다.

    치이익!

    기이한 소리가 울렸고, 가산은 마치 두부처럼 단숨에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잘린 윗부분이 떨어져내리면서 한바탕 흙먼지가 휘날렸다.

    심협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공격을 멈추었다.

    그가 반법기를 금세 이렇게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꿈속에서 법기를 사용해본 경험 덕분이었다.

    귀소환은 위력이 상당한 대신 법력 소모가 컸다. 그래도 일회성이 아니라는 장점이 있으니 실용적인 공격 수단이라 할 수 있었다.

    낙뢰부는 귀소환보다 위력은 강하지만, 자신의 미약한 법력으로는 고작 한 장밖에 사용할 수 없으니, 위기의 순간에 비장의 무기로 써야만 했다.

    ‘내 수준이 문제로구나. 이대로라면 법기가 생긴다 해도 사용할 수 없을 것 아닌가!’

    심협이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방으로 돌아가 깊은 잠에 들었다. 온종일 먼 길을 오갔고, 귀신을 물리친 데다가 귀소환을 다루는 연습을 하느라 법력 소모가 컸으니 피로를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잠에서 깬 것은 이틀 뒤 오후 신시(*申時, 약 오후 3시~5시) 무렵이었다.

    심협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푼 후, 거처를 나섰다. 물을 몇 통 길어온 그는 방 안의 나무통에 물을 가득 채우고 그 안에서 가부좌를 튼 채 무명공법을 운공했다. 하루빨리 수련 수준을 높이고 싶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심협은 미간을 찌푸리며, 어쩔 수 없이 수련을 중단하고 나가서 대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집사 복장의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

    “심 객경, 홍엽진 임무의 조사를 마쳤습니다. 확실히 객경께서 귀신을 물리치셨더군요. 여기 임무의 포상입니다. 확인해보시지요.”

    남자는 양손으로 자못 공손하게 기다란 백옥합을 건넸다.

    백옥합을 열어보니, 안에는 길이 1척 정도의 붉은 나무가 놓여 있었다. 섬세한 무늬와 화염처럼 붉은 빛, 작열하는 듯한 열기!

    “화린목이 틀림없구려. 고맙소.”

    심협은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객경께서 마땅히 받으셔야 할 포상이지요. 객경께서 이번에는 어떤 임무를 수행하실 생각이신지요? 제가 대신 추천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중년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당분간은 임무를 맡지 않을 생각이오. 내 처리할 중요한 일이 있소.”

    심협은 고개를 내저으며 답했다.

    관부에서 내린 착귀방의 임무는 포상이 후하지만, 심협은 지금 선옥이 부족하지 않았다. 또한, 아직 수련 수준이 너무 낮았다. 낙뢰부를 지니고 있다 해도 홀로 임무를 맡기에는 위험했다. 그러니 우선은 힘을 비축하고 수련을 하면서 구혼마면의 부름을 기다릴 생각이었다. 게다가 구혼마면이 하려는 일과 착귀방의 임무는 겹칠 수도 있다. 그러니 구혼마면을 돕는 것만으로도 역시 임무수행을 하게 되는 셈이리라.

    중년 남자는 실망스러운 기색이었지만, 별다른 말없이 인사하고 돌아갔다.

    ‘백가에서는 객경들이 임무를 많이 수행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구나. 보아하니 관부에서 내린 임무의 이면에는 뭔가가 있는 모양이군.’

    심협은 그렇게 추측하며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자신과는 별 관계가 없으니 더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주재료인 화린목을 손에 넣었으니, 이제 여기 잘 맞는 영화(靈火)를 찾아보아야겠구나. 몇 가지 보조 재료들까지 갖추면 순양검배를 만들어볼 수 있겠어.”

    하지만 영화는 찾기 어려운 것이고, 다른 보조재료들도 마찬가지였다. 녹보당 주인장에게 이 재료들을 구해 달라 부탁해두었지만, 아직까지 소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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