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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49화 (149/1,214)
  • 149화. 모여드는 사람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태양이 모습을 감추기 직전, 한 쌍의 남녀가 백로탕 부근으로 다가왔다. 남자는 약관 정도의 나이에 피부는 검었고, 눈썹이 짙었으며, 눈이 매우 컸다. 여자는 불과 열여섯 살 정도로 보였는데, 청수하고 수려한 용모에 노란 옷을 입은, 아리따운 자태였다.

    두 사람은 두(杜) 자가 쓰여 있는 회백색 영패를 차고 있었다.

    “구양삼걸! 저들도 여기에 왔을 줄이야!”

    멀리서 임씨 집안의 세 객경을 발견한 남자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저들이 유명한가요?”

    옆에 있는 소녀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저들 중 가장 큰형인 구양천(歐陽天)은 연기 칠 층, 나머지 둘은 너와 같은 연기 육 층 수준이지. 다만 저 세 사람은 예전 흑석산의 이름난 산수(散修) 살호진인(煞虎眞人)의 살호공(煞虎功)을 수련하였으니, 저들이 힘을 합치면 무척 까다로운 상대야.”

    청년은 소녀에게 자상한 말투로 설명해 주었다.

    그 무렵, 구양삼걸도 두 남녀를 발견했다.

    “두씨 집안의 남빙수(藍氷水) 제원(齊源)이구먼. 저 낭자는 분명 황산사태(黃山師太)의 제자 연리(燕離)겠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더니, 역시 미인이야!”

    깡마른 추남 구양천은 음탕한 눈으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벽곡기 수사(修士)인 남빙수가 푹 빠졌다더니, 예쁘긴 예쁘구먼. 흐흐.”

    작고 뚱뚱한 추남이 침을 꼴깍 삼켰다.

    연리는 고운 얼굴을 찌푸리며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제원이 손을 들어 저지했다.

    “세 분 또한 이름난 인물이거늘, 말씀을 삼가시지요. 자칫하면 임씨 집안의 명성에도 누가 되지 않겠습니까?”

    제원은 차분하면서도 위엄 있는 말투로 이야기했다.

    “남빙수께서는 말씀이 과하십니다. 우리 임씨 집안과 두씨 집안이 막역한 사이인데, 저희 형제가 농을 좀 했다고 그리 진지하게 받아들이십니까? 흐흐.”

    구양천은 제원에게 공수하며 음흉하게 웃었다.

    제원은 이제 구양삼걸을 무시한 채 사방을 둘러봤다. 그러다가 홀로 앉아 있는 심협과 그 허리춤의 객경 영패를 발견했다.

    ‘백가의 객경인데, 못 보던 얼굴이구나.’

    그때, 연리가 의욕 가득한 표정으로 다가오며 나지막이 물었다.

    “제 대형, 손 이장 말대로라면 이 일대에 귀신이 출몰한다지요? 좀 조사해볼까요?”

    “저들이 우리보다 먼저 왔으니 분명 조사해봤겠지. 그런데도 가만히 있는 것을 보면 귀신의 종적을 찾지 못한 게 분명해. 그러니 우리가 더 조사해봐야 헛수고일 거야. 일단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려보자.”

    제원은 웃으며 그렇게 말하고는 소녀와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잠시 후, 갈대 늪 입구에 또다시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백수 도장과 오동이었다.

    ‘구양삼걸! 남빙수 제원!’

    백수 도장은 그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고는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구양삼걸과 제원도 백수 도장과 오동을 봤지만, 그저 슥 스쳐봤을 뿐이었다.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는 태도였다.

    오동이 팔로 백수 도장을 치더니 턱으로 한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심협이 정좌하고 있었다.

    이를 본 백수 도장은 나지막이 냉소했다.

    “저 세상 물정도 모르는 놈이 일찍도 왔구나.”

    “저놈이 공자들이 좀 봐주니까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는가봅니다. 임무가 시작되면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는 후회가게 되겠지요. 크큭.”

    오동이 킥킥거리며 말을 받았다.

    두 사람은 강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저들은 어째서 먼저 온 백가 객경과 같이 앉지 않는 걸까요?”

    “백가 객경들 사이에 줄곧 내분이 있었으니, 이상할 것도 없지.”

    연리가 궁금한 듯 묻자 제원이 웃으며 답했다.

    소녀는 구경하듯 백가의 세 객경을 훑어본 후, 다시 눈을 감고 수양을 시작했다.

    “도장, 홍엽진의 임무가 이리도 인기가 많을 줄 몰랐습니다. 구양삼걸과 제원까지 왔는데, 우리 두 사람만으로는 저들과 경쟁이 어렵지 않겠습니까?”

    오동은 두 사람만 겨우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닐세, 사람이 많으니 잘됐어. 심협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핑계를 대기 딱 좋지 않나?”

    “도장의 말씀이 맞습니다!”

    백수 도장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내뱉은 말에 오동이 손을 비비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는 동안에도 심협은 줄곧 정좌한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마치 두 무리의 사람이 더 온 것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반 시진쯤 지나자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요동치면서 방금 떠오른 달을 가리기 시작했다. 강바람도 더욱 거세지기 시작하더니, 강에 세찬 물결이 일었다. 갈대 늪은 이제 매우 시끄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때, 강가에 있던 사람들은 동시에 눈을 뜨더니 강 중앙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시선이 쏠린 곳에서는 강물에 돌연 한줄기 기포가 일어났다. 검은 음기가 가득한 기포로, 강 수면에는 금세 폭 1장 정도의 검은 음기가 모여들었다.

    이윽고 검은 음기 안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나타났는데, 붉은 옷을 입은 여자의 모습이었다. 자욱한 검은 기운이 몸 주위를 감돌아, 먼 거리에서도 삼엄한 음살의 기운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대단한 악귀로구나! 기세를 보아하니 벽곡기에 가까운 수준인 것 같다. 연리, 벽사주(辟邪珠)를 준비해라. 내가 저 귀신을 뭍으로 유인하고 나서 손을 써야 한다. 안전에 주의하고!”

    제원은 귀신을 주시하며, 긴장한 듯 숨을 약간 들이마시고는 일어났다.

    그의 손에서 파란 빛이 번득였는데, 얼음처럼 푸른 비조(*飛爪, 암기의 일종. 매의 발톱처럼 생긴 금속에 줄이 달려 있음) 부기가 들려 있었다.

    연리도 급히 일어나더니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그녀의 소매 안에서 황색 빛들이 발산되기 시작했다.

    구양삼걸도 벌떡 일어났는데, 몸 표면에 짙푸른 빛이 일며 맹렬한 호랑이 환영을 이루었다. 하지만 세 사람은 바로 공격 태세를 갖추지는 않았고,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입을 뻥끗거렸다. 전술을 의논하는 것 같았다.

    “엇! 심협은 어디……?”

    심협이 앉아 있던 자리에 아무도 없는 것을 눈치챈 오동이 놀란 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때, 백수도장이 손가락으로 강가를 가리켰다.

    “저기 있다!”

    심협은 언제부터인가 강가에 서 있었다. 고작 이삼십 장 거리에서 귀신을 살펴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 광경에 모든 이들이 경악하고 말았다.

    “도우, 위험하오!”

    제원이 미간을 찌푸리며 외쳤으나, 심협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한 손을 결인한 채 답수결을 운공하여 강 위에 섰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푸른 그림자가 되어 강 중앙, 귀신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저 사람은 정말 예의가 없군요. 제 대형이 호의로 일깨워주었는데도 못 들은 척하다니……. 저런 자는 고생을 해봐야 해요!”

    연리는 불쾌해했으나, 제원은 그저 탄식하며 가볍게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한편, 백수 도장은 심협을 보며 어처구니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흥! 곧장 뛰어들다니,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제원마저도 바로 공격하지 못하는데 말이야.”

    “심협이 뇌법(雷法)을 할 줄 아는데, 아마 부적술일 것입니다.”

    오동은 심협의 공격에 의식을 잃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래봐야 소뢰부겠지! 보통의 귀신이라면 모를까, 곧 벽곡기에 진입할 수준인 저 귀신을 죽이려면 소뢰부를 수십 장을 써도 쉽지 않지. 소뢰부 수십 장이면 선옥이 몇 개나 필요한지 아나?”

    “도장 말씀이 맞습니다. 저리 무식하게 덤비다니, 죽음을 재촉하는 꼴이지요! 저놈이 스스로 죽으러 갔으니, 우리가 할 일이 줄었습니다.”

    오동이 백수 도장의 말에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는 사이 구양삼걸도 저들끼리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큰형, 혹시 저놈이 미친 것 아닐까요?”

    “어쨌든 저놈이 먼저 귀신의 실력을 확인해주면 우리야 좋지.”

    작고 뚱뚱한 추남이 황당하다는 듯 묻자 첫째인 구양천이 비릿하게 웃었다.

    그 무렵, 심협은 이미 귀신 바로 근처에 이르러 있었다.

    “키야아아!”

    귀신은 찢어질 듯 울어대며, 난폭한 눈빛으로 심협을 노려보았다. 귀신의 몸에서 풍기던 검은 기운은 더욱 짙어졌고, 양팔에서는 뼈가 맞부딪히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그러자 몇 장 떨어져 있는 심협의 머리까지 팔이 뻗어왔고, 몇 배나 커진 검은 손으로 잡으려 했다.

    심협은 좌우로 몸을 흔들었다. 그러자 환영이 되어 귀신의 손 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귀신의 뒤에서 나타나 소매를 휘둘렀다.

    번쩍!

    소뢰부의 두 줄기 번개가 귀신을 향해 발사됐다.

    “캬아아!”

    귀신은 피하지 않았다. 대신 몸 주위의 검은 기운이 두 배로 짙어졌다.

    번개 줄기들이 꽂히자 검은 기운이 요동쳤다. 번개는 사라졌고, 귀신의 몸은 아주 약간 굳어졌다가 금세 회복되었다.

    “고작 소뢰부 두 장 가지고…… 귀신 가려울까 봐 긁어주려는 건가? 흐흐흐.”

    백수 도장의 비웃음에 오동도 고소하다는 눈으로 상황을 구경했다. 심협이 귀신의 손에 죽기를 바라는 게 명백해 보였다.

    한편, 소뢰부의 공격을 받은 귀신은 화가 난 듯 심협을 향해 맹렬히 돌아섰다. 양손에서 감도는 검은 기운이 다시 심협을 덮치려 했다.

    그 순간, 심협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한 손을 휘둘렀다. 그의 손에서 다섯 장의 부적이 날아가며 다섯 줄기의 번개가 되어 귀신을 공격했다.

    귀신도 놀란 것인지 우뚝 멈추더니, 곧장 뒤로 물러서며 두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귀신 아래에 있던 검은 기운들이 모조리 말려 올라가 자욱한 벽이 되어 앞을 막아섰다.

    꽈르릉! 콰직!

    번개들이 검은 기운의 벽과 충돌하면서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검은 벽은 번갯빛이 번득이는 가운데 한층 얇아졌으나, 결국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귀신이 숨을 돌리기도 전에 심협이 양손을 펼치자 열 손가락 사이마다 부적이 들려 있었다.

    “아직 멀었다!”

    심협이 짧게 외치며 두 팔을 뻗자, 귀신 앞에서 우렛소리가 울렸다.

    꽈르릉!

    동시에 여섯 줄기의 번개가 눈 깜짝할 틈도 없이 날아들었다. 어찌나 빨랐던지, 귀신으로서는 피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콰쾅!

    굉음이 울렸다. 동시에 이미 약해져 있던 검은 기운의 벽은 무너져내렸고, 하얀 번개도 사라졌다.

    이 광경을 구경하던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진 가운데 또다시 일고여덟 개의 하얀 번개들이 허공에서 번득였다. 그러자 검은 벽이 무너져 훤히 드러난 귀신의 왼쪽 어깨에 번개가 꽂혔다.

    치지직!

    충돌음과 동시에 무언가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귀신의 왼쪽 어깨 아래부터 왼팔 전체, 그리고 몸의 왼편 거의 절반 정도가 순식간에 빽빽한 번개에 휩싸이더니 사라져 버렸다.

    “키야악!”

    귀신은 처참한 비명을 내지르며 뒤돌아 도망쳤다. 하지만 주위를 맴돌던 검은 기운은 반 이상 흩어진 상태로, 움직임 또한 매우 느려졌다.

    심협이 마치 마술을 부리듯 순식간에 거의 스무 장의 소뢰부를 사용하는 모습에, 강가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안색이 달라져 있었다.

    특히 백수 도장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이 휘둥그레져 거의 사색이 되어 있었다. 조롱을 한 자신이 오히려 망신을 당한 꼴이었다.

    오동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고, 입이 쩍 벌어져 있었다.

    하지만 강가의 사람들이 다른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심협은 다시 한번 손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한꺼번에 무려 열 줄기의 소뢰부 번개가 허공을 갈랐다.

    번개들은 순식간에 하나로 뭉쳐져 굵은 번개가 되더니, 벼락같은 속도로 귀신의 남은 반쪽을 공격했다.

    콰르릉! 퍼펑!

    “끼야아!”

    귀신은 처참한 비명만을 남긴 채, 검은 연기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붉은 옷 조각들이 검은 연기 속에서 떠올랐는데, 놀랄 만한 음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이 옷 조각은 낙엽처럼 나부끼며 떨어지다가 심협의 손에 잡혔다.

    귀신이 형태를 갖추려면 음기가 모일 핵심이 필요하다. 이 핵심은 보통 생전에 지니고 있던 물품인 경우가 많은데, 착귀방에는 임무 완수의 증거로 이 물품을 가지고 오라고 쓰여 있었다.

    ‘대단한 귀신이로구나. 소뢰부를 충분히 가지고 왔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위험할 뻔했어.’

    심협은 붉은 옷소매를 살펴보고 품에 집어넣은 후, 한숨을 돌리며 생각했다.

    “도우 여러분, 이번 임무는 심모가 선수를 좀 쳤습니다.”

    심협은 뒤돌아 강가에 있던 사람들에게 공수하며, 공손하지만 결코 비굴하지 않게 말했다. 그러고는 답수결을 사용해 강을 따라 홍엽진 방향으로 향했다.

    심협의 모습은 금세 저 멀리 야경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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