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47화 (147/1,214)
  • 147화. 건업성의 귀신들

    “심 대형, 뭘 보고 계시오? 저 여자가 아름답기는 하나,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오.”

    백소운이 어디선가 나타나 심협 옆에 앉으며 조용히 말했다.

    “저 여자가 사우흔이오?”

    심협이 시선을 돌리며 묻자, 백소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바로 저 여자요.”

    “그나저나, 가주께서는 무슨 일로 소집을 하신 게요?”

    심협의 물음에 백소운은 다소 놀라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고 계셨소? 하긴, 그간 거처에서 나오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하지. 최근 건업성에서 큰일들이 벌어졌소.”

    “큰일이라니, 무슨 일이 있었던 게요?”

    “말하자면 길지요. 예전 수난각에서 세 사람이 죽지 않았소? 그 사건이 시작에 불과했던 것 같소. 최근 한 달간 건업성 안팎에 귀신이 일을 벌였다는 사건이 빈번히 일어났는데, 여러 사람이 죽거나 다쳤소. 지금 건업성의 민심이 흉흉하여 아버지께서 대책을 마련하려 하시는 게지요.”

    백소운의 대답에 심협은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이 문을 걸어 잠그고 수련하는 동안 밖에서 이리 큰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잠시 후, 접선을 든 청년 객경(客卿)이 들어와 백학성에게 포권을 했다.

    “가주, 일이 있어 늦었습니다. 양해하여 주십시오.”

    “풍 도우 오시었소? 어서 앉으시오.”

    백학성은 고개를 끄덕인 후, 허리를 펴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 온 것 같으니 시작하겠소. 오늘 여러분을 소집한 목적은 다들 예상하고 있듯이, 건업성 곳곳에 귀신이 출몰하는 일 때문이오.”

    백학성이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자, 객경(客卿)들은 다들 표정이 바뀌었다.

    “그 이야기는 우리도 들은 바가 있습니다. 우리를 소집하셨으니, 가주께는 분명 계획이 있는 것이겠지요?”

    사우흔은 감았던 눈을 뜨며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소. 지금 건업성의 민심이 흉흉하여, 관부와 몇몇 세가가 모여 상의를 했소. 그리하여, 건업성 전체에서 남다른 능력을 지닌 자들을 소집해 함께 귀신들을 물리치기로 합의했소. 또한 착귀방(*捉鬼榜, 귀신 잡으라는 내용의 방)을 반포하여 포상을 걸고 장려할 것이오.”

    “감히 여쭙건대, 착귀방은 백가에서만 받은 것입니까?”

    사우흔이 다시 물었다.

    “아니오. 관부에서 반포하여, 관아와 임씨 집안, 두씨 집안에서도 모두 받았소. 방을 통해 내려온 임무는 언제든 다른 사람이 수행할 수 있으니, 각자 맡고 싶은 임무가 있다면 빨리 움직여야 할 것이오.”

    백학성이 웃으며 내놓은 말에, 모여 있던 객경들의 안색이 조급해졌다. 빨리 손을 쓰고 싶은 듯했다.

    “관부에서 내린 착귀방의 사본을 장방(賬房)에 놓아두었소. 임무와 포상이 자세히 적혀 있으니 잠시 후 직접 가서 보시오. 허나 그전에, 이 백모(白某)가 먼저 이야기해둘 것이 있소.”

    백학성이 두 손을 뻗어 진정하라는 듯 손짓을 하고는 엄숙한 표정으로 말하자 대청 안은 일순 조용해졌다. 그제야 백학성은 말을 이었다.

    “착귀방에 언급된 포상이 후하기는 하나, 임무는 매우 위험하오. 그러니 반드시 역량에 따라 행동하시오. 또한, 여러분은 우리 백가의 객경인 만큼, 임무를 완수한 후에 반드시 우리 집안 장방에 보고해야 하오. 그리하면 완수한 임무를 모두 합쳐 관부에 보고할 것이오.”

    위험과 기연은 공존하는 것이니, 객경들은 모두 상황을 이해했다. 아무런 위험 부담도 없이 보상만 받는 일은 없는 법이다. 완수한 임무를 백가의 공으로 돌리는 것에 대해서도 다들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니 심협은 백학성이 왜 이 점을 특별히 당부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여러분, 위기가 닥쳤으니 다 같이 협력하여 난관을 극복했으면 합니다. 건업성의 안녕을 위하여, 모두 힘을 합쳐 주십시오.”

    백학성이 그렇게 말을 맺자, 사우흔이 먼저 일어섰다.

    “착귀방이 반포되지 않았더라도, 요괴나 귀신을 없애는 것은 저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절대 백가의 제일 퇴마세가 명성을 떨어뜨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사우흔이 이리 말하자 다른 사람들도 일어나 호응하며 포권을 했다.

    “사 도우의 말에 마음이 놓이는구려.”

    백학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사람들은 착귀방을 확인하기 위해 장방으로 향했다.

    심협도 사람들을 따라 대청을 나섰다.

    “가주, 정말 임씨, 두씨 집안과 제일 퇴마세가의 자리를 두고 겨루게 된 일을 저들에게 알리지 않을 생각인가?”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떠난 후에야 백강풍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 일을 발설하면 객경들이 다른 마음을 먹을지도 모릅니다. 은밀히 알아보니, 임씨 집안과 두씨 집안도 이 일을 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백학성의 말에 백강풍도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그의 손에는 하얀 붉고도 작은 글씨가 빽빽이 쓰인 비단이 하나 들려 있었다. 착귀방의 임무들이었다. 하지만 백학성이 말한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으니, 임무에는 선옥이나 영재 등의 포상 대신 몇몇 숫자들만 적혀 있었다.

    “관부도 참 계산적이지. 제일 퇴마세가의 이름을 걸고 임무를 완수하라니. 게다가 임무 완수 실적을 합산한다고 삼대 세가를 경쟁시키지 않나. 하지만 제일 퇴마세가라는 포상도 무시할 수 없네. 현무가(玄武街)의 목 좋은 점포 세 곳 경영권과 건업성 밖 항구의 운수권 삼 할이면 경쟁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않나.”

    백강풍은 그렇게 말했으나, 분명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신감에 찬 미소였다.

    “관부도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최근 귀신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니, 단시간 내에 사태를 잠재우지 못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최근 일은 어찌 된 것인가? 각지에서 요괴와 귀신들이 빈번히 일을 벌이는 게, 설마 정말 소문처럼 경천동지(驚天動地)할 환난이라도 다가오는 것인가?”

    백강풍이 우려 섞인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묻자, 백학성은 차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우선 눈앞에 닥친 일부터 처리하고 생각하시지요.”

    * * *

    백학성과 백강풍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백가의 객경들은 장방에 모여들었다.

    장방에 세워진 높이 1장 정도의 목재 게시판에 임무들이 하나씩 나열되어 있었다.

    심협은 사람들 뒤에서 까치발을 세우고 살펴봤다. 게시판에는 작은 글씨가 빽빽이 적혀 있었는데, 모두 귀신 잡는 임무와 장소, 사정 등이 명확히 쓰여 있었다. 모두 아직 처리 전 상태로, 임무 뒤에는 각종 포상도 적혀 있었다. 선옥 외에도 영재 등의 포상도 있는 듯했다.

    “남문 장원교 일대 귀신. 물귀신의 소행으로 의심됨. 잠수에 능하고, 힘이 강함. 선옥 두 개를 포상으로 지급함.”

    “성 동쪽 유씨 집안의 귀신. 이미 다섯 명이 부상당하였으며, 가축도 앗아감. 정체가 불분명하며, 포상으로 화금목(火金木) 하나를 지급함.”

    “성 남쪽 유임진(柳林鎭)에 매일 밤 여자 귀신이 울어, 마을 사람들이 공포에 떨고 있음…….”

    심협은 자신도 모르게 눈빛을 빛냈다. 임무의 포상들이 매우 후해, 선옥 두세 개에서 심지어 심협의 1년 치 보수와 맞먹는 다섯 개 이상의 임무도 적지 않았다. 영재들은 잘 모르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분명 비범한 것들일 터였다.

    “포상이 상당하구나!”

    백소운이 놀란 듯 외쳤다.

    객경들은 포상 품목을 보며 기쁜 듯 흡족하게 웃었다. 백가의 객경들은 평소 수련에 필요한 것들을 누릴 수 있지만, 선옥만큼은 얻기 어려웠다. 주기적으로 지급받는 것 외에는 공을 세워야만 얻을 수 있었으니, 항상 선옥이 빠듯한 것이다. 임무 하나로 이렇게 후한 포상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다.

    심협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거두고는 뒤돌아 떠나려 했다. 임무를 맡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수련 수준으로는 위험이 너무 컸다. 게다가 어떻게 귀신을 물리친다 해도, 그 과정에서 부적 등의 소모가 클 것이 분명하니, 아무리 계산해 봐도 그리 득 될 것이 없었다.

    지금 그는 무명공법의 수련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고, 최근 선옥도 많이 얻었기에 선옥이나 영재에 대한 욕심도 크지 않았다. 그저 혹시나 싶어 어떤 임무가 있는지 확인한 것뿐이다.

    “심 대형은 임무들에 관심 없으시오?”

    백소운이 다가와 묻자, 심협은 웃으며 대충 둘러댔다.

    “앞에 사람이 너무 많으니, 나중에 다시 와서 보려는 것이오.”

    그때, 옆에서 괴상한 목소리가 일갈했다.

    “아직 수염도 제대로 나지 않는 어린놈이 무슨 귀신 잡는 임무를 맡아보겠다는 게냐? 귀신 잡기도 전에 네놈이 귀신이 되겠지!”

    심협과 백소운이 돌아보니, 백수 도장이 곁눈질로 힐끔거리며 비웃고 있었다.

    “옳소! 고작 연기 5층 밖에 안 되는 자가 괜히 나서봐야 망신만 당하겠지.”

    옆에서 오동이 아니꼬운 눈으로 심협을 훑어보며 맞장구를 쳤다.

    다른 객경들의 시선도 모두 집중됐으나, 심협은 담담한 표정으로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옆에 있던 백소운이 백수 도장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백수 도우, 내가 알기로는 얼마 전 진회교 사건 때, 심 대형이 옆에서 일깨워줬는데도 그대는 줄곧 귀신의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하지 않았소? 그러다가 결국 물귀신에게 끌려가 물에 빠지는 바람에 개망신을 당했다던데, 그게 사실이오? 사실이라면 우리 가문에 먹칠을 한 것이기도 한데…….”

    백소운의 말에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들어본 적이 있는데, 정말 그런 일이 있었나보구나!”

    “흐흐, 백수 도장도 잘못 볼 때가 있나 보네?”

    “다 헛소리요!”

    백수 도장은 백소운에 의해 망신스러운 일이 드러나자,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다. 그는 사나운 눈빛으로 심협을 노려본 후, 다시 임무가 적힌 게시판으로 시선을 옮겼다.

    “초려(楚厲) 도우, 저자가 여덟 번째 객경(客卿)이오? 백수 도장과 사이가 좋지 않은 듯한데?”

    접선(*摺扇, 쥘부채)을 든 청년 객경이 옆에 있는 대머리 사내에게 물었다.

    “맞소. 바로 저자가 여덟 번째 객경이지. 하지만 그게 여덟 팔(八)이 아니라 빌붙는다는 뜻의 파(*巴, 중국어에서 八과 발음이 같음)라네. 저것 보게. 대공자가 떠나고 나니, 바로 둘째 공자에게 빌붙지 않았나?”

    초려는 머리털이 없는 머리를 손으로 문지르며 비웃었다.

    “하하, 어쩐지. 그리 된 것이었소?”

    청년 객경도 웃으며 말했다.

    근처에 있던 다른 객경들은 초려와 청년 객경의 대화를 듣고는 한층 더 경멸 어린 눈으로 심협을 쳐다보았다.

    한편, 집중해 임무를 살펴보던 사우흔도 심협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고운 눈에도 경멸의 눈빛이 스쳤다. 그러고는 곧 시선을 돌려 다시 임무 게시판을 바라봤다.

    심협은 사람들의 비아냥거림에도 담담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는 더 따지려고 하는 백소운을 잡아끌고는 가볍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백소운은 화가 풀리지 않았지만, 당사자인 심협이 이렇게 나오니 분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게시판 앞이 조금 한산해진 후에야 심협은 가까이 다가가 임무를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건 괜찮아 보이는군. 성 남쪽 홍엽진(紅葉鎭) 강 귀신 사건. 여러 사공이 목숨을 잃음. 포상으로 화린목(火麟木) 한 개 지급.”

    심협은 기쁜 마음으로 나지막이 임무를 읽었다.

    화린목은 순양보전에 적힌, 순양검배를 만드는 데에 적합한 주요 재료 중 하나다. 그는 최근 순양검배 제작에 필요한 재료들을 찾는 중이었지만, 지금껏 하나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중 하나를 찾게 된 것이다.

    심협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주제 파악도 못하고 홍엽진 임무를 수행하겠다고? 화린목이 탐나는 모양인데, 설마 포상이 후할수록 임무가 어려운 것도 모르는 건가?”

    초려는 백소운을 의식한 것인지 조용히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럼에도 다 들렸지만, 심협은 듣지 못한 것처럼 그대로 자신의 거처로 향했다. 백소운도 콧방귀를 뀌며 초려를 노려보고는 뒤를 따랐다.

    백수 도장은 멀어져 가는 심협의 뒷모습을 차가운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네놈 주제에 이 임무를 맡아보겠다고? 그 화린목은 내가 가져야겠다.”

    그렇게 결정한 백수 도장이 곧장 장방을 나서려는데, 오동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재빨리 따라 나섰다.

    “백수 도장, 잠시 기다려 주시오. 그 홍엽진 임무에 나도 껴주시오.”

    주변 사람들은 비릿하게 웃으며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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