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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46화 (146/1,214)
  • 146화. 숨겨진 내막

    “내 분명 법력을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발각되다니. 저놈이 수련은 높지 않건만, 경계심이 많고 결단력이 있군.”

    노응은 빈 거리를 바라보며 아쉬운 듯 말했다.

    “안타깝구나. 비둔부를 빼앗았더라면 내 큰 공을 세우는 것인데…….”

    * * *

    한편, 심협은 백소운을 데리고 백부 근처의 사람이 없는 길모퉁이에 내려섰다.

    “심 대형, 왜 그러시오?”

    백소운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방금 누군가 살의를 품은 채 매우 교묘하게 숨어 있었소.”

    심협이 잠시 망설이다가 답하자 백소운은 놀라 되물었다.

    “나를 노린 것이오? 아니면 비둔부를 노린 것이오?”

    “비둔부일 거요. 허나 무슨 차이가 있겠소? 그자가 비둔부를 빼앗을 생각이었다면 분명 우리를 죽이려 들었을 터인데…….”

    “건업성에서 누가 감히 그런 짓을 벌이려 한단 말이오?”

    “이익이 크다면 누구라도 살의를 품을 수 있지. 내 추측컨대, 분명 임씨나 두씨 집안의 사람일 것이오.”

    심협이 미간을 조심스레 말하자 백소운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두려운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심 대형, 그 말은 두안과 임벽추가 나를 자극하여 비둔부를 가지고 나오게 한 것부터 함정이었다는 말이오?”

    “그건 아닐 게요. 그들은 공자가 비둔부를 가지고 나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테니까.”

    심협의 말에 조금은 안도한 백소운이 다른 질문을 꺼냈다.

    “심 대형, 그런데 내 궁금한 것이 있소. 부친께서 어찌 심 대형에게 비둔부를 주신 것이오?”

    “이 부적은 비둔부가 아니오. 대답이 됐소?”

    심협은 비행부를 꺼내 흔들며 웃었다.

    “무슨 말이오?”

    백소운의 눈이 휘둥그레지자 심협은 더욱 장난스레 웃었다.

    “이것은 비행부요. 비둔부만큼 고명하지는 않으나, 내게는 소중한 보물이오. 벌써 두 번이나 사용하면서 영기를 많이 소모했는데, 어쩌면 좋소?”

    “그야 걱정할 것 없지. 임벽추에게 선옥 열다섯 개를 받기로 하지 않았소? 그 선옥, 심 대형이 모두 가지시오. 난 내기에 이겼으니 그걸로 됐소. 하하하!”

    백소운이 호방하게 웃은 반면, 심협은 당황한 듯 손을 내저었다.

    “그건 안 될 말이오. 공자가 아니었더라면 내 어찌 그자들과 내기를 할 수 있었겠소? 그러니 선옥은 반씩 나눕시다.”

    그 말에 백소운은 심협을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심 대형, 내 우리 형이 왜 대형을 친구로 삼았는지 알겠소.”

    “무슨 이유요?”

    “대형이 인정이 많으니까 그런 것 아니겠소? 하하하!”

    백소운이 껄껄거리자 심협도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이내 다시 진지해졌다.

    “소운, 수련을 등한시해서는 안 되오. 다시 시작해봅시다.”

    “나라고 왜 그러고 싶지 않겠소? 다만 내 어릴 적에 우리 집안의 적에게 음해를 받았소. 그때 형이 목숨 걸고 지켜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때 죽었을 것이오. 그러나 결국 음살의 기운이 몸에 들어 수련의 근본이 망가졌으니, 이제 수련과는 인연이 끝났소.”

    백소운의 표정은 더없이 어두워져, 보는 것만으로도 비통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심협은 이제 뭔가를 알 것 같았다. 이전에 춘추관에서 지낼 때 왜 백소천이 자신을 남달리 대한 것인지……. 동생인 백소운과 비슷한 상황을 겪은 심협이 남 같지 않았으리라. 단, 차이가 있다면, 백소운과 달리 자신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이지요. 우리 집안에 뛰어난 자질을 타고난 형이 있으니 말이오.”

    백소운은 후련한 표정으로 말했으나, 씁쓸함은 숨길 수 없었다.

    “혹시 이런 생각은 안 해보았소? 그대의 형은 사실 그대가 이대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 수행하기를 바랄 것이라고…….”

    “더 수행해봐야 웃음거리만 될 게 뻔한데, 내 무엇하러 그러겠소?”

    심협의 물음에 백소운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만약 내가 2년여 전까지만 해도 통법성조차 이루지 못한 채 언제라도 죽을 수 있었던 놈이었다면, 믿겠소?”

    심협이 진중한 목소리로 묻자 백소운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심협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자신의 과거를 천천히 이야기해 주었다. 물론 무명천서와 옥침과 같은 기이한 일들은 일절 말하지 않았다.

    백소운은 줄곧 얌전히 듣고 있었지만, 표정만큼은 복잡했다.

    한참이 지났을 때, 백소운은 길게 탄식하며 진지하게 물었다.

    “나로서는 정말 상상하기도 어렵소. 그간 대형은 어찌 버텨온 것이오?”

    “누구라도 살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그 과정의 괴로움은 개의치 않는 법이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테니까.”

    심협은 한자 한자 또박또박 말했다.

    “나도 한때는 포기하지 않았소.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내 수련에는 진전이 없었고, 형과의 차이는 점점 벌어졌소. 그러니 내 결국 포기한 것이지요. 어쨌거나 하늘이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아버지와 형이…… 그리고 조부 항렬의 어르신들이 막아줄 테니까. 하지만 돌이켜보니 정말이지…… 내 너무도 어리석었군요.”

    백소운의 침통한 목소리에 심협이 한층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만 분의 일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만 배의 노력이라도 해야 하오. 절대 포기하지 말고……. 소운 그대도 평생 다른 사람들에게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부잣집 자제로 남길 바라지는 않을 것 아니오?”

    “무슨 말인지 내 잘 알겠소.”

    백소운의 눈이 번득였다. 마치 마음속 깊은 곳에서 꺼져가고 있던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임벽추와 두안은 어떤 사람이오?”

    심협이 돌연 화제를 돌렸다.

    “임씨 집안은 줄곧 우리 집안에 불복했소. 임벽추 또한 그러하지요. 그래서 내 기세를 꺾으려고 늘 나와 맞서고 있소. 두안은 반쯤 임벽추의 수행원처럼 따라다니는데, 옆에서 종종 부추기기도 하오.”

    심협은 백소운의 말을 듣고 있자니,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임벽추는 대놓고 나쁜 짓을 저지르는 자니까 몰래 나쁜 짓을 꾸미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두안은…… 임벽추보다 서열이 낮은 자처럼 따라다니고 있지만, 사실 둘이 벌이는 나쁜 짓의 대부분은 그가 내놓고 있지요. 내 임벽추와 몇 번 부딪친 적이 있는데, 모두 두안이 옆에서 부추기는 바람에 생긴 일들이었소. 그러니 사실 더욱 경계해야 할 사람은 두안이지요.”

    백소운이 덧붙이자 심협은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공자도 제대로 보고 있었군.”

    “심 대형, 내 수련은 포기했어도 머리는 굴릴 줄 압니다. 하하하!”

    “지금 세상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오. 사실 난세가 펼쳐질 조짐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고, 건업성도 평온하지 않소. 백가도 퇴마 세가로서, 이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을 터. 지금 백소천이 곁에 없으니 그대도 더 조심해야 할 게요.”

    심협이 그렇게 말하자 백소운이 그를 빤히 쳐다보다가 불쑥 물었다.

    “심 대형, 사실 내 궁금한 것이 있소. 솔직히 처음에 나와 그리 잘 맞지 않았는데, 어째서 나를 도와준 것이오?”

    “그대가 백소천의 동생이기 때문이오.”

    심협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고, 백소운은 환하게 웃었다. 그러나 이내 무언가 떠오른 듯 다시 진지하게 말했다.

    “심 대형, 앞으로 조심해야 할 것이오. 지난번 대형에게 패배한 오동이 최근 사우흔(謝雨欣)과 가까이 지내는데, 아마 힘을 빌려 일을 벌이려는 것 같소.”

    “사우흔이 누구요?”

    심협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우리 집안 객경(客卿) 중 유일하게 수련이 벽곡 초기에 이른 수사(修士)요. 용모는 매우 아름다우나 성미가 아주 별로라서, 평소에 냉정하고 고고한 척을 하지요. 사실 사우흔이 오동을 안중에 두고 있지는 않을 테지만, 최대한 사우흔을 자극하지 마시오.”

    “다 같은 객경으로서 함께 백가를 위해 힘쓰면 될 것을, 같은 편끼리 싸울 것 뭐 있겠소? 가주께서는 관여치 않으시오?”

    심협이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그야 우리 집안이 워낙 크다 보니……. 사람이 많으면 시비도 많은 것 아니겠소? 따지자면 끝도 없겠지. 그러나 아버지께서 관여하시려 해도 소소한 갈등들까지 다 신경 쓰시지는 못할 수밖에. 사실 대형에게 불만이 있는 자가 많소. 그러니 우리 집안의 다른 사람들은 그리 믿지 마시오.”

    백소운은 머리를 긁적이며 무언가를 더 말하려다 말고 말을 맺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백소운이라는, 철없는 공자에 대한 인상이 한층 더 좋아지는 순간이었다.

    심협은 백소운에게 비행부에 관련해서는 비밀로 해줄 것을 신신당부했다. 백소운은 가슴을 쳐 보이며 비밀은 꼭 지키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그러고 나서 두 사람은 함께 백부로 돌아갔다.

    그날 이후, 백가의 사고뭉치 둘째 도련님은 완전히 새사람이 되어 다시 수련을 시작했다.

    * * *

    내기 사건 며칠 후, 심협의 거처 침실 안. 심협은 큰 나무 통 안에 물을 채우고, 그 안에 몸을 담근 채 두 눈을 꼭 감고는 무명공법을 운공했다. 천지영기들이 몰려들어 심협의 몸으로 들어가면서 옅은 파란 빛이 몸에서 투영됐다.

    한참 후, 심협은 눈을 번쩍 떴다. 무슨 일인지, 매우 기쁜 표정이었다.

    연기기 수련의 주요 내용은 체내 곳곳의 경혈들을 뚫는 것이다. 이 부분은 황정경과 무명공법이 같다.

    지난 며칠간, 심협은 꿈속에서 터득한 황정경의 수련 경험을 무명공법의 수련에 응용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수련 속도가 훨씬 더 빨라졌다. 백소천이나 영락 같은 천재들에 비하면 부족할지 몰라도 평범한 수사들보다는 훨씬 빠른 속도일 듯했다.

    심협은 다시 눈을 감고 수련 상태에 접어들었다.

    * * *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심협은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온종일 수련에 전념했다. 수련에만 매달리니 성과도 적지 않았다. 연달아 임독양맥의 여러 경맥을 뚫음으로써 서서히 연기 5층의 최고점에 다가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그가 수련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심협은 수련을 방해받아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일어나 대문을 열었다. 그러자 열 살 남짓한 시녀가 서 있다가 공손한 표정으로 말했다.

    “심 공자, 가주께서 찾으십니다.”

    “가주께서? 무슨 일이라도 있소?”

    심협은 약간 긴장하며 물었다.

    “별다른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그저 저에게 공자를 경명청(鏡明廳)으로 청해오라는 말씀뿐이었습니다.”

    “알겠소.”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의문이 들었다. 경명청은 백가가 일을 논의하는 곳인데, 어째서 자신을 그곳으로 부른단 말인가?

    시녀가 예를 갖추고 물러가자 심협은 방으로 돌아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경명청으로 향했다.

    족히 이삼십 명은 앉을 수 있을 만큼 넓은 대청에는 이미 몇 사람이 있었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의 복장은 각자 달랐으나, 다들 허리에 객경 영패를 차고 있었고, 분위기도 범상치 않았다. 그리고 모두들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심협은 객경으로 들어온 후로 주로 거처에서 수련하며 지냈으니, 백수 도장과 오동 외의 객경들을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대청 안의 주인 자리에는 백학성과 백강풍이, 두 사람 곁에는 백가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하나같이 표정이 엄숙했다.

    심협이 들어오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며 무형의 압박감이 엄습해 오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꿈속에서 출규기의 요괴도 무찔러본 심협이 이 정도 압박감에 주눅을 들 이유는 없었다.

    “심협이 왔구나. 어서 오게.”

    백학성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가 이토록 친절하게 대하니, 오히려 심협을 향한 객경들의 시선들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가주를 뵈옵니다.”

    심협은 백학성에게 예를 갖추고는 대청 안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는데, 돌아보니 오동이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는 백수 도장과 함께, 붉은 옷을 입은 여자의 뒤에 앉아 있었다.

    이 여인은 버들잎 같은 눈썹에 연꽃처럼 고운 얼굴을 지녔고, 피부도 희고 매끄러워 매우 아름다웠다. 게다가 몸매도 빼어났는데, 특히 다리가 매우 길고 늘씬했다. 이 자리에서 그녀는 마치 군계일학(*群鷄一鶴, 닭의 무리에 껴 있는 한 마리 학)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는 지금 두 눈을 살짝 감은 것이 수양이라도 하는 모양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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