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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43화 (143/1,214)

143화. 진짜 주인

진혼금홀의 가치는 비유하자면 수백 년간 전해진 서화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완벽하게 보존된, 그것도 명인의 작품이라면? 그 값은 상상도 할 수 없게 마련이다.

주인장은 심협을 잠시 기다리게 한 후, 선옥을 준비하러 내당으로 갔다.

“주인장,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심협은 잠시 망설이다가 주인장을 불러 세웠다. 그러자 주인장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는데, 아마도 심협이 거래를 취소하려는 것으로 착각한 듯했다.

“선옥은 가져오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뭘 좀 더 살 생각이니, 다 계산해본 후 가지고 오셔도 늦지 않습니다.”

심협이 웃으며 말하자 그제야 주인장은 긴장을 풀고 다가왔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심협은 필요한 영재들을 읊기 시작했다.

“청란목(靑鸞木), 강주선로(絳珠仙露), 명령금분(螟蛉金粉), 철골동청(鐵骨冬靑)…….”

주인장은 첫 번째로 나온 영재의 이름을 듣고 눈썹을 치켜세웠고, 점점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리고 심협이 십여 가지 영재의 이름을 모두 댔을 때, 주인장은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심협이 말한 것들은 파갑부와 비행부, 정통 낙뢰부 등의 높은 경지의 부적을 쓸 때 필요한 재료들로, 하나같이 진귀한 고급 영재들이기 때문이다.

“주인장, 그걸 모두 사려는 건 아니오. 일단 가게에 있는 것을 알려주시겠소?”

심협은 주인장의 표정을 보고는 급히 덧붙였다.

“심 공자, 정말 사람 놀라게 하시는군요. 말씀하신 물건들 중에, 저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절반도 안 됩니다. 심지어는 들어보지도 못한 것들도 있고요.”

주인장은 침을 삼키며 말했다.

“가지고 있는 게 어떤 것이오?”

“청란목과 철골동청, 명령금분은 있습니다. 천산자와 강주선로도 있으나 재고가 많지 않고요. 안타깝게도 나머지는 저희에게도 없군요.”

주인장은 목록을 떠올려본 후에 답했다.

가게에 있는 재료 중 천산갑은 파갑부 제작에, 나머지 네 가지는 비행부 제작에 필요한 것들이었다. 주재료는 청란목과 철골동청이고, 다른 두 가지는 보조재료였다.

심협은 비행부의 재료만이라도 있다는 것에 기뻐하며 가격을 물었다.

“청란목은 특히 진귀한 것이라, 두 개에 선옥 하나를 지불하셔야 합니다. 철골동청은 열 개에 선옥 하나, 명령금분과 강주선로는 한 병에 선옥 하나입니다.”

진혼금홀을 판 선옥으로도 부족할까 걱정하던 심협은 다행히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안도하며 물었다.

“한번 볼 수 있겠습니까?”

“귀중한 영재들인 만큼 따로 보관하고 있습니다. 잠시 기다리시면 가지고 오지요.”

주인장은 말을 마치자마자 내당으로 들어갔다가 잠시 후 몇 가지 물건이 놓인 쟁반을 들고 나왔다.

가장 좌측에 있는 것은 길이 두 척 정도의 청색 목재 한 쌍이었다. 아이 팔뚝만 한 굵기에, 영기가 겉을 에워싸고 있는 듯했다. 내부에는 옅지만 화려한 빛이 담겨 있었는데, 이 빛은 뭉친 채로 흩어지지 않았다.

반대쪽에는 작은 타원형의 잎이 잔뜩 돋은 나뭇가지 열 개가 있었다. 나뭇가지에는 검푸른 빛이 일고 있어, 마치 정제된 철로 주조한 것처럼 보였다.

그 옆에는 길이 일 촌 정도의 청색과 백색 자기병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

“이것 외에 자운지 열 장과 청상지 오십 장을 더 사려고 합니다. 아, 그리고 혹시 연부로도 있습니까?”

심협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있긴 합니다만 품질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법기의 수준까지 이르지 못한 것이지요. 심 공자께서 부적용 먹을 만들고자 하신다면, 소화부(燒火符) 몇 장과 함께 사용하십시오. 효과가 더 좋을 것입니다.”

주인장의 말에 심협은 내심 호기심이 동했다.

“소화부는 가격이 어떻게 되오?”

“소화부는 공격류 부적이긴 하나 위력에 한계가 있어 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습니다. 은자 오십 냥이면 살 수 있지요. 공자께서 몇 장이나 필요하십니까?”

주인장의 물음에 심협은 잠시 머릿속으로 계산해본 후 답했다.

“우선 열 장 주시오.”

“좋습니다. 물건을 준비해 오겠습니다.”

큰 거래가 성사되자 매우 기뻤던 주인장은 금세 물건을 모두 가지고 왔다. 그런데 확인해보니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청상지가 어째서 일흔두 장이나 되는 것이오?”

“청상지는 선옥 하나에 열두 장을 드린 것입니다. 선옥을 여섯 개 받았으니 일흔두 장이지요. 자운지는 깎아드리기가 어려우니 선옥 열 개를 주시면 됩니다. 청란목 등의 영재는 모두 합쳐 선옥 네 개를 쳐주시면 되니, 선옥 총 스무 개입니다. 은자로 치르실 물건들은 다 합쳐 팔백 냥입니다.”

주인장의 설명에 심협은 감사를 담아 포권을 했다.

“감사하오, 주인장.”

주인장은 물건들을 포장하여 정교한 목합 안에 넣었다. 그리고 선옥 열 개를 가지고 와서는 비단 주머니에 넣어 심협에게 건넸다.

물건을 받은 심협은 계산을 마친 후 가게를 나섰다.

* * *

심협이 떠나고 얼마나 지났을까? 아름다운 소녀가 내당에서 걸어 나왔다. 물론 마수수였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주인장이 자신의 딸을 보더니 공손한 표정으로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이 소녀는 가느다란 두 손가락으로 진혼금홀을 집어 들고 자세히 살피더니 눈썹을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마 영감, 이 물건을 너무 낮게 쳐줬구려. 나중에 그에게 선옥 열 개를 더 주도록 하시오.”

소녀의 노련한 말투와 목소리에서는 지금껏 보였던 나약한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주인님, 선옥 서른 개도 결코 적은 것이 아닙니다! 혹시 이 늙은이가 보는 눈이 없었던 겁니까? 이것이…… 진혼금홀이 아니란 말씀입니까?”

주인장은 놀랍게도 자신의 ‘딸’을 ‘주인님’이라 칭했다!

“물건은 제대로 알아봤네. 다만 그 급을 낮게 봤어. 여기 새겨진 부적 문양은 수준이 지극히 높으니, 혼을 달래어 업을 모두 없앨 수 있다네. 심지어 천 년 묵은 원혼도 저승으로 돌려보낼 수 있을 정도야. 안타까운 것은, 비록 잘 보전되어 있다고는 하나 이 안에 담긴 영기가 일 할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뿐.”

소녀는 유감스러운 듯 말했다.

“이리 귀중한 물건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니 심 공자는 보통 신분이 아닌 듯합니다.”

주인장이 망설이며 말했다.

“그의 자질이나 기운으로 보았을 때, 체계적인 대종파에서 수련한 제자 같지는 않았네. 아마 무슨 기연을 만났겠지. 그가 사간 물건들만 보더라도 모두 높은 경지의 부적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것 아닌가? 백부의 객경(客卿) 따위가 어떻게 그런 부적의 제작 방법을 알고 있겠나?”

“그건……?”

주인장은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오늘 일은 나도 흥미로워 이리 한 것뿐이니 신경 쓰지 말게. 그자와는 지금의 관계를 유지하면 돼. 앞으로 그자가 정말 높은 경지의 부적을 가지고 와서 거래하고자 한다면, 그때 가서 교분을 맺어도 늦지 않음이야.”

소녀는 웃으며 편하게 이야기했다.

“네.”

주인장은 바로 대답했다.

* * *

자신의 거처로 돌아온 심협은 곧장 부적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방촌산에서 배운 다섯 가지 부적 중, 당장 낙뢰부와 비행부의 재료는 갖춰졌으니 제작해볼 수 있었다. 물론 낙뢰부는 대체 방식의 재료뿐이지만.

우선은 새로 사온 부적지 대신 보통의 황지에 연습을 해보며 필법을 손에 익혔다. 수련과 마찬가지로, 부적 쓰는 것도 꿈속에서 성공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될 터였다. 부적을 쓸 때의 관문이 어디쯤에서 나타나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다만 마음과 눈, 손이 서로 하나가 되어 움직이기란 알고 있어도 어려웠다.

수많은 연습 끝에 심협은 필법에 점점 능숙해졌다. 마음과 눈이 합일되거나, 손과 눈이 합일되어 움직이는 것도 이제는 제법 나아졌다. 마음과 손이 하나 되어 움직이는 것은 시간을 두고 꾸준히 노력해야 할 과제였다.

이후 두 달 동안, 심협은 꾸준히 수련하면서도 매일 삼사십 장의 낙뢰부와 비행부를 썼다. 이토록 많은 부적을 쓰고 나면 법력과 신식이 거의 소진되었고 심지어 몇 번은 혼절해 버리기도 했다.

한번은 비행부를 쓰고 있었는데, 다 쓰자마자 부적지에서 청색 빛이 일었다. 하지만 그 빛은 은은하게 요동치다가 펑 하고 타버리는 것이 아닌가!

심협은 속으로 기뻐했다. 부적을 성공적으로 씀으로써 부적의 신(神)과 기(氣)가 서로 통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적지와 부적용 먹이 기준에 못 미친 탓에 높은 경지의 부적에 담긴 신과 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스로 타버린 것이다.

어쨌든 이 일로 자신감이 생긴 심협은 부적용 먹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정식으로 비행부와 낙뢰부를 제작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던 날이 왔다. 날씨가 흐려지더니 비가 오고 천둥번개가 치기 시작한 것이다.

낙뢰부는 많이 써보았으니 경험은 충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매우 힘이 들었다. 서른여덟 장의 청상지를 써버리고 나서야, 날이 개기 전에 겨우 낙뢰부 한 장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후 그는 보름에 걸쳐 쉬지 않고 황지에 부적 쓰기를 연습했다. 손에 익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다시 또 한참을 기다려 비가 오고 천둥번개가 쳤다. 심협은 다시 스물한 장의 낙뢰부를 연달아 썼고, 그중 한 장만 성공할 수 있었다. 남은 열세 장의 청상지 중 열두 장을 더 낙뢰부에 사용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청상지가 마지막 한 장 남았을 때, 그는 비행부를 써보았다. 종이는 비록 자운지가 아닌 청상지를 사용했지만, 먹은 비행부에 필요한 전용 먹을 사용했다.

사실 큰 기대는 되지 않았지만, 자운지에 부적을 쓰기 전에 부적이 완성된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아보고 싶어 시험 삼아 해본 것뿐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막상 써보니 느낌이 매우 좋았다. 부적 문양도 단숨에 완성된 것이 성공적으로 써낸 것 같았다.

하지만 기뻐할 겨를도 없이 부적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스스로 타버렸다.

“역시 청상지로는 비행부를 쓸 수가 없구나.”

심협은 아깝다는 생각을 버리고, 기세를 몰아 자운지를 꺼내 비행부를 계속 썼다.

하지만 좀 전과 같은 손에 익은 느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연달아 세 장의 자운지를 썼지만, 단 한 장도 성공해내지 못했다.

“이런! 처음부터 청상지가 아닌 자운지를 썼다면 한 장은 성공했을 것을…….”

후회가 막급했지만, 어차피 후회해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심협은 혀를 끌끌 차고는 자운지를 치워버렸다.

며칠 후에야 심협은 다시 부적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운지를 모두 사용하고도 단 한 장도 성공하지 못하자 답답함을 이길 수가 없었다.

그동안 심협은 백가에서 두 차례 임무를 받았다. 그가 맡은 임무는 사악한 기운이 들거나 음살의 기운이 일으킨 사소한 일이라 비교적 쉬웠다. 그래서인지 보수도 약간의 은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심협은 개의치 않았다. 수련이란 서두른다고 되는 일이 아님을 알고 있으니 차차 해나갈 생각이었다. 자연히 다른 객경과 경쟁할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이런 그의 태도는 다른 객경들, 특히 수련이 심협보다 약간 더 앞선 이들에게는 안일함으로 보였다.

사실 백부의 서출 자제들은 심협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심협이 백소천 덕에 백부에 얹혀 살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심협도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알고 있었지만, 이 또한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러던 중 예상 밖의 일이 있었다. 백소운과 서출 자제들이 다투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됐는데, 백소운이 자신을 칭찬하는 것 아닌가! 더구나 자신의 형 백소천과 호형호제하는 사람인데 어찌 쓸모없는 사람이라 하느냐며 심협을 편 든 것이다.

하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백소운을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망나니라 여겼으니,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백소운만이 심협을 좋게 보는 것은 아니었다. 삼장로인 백강풍 역시 심협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심협이 부적술을 익히고 있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수시로 둘은 부적 제작에 대해 토론을 했다.

비록 심협이 부적 제작에 그리 뛰어나지는 않으나, 이론적인 깨달음과 나름의 견해가 있었기에 간혹 백강풍도 놀라곤 했다.

그리고 도중에 녹보당에서 소식을 전해왔다. 진혼금홀의 가치를 너무 낮게 계산했으니, 선옥 열 개를 추가로 지급하겠다는 것이었다.

심협은 기쁜 마음에 얼른 가서 부적지와 영재들을 구입해 돌아와서는 목숨 걸고 다시 낙뢰부와 비행부를 연습했다.

다시 한 달가량이 지났을 때, 두 장의 낙뢰부와 한 장의 비행부가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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