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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42화 (142/1,214)
  • 142화. 진혼금홀(鎭魂金笏)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조급해지던 차였기에, 오동은 작정하고 전력을 다해 공격했다.

    심협은 사월보를 대략 익힌 후로 신법(身法)만큼은 연기기 수사 중 최고라 자부했다. 다만 실전 경험이 부족했는데, 이번 기회에 연습을 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에 심협은 약간의 기교만으로도 오동의 공격을 쉽게 피할 수 있었다.

    거리에는 오동의 연이은 공격과 기합이 계속됐으나,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심협이 갑자기 외쳤다.

    “오 도우, 조심하시오!”

    이어서 그의 발아래에 빛이 일더니 교묘하게 주먹을 피하고는 마치 귀신처럼 오동의 뒤로 돌아 갔다. 그러고는 곧장 그 등을 두들긴 것이다.

    오동은 앞으로 몇 걸음 비틀거리고 나서야 몸을 가누었다.

    “흥! 고작 이게 다냐? 그 정도로는 내 몸의 양기조차도 깰 수 없다!”

    그는 심협을 돌아보고 비릿하게 웃었으나, 이내 동정하는 듯한 심협의 눈빛을 보고는 뭔가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이어서 심협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손을 크게 휘둘렀다.

    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오동의 등 뒤에서 돌연 번개가 번득였다. 그러자 그의 몸을 보호하던 황색 빛이 찢어졌고, 온몸이 맹렬히 떨렸으며, 머리 위에서는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뒤이어 그는 몸이 경직된 채 꼿꼿하게 앞으로 쓰러졌다.

    쿵!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웃고 있던 백소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눈빛을 보아하니 넋을 잃은 듯했다.

    주인장 역시 입이 떡 벌어져 있었고, 마수수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심협은 손을 털며 오동에게 다가가더니 허리를 숙여 살폈다. 오동의 등에는 옷이 찢어졌고, 검게 탄 상처와 혈흔이 있긴 했지만, 중상은 아니었다.

    심협은 안심하며 일어나더니 백소운에게로 돌아섰다.

    “대단해! 만천과해(瞞天過海) 초식에 이어 직도황룡(直搗黃龍)까지! 실로 오묘하군! 심 장로, 정말 멋졌어!”

    예상외로 백소운은 화내기는커녕 엄지를 치켜세우며 심협에게 감탄했다. 이에 오히려 심협이 놀라고야 말았다.

    “그…… 약속은 어찌 하겠소?”

    심협은 짐짓 어색함을 숨기며 물었다.

    “군자는 한번 한 말은 지키는 법! 그대가 이겼으니, 모두 그대의 말대로 하겠소. 앞으로 절대 녹보당 주인장과 마 낭자를 곤란하게 하지 않겠소.”

    백소운은 아쉬운 듯 마수수를 한번 바라보고는 길게 탄식했다.

    “내뱉은 말은 지키는 것이 진정한 사나이지요.”

    심협도 웃으며 말했다.

    “연기 5층의 수사가 연기 6층의 수사를 꺾다니, 진정 예상치 못했소. 눈앞에서 실력을 확인했으니 인정해야지요. 진심으로 탄복했소.”

    백소운이 진중한 목소리로 말하자 너무도 의외였던 심협은 순간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마 영감, 그간 미안했소. 심 대형께서 수수 낭자를 마음에 들어 하고, 수수 낭자도 같은 마음이니, 내 그런 남녀를 갈라놓는 심보는 부리지 않을 게요. 앞으로 도움 필요한 일이 있으면 백부로 나를 찾아오시오.”

    백소운이 깍듯하게 말하자 주인장은 황공하여 어쩔 줄을 몰라 했고, 마수수는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가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내 마 낭자를 탐내는 것이 아니니 이상한 말은 마시오.”

    심협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다급히 말했다. 그러나 백소운은 그를 돌아보며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씩 웃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심협은 그게 ‘나도 남자이니 다 알 수 있소’라는 뜻임을 대번이 이해했다.

    심협이 뭐라고 대꾸할 새도 없이 백소운은 두 호종에게 오동을 들게 하고는 떠나갔다. 그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던 심협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주인장, 백소운이 젊고 혈기가 넘치는 데다가 버릇없는 성미가 고약하긴 하나, 본성은 나쁘지 않은 듯하오. 약속도 지킬 사람으로 보이니 안심하셔도 좋겠소. 그러나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백부로 와서 나를 찾으시오.”

    본래 심협은 백소운의 인상은 그리 좋게도, 나쁘게도 보지 않고 있었다. 다만 백소천과의 우정 때문에라도 그를 대신해 사람 된 도리를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백소운이 이처럼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마음에 담아두지도 않는 모습을 보자 그에 대한 인상이 달라졌다. 더구나 저런 허심탄회함이라니, 역시 백가주의 아들이자 백소천의 동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별말씀을요. 심 공자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인장은 급히 예를 갖추어 인사를 올리더니 심협을 가게 안으로 안내했다.

    “내 오늘 온 것은 부적지와 영재들을 구입하기 위해서였소.”

    자리에 앉은 심협이 막 용건을 꺼냈을 때, 마수수가 고급 차를 내오고 있었다. 그녀는 차를 따르더니 여전히 약간 붉어진 얼굴로 조용히 물러갔다. 그러는 동안 심협을 단 한 번 힐끗 스쳐보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영재에 정신이 팔린 심협은 이 소녀의 그런 반응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백보격에 붙어 있는 쪽지만 훑어보고 있었다.

    “심 공자께서 찾으시는 영재와 부적지가 어떤 겁니까?”

    주인장이 물었다.

    “영재는 지난번에 산 것과 같은 것이 필요하오. 부적지는…… 청상지를 구입하고 싶소.”

    심협은 백보격에서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심 공자의 은혜를 생각하면 부영옥과 금선패 등의 영재는 대가를 받지 않고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청상지는…… 선옥을 받고 판매하는 것이라…… 제 마음대로 드릴 수가 없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주인장이 난감한 듯, 진심으로 미안해하며 말하자 심협은 손을 크게 저었다.

    “별말씀을요. 영재든 부적지든, 모두 원래 가격대로 계산해 주시오.”

    말을 마친 심협은 금괴 하나와 선옥을 꺼내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주인장은 금괴를 보고는 별 반응이 없었지만, 선옥을 보자 눈빛을 빛냈다.

    “지난번에 듣기로는 선옥 하나면 청상지 열 장을 구입할 수 있다고 했는데, 맞소?”

    심협은 혹시나 그 사이에 가격이 오르지 않았을까 우려하며 물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건 다른 사람에게 받는 가격입니다. 심 공자께는 열두 장을 드리겠습니다.”

    주인장이 그렇게 말하자 심협도 사양하지 않고 환하게 웃었다.

    “정말 고맙소, 주인장.”

    “금괴는 챙겨두시지요. 부영옥 등은 저희가 덤으로 드리겠습니다.”

    주인장은 손을 크게 휘두르며 호방하게 말했다.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심협이 사양할 겨를도 없이, 바로 백보격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부적지와 영재를 꺼내 가져왔다.

    심협은 그제야 무언가가 생각난 듯, 급히 소매 안에서 부적 문양이 새겨진 금박을 꺼내어 계산대에 내려놓았다.

    “주인장은 식견이 풍부하시니, 이게 도대체 무슨 물건인지 봐주시겠소?”

    심협이 물었다.

    “금박이로군요. 어디 한번 보겠습니다.”

    주인장은 웃으며 그리 말하고는 손을 뻗었으나, 다음 순간 금박을 집으려던 손이 허공에서 딱 멈췄다.

    “이…… 이것은……?”

    주인장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까지 더듬었다.

    “왜 그러시오? 무슨 문제라도 있소?”

    심협이 물었으나, 주인장은 대답하는 대신 진지한 표정으로 내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손을 씻은 후에 깨끗한 헝겊을 가지고 와 조심스레 금박을 받쳐 들었다.

    주인장은 두 눈을 가까이 대고 위에서 아래로 금박의 부적 문양을 살펴보더니, 금박을 뒤집어 뒷면도 자세히 살펴봤다. 그의 표정에는 흥분된 기색이 역력했다.

    “맞아. 이 문양이며 재질…… 맞아, 이건 분명……!”

    주인장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려왔다.

    “주인장, 이게 도대체 무슨 물건이오?”

    옆에서 주인장의 반응을 지켜보던 심협은 더욱 궁금증이 커졌다.

    “아, 심 공자. 정말 죄송합니다. 갑자기 진혼금홀(鎭魂金笏)을 접하게 되니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추태를 보였습니다.”

    주인장이 화들짝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진혼금홀이요?”

    “홀판(笏板)은 본래 도가의 수행자가 하늘에 큰 제사를 지내거나, 혹은 제사 의식을 치를 때, 기도문과 제사문을 기재하여 하늘의 뜻을 듣는 데에 사용하는 물건입니다. 용도에 따라 종류도 달라지는데, 이 진혼금홀은 매우 특수한 것이지요. 특수한 금속으로 주조하여, 높은 경지의 득도한 자가 직접 부적 문양을 새기는데, 악령과 원혼을 진압하는 데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주인장의 설명을 듣자 심협은 진혼금홀을 발견했던 때가 떠올랐다. 해골이 담긴 포대에 걸려 있던 것이니, 분명 그 해골 주인의 혼을 누르기 위해 만든 것이리라.

    “이 물건에 그런 내력이 있었구려. 혹시 녹보당에서도 이것을 매입하십니까?”

    심협은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정말 이것을 파실 겁니까?”

    주인장이 기쁜 듯 되묻자 심협은 어째서인지 망설여졌다.

    “팔지 안 팔지는…… 가격을 들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공자께서 은혜를 베푸셨으니,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녹보당이 그동안 많은 것을 매입해왔지만, 진혼금홀은 처음입니다. 이 금홀은 매우 좋은 물건입니다. 새겨진 부적 문양도 평범하지 않아, 흔히 볼 수 있는 진혼 부적 문양과도 다르지요. 다만 구체적인 것은 저도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주인장은 정중하게 말했다.

    “그럼 주인장께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보시오. 이 금홀을 판다면 얼마를 지불하시겠소?”

    심협의 질문에 주인장은 다시 금홀을 들고 자세히 살펴봤다. 그렇게 한참을 살피는 동안 표정은 점점 더 고민으로 흔들렸다.

    “심 공자, 이 금홀의 가치는 제가 당장은 단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우선 선옥 서른 개를 드리고, 나중에 녹보당의 진정한 주인께 연락을 드려 가격을 확정하는 겁니다. 만일 값을 적게 쳐드렸다면 저희가 그만큼 더 드리고, 더 쳐드렸다면 공자의 은혜에 보답하는 셈 치는 것이지요.”

    “선옥 서른 개요?”

    주인장의 진중한 답변에 심협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백가의 객경으로서도 삼 개월에 선옥 하나만을 받는데, 저 금박이 선옥 서른 개의 가치가 있다니…….

    “주인장 말씀대로 하겠소. 값을 쳐주시오!”

    심협은 더 고민하지 않았다. 이 진혼금홀은 당장 자신에게 아무 쓸모도 없고, 새겨진 부적 문양은 진작 기억하고 있으니, 지금은 선옥이 훨씬 가치가 있었다.

    “심 공자께서는 역시 통이 크십니다!”

    주인장은 손뼉을 치고 웃으며 말했다.

    “주인장, 이 거래도 성사되었으니, 내 하나만 더 묻겠소. 이 금홀이 대체 어떤 특별한 점이 있기에 이리도 값이 많이 나가는 게요?”

    심협이 궁금한 듯 물었다.

    “심 공자, 이 금홀에는 확실히 남다른 점이 있습니다.”

    주인장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진혼금홀은 진혼 부적과 효과가 비슷합니다만, 담겨 있는 영력(靈力)이 더 강하니 지속 시간도 더 길지요. 물론 진혼금홀도 소모성이니, 십 년만 효과를 지속해도 대단한 겁니다. 그런데 이 금홀은 한눈에 봐도 오래된 것인데도 부적 문양의 신기가 아직 남아 있고, 악령이 침입한 적도 없는 듯합니다. 아마도 이 자체의 재질이 매우 우수하거나, 아니면 부적 문양을 새긴 사람의 수련 경지가 지극히 높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 범상치 않은 금홀이 분명하지요.”

    주인장의 설명을 듣고서야 심협은 진혼금홀의 특별함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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