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38화 (138/1,214)

138화. 소뢰부의 공(功)

구혼마면은 진하수수가 곧 진을 뚫고 나올 듯하자 곧장 붓으로 허공을 찍었다. 그러자 그가 그린 부적 무늬 진이 마치 올가미처럼 진하수수의 머리 위에서 씌워졌다.

하지만 부적 무늬 진에 묶이기 직전, 진하수수의 뿔에서 검은 빛이 폭발적으로 발사됐다.

퍼펑!

폭발에 이어 막강한 충격이 몰려온 탓에 구혼마면은 피를 토하며 몇 장이나 튕겨 나가 진회교 난간에 부딪혔다. 심지어 충돌한 난간이 산산조각 날 정도였다.

진에서 벗어난 진하수수는 더욱 흉악해졌다. 온몸은 검은 안개에 휩싸인 채였고, 핏빛으로 번들거리는 두 눈은 한층 커졌다.

진하수수는 펄쩍 튀어 올라 구혼마면을 덮쳐갔다.

붓마저 떨어뜨린 구혼마면은 급히 한 손을 결인했다. 그러자 하얀 안개가 일어 그의 몸 전체를 감쌌다.

하지만 진하수수가 다가오면서 검은 안개가 뻗어 오더니 사방에서 구혼마면을 에워싸고 뒤덮었다.

혼자 남은 저승사자는 구혼마면을 도우러 가려 했으나, 검은 안개에 공격당했다. 그러자 붉은 빛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온몸은 불에 타 순식간에 재가 되었다.

구혼마면은 순식간에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주변 사물이 모호해지는 것을 느꼈다. 코와 입에도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불편감이 느껴졌다. 검은 안개는 마치 뱀처럼 여러 줄기가 튀어나와 구혼마면을 보호하고 있는 하얀 안개를 찢으며 뚫고 들어오려 했다.

구혼마면의 몸도 점점 굳어갔다. 마치 몸이 돌로 변하기라도 한 것처럼 몸 전체가 굳어버린 것이다.

그때, 엄청난 굉음이 울렸다.

꽈르릉!

동시에 허공에서 하얀 번개가 치더니 검은 안개를 찢어 구멍을 냈다.

잠깐 나타난 빛을 통해 구혼마면은 근처에 누군가 나타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누군가는 황지 부적을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 자신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어, 그 인간 녀석이 어째서?”

구혼마면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조금 전 자신이 쫓아냈던 심협임을 알아채고는 의아해졌다.

번갯빛은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곧이어 다시 우렛소리가 울렸다.

우르릉!

검은 안개 안에서 다시 하얀 번개가 번득였다.

심협은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더니 허리를 굽혀 땅에 떨어져 있던 구혼마면의 붓을 주으려 했다. 그러나 그때, 검은 안개에서 발사된 빛이 그의 미간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헛!”

화들짝 놀란 심협은 법력을 운공하여 사월보를 시전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몸이 가벼워지면서, 그가 몸을 조금 옆으로 기울이자 달려가는 자세 그대로 절묘하게 검은 빛을 피할 수 있었고, 그 상태로 그는 붓을 주워 구혼마면에게 달려갔다.

검은 빛 몇 줄기가 검은 안개에서 튀어나와, 마치 등나무처럼 심협의 몸을 휘감으려 했다. 하지만 심협은 정묘한 보법으로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한편, 구혼마면의 몸에는 진즉부터 붉은 빛이 일었고,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하얀 안개를 통해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었다.

심협이 구혼마면에게 거의 다가섰을 때, 돌연 검은 안개가 걷혔다. 진하수수는 어느새 구혼마면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는데, 입을 크게 벌려 구혼마면을 삼키려는 것이었다.

“어딜!”

놀란 심협이 한 손을 맹렬히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소매에서 물 화살이 발사되었는데, 그 끝에는 서너 장의 소뢰부가 꽂혀 있었다.

물 화살은 진하수수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콰쾅!

우렛소리가 울렸다. 이어서 하얀 번개 여러 개가 다시 공중에서 나타나 진하수수에게 내리꽂혔다.

“크르릉!”

진하수수는 울부짖었고, 구혼마면을 삼키던 것도 일순 멈췄다.

심협은 그 틈에 재빨리 구혼마면에게 다가가 붓을 건넸다.

이때 구혼마면의 몸에는 붉은 빛이 최고조로 불어나 있었다. 그가 붓을 손에 넣자마자 그 몸에 일었던 막강한 기운이 폭발했다.

쾅!

그 폭발력에 심협은 뒤로 튕겨나가다가 사월보로 몸을 틀며 중심을 잡았다.

심협이 보니 구혼마면은 이미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그는 한 손은 결인하고 다른 한 손에는 붓을 쥔 채 허공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 화살병을 가지고 오지 않았으니 네놈이 재수가 없는 셈이구나. 이대로 멸살하는 수밖에!”

구혼마면이 노하여 소리쳤다.

글을 쓰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더니 글자가 빽빽한 문장 하나가 금세 완성되었다. 허공에 나타난 핏빛 문장은 마치 물샐틈없는 그물처럼 사방에서 진하수수를 포위하고 가두었다.

붉은 빛이 비치는 가운데, 핏빛 문장은 빠르게 수축되었다. 그러자 진하수수의 몸에 일었던 검은 기운도 체내로 거두어져 본래의 모습이 떠올랐다.

“혼령을 빨아들여 온갖 살(杀)을 진압해 멸한다!”

구혼마면이 외치자 그의 몸이 폭발적으로 불어났다. 이어서 그가 들고 있던 구혼필(勾魂筆)도 부적 문양을 번득이면서 열 배나 불어났다.

구혼마면은 길어진 구혼필을 마치 긴 창처럼 쥐더니 진하수수의 이마를 찔렀다. 붓은 그대로 관통하여 진하수수의 머리 뒤로 튀어나왔다.

“크아아!”

진하수수의 처참한 비명소리가 울렸다. 온몸의 안개는 심히 요동쳤는데, 구혼필이 빨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진하수수의 살과 백골이 다 드러났으나, 이마저도 금세 재가 되어 흩날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흩어지던 진하수수의 재 사이에서 돌연 한 줄기 기운이 떠올라 농후한 검은 안개 구(球)가 되어 하늘로 떠올랐다. 이 안개 구는 성의 서쪽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이런 상황을 예상치 못한 구혼마면은 화들짝 놀랐으나, 이미 늦은 때였다. 구혼마면은 잠시 안개 구를 쫓다가 쓰러질 듯 비틀거리더니 멈춰 섰다.

안개 구를 따라가려던 심협도 잠시 망설이다가 멈췄다.

그때, 구혼마면이 다시 몸을 일으키더니 심협을 바라봤다.

심협은 멀리서 포권으로 예를 갖추었다.

잠시 망설이던 구혼마면은 돌연 소매를 떨쳐 다시 백면서생의 모습으로 돌아가더니 짧게 외쳤다.

“나를 따라오시오.”

심협은 잠시 망설이다가 구혼마면을 따라나섰다.

심하게 훼손된 진회교를 건넌 두 사람은 이내 길 끝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 * *

향 하나 탈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 누군가가 한참 혼절해 있던 백수 도장을 깨웠다. 백수 도장은 망연히 사방을 둘러본 후에야 서너 명이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것을 알았다.

“삼 장로!”

백수 도장의 눈이 한 사람에게로 향했다. 그는 체격이 왜소하고 깡마른 사람으로, 머리는 회백색으로 세었지만 눈빛은 예리했다. 바로 백강풍이었다.

백강풍 옆에는 세 사람이 더 있었는데, 수염이 짧은 노인과 자색 눈썹의 노파, 그리고 곱사등이였다. 모두 하나같이 건업성에서 이름난 세가의 장로들로, 배분도 높은 자들이었다. 비단옷을 입은 짧은 수염의 노인은 임가, 자색 눈썹의 노파와 곱사등이는 건업성의 두가와 왕가 본가 장로인 것이다.

“백수 도우,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게요?”

임가의 장로, 임산과(林山果)가 물었다. 임가의 실력은 백가에 조금 미치지 못했지만, 임산과의 수준은 백강풍에 뒤지지 않았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백수 도장은 고개를 들어 백강풍을 한번 본 후에야 겨우 말을 시작했다.

“성안에 확실히 사악한 귀신이 있습니다. 좀 전에 후원에 이상이 있어 나왔다가…… 물귀신의 습격을 받고 혼절했습니다.”

“그게 다요?”

임산과는 너무도 간단한 대답에 불만스러운 듯 말했다.

“이게 다가 아니면, 또 무엇이 있단 말이오?”

백수 도장이 말을 잇기도 전에 백강풍이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백수 도장께서는 최대한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이 또한 건업성을 위해서입니다.”

자색 눈썹의 노파가 말했다.

“두 도우의 말이 맞소. 건업성이 평안하지 못한 때이니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하지 않겠소? 뭐라도 발견한 것이 있다면 숨기지 마시오.”

곱사들이가 쉰 목소리로 두씨 장로의 말에 동의했다.

백강풍은 잠시 망설이다가, 혼절하기 전에 겪었던 일들을 낱낱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는 너무도 금방 혼절한 탓에 아는 것이 많지 않았고, 사람들은 다소 실망한 기색이었다. 그들은 백면서생의 신분을 추측해봤지만, 결론을 낼 수가 없었다.

* * *

심협은 구혼마면을 따라 한적한 정자에 이르렀다.

마주 보고 앉자, 구혼마면은 심협을 한참이나 살펴보다가 물었다.

“젊은이, 나를 어찌 아는 것이오?”

심협은 속으로 혀를 찼다. 꿈속에서 구혼마면과 만난 것은 천 년 이후의 일이니 지금의 구혼마면은 자신을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자신도 모르게 당황해서 구혼마면의 이름을 외친 것이 후회가 됐다.

하지만 심협은 여전히 의문이 남았다. 자신의 기억대로라면, 꿈속 제단에서 구혼마면을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먼저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의 구혼마면은 자신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저는 심협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선배님의 전설을 들은 적이 있지요. 오늘 이렇게 실제로 만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심협은 어쩔 수 없이 꾸며낼 수밖에 없었다.

구혼마면은 정말 그 말을 믿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도우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오늘 수살(水煞)을 죽이는 데에 애를 먹을 뻔했소.”

그는 그렇게 말하며 소매에서 술 호리병을 꺼냈는데, 화살병을 두고 온 일이 떠오른 듯 표정이 어두웠다.

“선배님, 수살이라는 게 대체 무엇입니까?”

심협이 궁금한 듯 물었다.

“물속의 음기와 사악한 기운이 세월이 흘러 쌓이게 되면 어느 정도 영지를 가진 음한한 살기(煞氣)가 형성되지. 이게 바로 수살이오. 다만 수살은 형태를 갖추기가 쉽지 않은데, 강에 떠다니는 익사체의 피 안에서 형태를 갖추기도 한다오.”

구혼마면은 술을 마시며 천천히 설명했다.

“진회하는 사람의 왕래가 많은 번화한 곳인데, 수살 따위가 생긴단 말입니까?”

심협이 의아한 듯 물었다.

“나도 그 점이 미심쩍다네. 하지만 세상일이란 본디 예측하기 어려운 법. 의외의 일이 발생한다 해도 그리 이상할 것은 없지. 게다가 진회하는 해마다 투신하여 죽는 사람이 많았으니 말일세.”

구혼마면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살(煞)을 막기 위해 세운 진하수수가 어찌 수살(水煞)로 변했단 말입니까?”

“본래 그 석상이 살을 막겠다고 세운 것이기는 하지. 건업성 스물네 개의 다리마다 하나씩 있는 것이야. 하지만 진회교의 석상에만 문제가 생겼지. 수살이 진하수수 몸 안에 자리 잡고 있다가, 간도 크게 진회하의 물귀신을 삼켰지. 심지어는 물귀신이 사람을 유혹해 물에 빠지게 했어. 이승과 저승을 혼란에 빠뜨렸으니 죽어 마땅하네.”

구혼마면은 이야기하며 화가 난 듯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안타깝게도 수살의 일부가 도망을 쳐버렸군요.”

심협이 탄식했다.

“내일 해가 지면 다시 여기로 와서 나를 좀 도와주게. 물론 사례는 하겠네.”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는 겁니까?”

“내일 오면 알게 될 걸세.”

구혼마면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고, 말을 마치자마자 술을 챙겨 넣고는 먼저 자리를 떴다.

심협은 의문이 잔뜩 생긴 채 백부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불쑥 무언가 떠올라 홀로 중얼거렸다.

“꿈속에서 만난 천 년 후의 구혼마면은 나를 알고 있었지. 설마…… 그게 오늘의 일 때문인가? 그때 분명 구혼마면은 나를 보고 ‘아직 살아 있을 리 없다’고 했는데…… 그건 또 무슨 말이었을까? 설마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이 생각이 들자, 심협은 왠지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렇다 해도 내 미리 알고 있으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게 대비하면 될 터!”

심협은 주먹을 꼭 쥐며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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