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37화 (137/1,214)

137화. 구혼마면(勾魂馬面)

한편, 백부로 돌아가던 심협은 이내 걸음을 멈추더니, 몰래 사월보를 운공하여 빠르게 뛰어올라 한 상점의 지붕 위에 내려섰다.

그는 가벼운 보법으로 지붕들 위를 날 듯이 뛰었고, 금세 강가 상점 지붕에 이르렀다. 그리고는 몸을 숙여 지붕 위에 엎드린 채, 머리만 내밀고 진회교를 살폈다.

백면서생이 진하수수 석상 앞에 잠시 서 있다가 걸음을 옮기는가 싶더니, 수난각 후원 강가에 멈춰서 쭈그리고 앉았다. 머리를 내밀고 물 안을 살피는 것이, 무언가 찾고 있는 듯했다.

그때, 수난각 후문이 갑자기 열렸다. 그리고 회백색 도포를 입은 백수 도장이 나왔다. 그는 강가에 사람이 쭈그리고 앉은 것을 보고는 투신하려는 것으로 오해한 듯 안색이 변해 곧장 땅을 박찼다. 그는 그대로 솟구쳐 강가로 다가오더니 그대로 일장을 내밀어 서생의 목덜미를 잡고는 뒤로 내동댕이쳤다. 백면서생은 높이 던져졌다가 떨어지며 수난각 후원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오밤중에 죽으려고 하느냐? 죽을 거면 좀 적당한 곳을 찾으란 말이다!”

백수 도장의 분노한 목소리에 백면서생은 당황한 표정으로 무어라 변명하려는 듯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돌연 표정이 변하더니 크게 소리쳤다.

“조심하시오!”

강물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물살이 세차게 일렁였다.

백수 도장이 화들짝 놀라 돌아보려던 그때, 수면에서 칠흑처럼 검은 수초(水草)가 맹렬히 일어나 검은 장발의 나체 여인으로 변하였다. 온몸의 피부가 창백한 절세미녀였다.

여인의 두 손이 목을 향해 다가오자, 백수 도장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는 두 손가락에 황지 부적을 끼운 채 손을 높이 들어 여인의 미간에 붙이려 했다.

그러나 백수 도장이 몸을 돌리기가 무섭게 그의 목을 향해 다가오던 여인의 두 팔이 그대로 그의 몸을 꼭 안아버렸다.

순간 펼쳐진 야릇한 광경에 백수 도장은 당황하여 부적을 든 손도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마음을 다잡고 집중하시오!”

도장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손에 들고 있던 부적을 창백한 여인에게 붙이려 했다.

그런데 그때 기이한 광경이 나타났다!

여인의 입이 얼굴의 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기이하게 벌어졌고, 목구멍에서 처참한 비명소리가 흘러나온 것이다. 그러더니 여인은 마치 물고기처럼 백수 도장의 품에서 튕겨져 나가 강물로 뛰어들었다. 그녀의 뒤로는 축축한 검은 장발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백수 도장을 감아 강물로 끌고 갔다.

“헉!”

백수 도장은 목이 조이는 순간 숨을 들이마시려 했으나, 귀신의 머리카락이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고통스럽게 구역질만을 해댔다. 그러느라 온몸의 힘이 칠 할은 분산됐고, 물귀신이 이끄는 대로 강물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백면서생은 나지막이 일갈하더니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사람 형태로 오린 하얀 종이 네 개가 그의 손을 떠났다. 이 종이들은 강 수면에 닿자마자 검붉은 빛이 일면서 그 크기가 빠르게 불어났다.

순식간에 아역(*衙役, 수령이 지방 관아에서 사사롭게 부리던 사내종) 복장의 남자 넷이 빛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는데, 손에는 각자 반은 검고 반은 붉은 수화곤(*水火棍, 중국 고대 관아에서 사용하던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넷 모두 안색이 창백하여 조금도 혈기가 없었고, 각자 몸에 검은 쇠사슬을 감고 있는 모습이 전설 속의 저승사자 같았다.

그들은 높이 솟아올라, 막 물에 들어가려던 물귀신과 끌려들어 가던 백수 도장을 잡아 끌었다.

여자 물귀신이 물 밖으로 끌려 나와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백면서생이 화한 하얀 그림자가 다가왔다. 서생은 한 손을 들었는데, 그 손바닥에서는 눈처럼 하날 칼날이 번득이면서 그대로 귀신의 몸을 베어갔다.

그 순간, 물귀신의 머리카락이 불어났고, 덕분에 물귀신은 몸이 허공으로 치솟으면서 서생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샥!

하얀 빛이 번득이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고, 귀신의 머리카락은 그대로 잘려 나갔다. 잘린 머리카락은 마치 수초처럼 시들어버렸다. 그 머리카락에 감겨 있던 백수 도장은 풀려났으나, 이미 혼절한 상태였다.

백면서생이 허리를 굽히고 살펴보니, 백수 도장의 얼굴 위로 검은 기운 한 겹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꼭 감은 두 눈으로 들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네 수명이 다하지 않았으니, 죽었다면 골치가 아플 뻔했구나.”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청색 부적을 하나 꺼내 백수 도장의 미간에 붙였고, 다른 한 손은 결인하였다. 그러자 부적에서 빛이 한 겹 일어 백수 도장의 얼굴을 에워쌌다. 이 빛은 검은 기운과 줄다리기라도 하듯 서로 대치했다.

그 무렵, 네 명의 저승사자는 땅에 내려선 물귀신을 가운데에 두고 에워쌌다.

“보아하니 저승사자가 귀신을 잡아가려는 것 같구나! 그런데 저 서생은 도대체 누구지?”

심협은 백면서생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때, 물귀신 앞의 두 저승사자가 좌우에서 동시에 쇠사슬을 던졌다. 쇠사슬은 마치 두 마리 독사처럼 물귀신을 향해 날아갔다.

물귀신은 기이한 비명을 지르며 몸을 틀었다. 그러자 귀신의 몸 주변을 축축한 머리카락이 쓸었고, 물방울이 휘날리며 금속성이 울렸다. 머리카락과 충돌한 쇠사슬은 저승사자들에게로 돌아갔다.

그때, 거대한 바람 소리가 울렸고, 다른 두 저승사자가 펄쩍 뛰어올라 앞뒤에서 수화곤을 휘두르며 물귀신의 머리를 겨냥했다.

피하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 물귀신은 입을 벌려 무언가를 내뿜었다. 그러자 검고 악취가 진동하는 액체가 뿜어져 나와 마치 우산처럼 머리 위를 막았다.

펑!

폭발음이 울렸고, 앞에서 저승사자들의 수화곤에 검은 액체 보호막은 흩어져 버렸다. 뒤에서 공격하던 저승사자는 재빨리 수화곤을 휘둘러 물귀신의 어깨를 매섭게 공격했다.

“꺄아악!”

처참한 비명이 허공을 갈랐다.

마치 인두로 지진 것처럼, 물귀신의 어깨에서는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고, 창백하고 매끄러웠던 피부는 벌건 물집과 화상이 생겨나 처참했다.

네 명의 저승사자는 동시에 쇠사슬을 던졌다. 그러자 각 사슬에 양손과 양발이 묶인 물귀신은 허공으로 떠올랐다.

“캬아아! 끼야아앗!”

물귀신은 연신 애처로운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쳤다. 귀신은 곧 사지가 찢겨 나갈 상황이었다.

심협은 저승사자들의 손발이 척척 맞는 것을 보니 백면서생이 안심하고 백수 도장을 구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러니 그의 신분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 진회교 입구에서 무언가 움직임이 감지됐다.

심협이 얼른 살펴보니, 코뿔소 형태의 진하수수 석상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고, 눈동자가 있어야 할 곳에서는 피처럼 붉은 빛이 번득였다.

“큰일이다. 결국 오겠어!”

백수 도장의 얼굴을 뒤덮은 검은 기운을 거의 몰아낸 백면서생은 상황을 살피며 눈살을 찌푸렸다.

진하수수 석상의 몸에서 돌이 한 겹씩 떨어져 나가더니, 그 안에서 가죽이 벗겨진 코뿔소 같은 진하수수가 나왔다. 온몸을 검은 안개로 에워싼 채, 진하수수는 석대에서 몸을 솟구쳐 수난각 후원에 내려섰다.

네 명의 저승사자는 쇠사슬을 잡아 끌어 물귀신을 완전히 묶고 뒤로 잡아당기면서 몸을 피했다.

꽝!

거대한 굉음이 울렸다!

수십 장 떨어진 곳에 있던 심협이 숨은 건물까지 흔들릴 정도였다. 수난각 후원의 강가는 절반 가까이 무너져 움푹 꺼진 상태였다.

“쿠오오오!”

진하수수가 폭발적으로 포효하자, 그 뿔에서 검은 빛이 한 줄기 빛나다가 발사되었다. 이 빛은 순식간에 한 저승사자의 어깨를 관통했다.

그 저승사자의 몸에 있던 붉은 빛은 땅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저승사자도 빠르게 작아져 다시 사람 모양의 종이로 돌아가더니 불에 타 재가 되었다.

심협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진하수수의 뿔에서는 또다시 검은 빛이 발사되어 두 명의 저승사자에게로 향했다.

“어서 물러서라!”

백면서생은 힘을 다해 백수 도장 얼굴에 딱 달라붙어 있던 검은 기운을 완전히 지워내고는 세 저승사자에게 급히 외쳤다.

하지만 이미 한발 늦은 뒤였다. 저승사자 한 명이 들고 있던 수화곤으로 검은 빛을 막으려 했지만, 빛은 그대로 수화곤을 부수고 저승사자의 가슴을 관통해 지나갔다. 또 다른 저승사자는 검은 빛에 머리를 명중당해 조금 전의 저승사자와 마찬가지로 사람 모양 종이로 돌아가더니 타버렸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네 명의 저승사자 중 둘은 죽고 하나는 부상을 당했다. 그러자 남은 저승사자 혼자서는 물귀신을 제압하지 못했고, 결국 물귀신은 쇠사슬에서 벗어났다.

‘진하수수가 물귀신을 구출하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심협이 그런 의문을 가지는 찰나, 진하수수가 돌연 물귀신에게 돌진하더니 입을 쩍 벌렸다. 칠흑처럼 검은 입안에서는 강렬한 흡입력이 생겨나 물귀신을 그대로 빨아들였다.

물귀신을 삼킨 진하수수는 마치 보신이라도 한 것처럼 몸에 검은 빛이 한 겹 일었다. 그러고도 만족하지 못하는지, 진하수수는 입을 벌려 부상당한 저승사자까지 빨아들였다. 그러자 몸에 일었던 검은 빛은 더욱 밝아졌고, 온몸에서는 강렬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감히 저승사자를 삼키다니, 죽으려고 작정했구나!”

백면서생은 대노하여 외치고는 곧장 몸을 날려 두 발로 진하수수를 밟았다.

쿵!

그의 두 발이 묵직하게 짓누르자 진하수수는 거대한 힘에 눌려 땅에 엎드리게 되었다.

그 등을 밟고 선 서생은 한 손을 소매에서 꺼냈다. 손에는 길이 1척 정도의 검은 붓이 들려 있었다.

그 검은 붓이 매우 눈에 익었기에 심협이 의아해하고 있노라니 백면서생이 외쳤다.

“귀신과 요괴를 진압하여 혼백을 인도한다!”

말을 마치자마자 그가 입고 있던 선비 옷에 검푸른 화염이 일었다.

화염이 순식간에 사라진 후, 그의 복장은 더 이상 선비 옷이 아니었다. 저승사자들과 비슷한 아역 복장이었다. 다만 다른 저승사자들과 달리 허리에 손바닥만 한 동패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음사(*陰司, 저승)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백면서생은 얼굴 또한 변화가 생겼는데, 위아래로 길어지는 동시에 점점 붉게 변해가더니 붉은 말의 얼굴이 되었다.

“구혼마면, 그대였구려!”

그 얼굴을 확인한 순간, 심협은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그 목소리가 작지 않아 구혼마면의 귀에도 또렷이 들렸다. 이에 구혼마면은 자신도 모르게 정신이 분산되면서 심협이 있는 곳을 돌아보았다.

그때, 구혼마면이 밟고 있던 진하수수가 돌연 몸부림치며 일어서더니 그대로 방향을 틀어 다리 입구를 향해 내달렸다.

“썩을 짐승 놈, 어디를 가는 것이냐!”

분노한 구혼마면이 한 손을 결인하며 붓으로 허공을 찍었다.

다음 순간, 진하수수의 등 위에 붉은 빛이 번득이면서 피안화 도안이 떠올랐다. 이 도안은 팔각형 부적 무늬가 있는 광진(光陣)으로 변하여 진하수수의 머리를 에워쌌다.

광진 안에는 속박의 힘이 있어, 진하수수는 더 이상 달리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구혼마면은 재빨리 진하수수 앞에 내려서더니, 한 손으로 허공에 글을 썼다. 그러자 검붉은 부적 문양들이 떠올라 허공에서 둥근 부적 무늬 진을 형성했다.

“후우…… 이제 이놈을 화살병 안에 넣기만 하면 되겠구나.”

구혼마면은 한숨을 돌리며 그리 말하고는 손을 품에 넣었다. 그러나 품을 뒤지던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당황한 듯 이번에는 소매들도 뒤졌는데, 안색이 점점 굳어가는 것이 낭패한 모습이었다.

결국 구혼마면은 소매에서 검은 유광(油光)이 도는 호리병을 꺼내며 탄식했다.

“망했다. 술을 챙기느라 화살병을 놓고 오다니…….”

그때였다. 진하수수가 돌연 입을 쩍 벌렸다. 그러자 진회하에 풍랑이 크게 일면서 의문의 검은 기운이 나타났다. 그 검은 기운 안에는 여러 귀신들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흉측하고 추한 모습이었다. 귀신들은 강 곳곳에서 튀어나와 분분히 진하수수의 입속으로 날아 들어갔다.

콰르릉!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진하수수의 기운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근육도 부풀었다. 그 몸을 에워싼 검은 기운도 빠르게 뻗어나가 머리 위에 떠오른 부적 무늬 진을 뚫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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