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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35화 (135/1,214)

135화. 부적용 재료

‘백형이 어찌 이리 분노한단 말인가?’

심협이 의아해하고 있는데, 백소천이 점포의 대문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문을 지키고 있던 두 청년이 재빨리 앞을 막아섰다.

세 사람이 충돌할 것만 같아 심협이 급히 다가갔는데, 놀랍게도 두 청년이 백소천에게 공손히 포권하며 예를 갖추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공손하게 ‘큰 도련님’이라 칭하는 모습을 보며 심협은 무언가 눈치채고는 허탈하게 웃었다.

백소천은 나지막이 ‘쓰레기 같은 놈’이라 욕을 하더니, 순식간에 녹보당 안으로 들어갔다.

심협이 급히 뒤따라 들어가 보니, 복두(幞頭)를 쓰고 반령의(盤領衣)를 입은 작고 뚱뚱한 노인이 계산대 앞에 기대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뒤로는 묘령의 소녀가 숨어 있었다.

노인은 얼굴이 하얗고 깨끗했으며, 눈과 눈썹은 약간 쳐진 데다가 입술 위로는 여덟 팔(八)자로 수염을 기르고 있는 것이 전체적으로 근심 어린 얼굴이었다.

노인 뒤에 숨은 소녀는 열대여섯 살에 불과했는데, 눈처럼 하얀 피부와 맑은 눈동자에 옥처럼 아름다운 코와 붉은 입술이 눈에 띄게 아름다웠다. 미간에는 선명한 붉은 빛으로 생화처럼 아름다운 꽃을 그려 넣었다.

두 사람 앞에는 한 소년이 있었다. 하얀 비단 옷, 허리에 두른 백옥 오대, 꽃을 조각한 옥관으로 미루어 부(富)가 넘쳐흐르는 듯했다. 용모가 매우 준수한 소년은 겉으로 보기에는 호색한이나 악인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열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한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억지로 연륜이 있어 보이려 애쓰는 듯한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백소운(白霄雲)! 네놈이 또 맞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모양이구나?”

돌연 백소천의 노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오만한 소년은 안색이 돌변했고, 턱을 매만지던 손을 급히 거두었다. 심지어 방금 전까지 턱을 매만지던 손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모양새였다.

“혀, 형님……. 어찌 여기까지 오셨소?”

소년은 몸을 돌려 백소천을 바라보며 다급히 말했다.

“그게 중요한 것이냐? 내가 오지 않았더라면 네놈이 또 미친 짓을 벌이지 않았겠느냐! 그게 중요한 것이다!”

백소천은 울화가 치민 듯 소매를 걷고 달려들었다.

소년, 백소운은 마치 고양이를 만난 쥐처럼, 자신의 귀를 막고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형님, 귀는 잡아당기지 마시오. 아, 얼굴도 때리지 마시오!”

말을 마치자마자 백소운은 눈을 감고는 마치 자포자기한 듯 눈을 감았다.

백소천은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가 서서히 주먹을 쥐더니 동생의 이마를 내리쳤다.

“억!”

백소운은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감싸쥐더니 숨을 들이켰다.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심협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백소운은 심협의 이런 반응에도 감히 고개를 들지는 못했지만, 곁눈질로 매섭게 노려봤다. 그러나 그 모습에 심협은 더욱 크게 웃으며 한 손으로 아래턱을 매만졌다.

마치 자신이 조금 전에 했던 행동을 따라 하는 듯한 모습에 격노한 백소운은 고개를 번쩍 들고는 심협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또다시 날아온 백소천의 주먹에 꿀밤을 얻어맞고는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더욱이 이번에는 그 강도가 더욱 세져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조금도 백소천을 원망하지는 않는 듯했다.

심협은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제는 속으로 웃음음 삼켰다.

백소운은 한눈에 봐도 말 안 듣는 소년이었는데, 백소천에게는 고분고분했다.

“우리 집안에서 어찌 가르쳤느냐? 어서 두 사람에게 사과하지 못하겠느냐?”

백소운이 얌전해지자, 백소천이 훈계하며 말했다.

“형님, 나는 그저 청혼하러 왔을 뿐이오. 요조숙녀는 군자의 좋은 짝이라고 하지 않소? 내게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이오?”

백소운은 나지막이 대꾸하고는 곁눈으로 가게 주인과 소녀를 노려봤다.

“아직도 헛소리를 지껄이다니, 덜 맞은 모양이로구나!”

백소천이 분기탱천해 다시 주먹을 치켜 들었으나, 백소운은 여전히 목을 꼿꼿이 세우고고는 양손으로 귀를 막은 채 입을 꾹 다물었다.

“주인장, 정말로 죄송하오. 이게 다 우리 집안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탓이니 내 대신 사과하리다.”

백소천은 한숨을 깊게 내쉬고는 포권하며 주인장 부녀에게 허리를 굽혔다.

“아이고, 아닙니다. 다 오해입니다, 오해……. 허허허!”

주인장은 그리 말하며 허허롭게 웃었고, 노인 뒤에 선 소녀는 얼굴이 빨개진 채 고개를 숙였다.

“내가 한 일은 내가 책임지겠소. 내 잘못을 형님이 사과해선 안 되지. 주인…… 주인장, 죄송하오. 내가 잘못했으니 부디 용서해 주시오.”

백소운은 돌연 몸을 곤두세우고 두 주먹을 불끈 쥐더니 이를 악물고 말했다.

심협은 보면 볼수록 백소운에게 흥미를 느꼈다.

“아이고, 아닙니다.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오해일 뿐이니 이러실 것 없습니다.”

주인장은 땀을 닦으며 말했다.

“주인장이 용서했다고 해서 네 잘못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너는 우선 집으로 돌아가라. 내 나중에 너를 찾으마.”

백소천은 백소운을 노려보며 말했다.

백소운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고는 몸을 돌려 가게를 나섰다. 그가 가게 입구까지 이르렀을 때, 돌연 고개를 들고 심협을 바라봤다. 심협의 웃는 얼굴을 보자 분노가 솟았다.

“뭘 봐!”

백소운은 그렇게 외치고는 문 밖에서 망을 보던 두 청년을 데리고 훌쩍 떠나버렸다.

“제 아우가 주인장에게 폐를 끼쳤소.”

백소천은 유감스러운 표정으로 재차 주인장에게 사과했다.

“대공자님, 그러지 마십시오. 이리 나오시면 제가 황송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찾으시는 물건이라도……?”

주인장은 조용히 딸을 물러가게 한 뒤, 백소천의 말에 손을 내저으며 물었다.

“내가 뭘 사려는 건 아니고…… 내 친구 심협을 소개해 드리려 하오. 이쪽은 이 가게의 주인장이시네. 함자는 마록(馬祿)이지.”

백소천은 주인장에게 심협을 소개했다.

“심 공자셨군요. 대공자의 친구시라니,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우리 가게는 물건도 좋고 가격도 합리적이라 자부합니다.”

주인장의 물음에 심협은 멋쩍은 듯 고개를 저었다.

“딱히 찾는 물건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영재들을 봐두고 싶어서 왔지요. 급히 필요해지면 바로 쓸 수 있도록 구비도 해둘 겸 말입니다.”

“영재를 찾으시는 거라면 잘 찾아오셨습니다. 우리 가게가 크지는 않아도, 건업성 내에서 영재를 많이 갖춰두기로 유명하지요. 이 백보격(*百寶格, 진열장의 일종)에 이름이 다 적혀 있으니, 관심 가는 것이 있는지 한번 보십시오.”

주인장은 웃으며 대답했다.

심협은 줄곧 백소운에 집중하느라 아직 점포의 물건들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맞은편 벽의 백보격이 눈에 띄었다. 자신의 집안에서 운영하는 약포에서도 저런 곳에 약재를 진열해두었는데, 그 위에 물건의 이름을 적은 종이들이 붙어 있는 것도 비슷했다.

그는 백보격의 가장 위에서부터 하나하나 훑어갔다. 진열장에는 <선령백초>에서 본 것들도 제법 있어서 약성(藥性)과 용도도 약간이나마 알고 있는 것들이 꽤 많았다.

“주인장, 저 인삼은 몇 년 된 것이고, 가격은 얼마나 하오?”

“저희 인삼은 모두 족히 50년은 묵은 오래된 것들입니다. 가격은 무게로 따져서 받는데, 한 돈(*무게의 단위. 약 3.75그램)당 금 백 냥을 받지요.”

주인장은 설명을 하면서 백보격에서 긴 합을 하나 꺼내 계산대에 올려두고 열었다.

합에 든 인삼은 뿌리 수염을 제외하면 겨우 새끼손가락 한 마디 정도 길이밖에 되지 않았다. 게다가 인삼의 무늬도 보이지 않았으니, 방촌산 백초곡에서 파냈던 천년인삼과는 천지차이였다.

이 인삼도 서너 돈은 될 것 같았고, 값은 금 삼사백 냥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천년인삼은 값이 수백만 냥은 된다는 말인가?

“정말 좋은 물건이오.”

심협은 예의상 그렇게 답하며 합을 밀어 돌려주었다.

그러자 주인장은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지만, 미소를 잃지 않고 다시 인삼을 챙겨 넣었다.

심협은 다시 백보격을 살피다가 돌연 눈빛을 빛냈다. 익숙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부영옥(浮影玉). 이는 낙뢰부를 쓸 때 필요한 부적용 먹을 만드는 데 필수 재료 중 하나였다.

심협은 재빨리 백보격을 이리저리 살폈고, 금세 남전석과 금선패도 찾아내고는 기쁨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 재료들을 모두 갖춘다면 다시 한번 낙뢰부를 만들어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장수촌에서의 전투에서 보인 낙뢰부의 위력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했다.

“주인장, 이 부영옥과 남전석, 금선패는 각각 가격이 어떻게 되오?”

심협이 묻자 주인장은 막힘없이 답했다.

“부적용 먹을 만드는 데 쓰는 것들이로군요. 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지요. 금선패와 남전석은 하나에 은 열 냥, 부영옥은 열다섯 냥을 받지요.”

“그렇군요.”

생각보다 저렴하긴 했으나, 심협은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가진 은자는 수십 냥에 불과하니, 이 재료들을 사려 해도 살 수 있는 양이 매우 적을 터였다.

“심 공자께서 부적을 전문적으로 쓰시는 분이신지요?”

주인장은 무언가 생각난 듯 물었다.

그 질문에 백소천의 눈에 의혹이 어리는 것을 본 심협은 태연하게 웃으며 답했다.

“주인장께서는 농담도 잘하십니다. 그저 제멋대로 한 번씩 써보는 것뿐이지요. 성공적으로 쓸지는 운에 맡기는 것이고요. 하하하!”

심협이 웃으며 답하자 주인장이 조심스레 덧붙였다.

“심 공자께서는 겸손하시군요. 가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혹시 공자께서 부적을 쓰신다면, 저희 가게는 영재와 부기 등을 판매할 뿐 아니라 부적이나 기타 법술을 시전하는 기물 등을 매입하고 있습니다. 가격도 합리적으로 잘 쳐드리지요.”

그제야 심협도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장께서 이리 말씀하시니 저도 관심이 많이 생기는군요. 내 정말로 부적을 완성하면 주인장에게 가져오리다. 살지 말지는 그때 결정하시면 되오.”

“좋지요!”

둘이 그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백소천은 멍하니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은 심협의 시야를 넓혀주겠다고 데리고 온 것이건만, 어째 저 둘은 함께 사업이라도 할 것 같지 않은가?

“일단 저 세 가지를 다섯 개씩 주시오.”

“알겠습니다. 포장해 드리지요.”

심협이 살 것들을 정하자, 주인장은 바로 뒤돌아 물건을 포장하러 갔다.

이어서 심협은 도와달라는 눈빛으로 백소천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그 눈빛이 무얼 뜻하는지 몰랐던 백소천도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장, 물건 값은 내 장부에 올려두시오.”

“알겠습니다.”

주인장은 돌아보지도 않고 답했다.

“백형은 참 통도 크시오. 내 나중에 집에 연락하여 갚아주겠소.”

심협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웃었다.

“이 정도 가지고 뭘 그러나? 아니면 나를 친구로 여기지도 않는 겐가?”

백소천은 심협이 치켜세운 엄지손가락을 툭 치며 장난스레 꾸짖었다.

“심 공자, 저희 가게에는 고급 청상지와 자운지도 있는데, 혹시 한번 보시겠습니까?”

주인장은 물건들을 포장하여 계산대에 올려놓고는 떠보듯 물었다.

심협은 자운지라는 말에 흥미가 생겼다. 방촌산에서 얻은 옥간에는 높은 경지의 부적은 자운지를 사용해야 그 위력을 낼 수 있다고 분명히 적혀 있었다. 그중 낙뢰부만이 대체 가능한 다른 부적용 종이를 알고 있었다.

심협은 당시 자운지의 특수한 점을 알 수 없었는데, 이제 그 의문이 풀릴 터였다.

“오오, 일단 보여주시겠소?”

심협이 관심을 보이자, 주인장은 백보격에서 목합 두 개를 꺼내 계산대에 올려두고는 조심스레, 천천히 열었다.

왼편의 목합에는 손바닥만 한 청색 부적용 종이가 한 묶음 있었다. 재질이 부드럽고 매끄러운 것이, 황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보풀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어렴풋이 하얀 입자 같은 것이 보였는데, 마치 서리나 눈 같았다.

오른편 목합에도 부적지가 한 묶음 있었다. 크기는 청색 부적용 종이와 같았으나 더 두껍고 전체적으로는 어두운 자색이었다. 표면에는 색이 더 짙은 상서로운 구름무늬가 있었다.

“주인장, 이 두 가지 부적지의 우열을 어떻게 가릴 수 있소?”

심협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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