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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34화 (134/1,214)
  • 134화. 백면서생

    수난각은 진회하를 따라 지어진 곳이다. 후원은 작은 부두로, 단골손님들이 화선을 이곳에 정박한 후 기생들을 데리고 뱃놀이를 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강가에 원외 복장을 한 뚱뚱한 남자의 시신이 수난각 그늘 아래 누워 있을 뿐이었다. 그 옆에는 광대뼈가 툭 튀어나오고 뺨이 움푹 꺼진, 회백색 도포를 입은 수척한 노인이 서 있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 강물 위에는 활처럼 둥근 형태의 다리가 놓여 있었다. 다리 중간에는 ‘진회교(鎭淮橋)’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고, 입구에는 코뿔소처럼 생긴 진하수수(*鎭河水獸, 강을 안정시키거나 억누르는 짐승) 석상이 세워져 있다. 진하수수는 사람 키만 한 크기로, 그 아래에는 상감된 주춧돌이 있었고, 석상은 세월을 거치며 아래에 이끼가 잔뜩 자란 데다가 곳곳에는 얼룩덜룩한 흔적이 엿보였다.

    이 진하수수상 주위와 다리 위에는 건업성의 백성들이 여럿 모여들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호기심 어린, 그러면서도 두려움과 혐오감이 뒤섞인, 묘하게 흥분된 표정으로 이곳을 가리키며 수군거렸다.

    심협도 다가가 시신을 살펴봤다. 온몸은 이미 이상하리만치 부푼 데다가 피부는 창백했다. 죽은 모습은 꽤 평온해 보였으나, 왠지 모르게 시신에서 사기(邪氣)가 느껴졌다.

    “진인(眞人)을 뵈옵니다.”

    백소천은 다가가 늙은 도인에게 예를 갖추었다. 심협도 따라 포권을 했다.

    “큰 도련님께서 오셨군요.”

    늙은 도인은 두 사람을 향해 예를 갖추었다.

    “상황이 어떻습니까?”

    백소천이 물었다.

    “이전 시체들과 매한가지입니다. 오작이 보고 나서 모두 익사라고 하는데, 빈도 또한 잘못된 점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백수 도장은 길게 탄식했다.

    “그렇다면 죽은 게 언제쯤인지는 알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어젯밤 자시(*子時, 밤 열한 시부터 오전 한 시)에서 축시(*丑時, 오전 한 시부터 세 시)사이일 것입니다. 말하자니 부끄럽긴 하오나, 빈도가 줄곧 이곳을 지키고 있었음에도 일이 벌어질 때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아침에 잡일을 하는 하인이 가장 먼저 시신을 발견했지요.”

    백수 도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백소천은 풍마를 돌아보며 물었다.

    “저 사람이 언제 떠났는지 수연 낭자는 알고 있소?”

    “아이고, 그 아이도 너무 놀라 정신이 온전치가 않습니다. 게다가 어젯밤 너무 깊이 잠들어서 손님이 언제 떠났는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지금은 수난각에 있지도 못하겠다고 해서 다른 곳으로 보내 잠시 쉬게 했습니다.”

    풍마가 걱정된다는 듯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백소천은 잠시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소매에서 노란 부적을 꺼내 들고는 시신에 다가갔다. 그리고 미간 정중앙에 부적을 붙였다.

    푹!

    가벼운 소리와 함께 부적에서 불씨가 생겨 튀어 올라 서서히 타기 시작했다.

    “음살인기부(陰煞引氣符)!”

    백수 도장의 눈이 번득였다.

    심협의 눈도 부적에 집중됐다. 그의 알기로는 불의 기운으로 숨어 있는 음살의 기운을 이끌어내는 부적이었다. 만일 이 남자가 음살의 기운이나 귀신에게 해를 당한 것이라면 체내에 그 기운이 아직 남아 있을 터, 그렇다면 부적의 불이 미간에서 타고 있으니 몸의 일곱 구멍에서 음살의 기운이 흘러나올 것이다.

    부적이 모두 탈 때까지 음기는 나타나지 않았다.

    “수연 낭자의 방으로 안내해주시오.”

    백소천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젓고는 풍마에게 말했다.

    풍마는 곧장 수난각 안으로 들어가 백소천을 강이 보이는 2층의 한 방으로 안내했다.

    방은 연지 냄새가 제법 짙었다. 상당히 어질러져 있는 것으로 보아 어젯밤부터 정리를 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백소천은 다시 음살인기부를 태운 채로 두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방안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부적의 불이 서서히 꺼져가는 동안에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보아하니 별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백소천은 곤란한 듯 중얼거렸다.

    “그리 급히 결론지을 것 없소. 이전에 기생 한 명도 익사했다고 하지 않았소? 그 기생의 방에 가 보는 것은 어떻겠소?”

    심협이 물었다.

    “은작의 방은 빈도가 이미 조사해보았소만 아무 문제가 없었소.”

    백수 도장은 미간을 찌푸리며 불만스러운 듯 심협을 흘겨보고는 말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한번 살펴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심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으나 백수 도장의 얼굴에는 불쾌한 빛이 스쳤다.

    “진인께서 이미 조사하셨으니 분명 별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도 명을 받아 이 일을 조사하게 된 것이니, 다시 한번 조사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그리하면 돌아가서 아버지께 고할 때에도 할 말이 있겠지요.”

    “그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제야 백수 도장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풍마는 열쇠를 가지고 와 옆방의 문을 열었다.

    “은작이 죽은 후로 방을 잠가버렸습니다. 당분간 쓰지 않을 생각입니다.”

    풍마가 그렇게 말하며 작게 혀를 찼다.

    방은 내부가 정리된 상태라 탁자와 의자, 침상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그 위에는 이미 먼지도 살짝 가라앉은 상태였다.

    백소천은 또다시 음살인기부를 태우며 방을 돌아다녔다.

    심협은 침상 옆으로 가서 굳게 잠긴 창문을 열어보았다. 그러자 창 너머로 진회하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고, 고개를 더 숙이니 뚱뚱한 남자의 시신도 보였다.

    시신의 옆에 보이는 강물은 짙푸른 와중에 검은색이 섞여 있어, 오래 보고 있으면 심원(深遠)한 느낌마저 들었다.

    “음기가 없다니……. 그저 우연의 일치였나 봅니다. 특이한 점이 없어요.”

    백소천은 손에 들고 있던 부적이 모두 타버리자 그렇게 말했다.

    “음기를 찾지 못했다고 해서 이상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 않소? 내 보기에 이 사건이 너무도 미심쩍은 부분이 많소. 그러니 쉽게 판단을 내리지 마시오.”

    심협이 그렇게 말하자 백수 도장이 인상을 확 구기며 빈정대듯 말했다.

    “허! 어디서 온 대단한 수사이신가? 나와 큰 도련님께서 모두 조사해보고도 아무 문제도 없다는데 혼자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하니, 어디 들어나 봅시다!”

    심지어 옆에 선 풍마도 곱지 않은 눈으로 심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귀신 나온다는 소문 때문에 사업이 영향을 받고 있으니 불쾌할 만도 했다. 다만 백소천의 눈치를 보느라 무어라 하지 못할 뿐이었다.

    심협이 막 입을 열려고 하는데 백소천이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이에 심협은 이를 다물었고, 거의 동시에 창밖에서 한바탕 혼잡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지 나가봐야겠군.”

    백소천은 재빨리 심협을 끌고 누각 아래로 내려갔다. 백수 도장과 풍마도 급히 뒤를 따랐다.

    그들이 후원 강가에 이르렀을 때, 시신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어째서인지 선비 복장의 백면서생을 에워싸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서생을 큰 소리로 질책하는 중이었다.

    들어보니, 백면서생은 시신이 안 보이자 진하수수의 석상 위로 올라섰는데, 그게 강의 신을 노하게 하는 행동이라 여겨 사람들이 화가 난 것이다.

    “젊은이, 어째 그리 생각이 없는가? 신을 노여워하게 만들면 어쩌자는 게야!”

    “그러니까 말이야. 서생이면 글이나 읽을 것이지, 뭔 구경할 게 있다고 여기까지 나와서 불경을 저지르고 난리야?”

    “진하수수께 무례를 범하다니! 물귀신이 누군가를 죽인다면, 다음 차례는 바로 자네일 것이야.”

    사람들이 자신을 맹렬히 비난하자 서생은 얼굴이 붉어져 변명하듯 말했다.

    “공자께서 괴력난신(怪力亂神)을 이야기하지 말라 하셨거늘, 당신들은 어찌하여 귀신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도 거리낌 없이 하는 것이오?”

    그 서생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백수 도장은 똑똑히 듣고는 질책했다.

    “어디서 온 무지렁이 같은 놈이냐! 헛소리 하지 말고 썩 꺼지거라!”

    놀랍게도 그 성난 외침은 다리 입구에 선 수십 명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압도했고, 이에 서생은 화들짝 놀라 몸까지 떨었다.

    다른 사람들도 놀란 듯 잠시 조용해졌다가 곧 다시 큰소리로 서생을 질책하기 시작했다.

    석상에서 뛰어내린 백면서생은 저 멀리 백수 도장을 보았다. 그리고 눈을 돌리다가 심협과도 눈이 마주쳤다. 이어서 서생은 다급히 인파를 비집고 들어가 모습을 감추었다.

    심협은 어째서인지 저 서생을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수난각 안으로 돌아온 후, 백소천은 백수 도장에게 계속 이곳에 남아 당분간 경계를 소홀히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심협과 함께 길을 나섰다.

    돌아가는 마차 안, 백소천은 심협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자 아까 백수 도장과의 껄끄러웠던 일 때문이라 여겨 웃으며 말을 걸었다.

    “백수 도장은 우리 집안에서 여러 해 모셨던 분이네. 줄곧 맡은 일을 열심히 해주셨지. 나도 그를 깍듯이 대할 수밖에 없네.”

    사실 심협은 그 백면서생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백소천이 이리 이야기하니 이야기를 좀 나눠보기로 했다.

    “백형은 정말 수난각에서 벌어진 일에 이상한 점이 없는 것 같소?”

    “나도 바보는 아닐세. 보름 동안 연달아 네 사람이 그리도 기이하게 죽었는데 어찌 이상하지 않겠는가? 다만 음살의 기운을 찾아내지 못했으니 말을 조심할 수밖에…….”

    백소천의 씁쓸한 표정에 심협은 부쩍 호기심이 생겼다.

    “그게 무슨 뜻이오? 설마 이 일이 귀신이 벌인 짓이 아니란 말이오?”

    “우리 백가가 건업성 제일의 퇴마세가로 자리 잡았으니, 몇 해 동안 임가, 두가라는 두 가문과의 알력다툼이 있었지.”

    백소천은 여기까지 이야기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임가나 두가가 백가를 겨냥하여 일부러 일을 벌였다고 의심하는 것이 분명했다. 다만 왠지 모르게, 심협은 이 일이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렇다고 아무런 증거도 없이 함부로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아까 자네도 마침 나가려 했다지 않았는가? 무슨 볼일이라도 있었던 게야?”

    백소천이 물었다.

    “내 성안의 점포들을 둘러보려 했소. 부적용 종이나 영재(靈材) 같은 것들을 살 수 있을까 해서 말이오.”

    “부적용 종이야 우리 집에도 넘쳐나네만…… 영재라면 뭘 말하는 겐가?”

    백소천이 궁금한 듯 묻자 심협은 웃으며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딱히 정해둔 건 없소. 가서 보고 생각하려 하오. 시야도 좀 넓힐 겸.”

    “좋아, 나도 딱히 할 일은 없으니 직접 자네의 시야를 좀 넓혀주지. 내가 같이 가주지 않으면 자네는 건업성을 다 둘러보아도 어디에서 무엇을 사야 할지 모를 테니 말이야. 하하하!”

    백소천의 지시에 따라, 마차는 길모퉁이를 돌아 진회교를 건넜다. 다리 위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는데, 이들은 마부의 재촉에 길을 내어주었다.

    마차는 다리를 건너 여러 길과 골목을 지나, 진회하 일대의 가장 번화한 구역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행인은 점점 적어졌고, 길 양쪽으로 늘어선 점포도 드물어졌다. 화려했던 점포의 장식들도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것들로 바뀌어갔다.

    반 시진가랑 지나자 마차 앞으로 한산한 길이 나타났다. 백소천은 마차를 세우게 하더니, 마차에서 내려 심협을 이끌고 골목으로 들어섰다.

    “건업성 안에 수선자(修仙者)가 필요로 하는 영재와 영약을 파는 점포가 그리 많지 않네. 그 대부분은 성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외진 곳에 있지. 길을 잘 아는 사람이 안내하지 않으면 찾기가 매우 힘들 것이네.”

    심협은 백소천의 안내를 받으며 주위를 살폈다. 그리 멀지 않은 곳 한쪽 모퉁이에 상점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그중에는 문이 크지 않은 2층짜리 누각이 있었다. 하얀 벽에 푸른 기와로 이루어진, 매우 평범해 보이는 곳이었다.

    건물 처마 밑에는 검게 기름칠된 목재 편액이 걸려 있었는데, 가느다란 금이 여러 줄 가 있었다. 한눈에 봐도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편액에는 옛 전서체로 새겨진 ‘녹보당(錄步堂)’이라는 세 글자 옆으로 ‘건업 잡화점(建鄴雜貨店)’이라는 작은 글씨도 한 줄 새겨져 있었다.

    점포 입구에는 체격이 건장하고 검은 옷을 입은 청년 두 명이 수문장처럼 양쪽에 서서 좌우를 감시하고 있었다.

    심협과 백소천은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점포 안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젊은 사람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마 영감, 내 당신 딸을 본처로 들일 수는 없어도 애첩으로 삼아줄 테니……. 아, 안심하시오. 내 영감 딸에게 잘해줄 것이오. 영감도 내 장인으로 복을 누리며 편안히 살면 될 것 아니오. 그러면 이리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것보다 훨씬 편하지 않겠소? 하하하!”

    듣고 있자니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부유한 악질이 민간의 여인을 빼앗는 전형적인 방법 아닌가! 예전에 통속적인 소설에서 그런 장면을 본 적은 있지만, 실제로 접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허! 이리 밝은 대낮에…….”

    심협은 고개를 돌려 백소천을 바라봤다가, 하려던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백소천은 억지로 분노를 참고 있는 표정이었는데, 조금만 건드려도 폭발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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