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수난각(水暖閣)의 변고
‘백소천에게 순양검결이 두 권으로 나누어진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니, 사부께서는 자신의 내문 제자에게도 미리 손을 써 두셨구나! 그러니 백소천도 1권의 12층 구결이 있음은 알아도 2권의 9층 구결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 게지.’
심협은 속으로 내심 사부의 치밀함에 감탄했다.
공법에 이르기를, 1권과 2권의 공법을 모두 수련하게 되면 수련이 출규(出竅) 후기까지도 이를 수 있다고 한다.
꿈속에서 무명공법과 황정경을 수련한 덕에 식견이 무척 높아진 심협은 1권의 공법을 자세히 보았다. 10층까지의 내용은 그리 심오한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황정경보다는 그랬다. 그저 공법 안에 중정평화(中正平和)가 담겨 있고, 큰 도(道)는 양(陽)의 호연(浩然)한 기운을 지향함을 어렴풋이 알 수 있을 뿐이었다. 무명공법이 구불구불한 강의 물길이라면, 순양검결은 곧게 뻗은 넓은 양관(*陽關: 지명, 서역으로 통하는 요충지)의 큰 길과도 같았다.
심협은 계속 읽어 나갔다. 2권의 공법 뒤에는 ‘양기금귀결(陽氣禁鬼訣)’이나 ‘인화분음결(引火焚陰訣)’ 등의 술법도 몇 가지 딸려 있었다. 대부분은 순양검결의 공법을 기초로 하는 것들로, 법력과 양기를 서로 결합시켜 귀신이나 음기를 선천적으로 억제하는 술법들이었다.
이어서 순양부검(純陽符劍)을 만드는 방법이 자세히 기재되어 있었다. 수사(修士)는 이 방법에 따라 여러 재료로 각기 다른 속성의 순양부검을 만들어낼 수 있다. 또한 수사가 벽곡기에 진입하면, 평소 사용하는 부검을 비법으로 순양검배(純陽劍胚)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이를 몸에 지니고 다니면 수사의 정기(精氣)를 통해 서서히 배양되는 것이다.
순양검배가 비교적 약한 초기에는 적을 상대하는 데 법기처럼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순양검배가 주인의 정기를 오랫동안 빨아들여 영성(靈性)이 생기면 검기가 완성되어 동급의 보통 법기보다 훨씬 강력해진다. 게다가 그 자체가 순양의 기를 담고 있어, 귀신을 물리치는 데에 특히 놀랄 만한 위력을 가진다.
하지만 심협이 눈여겨본 부분은 그게 아니었다. 순양검배의 잠재력이야말로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는 그 주인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것으로, 주인의 수련이 정진하고 수명이 늘어나면 따라서 전설 속의 법보(法寶)가 될 수 있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심협이 알기로는, 법보의 위력은 법기와는 비교할 수도 없다. 그러니 무수히 많은 수선(修仙) 종파와 세력들이 항상 법보를 얻고 싶어 혈안인 것이다.
“만일 정말로 부검(符劍)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순양검배의 속성으로 미루어 목(木), 금(金) 두 가지 속성의 재료가 가장 좋겠구나!”
심협은 턱을 매만지며, 어떻게 부검을 만들지 계획을 세워보았다.
순양부검의 제조법에 이어 마지막 단락에는 ‘대개박술(大開剝術)’이라는 술법이 기재되어 있었다. 그 이름만큼이나 쓰임새도 특이한 술법이었다.
이 술법을 완성하면, 수련자는 배나 가슴이 갈려도 죽지 않고, 뼈가 부러지고 사지가 잘려도 다시 자란다고 한다. 대성할 경우, 심지어 머리가 잘리고 심장을 도려내도 순식간에 원상태로 회복된다는 것이다.
“이게 과연 사실일까? 너무 허황된 이야기 같구나.”
자연히 그런 의심이 들었으나, 당장은 검증할 방법이 없었다. 공법 구결에 이르기를 출규기의 수사가 아니라면 절대 함부로 시도하지 말라고 명확히 설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순양보전에 기재된 내용은 너무 방대하고 복잡했기에 다 외우는 데에 한참이 걸렸다. 그러고 나서 또 한참 동안 집중해서 순양검결 1권의 모든 구결을 자세히 살폈다. 동시에, 두 손을 몸 앞에 원 모양으로 만들며 차분히 숨을 골랐다.
잠시 후, 그는 양손의 결인을 변화시키면서 속으로 순양검결의 제1층 공법을 되뇌어 보았다. 그러자 이내 그의 단전에서 법력이 꿈틀거렸고, 매우 뜨거운 기운이 그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올라 임맥을 따라 단중혈까지 솟구쳤으며, 흉부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이 열기가 퍼져 나가자, 심협은 가슴이 답답해지며 온몸이 참기 힘들 정도로 뜨거워졌다. 이에 그는 곧장 손을 거두어 무명공법의 운공으로 전환시켰다.
무명공법을 운공하며 청량한 기운이 온몸에 서서히 퍼지자, 조금 전의 열기는 서서히 사라졌다.
‘내가 스스로를 과대평가했구나. 순양검결의 구결은 이해하기는 쉬워도 공법을 운공하기는 쉽지 않아. 법력을 제어하면서 동시에 양기로 보하는 것은 생각보다도 어려운 일이야.’
이런 상황이라면 순양검결로 경지를 높이는 것이 결코 황정경 수련보다 빠를 것 같지도 않았다. 다행히 순양검배를 키우는 것은 공법 수련과 무관하게 양기만 충분하면 가능했다.
“지금은 경지를 높여 수명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 우선 무명공법 수련에 집중해야겠구나. 하지만 순양부검은 시도해볼만 하겠어.”
* * *
다음 날 이른 아침.
심협은 방에서 나와 백소천을 찾아갔다. 그런데 백소천의 방은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의복을 갖춰 입은 것을 보니 외출하려는 듯했다.
“어디 가시오?”
심협이 묻자 백소천은 진지한 얼굴로 돌아보며 답했다.
“셋째 어르신 쪽에서 운영하시는 사업에 문제가 생겼네. 아버지께서 내게 가보라시는군.”
백소천은 무척 조심스러워 보였다.
“그쪽으로는 전혀 관심이 없지 않았소? 어째서 백형을 보내신 것이오?”
심협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사업상의 문제라면 물론 내가 관여하지 않겠지. 듣자하니 그곳에서 사람이 죽었다고 하네. 뭔가 심상치 않아.”
백소천은 마지못해 말해주었다.
“팔앙루에서 생긴 일이오?”
심협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팔앙루가 아니라, 그게…… 수난각에 일이 생겼네.”
백소천은 조금 난처한 듯 머뭇거리며 답했다.
“수난각? 진회하에서 두 번째로 큰 기생집 아니오? 백씨 가문에서 그런 사업도 한단 말이오?”
“흠흠! 그게…… 셋째 어르신 자손들 쪽에서 하는 사업인데…… 여러 사업을 두루두루 하고 계시지.”
백소천은 멋쩍은 듯 마른기침을 하며 웃었다.
“그럼 말해보시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요?”
심협이 보채듯 묻자 백소천은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는데, 꽤나 흥미로웠다.
최근 보름 사이에 백가가 운영하는 수난각에서 세 사람이 연달아 목숨을 잃었다. 처음 목숨을 잃은 사람은 잡일을 하는 하인이었다. 그다음은 그리 특별할 것 없었던 기생, 마지막으로는 종종 수난각에 왔던 단골손님이 죽었다. 세 사람 모두 물에 빠져 죽었는데, 모두 얼굴을 물에 처박은 채 수난각 앞의 강 위에 떠 있었다.
진회하가 비록 물살은 느려도 분명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고 있으니, 만일 시체가 떠 있었다면 진즉 흘러갔어야 한다. 그런데도 세 구의 시신 모두 떠내려간 흔적 없이 물 위에 가만히 떠 있었다. 실로 기이한 일이었다.
“무언가에 묶여 있었던 건 아니오?”
심협은 잠시 생각해 보다가 물었다.
“아닐세. 무거운 물건에 묶여 있지도, 수초에 걸려 있지도 않았네. 그럴 만한 것은 전혀 없었지. 기이한 일이기도 하고 요즘 건업성도 그리 태평하지 못하니 여러 소문이 돈다는군. 이제 수난각은 귀신 나오는 곳이라는 소문 때문에 장사도 잘되지 않는다네.”
백소천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처음에는 백가에서도 이 일에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진회하 인근은 본래 온갖 시비가 끊이지 않는 곳이고, 해마다 스무 명 남짓은 물에 빠져 죽곤 했으니 말이다. 실족한 사람, 술에 취해 빠진 사람, 상심해 뛰어내린 사람, 배우자를 따라가는 사람 등 물에 빠지는 이유도 다양했다.
흉흉한 소문이 돌더라도 지금까지는 그저 관아에 돈 좀 찔러주고 외부에서 도사를 불러 귀신 쫓는 의식이나 하면 그만이었다. 실제로 귀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보여주기 식으로 처리하면 보통은 소문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처럼 연달아, 그것도 기이하게 죽어간 상황에서는 이 방법이 통할 리 없었다. 항간에는 또다시 수난각에 귀신이 숨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세 사람이 너무도 억울하게 죽었기에 그 원한 때문에 시신도 떠내려가지 않은 것이라는 소문이었다.
“나도 마침 나가려던 참인데, 같이 가도 되겠소?”
심협의 말에 백소천은 활짝 웃으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주면 나야 좋지.”
두 사람이 막 방문을 나섰을 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녹수가 다급하게 들어오며 다급하게 외쳤다.
“크, 큰일 났습니다. 도련님, 큰일 났어요!”
심협과 백소천은 서로를 마주 봤는데, 두 사람 모두 표정이 어두웠다.
“무슨 일이냐? 천천히 말해보아라.”
백소천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성 서쪽 비단가게의 주인 고씨가 어젯밤 수난각에서 자주 찾던 수연(水鳶) 낭자를 찾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고씨가…… 이전에 세 사람의 시체가 발견된 곳에서 또 다시 강에 뜬 채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 말한 녹수는 하얘진 얼굴로 숨을 헐떡이더니 덧붙였다.
“도련님, 대문 밖에 마차를 준비해두었습니다.”
백소천은 나지막이 탄식하고는 대문으로 향했다. 심협도 코를 문지르며 뒤를 따랐다.
* * *
성 안에서는 마차를 함부로 몰 수 없었기에 수난각에 도착하기까지는 반각(*半刻, 시간의 단위. 일각은 약 15분)이 걸렸다.
마차에서 내린 심협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앞에는 높이가 4장에 이르는 붉은 문루(門樓)가 서 있었다. 기둥과 대들보 장식은 화려했고, 부귀를 상징하는 온갖 도안이 그려져 있었다.
문루를 지나자 몇 걸음 앞에 3층짜리 거대한 각루가 나타났다. 각 층마다 처마는 유리기와(*琉璃기와, 주로 채광을 위해 유리로 만든 기와)에 덮여 있었는데, 그 아래로는 선명한 색상의 붉은 등들이 매달린 모습이었다.
각루 안에는 금빛 대청이 있었다. 정중앙에는 12폭짜리 거대한 병풍을 등지고 백옥을 두른 무대의 좌우로는 2층으로 통하는 큰 계단이 보였다.
평소에는 손님이 구름처럼 시끌벅적하던 수난각이건만, 사람 그림자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자색 비단옷을 입은 중년 여자가 잡일하는 외부인에게 쓸데없이 입을 놀리지 말라며 잡일하는 하인들의 입단속을 시키는 중이었다.
백소천과 심협이 들어오자, 중년 여자는 근심 어린 표정을 거두고는 다가와서 허리 숙여 인사했다. 용모와 자태가 빼어나고 몸매도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다만 눈가에는 화장으로도 감출 수 없는 주름들이 엿보였다. 몸가짐이나 행동거지로 미루어, 이곳을 관리하는 행수인 듯했다.
“큰 도련님, 드디어 오셨군요.”
중년 여자는 한시름 놨다는 듯 그렇게 말하며 허리춤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닦았다.
“풍마(馮媽), 시신은 어디에 있소?”
백소천이 불쑥 물었다.
“후원 물가에 있습니다. 안으로 들이지는 않았어요. 관부의 오작(*仵作, 검시관)께서 시신을 살펴보고 가셨지요. 지금은 백수 도장께서 와 계십니다.”
풍마의 간결한 답변에 백소천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풍 뒤로 향했다.
심협도 뒤따라 병풍을 돌아 뒤쪽의 둥근 문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