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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27화 (127/1,214)
  • 127화. 부적의 위용

    “보아하니 낙뢰부 한 장으로는 부족한 모양이구나. 그럼 더 강렬한 낙뢰부의 맛을 보여주지! 하하하!”

    심협은 유쾌한 듯 웃으며 양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양손에는 각각 열 장의 청색 낙뢰부가 생겨났다. 그가 법력을 주입하자 스무 장의 부적에서 강렬한 청색 빛이 일었다.

    ‘무, 무슨……?’

    서천호는 심협의 손에 들린 수많은 낙뢰부를 보며 두려움에 떨었다. 그 무렵, 그의 몸 표면에는 번갯빛이 가득 차올랐다. 이 번갯빛은 금색 빛과 교차하며 요란한 소리를 냈는데, 이와 함께 둔해져 있던 그의 몸도 빠르게 회복되어갔다.

    그때, 심협이 양손을 동시에 휘둘렀다. 그러자 스무 장이나 되는 낙뢰부가 20줄기의 청색 빛이 되어 서천호를 향해 쏜살처럼 날아갔다.

    쾅! 쾅! 쾅!

    20개나 되는 굵은 번개가 연달아 서천호의 몸에 내리쳤고, 하늘을 다 뒤흔들 만한 우렛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서천호의 몸은 수많은 번개에 뒤덮여 산산조각 난 채로 사방으로 튀었다.

    그 순간, 몸길이가 1척 정도 되는 반투명한 백호(白虎)의 환영이 튀어나오더니 두려움에 물든 표정으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심협은 마치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한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또 하나의 낙뢰부가 날아가 하얀 번개로 변해 백호의 환영에 꽂혔다.

    “캬아아악!”

    백호 환영은 비명을 끝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허공을 가득 메운 번개들은 서천호를 죽인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고,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빠르게 몇 배나 확장되어갔다.

    서천호가 있던 곳을 중심으로 반경 10여 장은 순식간에 번개 바다로 변해버렸으니, 그야말로 놀랄만한 광경이었다. 마을의 어린아이들은 놀라서 눈을 감기도 했다.

    하지만 몇 차례 호흡할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무시무시하던 번개 바다도 결국 흩어져 사라졌고, 지면에는 검게 탄 깊은 구덩이만이 남아 있었다.

    심협은 창백해진 안색으로 잠시 비틀거리다가 겨우 몸을 가누고 섰다.

    낙뢰부와 쇄갑부, 정신부는 모두 높은 수준의 부적이라 사용하려면 법력의 소모가 매우 크다. 그런 부적을 단숨에 수십 장을 사용했으니 지치는 것도 당연했다. 그나마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가진 20개의 법맥과 출규기에 이른 수련 경지 덕이었다.

    심협과 서천호의 대결 과정은 설명하려면 복잡해 보였으나, 실상은 호흡 몇 번 할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심지어 평범한 마을 사람들은 물론 요괴들도 대부분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상황이 끝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서천호에게 심협을 내줘서는 안 된다던 사람들은 환호하는 반면, 그 반대였던 사람들은 크게 당황한 기색이었다.

    요괴들은 잔뜩 겁을 먹은 모습이었는데, 그중 하나가 쭈뼛거리다가 도망치기 시작하자 나머지도 순식간에 방촌산으로 달아나버렸다.

    심협은 요괴들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한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지면이 갈라지더니 물줄기가 솟구쳐 마을 안팎을 빠르게 훑고 지나 심협 앞에 이르렀다.

    물줄기에는 하얀색과 파란색의 반투명한 구(球)를 받치고 있었는데, 서천호와 녹함의 내단이었다. 양두괴의 시체와 골차도 함께 쓸려왔다.

    심협이 결인하자 물줄기가 물의 검(劍)이 되어 양두괴의 시체를 반으로 갈라 그 안에서 유백색의 내단을 드러냈다. 실로 진귀한 것들이었다.

    심협은 세 개의 내단과 골차를 기쁜 기색으로 훑어보다가 챙겨 넣었다.

    그때였다.

    “심 선사! 큰일 났습니다! 영 선사가 위중합니다! 마 파파가 어서 선사를 모셔 오라고 합니다.”

    다급한 발소리에 이어 청우가 조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심협은 다급히 마을 입구로 달려갔다.

    영락은 바닥에 누워 있었다. 안색은 백지처럼 창백했고, 혈색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호흡도 미약해 거의 죽은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주위를 둘러싼 마을 사람들은 모두 어찌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나마 마 파파는 쪼그려 앉아 붉은 옥돌을 꺼내 영락의 가슴에 놓아두었다.

    옥돌은 담담한 붉은 빛을 발하고 있었는데, 마치 태양처럼 따뜻한 기운도 새어 나오고 있었다.

    “심 선사께서 오셨소. 모두 비키시오!”

    심협의 뒤를 따르던 청우가 멀리서부터 소리 높여 외쳤다.

    켕기는 게 있는 사람들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다급히 길을 비켜 주었다.

    심협은 순식간에 영락에게 다가왔는데, 상황을 살필 겨를도 없이 붉은 옥돌을 보고는 놀랐다.

    “화혼옥(火魂玉)!”

    <선령백초>에는 이 옥돌에 대한 기록이 있었다. 화혼옥은 희귀한 화(火) 속성 광석으로, 들끓는 화산에서 나는 것이다. 단단한 데다가 막강한 화력(火力)을 지닌 것으로, 화(火) 속성 법기를 만들기에 더없이 훌륭한 재료다.

    하지만 지금은 옥돌을 연구할 때가 아니었으니, 심협은 영락의 팔을 잡고 법력을 주입하는 동시에 신식을 그녀의 체내로 들여보냈다. 그러나 이내 그는 안색이 굳고 말았다.

    “어떻소?”

    마 파파가 심협의 표정을 보며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경맥 여러 곳이 끊어져 있고, 한기가 오장육부에 스몄습니다. 화혼옥이 심맥(心脈)을 보호하고 있긴 하나, 지금 당장 치료를 해야 합니다!”

    심협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심 도우, 제발 영락을 살려주시오!”

    마 파파가 급히 말했다.

    “물론입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해 치료하겠습니다.”

    심협이 잠시 망설이다가 답하자 마 파파는 안색이 조금 풀어졌다.

    “심 도우, 그럼 수고해 주시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영락을 안은 채 자신의 거처로 빠르게 달려갔다.

    전투의 주인공들이 모두 떠나고, 마을 입구에는 장수촌 사람들만 남게 됐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오늘 심 선사가 아니었다면 장수촌은 이 땅에서 사라졌을 것이오. 앞으로는 심 선사께 더욱 공손해야 할 게요. 알겠소?”

    마 파파는 사람들, 특히 심협을 요괴들에게 내어주자던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람들은 무안한 듯 붉어진 얼굴로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청우, 부상당한 사람들을 잘 보살피거라. 호자, 너는 사람들과 울타리를 수리하고. 요괴들이 물러가기는 했으나 언제 또다시 쳐들어올지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시오.”

    마 파파의 명에 청우와 호자는 짧게 대답한 후 각각 사람들을 몇 명씩 모아 할 일을 했고, 다른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마 파파는 그곳에 남아서 잠시 머뭇거리더니, 심협의 거처로 갔다.

    * * *

    영락을 안고 거처 앞까지 돌아와 막 대문 앞에 도착한 심협은 잠시 마을 입구가 있는 쪽을 돌아보았고, 표정은 무척 차분했다.

    마을 입구에서는 무척 먼 거리지만, 그의 청력은 놀라울 정도라 그곳에서의 대화도 다 들은 것이다. 사실 그는 마을 사람들과 서천호가 나눈 대화도 약간은 들었다. 그러니 많은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요괴들에게 내어주자고 한 것도 알고 있었다.

    ‘저들에게 화를 내거나 서운해 할 것 없다. 저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야. 그런 위협 앞에서 자기 목숨을 지키려 드는 게 당연해. 게다가…… 내 편을 들어준 이들도 있지 않은가.’

    영락을 잠시 내려다보던 심협은 거처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영락을 침상에 내려놓고 손가락을 몇 번 튕겼다. 그러자 보이지 않는 힘이 영락의 주요 경맥 몇 곳을 봉했다.

    그는 영락 가슴 위에 놓인 화혼옥을 힐끗 보더니, 한 손으로는 그녀의 가슴 부위의 단중혈(膻中穴)을, 다른 손으로는 아랫배를 누른 채 법력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영락의 상세는 워낙 위중해 예전의 심협이었다면 살려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출규기(出竅期) 수사다. 게다가 그는 본래 의술에 정통하니 지금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법력이 주입되자 영락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고, 얼굴에는 조금씩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약했던 호흡도 조금씩 안정되어갔다.

    심협은 조금 안심하며, 법력을 계속 주입했다. 동시에 오장육부에 스민 한기를 밀어냈다.

    시간이 흘러 날이 어두워졌을 무렵, 심협은 서서히 손을 거두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침상에 누워 있는 영락은 호흡이 원활해진 상태였고, 안색에도 혈색이 돌았다. 큰 고비는 넘겼으니 생명에는 지장이 없겠으나, 체내의 원기에 입은 손상이 너무 심해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영락을 바라보던 심협의 눈빛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치료하는 동안 그녀가 이미 벽곡기에 진입했다는 것과 체내에 10여 개의 법맥이 생겼음을 알게 됐다. 심협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저 정도라면 최고의 자질이라 할 수 있었다.

    이번 중상으로 법맥도 큰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러나 심협은 법력을 이용해 그녀의 끊어진 법맥들을 이어줬을 뿐만 아니라 더 넓혀 주기까지 했다. 그러니 부상만 치료된다면 수련 경지는 분명 더 오를 터이니 영락에게는 전화위복일지도 모른다.

    ‘그때는 몇 가지 공법을 전수해주자. 그 정도면 장수촌을 지키기에 충분하겠지.’

    심협은 이내 시선을 거두고 대문으로 향했다. 그가 비록 예절에 목메는 사람은 아니지만, 젊은 남녀가 한 방에 있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자가 혼수상태라면 더더욱…….

    심협이 문을 열어 보니 마당에 마 파파가 서 있었다. 그는 노파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심 도우, 그대는 오늘 우리 마을을 구해주었을 뿐 아니라 영락의 목숨까지 구해주었소. 정말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구려.”

    마 파파는 안도와 감격이 뒤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저도 장수촌 사람 아닙니까?”

    심협은 그렇게 말하며 멋쩍은 듯 웃었다.

    “서천호가 말하기를, 그대가 방촌산에 올라 사월삼성동이라는 곳에 갔었다던데…… 사실이오?”

    마 파파가 주저하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심협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 어르신들께서 이야기하시기를, 사월삼성동은 방촌산 조사와 그 제자들이 폐관하는 곳이라고 하셨소. 지금 그곳은…… 어떠하오?”

    마 파파의 얼굴에는 기대와 우려, 흥분이 뒤섞여 있었다.

    “무엇을 묻고 싶으신 건지 압니다. 하지만 때로는 모르는 것이 약일 수도 있지요. 물론 정말로 알고 싶다 하신다면 숨김없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심협의 그 대답만으로도 마 파파는 흠칫 놀랐다. 흥분과 기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무언가 예상한 듯 안색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심협은 조용히 방문을 닫고는 천천히 마당으로 걸어 나와 고개를 들어 하늘에 가득한 별들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심 도우, 내 이 나이 먹도록…… 마을을 지키는 것 외에 유일한 바람은…… 방촌산의 상황을 알게 되는 것이었소. 부디…… 부디 도우께서 이 늙은이의 바람을 이뤄주시오.”

    침묵을 지키던 마 파파는 한숨을 내쉬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월삼성동에서 보고 겪은 것들을 이야기했다. 다만 황정경에 관련된 내용만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마 파파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져 순식간에 훨씬 더 노쇠한 모습이었다.

    “우리 장수촌이 조상 대대로 수백 년을 기다려왔건만…… 결국 헛된 꿈이었단 말인가! 하늘이 우리를 버렸구나! 하늘이 버렸어!”

    마 파파는 비참하게 웃으며 중얼거리더니 눈물을 흘렸다.

    심협은 가만히 서서 그런 노파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 역시 침통한 심정이었다.

    엎어진 새 둥지에 온전한 알이 있을 수 없듯, 천마(天魔)가 세상을 멸한 상황에, 세상 곳곳에는 사라져버린 마을도 적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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