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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26화 (126/1,214)
  • 126화. 막강한 육신

    양두괴는 영락을 힐끔 보고는 가볍게 박차고 순식간에 사람들을 뛰어넘어 장수촌으로 들어섰다. 다른 요괴들이 곧장 그 뒤를 따랐다.

    그때였다. 무언가가 쏜살같이 날아오더니 양두괴의 앞을 막아섰다.

    “누구냐? 누가 감히 이 어르신의 일을 방해하는 것이냐!”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던 양두괴가 일갈하며 곧장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골차(骨叉)에서 회백색 화염이 생겨나 한 줄기 하얀 빛이 되어 날아갔다.

    양두괴의 앞을 막아선 인영, 심협은 피하지 않고 황정경을 운공했다. 그러자 왼팔에 금색 빛이 한 겹 일었다.

    캉!

    골차와 심협의 팔이 맞부딪치자 가벼운 금속성이 울렸다.

    양두괴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이 골차를 타고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호구(*虎口, 엄지와 식지가 이어지는 부분)가 얼얼할 정도였다.

    골차가 크게 진동했고, 양두괴의 몸도 흔들리며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었다. 몸을 전혀 제어할 수가 없었다.

    심협의 공격은 기세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에는 오른팔에도 금색 빛이 일었다. 이제 심협의 두 팔은 마치 커다란 금빛 칼처럼 보였다.

    심협은 양두괴와 몸이 스쳐가며 순식간에 오른팔로 상대의 목을 그었다.

    양두괴는 크게 놀랐으나 몸을 가눌 수 없었던 상태라 피하기에도, 요동치는 골차를 거두어 막기에도 늦었다. 이에 어쩔 수 없이 다른 팔을 들어 막았다.

    샥!

    심협이 양두괴를 스치고 지나가자 섬뜩한 소리와 동시에 핏빛이 번득였다.

    “크아악!”

    양두괴의 비명이 울렸다. 그의 팔은 잘려 있었는데, 마치 예리한 보검으로 자른 것만 같았다. 더욱이 팔로는 전혀 막아낼 수 없었는지 목도 잘려나가 거대한 양머리가 허공으로 솟았다가 떨어졌다. 경악과 공포가 가득한 두 눈은 이내 초점을 잃어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멀리서 보면 금색 빛이 몇 차례 번득이다가 사라지고, 두 차례 베이는 소리가 울린 것이 전부였다. 그 결과 응혼기 요괴의 머리와 팔이 몸에서 떨어진 것이다.

    이 광경을 본 요괴들은 크게 놀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심협은 땅에 내려서자마자 곧장 방향을 틀어 순식간에 가장 가까이 있던 늑대 요괴 앞에 이르렀고,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퍽!

    수박 깨지는 듯한 소리에 이어 단단하기 그지없는 요괴의 머리가 그대로 박살났고, 피와 뇌수가 튀었다.

    심협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두 주먹을 폭우처럼 휘둘렀다. 손속에 조금도 사정을 두지 않았으니, 순식간에 일고여덟 마리의 요괴가 비명횡사했다.

    남은 요괴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꽁지가 빠져라 마을 밖으로 도망쳤다.

    “심 선사! 돌아오셨군요!”

    “이제 살았다!”

    마을 입구에 있던 사람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몇몇은 크게 소리쳤고, 몇몇은 넋이 나간 얼굴로 주저앉았다. 극도의 두려움과 긴장에서 벗어나자 다리가 풀려버린 것이다.

    “심 대형…….”

    영락은 혼잣말처럼 읊조리더니 의식을 잃었다. 청우가 얼른 다가가 부축해주지 않았다면 땅에 얼굴을 묻었을 것이었다.

    마 파파의 덤덤했던 두 눈도 크게 흔들렸다.

    한편, 서천호는 심협이 양두괴에 이어 다른 요괴들까지 참살하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이 스스로 나오다니, 본 왕의 수고를 덜어주는구나.”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당신이 그렇게 애타게 나를 찾는다는 말을 들었지. 그래, 내게 무슨 볼 일이라도 있소? 어디 들어나 봅시다.”

    그는 양손을 허리에 올리고는 평소와 달리 건들거리며 말했다.

    “네놈이 다 알면서 모르는 척을 하는구나. 가져간 것들을 내놓아라. 그럼 본 왕이 네놈을 편히 보내주마.”

    서천호는 매우 분노한 듯했으나 목소리는 점점 가라앉았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직접 가져가보던가. 마침 잘됐군. 예전에 산에서 나를 죽이려 했던 것을 잊지 않고 있소. 이번에 그 빚을 갚아주지.”

    심협은 전혀 긴장하지 않고 놀리듯 말했다.

    “크르릉!”

    분노를 억누르던 서천호가 돌연 울부짖었다. 그러자 하늘이 흔들리는 듯했고, 몸에는 번갯빛이 번득였다. 이내 그의 온몸은 눈부신 번갯빛에 휩싸였다.

    꽈르릉!

    벼락 소리가 울렸고, 서천호는 번갯빛 안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다음 순간, 심협의 머리 위에서 호랑이 발 하나가 나타나더니 녹합을 죽였을 때처럼 맹렬히 내리쳤다.

    심협은 크게 놀랐으나, 대처는 빨랐다. 그는 온몸에서 금색 빛을 크게 방출하면서 주먹을 위로 올려쳤다. 주먹 주위로 모여든 금색 빛은 어렴풋하게 코끼리 다리의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하나의 발과 하나의 주먹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꽝!

    묵직한 굉음이 울렸고, 지면에는 거미줄 같은 균열이 일어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난폭한 기류가 몰려와 마치 소용돌이가 치듯 어마어마한 흙먼지가 휘날렸다. 반경 10여 장은 뿌연 먼지로 시야가 흐려질 정도였다.

    “멍청한 놈! 한낱 인간 따위의 육신으로 대왕과 맞서다니!”

    마을 입구에서 둘의 싸움을 지켜보던 요괴들은 심협이 주먹으로 서천호와 맞서자 조롱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반면 마 파파의 얼굴은 근심으로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인간 수사는 술법이나 법기 등을 만들고 다루는 데는 뛰어나지만, 육신의 힘은 선천적으로 요족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요족은 후천적인 수련을 통해 육신을 더욱 강화시켜 심지어는 몸으로 법기를 물리치기도 한다. 그러니 타고난 육신의 힘이 부족한 인간은 요족의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이다.

    요동치는 흙먼지가 가라앉았고, 서서히 서천호와 심협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 순간, 요괴들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라 입이 떡 벌어졌고, 마 파파를 비롯한 장수촌 사람들은 놀라는 와중에도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심협은 거미줄처럼 갈라진 지면의 한복판에 선 채, 한 손으로 서천호의 앞발을 막고 있었다. 서천호가 힘을 줘 내리찍어도 심협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서천호 역시 경악으로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게 끝인가? 이래서야 서천호(噬天虎)가 아니라 서천묘(噬天猫)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지 않겠느냐?”

    심협은 서천호를 올려다보며 놀리듯 말하고는 팔을 크게 떨었다. 그러자 팔을 감싼 금색 빛이 더욱 밝아지며, 산이라도 밀어낼 법한 괴력을 뿜어냈다.

    빠각!

    마치 뼈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서천호의 발이 괴상한 각도로 뒤틀려 버렸다. 거의 동시에 거대한 서천호의 몸 또한 뒤로 튕겨나갔다.

    하지만 그 순간, 서천호의 몸을 휩싸고 있던 번갯빛이 크게 방출돼 순식간에 어지간한 장정 팔뚝만큼 굵은 번개의 뱀이 되었다. 이 10여 마리의 번개 뱀은 순식간에 심협에게 날아들었다.

    워낙 가까웠던 탓에 심협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이에 그는 재빨리 황정경을 운공해 몸을 보호했다. 그러자 온몸은 물론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에서도 금색 빛이 발산되었다. 마치 금갑(金甲)을 입은 금발의 전신(戰神)으로 변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눈부신 번갯빛이 심협의 몸으로 흘러들었고, 거대한 우렛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번갯빛은 주위 땅바닥에 깊게 파인 흔적을 만들어냈다.

    그 무렵, 서천호는 허공에서 몸을 한 바퀴 돌려 땅에 내려섰고, 긴장한 눈으로 심협을 노려보았다.

    눈부신 번갯빛이 거두어지고, 심협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상의(上衣)는 넝마처럼 너덜너덜해졌지만, 몸에는 작은 상처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이토록 막강한 방어능력이라니, 황정경은 역시 현묘하구나!”

    심협은 크게 흡족해하며 중얼거렸다.

    서천호는 심기가 편치 않았다. 그는 이제야 눈앞의 청년이 불과 1년여 전에 자신에게 쫓겨 도망치던 애송이가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서천호는 급히 방향을 틀어 도망쳤다. 조금 전 공격에서 자신이 가진 번개의 힘을 반 이상 소모해버린 상태라 모습을 감출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출규기의 요괴답게 발 하나가 부러진 상태로도 바람처럼 빠르게 도망칠 수 있었다.

    하지만 검은 그림자 하나가 그를 바짝 쫓았다. 서천호보다도 훨씬 빠른 그 그림자는 금세 앞을 막아섰다. 물론 심협이었다.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벌써 가려 하오?”

    심협이 담담하게 말했다.

    “도우, 전에는 내 잘못했소. 이제 수하들을 데리고 떠나서 영원히, 다시는 방촌산에서 내려오지 않겠소. 그러니 이만 놓아주시오.”

    서천호는 낯빛을 바꾸고 머리를 조아지며 간청했다.

    심협은 서천호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자 당황스러우면서도 의아했다.

    그때였다. 서천호가 살기등등하게 표정을 구기더니 입을 쩍 벌렸다. 그러자 사람 머리통만 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눈부신 전류에 휩싸인 하얀색의 투명한 공이었다. 지금까지 서천호가 내보였던 그 어떤 공격보다 눈부시게 빛나는 빛의 공은 우렁찬 소리와 함께 단숨에 심협을 덮쳐갔다.

    심협은 재빨리 발을 굴렀다. 그러자 그의 몸은 누가 잡아당긴 것처럼 상상도 못할 정도로 빠르게 뒤로 날아가 빛의 공에서 멀어졌다.

    동시에 다시 금색 빛이 심협의 몸을 뒤덮었다. 그 상태로 심협은 손을 뻗어 허공에서 무언가를 잡는 동작을 취했다. 그러자 그의 몸 앞에서 파동이 일더니 금빛 용의 앞발이 나타났다. 네 개의 발가락은 위에, 하나는 아래에 있었고, 끝은 갈고리처럼 날카로워 척 보기에도 엄청난 파괴력이 있을 듯했다.

    이 앞발은 간단하게 빛의 공을 잡아버렸다.

    “이럴 수가!”

    서천호의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빛의 공은 미친 듯이 번득이며 요동쳤지만, 마치 새장에 갇힌 새처럼 조금도 벗어날 수 없었다.

    빛의 공을 움켜쥔 금빛 용의 앞발은 유성처럼 튀어나가 순식간에 서천호 앞에 이렀다. 그리고 서천호까지 단번에 움켜쥐었다.

    “크아악!”

    서천호의 비명이 이어졌다. 그의 몸에는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은 몇 줄기 상처가 생겨난 상태였다. 이어서 서천호는 끈 끊어진 연처럼 훌훌 날아가 땅에 매섭게 처박혔다.

    쾅!

    우렁찬 소리와 함께 땅이 진동했고,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났다.

    “용서해줄까 했더니 그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냐? 흥! 그렇다면 벌을 줘야겠지. 네놈을 대상으로 부적을 시험해보겠다!”

    심협은 차게 코웃음 치더니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장심(*掌心, 손바닥 한가운데)에 자색 빛이 번득이면서 자색 부적 두 장이 나타났다. 바로 쇄갑부과 정신부였다.

    심협은 양손에 부적은 한 장씩 쥔 뒤 무어라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두 손에 옅은 하얀 빛이 나타났다. 이 백색광(白色光)은 부적에까지 뻗어 있었다.

    “공격!”

    심협은 양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두 부적은 백색광을 맹렬하게 방출하며 번개처럼 날아나 허공에서 폭발했다.

    콰쾅!

    이어서 두 부적은 각각 금색과 백색의 빛이 되어 서천호에게 날아들었다.

    서천호는 중상을 입고 내단까지 뺏긴 상태라 매우 둔해져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

    두 줄기 빛이 순식간에 서천호의 몸을 뒤덮었다. 그러자 서천호의 몸에서는 눈부신 하얀 빛이 떠올랐고,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져갔다. 이 빛은 한번 번득이더니 바로 흩어져 빽빽한 백색광이 되어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서천호의 몸을 파고들었다.

    “끄윽!”

    서천호의 단단한 표피에 균열이 일더니 무수히 많은 작은 상처가 생겨나면서 온몸이 피로 물들어갔다.

    “끄아악!”

    서천호는 마치 수많은 개미가 온몸을 뒤덮고 물어뜯는 것처럼 견디기 힘든 통증에 일갈했다. 그러자 몸에서 번갯빛이 요동치며 무언가 저항을 시도하려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서천호의 몸에서 금색 빛이 한 겹 일더니 커다란 정(定) 자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어서 여러 줄기의 금색 빛이 되어 서천호의 몸을 에워쌌다. 그러자 서천호는 온몸이 굳어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었다. 심지어 발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좋구나! 그럼 이번에는 이걸 시험해볼까?”

    서천호의 눈이 놀람과 두려움으로 물든 것도 개의치 않고 심협은 턱을 매만지며 한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푸른 부적이 서천호의 머리로 날아들었다. 이어서 하얀 빛이 번득였고, 부적이 폭발했다.

    꽈르릉!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천둥소리가 울리더니, 부적의 터진 곳에서 굵기가 팔뚝만 한 하얀 번개가 튀어나왔다. 이 번개는 눈부신 빛을 발하며 곧장 서천호의 몸에 떨어졌다.

    서천호는 꿈적도 하지 못하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크아아!”

    서천호가 처참하게 포효했다. 더없이 유연했던 호랑이 몸은 쇄갑부의 영향으로 방어력이 크게 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온몸에 퍼져 있던 자잘한 상처가 순식간에 터져나갔고, 번개가 꽂힌 부분에는 폭이 몇 척에 이르는 검은 화상이 생겨나 탄내가 진동했다.

    ‘멍청한 인간! 뇌(雷, 번개) 속성 요괴인 내게 뇌 속성 부적으로 공격하다니. 이 부적으로 내게 부상을 입힐 수는 있겠지만, 대신 내 번개의 힘도 보충시켜주는 꼴이다!’

    서천호는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속으로는 기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부러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요력을 운공해 번개의 힘을 흡수함으로써 정신부의 힘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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