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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24화 (124/1,214)
  • 124화. 최상급 법기

    장수촌 바깥. 모래와 돌이 휘날릴 정도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검은 회오리가 멀리서부터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지나는 곳마다 나무든 돌이든 가릴 것 없이 모두 휩쓸려 부서졌다.

    거대한 짐승 울음소리와 함께 거대한 무언가가 달리는 듯한 소리가 회오리 안에서 들려왔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진동할 정도였다.

    장수촌을 지키고 있던 장정들은 이 광경에 창백하게 질린 채 병기를 꼭 쥐었다. 요괴들의 공격이야 드문 일이 아니었지만, 이토록 놀라운 기세의 요괴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영 선사와 심 선사를 모시고 와라! 어서!”

    마을 입구의 고지에 서서 빠르게 다가오는 회오리를 보고 있던 청우는 상황이 심상치 않자 옆에 있는 사람에게 급히 분부했다. 그의 분부를 받은 사람은 화들짝 놀라 답하더니 곧장 달려갔다.

    “어서 큰 나무로 울타리를 보강해라! 그리고 모두 큰 방패로 몸을 보호해!”

    청우의 외침에 겨우 정신을 차린 장정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굵은 나무와 커다란 돌들을 들고 와 울타리를 보강하기 시작했다. 또한 20여 명의 장정은 사람 키만 한 방패를 가지고 와 마을 입구에 담을 쌓았다.

    하지만 미처 준비를 마치기도 전에 검은 회오리는 30장 거리까지 이르렀다.

    쉬익!

    고막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이어서 푸른빛을 띤, 사람 머리통만 한 물 덩어리들이 회오리에서 발사되어 마을 입구의 울타리를 두들겼다.

    쾅! 콰쾅!

    물 덩어리에 맞은 울타리는 단숨에 산산조각이 났다. 장수촌의 역대 선인들이 공을 들여 보강해왔던 울타리가 지금 이 순간 종잇장처럼 찢겨 나간 것이다. 그 바람에 부서진 돌과 나무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고, 심지어 철로 감싼 육중한 마을 문도 낙엽처럼 날아갔다. 장정들이 만든 방패의 담도 곧 무너질 듯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돌과 나무의 파편에 맞아 몇 명이 순식간에 죽어나갔고, 피와 뇌수가 사방으로 튀고 흘렀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려왔고, 마을 입구에는 시신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살아남은 것은 청우를 포함한 10여 명에 불과했다.

    그때였다. 검은 회오리가 마을에서 10장 정도 앞에 우뚝 멈춰 섰고, 그 안에서 분노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녹합,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하산하면 절대 무고한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대왕께서 분부하시지 않았나!”

    묵직한 목소리에 이어 회오리는 흩어져 사라졌고, 요괴 무리가 모습을 들어냈다. 그 수가 족히 100마리는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가장 선두에는 비범한 기운을 내뿜는, 키가 크고 작은 요괴 두 마리가 서 있었다.

    키가 작은 요괴는 송아지만 한 푸른 두꺼비였다. 정수리와 등은 백색 껍질로 덮여 있어 마치 투구와 갑옷을 걸친 것 같았다. 툭 튀어나온 두 눈은 쉴 새 없이 두리번거렸는데, 눈빛은 더없이 난폭해 보였다.

    그 옆에는 양의 머리에 몸통은 사람인 황색의 반인반수(半人半獸)가 두 발로 서 있었다. 키가 1장에 이르는 괴물로, 상반신은 근육이 잔뜩 팽창해 있었지만, 두 다리는 가늘고 길었다. 머리 위에는 푸른 양 뿔이 나 있었고, 손에는 눈처럼 하얀 골차(骨叉, 뼈 작살)를 들고 있었다.

    양머리 요괴가 두꺼비 요괴를 노려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좀 전에 화를 낸 게 어느 쪽인지 알 수 있었다.

    두 요괴의 뒤로는 각양각색의 요괴들이 득실거렸다. 호랑이, 표범, 늑대, 곰 등 다양했는데, 발산하는 요기는 앞의 두 요괴에게 미치지 못했으나 하나같이 용맹하고 포악해 보였다.

    “흐흐, 인간 몇 놈 죽이는 것이 뭐 대수인가? 인간들은 본래 교활하니 이렇게 본때를 보여줘야 말을 듣는다. 들어가서 그놈을 끌고 나와야 하는데 거치적거리니 죽인 것뿐이야. 양두괴,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두꺼비 요괴, 녹합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마을 사람들을 살기 어린 눈으로 흘겨보며 대꾸했다.

    “대왕께서는 이번 일의 처리를 내게 맡기셨네. 또다시 막무가내로 나온다면, 내 대왕께 사실대로 보고해도 원망하지 말게나. 대왕의 처벌이 얼마나 가혹한지는 자네도 잘 알고 있겠지?”

    양두괴가 근엄한 목소리로 말하자 녹합은 낯빛이 굳더니 바짝 엎드렸다. 이후 아무 말이 없었으나 가슴이 부푼 것이 꽤나 불만이 있는 듯했다.

    “마을 통솔자는 나와서 이야기합시다!”

    양두괴가 마을 안에 서 있는 장정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청우는 양두괴와 눈이 마주치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러나 어찌해야 할지를 알 수 없어 마을 안을 돌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토록 큰 소란이 벌어졌으니 마을 사람 대부분은 입구에 나와 있었다. 하지만 감히 가까이 오지도, 다친 장정들을 구해주지도 못했다.

    그때, 카랑카랑한 노파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 작디작은 장수촌에 이리 대단한 두 분 요왕(妖王)까지 오실 줄은 몰랐구려. 두 분께서 무슨 일로 오셨소?”

    마 파파는 마을 입구로 다가오며 따지듯 물었다. 옆에 선 영락의 얼굴에는 어렴풋한 빛이 비쳤고, 온몸의 기운도 전보다 배 이상 강해진 상태였다. 벽곡기에 진입한 것이 분명했다.

    영락은 마을 입구의 처참한 광경을 보자 고운 두 눈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이건 그대들 짓이오?”

    영락은 양두괴와 녹합을 똑바로 노려보며 마을 입구의 고지로 뛰어올랐다. 그녀의 손에서 파란 빛이 번득이더니 길이가 2척에 달하는 반투명한 빛의 검이 생겨났다. 이 보검은 나타나자마자 폭발적인 한기를 발산해 반경 5장 가량을 가득 채웠다. 살이 에일 듯한 한기에 사람들은 덜덜 떨었고, 지면에는 하얀 성에가 서렸다.

    두 마리 우두머리 요괴도 놀란 기색이었고, 파란 보검을 보는 눈빛도 진지해졌다.

    “흐흐, 그 보검은 최상급의 법기로구나. 너는 그 보검의 위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도 없을 테니 차라리 나 녹합에게 주는 게 어떻겠느냐?”

    녹합은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두꺼비, 당신은 이 검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거요? 그렇다면 어디 한번 와서 보여주시겠소?”

    영락은 싸늘하게 말했다. 그러자 그녀의 손에 들린 보검에서 운무 같은 파란 빛이 일었고, 한기는 배 이상 짙어졌다.

    “어르신과 낭자께서는 노여워하지 마시오. 우리가 오늘 이렇게 찾아온 것은 마을을 해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사람을 찾으려는 것뿐이오.”

    양두괴가 앞으로 한 걸음 나오며 친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누구를 찾는 거요?”

    마 파파는 태연한 안색으로 물으며 영락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당장 공격하려던 영락도 일단은 멈추었다.

    “20여 세의 청년으로, 수려한 외모에 이목구비가 반듯하며, 수련 수준이 이 낭자보다 훨씬 더 높다 들었소. 이 마을에 그런 사람이 있소?”

    양두괴가 묻자 영락이 흠칫 떨었다.

    “심 대형! 그를 찾아서 무얼 하려는 게요?”

    “그가 대담하게도 우리 대왕의 영지(領地)인 사월삼성동에 침입해 보물을 훔쳐 갔소. 그러니 우리가 그를 찾아 무얼 하려는 거겠소?”

    양두괴는 웃음을 거두며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월삼성동?”

    영락은 미간을 찌푸렸다. 생소한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 파파는 무언가 생각난 듯 안색이 차게 굳었다.

    “이 마을 사람이 큰 죄를 지었으니, 원래는 마을 전체를 도륙하여 대왕의 분노를 풀어야 할 터. 그러나 우리 대왕께서는 자비를 베풀어 무고한 사람들은 살려두기로 하셨소. 그 사람만 내놓는다면 우리는 바로 떠날 것이오.”

    양두괴의 말에 멀리 있던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영락은 계속 낯빛이 바뀌다가 가까스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우리가 그 헛소리를 믿을 것 같소?”

    영락이 차게 웃으며 수중의 검을 꽉 쥐었다.

    “흐흐, 이 애송이 계집아. 네가 그 법기 하나 들었다고 우리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마음만 먹는다면 우리 둘이 나설 필요도 없이 수하 네댓만 보내도 너희 마을을 깡그리 밀어버릴 수 있다. 그러나 대왕께서는 너희 마을과의 인연을 생각해 기회를 주신 게다. 그러니 분수를 알아라. 상황 파악 못하고 헛짓거리를 한다면 오늘 장수촌에 가축 한 마리도 남기지 않겠다!”

    녹합의 눈에 한광(寒光)이 서렸다. 동시에 어마어마한 위압감이 발산돼, 무려 십여 장이나 떨어져 있던 영락마저도 급히 몇 걸음이나 물러나야 했다. 그녀의 이마에는 어느새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래도 영락은 용감하게 가슴을 펴고 보검을 꼭 쥔 채 위압감에 맞서며 다시 앞으로 걸어 나왔다.

    하지만 마을 입구를 지키던 장정들은 달랐다. 이들은 마치 천 근의 힘에 짓눌린 것처럼 몸이 무거워졌다. 몸을 움직이기도, 심지어 숨을 쉬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특히 몸이 약한 사람들은 눈이 풀리더니 아예 넋을 잃었다.

    이를 지켜보던 녹합이 잔인하게 위압감을 더욱 가중시켰다.

    “멈춰라!”

    영락이 크게 외치며 녹합에게 달려들려 했다.

    “녹합!”

    양두괴가 어두운 표정으로 외쳤다.

    녹합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눈빛을 보이며, 위압감을 서서히 거두었다.

    청우 등의 장정들은 안도하며 숨을 크게 헐떡였다. 정신에 부상을 입은 이들은 두 눈을 뒤집고 혼절했는데,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방금은 경고였을 뿐이소. 1각의 시간을 주겠소. 만일 그놈을 내놓지 않으면 각오해야 할 거요.”

    양두괴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녹합과 뒤를 따르던 요괴들을 데리고 20장 정도를 물러났다.

    장수촌 사람들은 그제야 부상자들을 마을로 데리고 들어와 치료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이 이어졌다.

    의견은 팽팽하게 갈렸다. 어떤 이들은 심협을 내놓고 마을을 지키자고 했고, 어떤 이들은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쉬이 결론이 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마 파파, 이거 정말 큰일이군요! 어찌해야 좋을까요?”

    검은 피부의 중년인이 물었다.

    마 파파는 그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자 검은 피부의 중년인의 시선은 영락에게 향했다.

    “심 대형은 우리 마을 사람입니다. 여러 번 우리를 구해주었죠. 어찌 그 은혜를 저버릴 수 있단 말입니까? 게다가 저 요괴들의 말은 믿을 수가 없어요.”

    영락은 단호하게 말했다.

    “물론 심 선사가 우리 마을을 몇 번 구해주기는 했지만, 여러 차례 산에 들어가 그곳 대왕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았소. 우리 마을이 이런 위험한 상황에 처한 것도 모두 그래서가 아니냔 말이오!”

    아이를 데리고 있는 중년 부인이 반박하듯 외쳤다.

    “허(許) 아주머니의 말이 맞소. 예전에 어쨌건 지금은 그가 저곳 대왕의 물건을 훔쳤으니 직접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소?”

    잿빛 옷의 젊은 부인도 동조했다.

    “그놈은 본래 내력이 불분명해 의심스러웠지. 어쩌면 처음부터 저곳 대왕의 보물을 노리고 우리 마을에 온 것일 지도 모르지 않소? 그러니 마을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수차례 산에 오른 거겠지.”

    세 사람이 연달아 심협을 내줘야 한다고 주장하자 반대하던 사람들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영락은 책임을 심협에게 미루는 의견이 이어지자 고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헛소리하지 말아요! 신선 형이 언제 우리 마을을 해하는 행동을 한 적이 있나요? 형이 산에 오른 것도 다 마을을 위해서였잖아요! 다들 살겠다고 은인을 요괴들에게 내주려 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아요?”

    사람들이 돌아보니 진관보가 방금 의견을 말한 세 사람을 가리키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조그만 것이 뭘 안다고 그러느냐? 외부인 한 명 때문에 마을 전체를 희생하자는 것이냐?”

    중년 부인이 코웃음을 쳤다.

    “그래, 관보야. 우리는 마을을 위해 그러는 것이란다.”

    “정말 심 선사가 우리 마을을 위한다면 자기가 저지른 일은 스스로 책임져야 할 것 아니냐.”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그 말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그래요, 아주머니 말대로 저는 어려요. 하지만 어린 저도 사람이라면 은혜를 원수로 갚아서는 안 된다는 건 알아요!”

    어린아이답지 않은 진관보의 예리한 말에 중년 부인은 얼굴이 벌게져 막 화를 내려 했다.

    “그만하면 됐소! 이제 그만 싸우시오!”

    생각에 잠겨 있던 마 파파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녀는 마을에서 명망이 있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주목했다.

    그때, 열 살 정도 된 소년이 마을 안으로 달려오더니 숨을 헐떡이며 마 파파 앞에 멈춰 섰다.

    “호자(虎子), 어찌 되었느냐?”

    마 파파가 물었다.

    “파파, 제가…… 헥헥! 심 선사 거처에 가봤는데…… 안 계세요. 거긴 아무도 없어요. 헥헥!”

    호자는 숨을 고르며 조용히 마 파파에게만 들리도록 말했다.

    마 파파는 어두워진 표정으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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