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하늘을 날다
심협은 한참이나 감았던 눈을 번쩍 뜨고는 단숨에 부적을 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기이한 부력을 억지로 역행하지 않고 오히려 그 힘을 빌려서 썼다. 그러자 획 하나하나가 거침없이 그려졌고, 금세 비행부가 완성되었다.
위잉!
기이한 소리가 울리더니 하얀 빛이 부적 문양에서 새어 나왔다.
“성공이구나!”
심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웃었다. 이어서 재빨리 연부로와 나머지 재료들을 모두 칠성필에 챙겨 넣고는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폭우가 그쳤고, 이미 날이 밝아 있었다. 비가 내린 후라서 하늘은 평소보다도 더욱 맑았다.
심협은 두 손가락에 비행부를 끼운 채 몸 앞에 늘어뜨렸고, 다른 한 손은 결인을 했다. 그러자 비행부의 문양에서 밝은 청색 빛이 방출됐다. 심협이 손가락을 살짝 풀자 부적이 가슴에 바짝 달라붙었다. 부적의 청색 빛이 곧장 심협의 몸을 감쌌다.
그 순간, 심협은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고, 발을 가볍게 구르자 곧장 앞으로 날아갔다. 그는 가뿐하게 담장을 넘어 족히 10여 장을 날아가서야 땅에 내려섰다.
심협은 또다시 발을 굴러 앞으로 날아갔다. 주변의 모든 것이 빠르게 스쳐갔다. 추풍보를 시전할 때보다도 몇 배는 더 빨랐고, 비행부의 힘만 소모될 뿐 그의 체력에는 전혀 부담이 없었다. 게다가 하늘 높이 나는 게 아니라 지금처럼 경신술만 쓴다면 3일 밤낮을 달려도 비행부의 힘이 다 소진되지 않을 터였다. 장거리를 빠르게 이동하는 데 적합한 부적인 셈이다.
심협은 더없이 기뻤는데, 단순히 비행부의 효과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비행부에 담긴 방대한 힘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는데, 그게 더욱 그를 기쁘게 했다.
심협은 마을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인적이 드문 곳으로만 달렸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어느 산 앞에 이르렀다.
심협이 부적에 주입한 법력을 끌어올리자 몸 주위에 청색 빛이 가득 찼고, 뒤이어 그의 몸이 하늘로 솟구쳤다. 장수촌이 저 아래로 빠르게 멀어져갔고, 시야가 탁 트여 멀리까지 내다보였다.
“내가 정말 날고 있어! 하늘을 날고 있어!”
심협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예전에 사부와 백소천 덕에 날았던 적은 있지만, 자신의 힘으로 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니 그 감동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다시 법력을 끌어올리자 청색 빛이 다시 한번 짙어지면서 더욱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금세 장수촌이 저 뒤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됐다.
심협은 마음껏 위아래로 또는 앞뒤로 하늘을 날며 마음껏 즐거움을 만끽했다. 그럴수록 비행부를 조종하는 데도 익숙해져갔다.
그런데 그때, 잿빛 그림자 하나가 돌연 심협의 옆을 스쳐갔다. 보아하니 잿빛 털의, 매와 비슷한 큰 새였다. 보통 새들과는 다르게 생긴 큰 눈이 퍽 신비롭게 보였다.
잿빛 새는 인간이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처음인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심협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두 눈은 계속 심협을 주시하고 있었다.
심협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었다. 그러자 잿빛 새의 깃털에 손이 닿았다.
새는 크게 놀라 두 날개를 맹렬히 떨었다. 그러자 속도가 배로 빨라졌고, 그렇게 심협의 손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재빨리 도망쳤다.
심협은 씩 웃으며 청색 그림자가 되어 새를 따라갔다.
“캬오오!”
잿빛 새는 날카롭게 포효하며 두 날개를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자 속도가 놀랍도록 빨라졌다. 심협이 몇 차례 잡아보려고 했지만, 새가 재빨리 몸을 이리저리 피한 탓에 결국 잡을 수 없었다.
그럴수록 심협은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했다. 죄 없는 새를 다치게 할 마음은 없었기에 법력으로 공격하지는 않고 비행부만을 사용해 쫓아갔다. 어떻게든 두 손으로만 잡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렇게 허공에서 쫓고 쫓기다 보니 장수촌을 한참이나 벗어나게 되었다.
잿빛 새는 목숨 걸고 도망쳤지만, 요괴가 아니라 그저 변종 새일 뿐이라 비행부를 넘어설 수는 없었다. 처음에는 이리저리 잘 빠져나가고 도망쳤지만, 심협이 비행부를 사용하는 데 완전히 익숙해지면서 자유자재로 방향을 전환할 수 잇게 되자 금방 따라잡히고 말았다.
심협은 손을 뻗어 잿빛 새의 목을 잡았다.
“키야아아!”
잿빛 새는 두려움에 애써 몸부림치며 울어댔지만,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무서워하지 마. 해치지 않아.”
심협은 새를 들고 이리저리 쓰다듬으며 장난을 치다가 이내 풀어주었다.
새는 죽다 살아났다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어져갔다.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앉은 심협은 차분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새를 쫓다 보니 어느새 방촌산 근처까지 이르러 있었다.
발아래의 숲은 영기가 짙어서인지 이미 가을이 왔는데도 여전히 나뭇잎이 무성했다.
심협은 가슴팍에 붙은 비행부를 무척 아까운 듯한 눈으로 보다가 숲속의 큰 바위로 내려섰다. 비행부는 비둔부와 마찬가지로 여러 차례 사용할 수 있긴 하지만, 재료가 없어 더는 만들 수 없으니 아껴 써야 했다.
가슴에서 비행부를 떼어낸 심협은 잠시 망설였다.
“비행부는 비록 비둔부보다 속도는 한참 떨어지지만, 대신 비둔부와 달리 시간 제약이 없어서 한 번에 훨씬 먼 거리를 날 수 있지.”
게다가 비행부에 담긴 힘은 매우 심후해, 방금 한참을 날았음에도 전체의 1할도 소진되지 않았다. 비행부가 먼 길을 나서는 데 적합하다면 위급한 상황에 목숨을 보전하는 데에는 비둔부가 더 적합할 듯했다.
심협은 비행부를 잘 챙겨두고는 방향을 틀어 장수촌으로 향했다. 돌아가자마자 칠성필 안에 있는 물건 중 아직 살펴보지 못한 것들을 확인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 멀리서 요기(妖氣)의 파동이 섞인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은 눈 깜짝할 사이에 상공에 이르렀고, 근처의 숲이 요동쳤다.
“무슨 일이지?”
심협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머리 위 저 높은 곳에 족히 날개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의 폭이 7장은 되어 보이는 푸른 매 한 마리가 보였다. 매의 머리에는 금색 볏이 나 있었다. 영락과 처음 방촌산에 올랐을 때 보았던 응혼기의 창응이었다.
“20여 세, 수려한 얼굴. 맞구나, 바로 네놈이야! 이번 공로는 다 내 몫이구나! 하하하!”
매는 허공에 멈춘 채 심협을 내려다보며 크게 웃었다.
“나를 찾고 있었소?”
창응의 말은 자신을 해하려는 것이 분명했으나, 심협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물었다.
“인간, 나는 네놈을 본 기억이 없는데 나를 아느냐? 그렇다면 차라리 잘됐군. 내가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안다면 순순히 나를 따라오너라!”
창응은 잠시 의아해했으나, 이내 상관없다는 듯 섬뜩한 웃음을 지으며 덮쳐왔다. 두 날개에는 청색 빛이 번득였다.
이어 두 줄기의 푸르스름한 바람이 생겨나 각각 높이가 10여 장에 이르는 푸른 회오리가 되었다. 이 회오리들은 좌우에서 덮쳐왔는데, 지나는 곳마다 기류가 요동쳤고, 광풍이 불어닥쳤다. 수많은 나무가 휩쓸리면서 그 위세는 점점 커졌다.
심협은 낯빛을 굳히며 두 손을 들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금색 빛이 번득이더니 길이가 1장에 이르는 금빛 손바닥이 나타나 두 회오리를 향해 날아갔다.
콰쾅! 펑!
묵직한 굉음이 두 차례 울렸고, 다음 순간 살벌한 기세로 덮쳐오던 두 회오리가 사라져 버렸다.
“음?”
창응은 크게 놀라 당황한 듯했다.
푸른 매가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심협이 손을 들어 허공으로 뻗었다. 그러자 두 개의 금빛 손바닥이 하나로 합쳐져 거의 집채만 한해지더니 하늘로 솟았다.
빛 손바닥이 날아들면서 도저히 막아낼 수 없는 거대한 힘이 창응의 몸을 눌렀다. 그러자 창응의 깃털들이 모두 곤두섰는데, 더는 버틸 수 없는 것 같았다.
“큭! 이, 이럴 수가!”
창응은 놀라고도 두려운 기색을 보였고, 온몸에서 청색 빛이 크게 방출되었다. 동시에 양 날개를 빠르게 아홉 차례나 떨었다. 그러자 몸이 청색 환영이 되어 매우 빠른 속도로 십여 장을 날아갔다. 가까스로 위기에서 벗어난 것이다.
하지만 창응이 숨을 돌리기도 전에 엄청난 힘이 매의 발 하나를 꽉 붙잡았다. 어느새 다가온 심협이 한 손으로 잡고 있었던 것이다.
“내려와라!”
심협이 낮게 일갈하며 손을 잡아 끌어 창응을 그대로 내동댕이쳤다.
“크아악!”
창응의 거대한 몸은 마치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매섭게 땅에 꽂혔다.
콰쾅!
이어 거대한 굉음이 울렸다.
창응은 몸 곳곳의 뼈가 부러진 상태였으나, 그는 응혼기의 요괴답게 곧장 일어나려 했다.
“살고 싶으면 움직이지 마라!”
커다란 외침에 이어 심협이 마치 유성처럼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한 발로 창응의 등을 밟았다.
빠각!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겨우 몸을 일으키던 창응은 그대로 바닥에 납작 엎어졌다.
“어, 어르신, 살려주십시오! 제가 미처 어르신을 몰라 뵙고 무례를 범했습니다. 부디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창응은 겁에 질려 급히 애원했다.
“말해라. 나를 잡아오라 한 게 누구냐? 조금이라도 거짓을 고한다면 내 바로 네놈의 날개를 찢어 다시는 날지 못하게 해주겠다!”
심협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위협했다.
“서천호 대왕께서 시키신 일입니다. 저, 저는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창응의 다급한 대답에 심협은 눈썹을 치켜세웠으나, 그리 놀란 눈치는 아니었다.
사실 그는 서천호가 그렇게 쉽게 자신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서둘러 부적을 썼던 것도 그래서였다. 그러나 이렇게 빨리 손을 쓸 줄은 예상치 못했다.
“서천호는 네놈 외에 또 누구를 보냈느냐? 서천호 그도 직접 나섰나?”
“두꺼비 요괴 녹합(綠蛤)과 양머리 요괴인 양두괴(羊頭怪)를 장수촌으로 보냈습니다. 저는 마을의 뒤를 담당하여 어르신이 몰래 도망칠 경우를 대비한 것입니다. 서천호 대왕은 뒤따라오시기로 했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창응은 숨김없이 말했다.
바로 그때였다. 장수촌 방향에서 어렴풋이 짐승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다만 거리가 너무도 멀어 그 소리는 매우 작게 들렸다.
“네놈이 이전에 나를 한번 구해준 것을 생각해 오늘은 살려주겠다. 그러나 앞으로 산 아래에서 네놈을 보게 된다면 그때는 절대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심협은 다급한 와중에도 발아래의 창응을 보며 냉랭하게 말했다.
“네, 네! 어르신께서 살려만 주신다면 소인은 멀리 사라져서 절대 내려오지 않겠습니다.”
창응은 여전히 심협을 언제 보았는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감히 물을 수도 없었다.
“살려는 주겠으나 벌은 받아야 할 것이다!”
심협은 냉엄하게 말하더니 손을 내리쳤다. 그러자 금색 빛이 창응의 머리를 매섭게 내려쳤다.
“끄아아!”
창응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더니 고개를 푹 꺾였다. 그대로 혼절한 것이다.
심협은 창응을 내버려둔 채 검은 그림자가 되어 장수촌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