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19화 (119/1,214)
  • 119화. 황정경 36구절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세 번의 밤과 세 번의 낮이 지났다. 그때까지도 심협은 방석에 정좌한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때 그의 몸에는 검은 딱지가 잔뜩 덮여 있었다. 이는 그의 몸에서 나온 불순물들이 땀, 먼지와 뒤섞인 것으로, 두껍게 내려앉아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심협은 완전히 수련에 몰두한 상태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몸 옆에 평평하게 펼쳐두고 있던 두 손을 들더니 결인하였다. 그러자 몸 위로 옅은 금색 빛이 한 줄기 나타나 하늘로 솟구쳤다.

    이 금색 빛은 돌연 두 개로 나뉘더니 각각 모호한 용과 흐릿한 코끼리로 변했는데, 둘 다 금빛이었다.

    용과 코끼리는 한참이나 심협 주위를 맴돌다가, 마치 장난치듯이 서로 달려들며 울었다. 그러자 대기가 윙 하는 소리를 내며 떨렸다.

    그 진동으로 심협의 몸에 덮여있던 시커먼 딱지들이 부서져 사방으로 튀었다. 그럼에도 그의 몸에는 여전히 많은 딱지가 남아 있었다.

    심협은 서서히 눈을 떴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 순간 악취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자기 몸에 앉은 딱지에서 나는 것임을 알게 되자, 안색이 굳은 채로 손을 결인하며 휘둘렀다.

    그러자 동굴 안팎 허공에서 물기가 모여들더니 금세 물줄기가 되어 심협의 몸을 씻어냈다. 이어서 새로운 물줄기가 사방으로 튄 딱지들을 모두 동굴 밖으로 밀어냈다.

    그제야 심협은 표정을 풀더니 용과 코끼리 형상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3일 밤낮의 고된 수련을 거쳐 마침내 황정경의 첫 12구절, 즉 연기기 공법을 완성한 것이다.

    체내의 법력은 그리 많이 늘어나지 않았지만, 육신은 천지개벽 수준으로 달라진 상태였다. 근육과 골격의 밀도가 몇 배는 높아졌고, 오장육부도 탄탄해졌다. 호흡할 때에도 용과 코끼리 같은 큰 힘이 그의 몸속에서 요동쳤다.

    심협이 양손의 결인을 풀자, 몸의 금색 빛이 서서히 거두어지면서 금빛 용과 코끼리 형상도 함께 사라졌다.

    심협이 주먹을 휘둘러 빠른 속도로 허공을 갈랐다.

    팍!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몇 장 앞의 동굴 벽에 깊이가 3촌 정도 되는 주먹 자국이 생겨났고, 그 충격에 동굴이 가볍게 울렸다.

    심협은 팔을 거두며 만족한 듯 웃었다. 이제 법력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육신의 힘만으로도 벽곡기 수사와 맞먹을 만한 힘을 보일 수 있게 됐다. 황정경의 수련이 육신에 미치는 효과는 실로 놀랄 만한 것이었다.

    “황정경의 제1층을 완성한 것뿐인데 이 정도라니, 끝까지 완성한다면 그 힘은 어느 정도일지 헤아릴 수도 없겠구나!”

    하지만 심협은 자만하지 않았다. 며칠 전 방촌산 대전에서 본 서적들에 따르면 수선계(修仙界)는 오묘하고도 무궁무진했다. 육신의 힘은 수사가 발휘할 수 있는 힘을 일부일 뿐이었고, 법력, 법술, 진법 등 어느 하나라도 수련이 높은 경지에 이르게 되면 천지를 놀라게 할 만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심협은 가볍게 숨을 내쉬고는 다시 눈을 감고 앉아 수련에 빠져들었고, 근처에서 천지영기가 요동치며 모여들어 그를 에워쌌다.

    * * *

    순식간에 보름이 지나갔다. 어느 날, 맑은 휘파람 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 소리는 마치 거대한 파도가 하늘까지 덮을 듯한 기세로 점점 커지고, 점점 맹렬해졌다. 그 진동으로 동굴 전체가 울릴 정도였다.

    이 소리와 함께, 눈부신 금색 빛이 동굴 석문 틈으로 새어 나와 격하게 회전하며 요동쳤다. 그 금색 빛에서는 용과 코끼리 울음소리가 들려왔으나,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의 휘파람 소리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는 않았다.

    동굴 안에는 심협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의 몸은 눈부신 금색 빛에 에워싸여 있었고, 세 마리의 금빛 용과 세 마리의 금빛 코끼리가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금색 빛이 번득이는 가운데, 용의 포효가 끊이지 않고 울렸다.

    용과 코끼리들은 전보다 훨씬 뚜렷한 상태였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생동감이 넘쳤고, 달리고 있노라면 광풍(狂風)이 일며 바람 소리가 퍼져 나갔다.

    한참 후에야 심협은 두 눈을 떴다. 그의 몸 주위로 금색 빛이 번득이더니 세 마리의 용과 코끼리가 한 덩이의 금색 빛으로 변했다. 이 빛은 크게 번득이고는 심협의 몸으로 들어가 종적을 감추었다.

    심협은 고개를 숙여 금색 빛이 감도는 두 팔을 흥분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지난 보름 동안 그는 황정경의 24구절을 더 수련했다. 하늘이 돕는 것일까? 수련은 매우 순조로웠고, 육신의 힘 또한 크게 증가했다. 그전보다 용과 코끼리 각각 두 마리씩의 힘이 더해진 것이다.

    심협은 결인하더니 몸의 금색 빛을 모두 흩어버리고는 주먹을 쥐었는데, 그것만으로도 폭발음이 울렸다. 이어서 주먹을 풀더니 두 손을 앞으로 밀었다.

    쾅! 쾅!

    둔탁한 굉음이 두 차례 울렸고, 동굴이 격하게 흔들렸다. 동시에 앞의 동굴 벽에는 깊은 손바닥 자국 두 개가 생겨났는데, 마치 조각한 것처럼 뚜렷했다.

    * * *

    동굴 벽에 옅은 하얀 빛이 요동치다가 서서히 멈추었다.

    심협이 손을 결인하자 허공에 물줄기가 나타나 검이 되더니 매섭게 내리쳤다.

    깡!

    검이 심협의 팔을 후려치며 거대한 금속성이 울림과 동시에 물의 검은 산산이 부서져 사방으로 흩어졌다. 반면 심협의 팔에는 옅은 흔적만 남았을 뿐이고, 그나마도 눈에 띄게 빠르게 사라져갔다. 황정경의 36구절 구결을 완성하면서 육신의 방어력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어지간한 법기로는 그에게 상처조차 입힐 수 없을 터였다.

    심협은 목을 가볍게 흔들다가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렸다. 몸은 그대로인데 고개만 완전히 뒤로 돌아가 등 뒤를 보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목에 전혀 무리가 가지 않았다.

    그는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이어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니 관절에서 뼈 소리가 울리면서 몸이 빠르게 반 척이나 줄어들었다. 심지어 얼굴마저 골격과 근육이 움직이면서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렸다.

    “그야말로 신묘하구나!”

    심협은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며 감탄했다.

    황정경의 수련은 육신의 힘과 신체 방어능력을 키우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육신을 조종하는 것을 더욱 중요시했다.

    심협은 황정경의 전반부 36구절 구결을 완성하면서 약간의 깨달음을 얻었고, 이제 육신이 상상 이상으로 유연해져 본래는 불가능할 동작도 어려움 없이 해낼 수 있게 됐다. 심지어 전신의 모든 근육에 예리한 감각이 생겨나 마음먹은 대로 조종할 수 있었다.

    ‘황정경에는 이보다 더 심오한 현묘(玄妙)함이 있을 거야. 72구절을 다 완성하면 알게 되겠지.’

    그렇게 생각한 심협은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예를 갖추어 수정 벽을 향해 공손하게 큰 절을 세 번 올렸다.

    “황정경을 전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연이 닿는다면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예를 갖춘 후 심협은 떠나기로 했다. 이미 많은 시간을 지체했으니 이제 떠나야 할 때였다.

    몸을 돌리던 그는 문득 황색 방석을 보고는 잠시 망설였다. 이 방석은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보물이 분명하다.

    ‘이 동굴은 백발노인이 도를 전수하는 곳일 터. 이미 그토록 많은 득을 얻었으면서 이 방석까지 가지고 갈 수는 없지.’

    미련을 버린 그는 들어올 때 열어둔 1척정도의 틈으로 동굴을 빠져 나온후, 열린 석문을 가볍게 당겼다. 열 때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 한참을 밀어야 겨우 밀렸던 석문이 스르륵 닫혀버린 것이다. 그의 육신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알 수 있었다.

    문이 닫히자 다시 한번 하얀 빛이 일더니 크게 요동치다가 서서히 사라졌다.

    심협은 석문을 향해 꾸벅 허리를 숙여 예를 표하고는 떠나갔다.

    그가 향한 곳은 산봉우리의 꼭대기였다.

    산봉우리는 꽤나 험준했고, 거의 수직으로 솟은 곳도 많아 일반인은 오르기 힘들 듯했다. 물론 지금의 심협에게는 더없이 쉬운 일이었다.

    몇 번 땅을 박차니 어느새 산봉우리에 거의 다다랐는데, 그곳에는 제법 큰 전당이 있었다. 예전에는 우뚝 솟아 장관을 이루었을 법했지만, 지금은 반 이상 무너진 상태였다.

    심협은 폐허에서 편액 하나를 주웠다. 편액에는 커다랗게 ‘금석전(金石殿)’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름을 봐서는 광석 영재(*靈材, 영험한 재료)들이 보관된 곳일 듯하구나.”

    심협은 기대를 품고 신식을 내보내는 동시에 성큼 걸어 들어갔다.

    하지만 이내 씁쓸한 심정으로 나서야 했다. 예상대로 광석 영재들을 보관했던 곳이지만, 지금은 거의 비어 있었고, 한쪽 모퉁이에 특별할 것 없는 광석 몇 가지만 남아 있는 것이 전부였다.

    심협은 아쉬움을 삼키며 다시 산을 올랐고, 몇 걸음 만에 꼭대기에 올랐다.

    “아아…….”

    정상에 도착한 심협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심지어 땅조차 보이지 않았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深淵)뿐이었다. 그 깊은 곳은 칠흑처럼 어두워 바닥은 볼 수 없었다.

    심연의 경계는 수직으로 되어 있는 데다가 매끄러웠다. 자연히 생겨난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누군가가 절세의 신통력으로 산봉우리의 정상을, 그것도 한 번에 뽑아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심협은 이 광경에 한참이나 넋을 놓고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는 허리를 굽혀 맷돌만 한 돌을 하나 주워 힘껏 던져 보았다. 돌은 허공을 가로질러 심연 안으로 떨어지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직도 떨어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심연이 너무 깊어서 거리 때문에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어떤 금제가 있어 돌을 삼켜버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떤 경우든 상관은 없었다. 더 이상 계속 뒤져볼 필요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는 이곳에서 충분히 많은 것을 얻었기에 매우 만족했다.

    심협은 몸을 돌려 다시 산을 내려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깨어났을 때 있었던 낭떠러지 위에 이르렀다. 그는 어두운 동굴에 들어섰고, 금세 사월삼성동 밖에 이르렀다.

    심협은 사방을 둘러보고는 별다른 이상이 없자 곧장 몸을 솟구쳤다. 그러자 마치 하늘을 나는 것처럼 한 번에 거의 20장을 날았다.

    쿵!

    심협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맞은편 입구 석벽 앞에 내려서자 발 딛은 곳에는 큰 구덩이가 생겨났고, 흙먼지가 휘날렸으며, 돌 부스러기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나 정작 심협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심협은 석벽을 가만히 살폈다. 그는 예전에 이 공간에 들어왔던 때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다시 나가려니 또 이곳을 통해야 할 듯했다. 예전에 살폈을 때 아무런 특이점도 찾지 못했기에 이곳을 떠나는 것도 아마 쉽지 않을 듯했다.

    그는 신식을 내보내 빠르게 석벽을 훑었다. 하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심협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양손으로 석벽을 누르고 체내의 법력을 석벽에 주입시켰다. 그러나 그의 법력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고, 석벽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심협은 손을 거두고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선배님, 소인은 불경을 범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곳에서 나가기 위해서는 부득이한 일이니 넓은 아량으로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심협은 방촌산 비경 깊은 곳을 향해 허리를 숙여 예를 갖추더니, 몸을 돌리며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자 몸에서는 금색 빛이 크게 방출됐다.

    그 순간, 심협은 두 팔을 휘둘렀다.

    그의 주먹은 금황색으로 변한 것이 마치 황금으로 주조해놓은 것 같았다. 그 주먹은 무궁무진한 힘을 담은 채 두 줄기의 금색 빛이 되어 석벽을 두들겼다.

    하지만 뜻밖의 상황이 펼쳐졌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거대한 소리가 울릴 것이라 예상했건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던 것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