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18화 (118/1,214)
  • 118화. 황정경(黃庭經)

    몽롱한 가운데 심협은 눈을 반쯤 떴다. 전신이 가볍게 나부꼈고, 바람에 따라 흔들렸다. 허공에 떠 있는 게 분명했다.

    “그건 분명 꿈속이었는데, 설마 꿈속에서 또 꿈을 꾸고 있단 말인가?”

    의식이 반쯤은 꿈을 꾸고 반쯤은 깨어 있는 가운데, 심협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심협은 돌연 몸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 속도는 너무도 빨랐다. 곧이어 순식간에 어떤 것으로 들어가는 듯하더니 의식이 갑자기 뚜렷해졌다.

    심협은 급히 사방을 둘러보았는데, 다시 관도동 동굴 안, 수정 벽 앞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몸을 살펴보고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금빛 털 위로 푸른 옷을 입은 깡마른 원숭이였다.

    “내가 원숭이로 변한 것인가? 아니, 내 혼이 이 원숭이의 몸에 들어갔구나!”

    이 원숭이는 분명 조금 전 수정 벽에 나타났던 그 원숭이였다. 심협은 그제야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했다.

    금빛 원숭이는 방석 위에 가부좌를 튼 채 하얀 수정 벽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정 벽 안에는 도포를 입은 백발노인이 앉아 있었는데, 조금 전 기이한 원숭이를 볼 때처럼 뚜렷이는 보이지 않았다. 손에 하얀 불진(拂塵)을 들고 있었는데, 마치 세속을 초월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네가 경건하고 배움을 좋아하는 것을 기꺼이 여겨, 내 오늘 네게 ‘황정경(黃庭經)’을 전수하려 한다. 이는 대도(大道)의 묘법이니 잘 기억하거라.”

    백발노인은 근엄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지극한 도는 번거롭지 않으니, 그 요체는 진인을 내사(內思)하는 데 있다. 니환과 몸의 마디 어느 곳에나 신(神)이 있다. 머리카락의 신은 창화로, 자는 태원이라 한다. 뇌의 신은 정근으로, 자는 니환이다…….”

    백발노인의 목소리와 어조는 광장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와 비슷했다.

    금빛 원숭이는 뛸 듯이 기뻐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두 귀를 쫑긋 세운 채 가르침에 집중했다.

    심협은 금빛 원숭이 몸에 깃들어 있어서인지, 광장에 있을 때와는 달리 백발노인의 말을 정확히 들을 수 있었다. 이에 당황한 와중에도 노인이 말해주는 황정경(黃庭經)의 내용을 듣고 기억하려 애썼다. 지금 그는 수련 수준이 심오해 도법에 대한 깨달음도 예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러니 황정경을 처음 듣고도 그 내용에 담긴 도법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데 무리가 없었다.

    백발노인의 모든 말에는 하늘의 이치와 그 현묘함이 담겨 있었으니, 곱씹을수록 신묘하기 그지없었다.

    노인은 열두 구절을 읊은 후 잠시 쉬었다.

    심협은 그 틈에 앞선 열두 구절 구결의 앞뒤를 서로 이어봤다. 그러자 어떤 깨달음을 얻은 듯 머릿속이 탁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이 구결의 모든 구절은 삼라만상을 모두 담고 있었다. 비록 열두 구절에 불과하나 응용은 무궁무진했다. 열두 구절을 모두 합쳐 보면 지극히 정묘한 연기기 수련 법결이었다.

    그가 더 자세한 깨달음을 얻기도 전에 백발노인이 다시 다음 구결을 외기 시작했다. 심협 또한 급히 그 구결에 귀를 기울였다.

    황정경은 총 72구절에 불과했다.

    백발노인은 금세 황정경을 다 알려주고는 해설을 시작했다. 금빛 원숭이는 해설까지 듣고는 한바탕 춤이라도 출 듯 환하게 웃었다.

    ‘묘하구나!’

    원숭이의 몸에 깃든 심협은 마치 마음과 정신이 모두 취한 듯한 느낌이었다. 이에 참지 못하고 감탄을 내뱉을 뻔했으나, 어째서인지 그래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그 순간, 심협의 의식이 곧장 무형의 힘에 휩싸여 원숭이의 몸속에서 빠져나오더니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이어 심협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눈앞이 캄캄해졌고, 그는 다시 한 번 정신을 잃었다.

    * * *

    얼마 후, 서서히 의식이 돌아왔다.

    심협은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고는 급히 사방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또 관도동 안이었는데, 이번에는 자신의 몸으로 돌아와 수정 벽 앞에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수정 벽에 비친 기괴한 모습도 사라져 심협 본인의 형상만 뚜렷하게 비칠 뿐이었다. 원숭이의 금빛 털은 수정 벽에 그대로 붙은 채 번득였다.

    마치 한바탕 꿈을 꾼 것만 같았다. 그러나 머릿속에 황정경 72구절은 그대로였다. 그러니 모두 진짜 일어난 일일 것이다.

    ‘내가 꿈속의 꿈에 들게 된 것은 십중팔구 저 원숭이 털 때문일 터. 꿈속에서 본 원숭이의 몸에는 저것과 완전히 똑같은 털이 나 있었지. 혹시 저것도 그 금빛 원숭이가 남긴 것인가?’

    답이 나오지 않았기에 심협은 생각을 정리하고는 눈을 감았다. 꿈속에서는 구결을 외우는 데 급급해 그 안에 담긴 깊은 뜻을 깨달을 겨를이 없었기에, 잊어버리기 전에 황정경 72구절을 연구해보려는 것이다.

    한참 후에 다시 눈을 떴을 때, 심협의 입가에는 흥분의 미소가 걸려 있었다. 황정경에 대해 거의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앞의 열두 구절이 그랬듯 나머지 구절들도 연결하면 수련 공법이 되는구나!”

    황정경 72구절은 12구절마다 경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연기기부터 진선기까지 수련할 수 있는 정묘한 공법이었다. 게다가 모든 구절은 지극히 현묘했다. 심협이 이전에 수련했던 무명공법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였다.

    무명공법은 연기기부터 응혼기까지 수련할 수 있는 법결로, 현실 세계의 그에게는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어쨌거나 현실에서는 겨우 연기기에 진입한 수준에 불과하고 자질도 부족했다.

    하지만 꿈속 세계에서의 그는 자질이 가히 절대적이라 할 정도였고, 20개의 법맥을 응련한 후로는 수련 속도가 더울 빨라졌다. 얼마 전에 우연히 출규기에 진입한 후로는 이미 무명공법으로는 더 나아갈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이런 기연을 만났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무명공법은 법력을 중시하는 수련 방식이라면, 황정경은 법력과 육신을 모두 중시하는 수련 공법이었다. 즉, 법력 수련은 물론, 육신의 힘도 단련해야 하는 것이다.

    그 내용에 따르면, 황정경의 구절들마다 육신의 힘이 증가하는 폭은 놀라울 정도였다. 12구절의 구결을 완벽히 익힐 때마다 용 한 마리와 코끼리 한 마리의 힘만큼 늘어나는 것이라 한다. 즉, 72구절의 구결을 모두 완성한다면, 몸에 용 여섯 마리와 코끼리 여섯 마리의 신력(神力)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황정경은 법력의 효과에 대해서는 자세히 전하지 않았는데, 경문(經文) 중 ‘이 공법을 수련하면 삼성멸마(三星滅魔)를 시전할 수 있다’고 언급된 정도였다.

    삼성멸마는 끝없이 펼쳐진 하늘 높은 곳에서 별의 힘을 불러 적을 봉인하는 것으로,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요괴나 귀신 등을 상대할 때 그 효과가 크다. 위력이 너무 강해 수행 경지를 철저히 지켜야 할 정도였다.

    황정경을 응혼기까지 수련하면 별 하나의 힘을 소환할 수 있다. 별 두 개의 힘을 소환하려면 대승기에는 이르러야 한다. 그리고 완전한 삼성멸마를 시전하려면 황정경 전체 수련을 완성해야 하는데, 이는 전설 속의 진선기에 이르러야 한다는 의미였다.

    경문의 내용대로라면 완전한 삼성멸마의 위력은 경천동지할 만한 것이었다. 진정한 신선조차 봉인시킬 수 있는 정도니 말이다.

    심협은 많은 공법을 접해보지는 못했지만, 황정경의 정묘함은 알아볼 수 있었다. 이는 분명 절대적인 수준의 공법이다. 다만 너무도 정묘해 자질이 매우 높아야만 수련이 가능할 것이다. 보통의 수사는 수련할 수가 없거나, 수련한다 해도 경지가 오르기 쉽지 않다. 수십 년이 걸려도 경지가 오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평범한 공법을 수련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심협은 곱씹을수록 흥분과 기쁨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이 꿈속 세상에서의 그는 천부적 자질이 가히 절대적이지 않은가. 그 자질로 무명공법은 어렵지 않게 완성했는데, 황정경은 과연 어떠할지.

    “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직접 해보면 알 수 있겠지.”

    심협은 재빨리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은 채 황정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되뇌어 보았다. 그렇게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후에야 서서히 운공을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에서 짙은 천지영기가 성난 파도처럼 모여들었다. 영기는 너무도 많고 또 너무도 빨라서, 심협의 주변에 하얀 안개가 형성될 정도였다. 안개에 휩싸인 그의 모습은 흐릿해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심협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천지영기를 받아들이는 속도는 수련한 공법의 정묘(精妙)함을 보여주는 지표 같은 것이다. 그러니 무명공법보다 열 배는 빠른 황정경은 그야말로 최고의 공법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기뻐하는 와중에도 운공은 잊지 않았고, 자신을 에워싼 천지영기를 끝없이 체내로 흡수했다.

    무명공법을 수련할 때와 달리 그는 천지영기를 직접 법맥과 단전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육신에 서서히 융화되도록 했다. 천지영기가 온몸의 근육과 뼈에 스며들도록 하여 서서히 몸 깊은 곳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황정경에 기재된 방법들로, 천지영기를 몸에 밀어 넣어 맷돌처럼 갈기도 하고 날카롭게 다듬기도 했으며 경혈에 충돌시키기도 했다. 그렇게 백 가지도 넘는 방식으로 육신을 단련하니 나중에는 결국 경맥으로 들어갔다.

    이런 방식은 지금껏 들어본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었으니 마치 새로운 세계를 만난 듯했다.

    단련 과정에서 육신에 흡수된 것을 제외하면 천지영기는 절반쯤 남아 있었다.

    “법력과 몸을 함께 수련한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심협이 두 주먹을 꽉 쥐자 가볍게 몸이 흔들렸다.

    천지영기로 단련할 때는 몸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는데, 지금은 온몸 곳곳에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마치 수많은 개미들이 몸 안에서 물어뜯는 것만 같았다.

    골수까지 파고드는 통증은 제아무리 심협이라도 이를 악물고서야 겨우 견딜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불평하기는커녕 오히려 기쁨을 참을 수 없었다.

    심협은 천지영기가 자신의 몸을 단련시킬 때마다, 근육과 골격이 천지영기를 허겁지겁 빨아들이는 것을 분명하게 느꼈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빠르게 몸이 강해져 갔다.

    게다가 천지영기가 스며듦에 따라 모공에서는 땀이 솟아났는데, 땀에는 불쾌한 냄새가 나는 검은 불순물이 섞여 있었다.

    심협은 이런 변화에 의아했다. 연기기에 진입할 때 이미 벌모세수를 겪었기에 체내의 불순물이 모두 빠져나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도 이리 많은 불순물이 남아 있었다니! 만일 황정경을 수련하지 않았더라면 언제까지 남아 있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검은 불순물이 빠져나올수록 그의 몸은 가벼워졌고, 마치 무거운 짐을 덜어낸 것만 같았다. 통증도 점점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나른해지는 기분이었다.

    심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더욱 빠르게 황정경을 운공해 보았다.

    “막상 해보니 황정경도 말처럼 그렇게 어렵지는 않구나.”

    천지영기로 몸을 단련하는 것이든, 육신으로 영기를 흡수시키는 것이든, 경맥 안에서 법력으로 바꾸는 것이든 너무도 수월했다. 황정경에서 통과하기 어렵다고 언급한 관문들도 마치 숨 쉬고 밥 먹는 것처럼 쉽게 통과해 버렸다.

    “내 자질이 적합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출규기에 진입한 상태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두 가지가 다인가?”

    잠시 그런 생각도 들었으나, 다시 잡념을 거두고 황정경 운공에 전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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