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16화 (116/1,214)
  • 116화. 관도동(觀道洞)

    심협의 혼은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으나, 기를 쓰고 육신을 향해 기어갔다.

    5척, 4척, 3척…….

    꽝!

    또 한 번의 굉음이 울렸고, 심협은 혼이 산산조각 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제는 파란 혼력이 전신에서 흩어져 나갔다.

    ‘빨리, 빨리, 빨리! 이러다가 혼이 완전히 흩어져 버리겠어!’

    심협은 속으로 다급하게 외치며 겨우겨우 기어갔다. 육신으로 돌아가기 전에 다시 한번 가르침의 소리가 울린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꿈속 세계에서는 죽으면 다시 살아났지만, 영혼의 죽음은 겪어본 적이 없다 보니 부활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만약 부활할 수 있다 해도 이렇게 혼이 다 흩어지는 느낌은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그때, 또다시 가르침의 소리가 또 울리기 시작했다.

    “비늘을 깃털이라 하고…….”

    목소리가 말을 완전히 끝맺기 직전, 심협의 혼은 양손을 맹렬히 휘둘렀고, 허공에서 헤엄치는 듯한 자세로 뛰어올라 단숨에 육신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순간, 가르침의 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심협 혼의 손끝이 육신에 닿았다.

    “살았다!”

    위기일발의 순간, 무형의 흡입력이 흘러나와 그의 혼을 육신으로 빨아들였다. 그렇게 다시 혼과 몸이 합일되었다.

    꽈릉!

    굉음이 울렸고, 심협은 두 눈을 맹렬히 떴다. 그의 눈에서는 두 줄기 빛이 일었고, 눈앞의 풍경이 처음에는 겹친 듯 번져 보이다가 차차 시야가 또렷해졌다.

    순식간에 사방에서 회오리가 일더니 돌연 무형의 기류가 되어 심협을 에워쌌다. 사방을 둘러쌌던 도깨비불은 언제부터인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사방에서 어렴풋한 빛이 모여들고 있었다. 대량의 천지영기가 끌고 온 이 빛은 끊임없이 심협의 체내로 들어왔다. 그의 몸 앞뒤로 파란 빛이 요동치는 가운데 20개의 파란 빛 띠가 떠올랐다. 20개의 법맥이었다. 그리고 법맥 위에서는 경혈도 빛나기 시작했다.

    단전의 청량한 기류는 온몸의 20개 법맥 안에서 끊임없이 요동치면서 체내로 들어오는 천지영기를 끊임없이 법력으로 바꾸었다. 그렇게 생겨난 법력은 다시 온몸의 법맥 경락을 돌면서 몸과 혼을 보해주었다. 한 바퀴 돌 때마다 20개의 파란 빛 띠는 더욱 빛났고, 조금씩 굵어져갔다.

    이렇게 법력이 전신을 49차례 돌고 나니 20개 법맥의 굵기는 이전의 두 배에 달했고, 그 안에 담긴 법력은 더욱 질이 좋아졌으며, 양도 몇 배나 증가하였다. 심협은 출규 초기의 수사이지만, 법맥과 법력만 놓고 본다면 출규 중기 수사보다도 오히려 위라 할 수 있었다.

    체내로 돌아온 혼은 식해(識海) 안에서 사람 형상을 이루었다. 이 과정에서 법력의 영향을 받아 더욱 실제 사람과 비슷해졌고, 표면은 어렴풋한 빛으로 덮였다.

    “정신이 뭉치고 혼이 모이며, 겉에는 영광(靈光)이 서린다. 안으로는 정기를 품게 되며, 밖으로는 규(竅)를 벗게 된다. 사계의 천풍(天風)을 느끼며, 강기(罡氣)의 충돌을 피한다. ……출규기에 진입한 건가?”

    심협은 체내에 일어난 극적인 변화를 느끼고는 <무명천서>의 제9층 구결 끝부분을 떠올렸다. 그는 알지 못했지만, 방금 혼이 몸을 떠나 허공에서 노닐 때 이미 출규기로의 진입이 시작됐다. 그리고 조금 전 사람 형상의 혼이 완전히 자리 잡았을 때, 진정한 출규기에 진입한 것이다.

    “그저 가르침의 소리를 들었을 뿐인데 출규기에 진입했다는 말인가?”

    심협은 혼과 체내 법력의 변화를 느끼면서도 여전히 믿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방금 전의 위험천만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두렵기까지 했다.

    심협은 여러 복잡한 감정들을 접어둔 채 다시 한번 눈을 감고 양손을 원 모양으로 결인했다. 그러고는 의식적으로 혼이 몸을 떠나게 했다. 그러자 그의 혼은 의지에 따라 사방을 나부꼈다.

    이번에는 육신에서 50장 거리까지 갈 수 있었다. 출규기에 진입하기 전에 비하면 거의 두 배에 달하는 거리였다.

    혼이 다시 육신으로 돌아온 후에야 심협은 자신이 정말 출규 초기의 수사가 되었음을 믿을 수 있었다.

    “혼이 자리를 잡고, 식해(識海)가 배로 커졌으며, 신식이 탐색할 수 있는 범위도 배로 확장됐다. 게다가 법력까지로 크게 늘었으니, 출규기는 실로 묘하기 그지없구나! 하하하!”

    심협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하늘을 향해 크게 외치며 껄껄 웃었다.

    하지만 곧 이성을 되찾고는 다시 정좌한 채로 숨을 골랐다. 경지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생각이었다.

    심협은 <무명천서>에 실려 있던 출규기에 대한 내용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았다. 그러자 출규(*出竅, 혼이 몸을 떠남)는 매우 신묘하지만 그만큼 위험 부담도 적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혼은 결국 영체(靈體)인지라, 완전히 공고해지기 전까지는 강풍(*罡風, 도가에서 말하는 하늘 가장 높은 곳에서 부는 바람)이나 강렬한 햇빛에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게다가 출규 중에는 육신이 마치 주인 없는 사물과 같은 상태라 공격을 받게 되면 저항할 수 없으니, 도마 위의 생선 같은 신세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무명천서>의 내용대로 라면 이는 출규기에 처음 들어섰을 때만 나타나는 위험이었다. 향후 부단히 수련한다면 혼 또한 육신과 법력에 필적할 만한 힘을 지닐 정도로 성장할 수 있다고 했다. 일부 대라(大羅) 신선들은 혼의 힘만으로도 천 리 밖에 있는 사람의 생명을 취할 수 있다는 말도 남겨져 있었다.

    3시진가량 지나자 사방에서 들려오던 기이한 소리는 점차 사라졌고, 멀리서 동이 트기 시작했다.

    이 무렵, 심협의 기운은 안정된 상태였다.

    “가르침의 소리는 실로 현묘하구나. 혼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는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심협은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다시 가르침의 소리를 들어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잠시 후,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가르침의 소리는 여전히 그의 식해를 격하게 흔들었지만, 출규기에 진입한 후로는 혼이 공격당하는 극심한 통증은 사라진 것이다. 게다가 식해도 더는 확장되지 않고, 혼에도 더 이상은 변화가 일지 않았다.

    심협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광장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가르침의 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그토록 선명했던 가르침의 내용도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아직 미련이 남았던 심협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광장으로 돌아가 높은 대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가르침의 소리와 거대한 울림은 여전했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았다.

    “여기까지인가 보구나. 더는 들어봐야 소용이 없겠어.”

    심협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고, 광장 한쪽에 앉아 잠시 쉬다가 떠났다.

    광장 뒤편에는 옥돌로 포장된 길이 나 있었는데, 구불구불하게 뻗어 그 끝이 보이지도 않았다.

    심협은 옥돌 길에 가볍게 발을 내디뎠다. 이어서 마치 무게가 전혀 없는 것처럼 단숨에 몇 장을 날아갔다. 광장이 금세 멀어져 보이지 않게 됐다.

    좀 더 가다 보니 길 양쪽으로 높고 큰 금색 나무들이 나타났다. 마치 황금으로 주조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분명 평범한 나무는 아니었다. 하지만 영력의 파동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심협은 호기심에 금색 나무를 눈으로 살폈지만,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잠시 더 나아가니 옥돌 길의 끝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높이가 백 장에 이르는 높고 푸른 산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었다.

    산봉우리 꼭대기에는 어렴풋이 다 쓰러진 건물이 보였다. 하지만 심협의 눈은 산자락 한쪽의 매끄럽고 푸른 산 벽에 멈췄다. 그곳에 푸른 석문이 하나 있었는데, 꼭 닫혀 있었다. 석문에는 검붉은 무늬가 여러 가닥 새겨져 있었는데, 문자 같으면서도 문자가 아니었고, 그림 같지만 그림도 아니었다. 이해하기 힘든 현묘함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석문 옆에는 사람 머리만 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옛 전서체로 쓰인 관도동(觀道洞)이라는 세 글자였는데, 오랜 세월을 겪으면서도 굳건히 버텨낸 듯 고풍스러움과 심오함이 느껴졌다.

    “관도동!”

    심협은 번득이는 눈으로 세 글자를 살피며 나지막이 읽어보았다.

    이름으로 미루어 종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었을 듯했다. 게다가 근처에 조금도 훼손된 흔적이 없는 것을 보면 안에 잘 보존된 보물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심협은 흥분을 가라앉히고는 바로 석문에 다가가지 않고 손을 결인하더니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공기 중에 일렁이는 물이 나타나더니 맷돌만 한 두 개의 손바닥이 되어 석문을 힘껏 밀었다.

    하지만 석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금제가 있는 듯한 반응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제야 심협은 석문으로 다가가 직접 손을 들어 두드려 보았다. 낮고도 묵직한 소리가 메아리쳤다. 석문이 매우 두꺼운 것 같았다.

    “열기가 쉽지는 않겠군.”

    하지만 그는 출규기에 진입하면서 자신감이 넘쳤기에 그리 걱정하지는 않았다.

    심협은 두 눈을 감은 채 신식을 밖으로 내보내 조심스럽게 석문 안쪽과 근처 산 벽을 살폈다. 매우 조심스러운 움직임이었는데, 이전에 신식을 반격하는 금제에 대한 기억이 생생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신식이 금제의 반격을 당하지는 않았으나 유연한 힘에 의해 저지당해 석문 안으로는 조금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

    산 벽을 살피던 신식도 마찬가지였다. 안으로 어느 정도 들어가기는 했으나 금세 유연한 힘에 막혀 더 이상 들어가지 못했다. 또한 산 벽 안에도 문을 여는 기관 따위는 없었다.

    심협은 미간을 찌푸린 채 몇 걸음 물러나 가부좌를 틀고는 혼을 육신과 분리시켰다. 이어서 온 힘을 다해 석문 안으로 날아갔다. 신식을 공격하는 금제가 없음을 확인한 이상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다.

    문에서 유연한 힘이 앞을 막았지만, 심협의 혼은 신식보다 훨씬 강력했다. 그는 억지로 밀고 나가 석문 앞으로 조금 들어가 보았다. 하지만 기뻐할 틈도 없이 돌연 윙 하는 소리가 크게 울리더니 석문에 하얀 빛이 일었다. 이어서 강력한 힘이 심협의 혼을 밀어냈다.

    심협의 혼은 저항하지 못하고 그대로 석문 밖까지 튕겨져 나갔다. 그러자 문에 일었던 하얀 빛도 사라졌다.

    심협의 혼은 말없이 석문을 바라보다가 육신으로 돌아갔고, 그의 안색은 차갑게 굳은 상태였다.

    “해보자 이건가?”

    심협은 단호하게 양손을 결인했다. 그러자 두 개의 물줄기가 나타나 회전하며 송곳 같은 물 칼이 되었고, 물 칼은 눈부신 파란 빛에 싸인 채 회전했다.

    “가라!”

    심협이 나지막이 외치며 양손을 앞으로 휘두르자 두 개의 물 칼은 고막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날아가 석문을 공격했다.

    깡! 깡!

    두 차례의 거대한 금속성이 울리고, 물 칼들은 그대로 터져나가 수많은 물방울이 되어 흩어졌다.

    한편, 석문에는 다시 한 번 하얀 빛이 일었고, 가볍게 흔들리는 듯하더니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아무런 손상도 없었던 것이다.

    심협은 어두운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손을 결인하여 휘둘렀다. 그러자 반월환이 튀어나왔다.

    반월환에는 9층 무늬의 진이 모두 떠올랐고, 눈부신 은색 빛을 분출했다. 이어서 한차례 회전하다가 지름이 몇 장에 이르는 은빛 보름달이 되었고, 순식간에 석문 앞에 이르렀다.

    “이래도 버텨내는지 보자!”

    심협이 결인한 손으로 허공을 찍자 은빛 보름달은 맹렬히 빛을 발하며 두 배나 커졌다. 이어서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대기를 진동시키며 매섭게 석문을 베어갔다.

    카칵!

    날카로운 굉음이 울렸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럴수가!”

    막강한 위세를 자랑하던 보름달은 암초에 부딪힌 물결처럼 너무도 쉽게 부서져 버리더니, 수많은 빛의 칼날로 변해버렸고, 빛 칼날들은 석문 주위 십여 장에 마치 빗방울처럼 흩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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