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13화 (113/1,214)
  • 113화. 칠성필(七星筆)

    심협은 한 손으로 피수결(避水訣)을 맺어 푸른 광막으로 몸을 뒤덮은 후 곧장 열기의 담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작열하는 열기가 덮쳐와 몸을 휘감았고, 그의 몸을 덮은 푸른 광막도 미미하게 떨렸다.

    한데 그 온도가 높기는 해도 사람을 다치게 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심협은 마음 놓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나무에 가까이 갈수록 그는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나무에서 매우 짙은 영기(靈氣)가 발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아하니 이것은 보기 드문 영목(靈木)임이 틀림없다! 허나 무슨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

    그러면서도 속으로 추측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중 심협은 나무 주위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파란 빛 아래로 나뭇가지와 잎들이 푸르게 자라 있는 것을 보게 됐다. 조금 전 맡았던 짙은 초목의 향기가 바로 여기에서 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토록 높은 온도에서도 살아남다니, 정말 대단하구나!”

    심협은 기뻤고,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이를 자세히 살피기보다는 우선 영목부터 파낼 생각이었다.

    그가 한 손을 휘두르자 소매 안에서 빛이 번득이더니 반월환이 튀어나왔다. 반월환은 곧장 땅에 박히더니 그대로 파고들어갔다.

    심협이 손목을 가볍게 몇 번 돌리자 지면에서 작은 흙무더기들이 솟아났다. 곧이어 붉은 영목이 갑자기 한쪽으로 기울더니 그대로 쓰러져갔다.

    땅에 쓰러진 영목이 발산하던 붉은 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발산되던 열기 또한 함께 사라졌다.

    심협은 반월환을 거두고는 긴장감을 억누르며 나무로 다가가 살펴보았다.

    한데 그가 막 영목을 집어 든 순간, 갑자기 손바닥에 강렬한 작열감이 들었다. 이에 심협은 나무를 놓쳤고, 영목은 다시 바닥에 떨어졌다.

    “으음.”

    심협이 다시 시선을 돌렸을 때, 영목에는 붉고 투명한 선 같은 빛이 은은하게 흐르고 있었다. 거기에서 발산되는 영기의 파동은 전혀 변함이 없었으니, 그는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목은 여전히 뜨거워 집어 들 수도 없었기에 그는 우선 푸른 영초(靈草)들을 살펴보러 갔다.

    한데 이상하게 붉은 영목의 열기가 사라졌는데도 영초들이 발산하는 향기는 더욱 짙어졌다. 심지어 영초에서 발산되는 파란 빛도 더욱 밝아져 있었다.

    “이 잎은 모양과 맥이 산삼과 비슷해 보이는구나.”

    심협은 영초 하나를 잠시 보다가 그렇게 말했다.

    그의 집은 약포를 운영했으니 평소 다양한 약초를 접했다. 그러니 산삼이나 황정(*黃精, 죽대 뿌리) 같은 약초에도 익숙했다. 한데 이 영초는 분명 선가의 영약(靈藥) 종류일 텐데, 어찌 평범한 산삼처럼 생겼단 말인가?

    심협은 의구심이 들어 반월환을 꺼내 손에 쥐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무를 파낼 때와는 달리 매우 조심스레 움직였다. 우선 영초 주변의 흙을 땅에서 가볍게 분리해낸 후, 영초의 뿌리가 드러나자 바로 반월환을 거두고 손으로 조금씩 흙을 털어냈다.

    서서히 영초의 뿌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열매는 색상이나 뿌리수염의 모양이 분명 산삼과 다를 것이 없었다. 심지어 무늬까지도 똑같았다.

    하지만 영초에서 발산되는 초목의 향기는 보통의 산삼에서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영초에 담긴 짙은 영기는 조금 전 발견한 사엽화나 일반 산삼은 절대 비교조차 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설마…… 이것이 말로만 듣던 인삼이란 말인가?”

    심협은 확신이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약 1각을 공을 들인 끝에 영초에 묻은 것들은 다 털어낼 수 있었다.

    심협은 영초에 새겨진 무늬를 손으로 하나하나 세어보았다. 한데 셀수록 점점 놀라게 되었다. 이 영초의 무늬는 열한 가닥 정도 되었는데, 만약 이것이 인삼맞다면 이는 천 년이 넘은 절대적 등급인 것이다. 그 가치는 가격을 매길 수도 없을 터였다.

    그는 영초를 들어 향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그러자 순식간에 청량한 기운이 코끝에서 영혼까지 전해지더니 신식 또한 맑아졌고, 호흡도 훨씬 편안해졌다.

    “이게 인삼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선약 영초임은 분명해.”

    심협은 남은 영초들도 모두 파내 깨끗이 흙을 털어내고, 무늬를 하나씩 세어보았다. 모두 천년 이상 묵은 것들이었다.

    심협은 기쁜 마음에 얼른 겉옷을 벗어 영초들을 담아 감쌌다. 그 모든 일을 마쳤을 때, 하늘에는 초승달이 높이 떠 있었다.

    그제야 다시 붉은 영목을 보았더니 투명한 빛은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심협은 슬쩍 손을 뻗어 건드려 보았는데, 이제 조금 따뜻한 정도였다.

    그는 붉은 영목을 집어든 후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백초곡 안의 담 모서리로 갔다. 그리고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고 숨을 고르면서 무명공법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마주한 사람과 달이 멀리서 서로 말없이 있는 동안 백초곡 안에는 벌레 우는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오직 미세하게 바람 부는 소리만 들렸으니, 매우 허전하고 적막해 보였다.

    * * *

    새벽. 한 줄기 햇빛이 담장 모서리를 지나 심협의 얼굴을 비추었다.

    심협은 두 눈을 미세하게 떨며 서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 양팔을 펴고 근골을 풀어주었다. 순식간에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력이 백배는 강해진 것 같았다.

    장수촌에서는 천지 영기에 한계가 있어 그의 수련이 응혼 후기 이후로 정체되어 있었다. 한데 어젯밤 수련에서 꽤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응혼기를 넘어서려면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희망이 보이는군.’

    심협은 한쪽에 놓인 영초와 영목을 보자 순식간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에 영초와 영목을 등에 메고는 또 얻을 것이 있는지 보기 위해 백초곡의 다른 곳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운은 어젯밤에 모두 써버린 것일까? 온종일 뒤져도 천년 묵은 영약은커녕 마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본래 탐욕스러운 사람이 아닌 심협은 그다지 개의치 않고 백초곡을 나가 다시 광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약 두 시진을 가다 보니 광장에 이르기도 전에 웅장한 기세의 대전이 나타났다. 이전의 폐허들과는 달리 대전은 상태가 제법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심협은 기쁜 얼굴로 얼른 뛰어갔다.

    한데 막 대전에 가까워졌을 때, 심협은 저 앞에 하얀 해골이 있는 것을 보게 됐다. 해골은 손에 녹이 잔뜩 슬어 있는 부러진 검을 든 채 앞으로 엎드린 자세로 바닥에 놓여 있었다.

    더 앞으로 가보자 길 옆 풀숲에 바짝 달라붙어 있는 두 구의 해골이 보였다. 두 해골은 백색 골창(骨槍) 하나에 가슴이 관통된 채 땅바닥에 박혀 있었다.

    심협은 속으로 심히 놀랐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앞으로 가다 보니 해골 시신이 점점 많이, 산발적으로 놓여 있었다. 해골 중에는 뼈와 관절이 매우 큰 것도 있었고, 골격이 날카로운 것들도 적지 않아 한눈에 봐도 인간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대전 문과 복도 기둥 곳곳에도 백골들이 기대어져 있었다. 어떤 백골은 몸을 비튼 자세였고, 시신이 온전치 못한 백골도 보였다. 또한 죽임을 당한 것이 분명한 백골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듯해 보이는 백골들도 있었다.

    심협은 미간을 찌푸린 채 시신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장면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의문이 들었다.

    “이들은 이 대전을 지키기 위해 죽은 것일까?”

    그러자 더욱 호기심이 들었다. 이 안에 무슨 보물이 숨겨진 것은 아닐까?

    심협은 대전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아직 옷도 좀 남아 있는 말라버린 시신이 있었다. 이 시신은 가부좌를 튼 채 대전 문을 막고 있었다.

    “선배님 넓은 아량으로 실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 시신을 보니 왠지 모를 존경심이 생긴 심협은 허리를 굽혔다.

    한데 그의 손이 닿자마자 돌연 시신의 옷이 부서지면서 재처럼 흩날렸다. 이어서 가벼운 팍 소리와 함께 시신에서 뭔가가 떨어져서 굴러갔다.

    심협의 시선이 그 물건을 따라갔다. 잠시 굴러가다 멈춘 그것은 길이 반 척 정도의 비취 붓이었다. 전체적으로 투명했고, 붓끝은 검지만 작고 정교했다. 척 보기에도 값진 것이 분명했다.

    심협이 급히 붓을 주워들어 자세히 살펴보니, 붓의 비취 색상은 기이했다. 은색 빛이 드문드문 일렁였는데, 그중 일곱 개의 은색 빛이 특히 눈에 띄었다. 바로 북두칠성의 모양으로 배치된 빛들이었다.

    반대편에는 해서체로 아주 작게 ‘칠성(七星)’이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

    “칠성필(七星筆)이라 부르면 되겠군.”

    심협은 단전에서 법력을 한 줄기 끌어내 칠성필에 주입해보았다. 그러자 붓에서는 은색이 번득이면서 은하를 축소해놓은 것처럼 매혹적인 빛이 발산되었다.

    심협은 내키는 대로 붓을 휘둘러 허공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붓끝에서는 은색 빛이 흘러나와 허공에 흔적을 남기면서 소뢰부 문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문양의 뒷부분을 쓰는 동안 앞서 썼던 절반이 흐릿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붓끝으로 법력을 삼키고 뱉는군. 한데 곧바로 흩어지지는 않고 허공에 뭉쳐 있다니, 기이하구나, 정말 기이해. 만일 이 붓으로 쓴다면 신과 기를 더 많이 남길 수 있어 성공적으로 부적을 쓸 확률이 높아지겠구나!”

    심협은 흡족해하며 그렇게 추측하고는 방금 전보다 많은 법력을 주입했다.

    붓에 다시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고, 그가 휘두르는 대로 허공에 빛의 흔적이 떠 있었다. 하지만 그 흔적은 다 쓰기도 전에 다시 흩어져 사라지고 말았다.

    여섯 번이나 시도를 해보았지만, 결과는 매번 같았다. 법력을 얼마나 주입하건 빛의 흔적이 남아 있는 시간은 잠시뿐이라 허공에 부적을 완성할 수가 없었다.

    “아직 이 붓을 제련하지 않아서 본래의 힘을 다 발휘하지 못하는 걸까?”

    그런 의문이 들었던 심협은 곧장 가부좌를 틀고 앉아 양손 사이에 칠성필을 둔 채 속으로 구구통보결을 외웠다. 이어서 입으로 법력을 뿜어내 붓에 쏘아 보냈다.

    동시에 그는 양손의 결인을 바꾸었는데, 손끝에서 파란 빛이 분출되어 칠성필을 에워쌌다. 그러자 칠성필은 유유히 흔들렸고, 표면에서 은빛 화려한 빛이 한 겹 떠올랐다. 북두칠성도 떠올랐는데, 각각의 안에서 부적 문양이 나타나 일곱 개의 작은 은색 빛 부적 진을 이루었다.

    “7층 금제라……. 보아하니 반월환과 비슷한 등급인 모양이구나.”

    심협은 잡념을 거두고는 법력을 첫 번째 부적진에 주입해 금제에 충돌시켰다.

    쾅!

    법력은 금제와 충돌하자마자 강력한 반격을 당해 그대로 돌아왔다.

    “하! 만만치 않구나. 반월환과는 달리 칠성필은 금제의 저항이 매우 강해.”

    심협은 혀를 차더니 두 눈을 번득이며 양손의 결인을 다시 바꾸었다. 이어서 전력을 다해 법력을 운공하여 부적진으로 주입시켰다.

    칠성필에 은색 빛이 번득이면서 파동이 요동쳐 나왔다.

    그렇게 순식간에 한 시진이 넘게 흘렀을 때,

    카칵!

    대전 앞에서 가벼운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칠성필에서 은색 빛이 폭발하더니 첫 번째 금제의 부적진이 무너졌다.

    휘유웅!

    무너진 부적진은 은색 빛으로 변해 다시 칠성필 안으로 들어갔고, 북두칠성의 한쪽 끝에 해당하는 요광성 자리에서 빛이 번득였다.

    “성공인가?”

    심협은 기뻐하며 신식을 칠성필에 투입시켜 변화를 살펴보려 했다.

    한데 그의 신식이 들어가자마자 기이한 공간이 나타났다. 둘레가 10척도 되지 않는, 네모반듯한 공간이었다. 사방에는 벽이 보이지 않았는데도 무형의 힘으로 막혀 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심협은 자신의 신식이 어딘가에 구속된 것이라 여겼다. 한데 나오려고 마음먹으니 신식은 스르륵 빠져나왔다.

    “응?”

    그게 오히려 더욱 놀랍고 의아해 그는 다시 한번 신식을 투입시켜 보았다. 이번에도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신식은 자유롭게 그 공간을 드나들 수 있었다.

    심협은 좌우를 두리번거리다가 근처에 떨어진 돌멩이를 주웠다. 그리고 한 손에는 돌멩이를, 다른 한 손에는 칠성필을 쥔 채 긴장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심협은 왼손이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얼른 눈을 떠보니 손에 있던 돌멩이가 사라진 상태였다.

    “혹시……?”

    그는 흥분을 억지로 가라앉히며 다시 한번 신식을 칠성필 안의 기이한 공간으로 투입시켰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