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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05화 (105/1,214)
  • 105화. 반월환의 위력

    시간이 흐르면서 신사(蜃蛇)의 인내심도 바닥을 보이는 듯했다. 공격이 점점 거세어지면서 추두도 조금씩 뒤로 물러나게 됐다. 부상도 적지 않게 입은 상태였다. 하지만 한 걸음 물러섰다가도 다시 통로 쪽으로 나아가기를 반복했다.

    그러는 동안 추두의 법력도 점점 고갈되어갔다. 오래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때, 돌연 통로에서 거대한 굉음이 울렸다.

    꽈광!

    이어서 지금까지보다 훨씬 강렬한 바람이 요동치며 습격해왔다. 추두는 상황이 심각한 것을 알고 뒤를 돌아봤지만, 심협은 여전히 눈을 감고 제련 중이었다. 이에 추두는 다시 이를 악물고 철퇴를 움켜쥐었다.

    한편, 진관보는 우렛소리 같은 굉음에 덜덜 떨며 귀를 막고 있으면서도, 이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동굴 입구로 향했다.

    거대한 물결이 통로를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헤아릴 수 없이 거대한 힘이 깃든 채 미친 듯이 솟구치고 있었다. 아무리 공격해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한 신사(蜃蛇)가 호수로 물로 동굴을 가득 채우려 한 것이다.

    “어림없다!”

    추두는 나지막이 일갈하더니 양손으로 철퇴를 휘둘렀다. 철퇴의 표면에는 푸른 빛이 일더니 무형의 광막이 되어 동굴 입구를 막았다.

    퍼펑!

    물결은 광막과 맹렬히 충돌했다. 그 충격에 추두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나자, 그 자리는 곧장 물로 채워졌다. 그리고 그 물이 추두를 밀어냈다.

    추두는 거대한 물결의 힘을 느끼고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양손으로 철퇴를 고쳐 쥐고 물결을 막으며 성큼 나아갔다. 그렇게 물결을 통로 방향으로 억지로 밀어내고는 다시 막아섰다.

    이를 본 진관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제 그 끔찍하게 생긴 신사를 다시 본다고 해도 그리 무섭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상황이 바뀌었다.

    통로에서 돌연 황색 빛 한 줄기가 번득이더니, 기다란 몸뚱이가 그 안에서 튀어나와 추두가 쳐놓은 광막을 두들겼다.

    쾅!

    한 번의 충돌만으로도 추두는 순간적으로 두 손이 마비되는 듯했다. 동시에 광막이 무너지면서 물결이 몰려들어 그를 휩쓸었다. 철퇴 또한 튕겨지듯 추두의 가슴팍을 매섭게 두들겼다.

    펑!

    묵직한 소리에 이어 추두는 뒤로 날아가 바닥에 떨어졌다.

    엄청난 양의 물이 순식간에 동굴의 절반쯤을 채웠다. 진관보는 물에 휩쓸려 한구석으로 떠내려갔다가 벽에 부딪혀 의식을 잃고 말았다.

    그때, 신사(蜃蛇)가 헤엄쳐 오더니 몸을 맹렬히 일으켜 세우며 입을 벌렸다. 그러자 양쪽 입가에 검붉은 금이 생기고, 아래턱과 위턱이 쩍 하고 벌어졌다. 네 개의 독 이빨이 검푸르게 번득였다.

    신사는 독니 사이로 혀를 날름거리면서 다가가 심협의 머리를 물려 했다.

    그 순간이었다. 심협이 갑자기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그의 두 손 사이에 떠 있던 반월환이 번득이더니 쏜살같이 날아갔다.

    “헉!”

    눈앞으로 은색의 무언가가 날아들면서 신사의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반월환이 달빛을 크게 방출하는 모습에, 신사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는 마치 뼈가 없는 것처럼 유연하게 상반신을 뒤로 눕혔다. 동시에 자색 꼬리를 휘둘렀다. 그러자 마치 강철 칼이 가르고 간 것처럼 달빛은 산산이 깨져버렸다.

    하지만 신사는 안도하기보다는 당황했다.

    “엇?”

    방금 전 산산조각이 난 달빛은 허상이었다. 그러나 그의 꼬리에는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운 느낌이 남아 있었다. 성에가 한 겹 생겨나 있었던 것이다.

    신사는 몸을 떨며 성에를 떨쳐내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시야가 어그러지며, 등 뒤로 한 손을 돌린 인간이 수면을 밟고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인간은 남은 손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공격해왔다.

    신사는 기겁해 흉부를 안쪽으로 수축시키며 입을 벌려 무언가를 뿜어냈다. 그의 목구멍 안에서 비린내 나는 자색 액체가 뿜어져 나와 그 인간, 심협의 머리 위를 덮쳐갔다.

    워낙 가까웠던 탓에 심협으로서는 피할 수가 없는 순간이었다. 이에 그는 뻗어가던 손을 거두고 피수결(避水訣)을 결인해 순식간에 파란 광막으로 몸을 감쌌다.

    치이익!

    비린내 나는 액체가 피수결 광막 위로 떨어지면서 섬뜩한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심협은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그러는 동안 몸을 감싼 광막의 물결 문양이 요동치며, 비린내 나는 액체를 완전히 떨쳐내 버렸다.

    그 무렵, 다시 수면 위로 돌아온 신사는 도망치려 했다. 그런데 저 아래 물속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거대한 철퇴가 갑자기 튀어나와 신사의 등을 매섭게 두들겼다.

    깡!

    “크으!”

    신사는 분노와 고통이 뒤섞인 표정으로 몸을 틀고는 두 눈에서 자색 빛을 발사했다. 그 빛에 맞은 철퇴는 금속의 광택을 잃으면서 회백색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돌로 변하고 말았다.

    “헛!”

    추두는 기겁해 급히 철퇴를 놓고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신사는 추두를 용서할 수 없다는 듯 매섭게 노려보며 헤엄쳐 쫓아갔다. 이어서 신사의 두 눈에 다시 자색 빛이 일었다.

    그때였다.

    “됐다!”

    심협의 외침이 들려왔다. 이어서 그가 줄곧 등 뒤로 감추었던 손바닥에 빛이 크게 일었다. 그러자 마치 밝은 달이 뜬 것처럼, 동굴 전체가 순식간에 달빛으로 가득 찼다.

    심협은 법력을 운공하며 팔을 맹렬히 휘둘렀다. 그러자 방금 제3층 금제의 제련을 마친 반월환이 모습을 드러냈다.

    반월환은 수백 개의 은빛 달그림자가 되어, 신사를 향해 똑바로 날아들었다.

    “이, 이런!”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낀 신사의 두 눈에, 다시 한번 자색 빛이 크게 일었다.

    하지만 이 자색 빛은 반월환의 빛에 비하면 달빛 앞의 반딧불처럼 미약하기 그지없었다. 반월환의 빛은 순식간에 자색 빛을 그대로 삼켜 버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푹!

    가벼운 소리에 이어…….

    “끼야아악!”

    신사의 처참한 비명이 울렸다. 그리고 이내 동굴을 밝게 비추던 은색 빛도 점차 어두워졌다.

    긴장된 눈으로 신사를 바라보던 추두는 놀라운 것을 보게 됐다. 신사는 옅푸른 얼음에 뒤덮인 상태였고,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그리고 신사의 이마에는 반월환이 비스듬히, 두개골 깊이 파고든 채 박혀 있었다.

    심협은 손을 흔들어 반월환을 다시 불러들였다. 반월환이 그의 손으로 돌아가자 신사의 몸은 수십 조각으로 부서져 버렸다.

    심협은 더 이상 뱀 요괴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고 동굴 한구석에 있는 진관보에게 다가가 손바닥으로 등을 가볍게 문질러 양기를 주입해 주었다.

    “우웩! 으…… 으으으…….”

    진관보는 물을 잔뜩 토해내더니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추두 도우, 이번에 그대의 도움을 많이 받았소. 병기까지 잃었으니 보답이 있어야겠지. 혹시 뱀 요괴의 내단(內丹)이 도우에게 쓸모가 있다면 두 개 모두 가져가도록 하시오.”

    심협은 진관보를 안으며 말했다.

    이 말에 추두는 조금 놀란 듯하더니 이내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하하! 내 사양치 않겠소. 이번 싸움은 내게 헛되지 않았구려.”

    심협은 추두를 돌려보내준 후, 진관보를 업고 장수촌으로 향했다.

    * * *

    때는 한밤중이었다. 장수촌에는 수십 명이 모여 있었다. 어떤 이들은 소곤거렸고, 어떤 이들은 탄식했으며, 어떤 이들은 말없이 딱딱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몇몇 아낙네는 허리가 굽은 백발 노파를 둘러싸고 있었는데, 노파의 표정은 후회로 가득했다.

    “마 파파, 굳이 선사에게 부탁한 건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에요?”

    피부가 검은 아낙네 하나가 참지 못하고 따졌다.

    “선사께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어쩔 거예요? 다음에 요괴들이 습격하면 누가 우리를 구해준단 말이에요?”

    또 다른 사람이 탄식하듯 말했다.

    “이제 정말 끝났어. 또다시 요괴들이 오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마을 어귀 여기저기서 탄식이 들려왔다. 다소 잠잠했던 절망이 다시 마을을 뒤덮었다.

    마 파파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자신을 책망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심지어 표정에도 변화가 없었으나, 그렇다고 반박하지도 않았다. 그저 마을 밖 방향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영락도 옆에서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담장 위에서 소리쳤다.

    “선사께서 돌아오셨다!”

    마을 입구는 순간 조용해졌다. 그리고 곧이어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진관보는?”

    그제야 마 파파도 표정이 변하며 다급히 물었다.

    영락은 곧장 몸을 솟구쳐 담장 위로 올랐다. 그녀는 심협을, 그리고 그가 등에 진관보를 업고 오는 것을 보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졌다.

    “두 사람이에요. 두 사람……. 선사께서 진관보를 구해 오셨어요!”

    영락은 몸을 돌려 크게 외쳤다.

    그제야 마 파파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을로 돌아온 심협은 며칠간 푹 쉰 후에야 영락을 불러왔다. 그리고 그녀에게 글자가 빽빽한 종이를 건넸다.

    “이게 뭔가요?”

    영락은 종이를 대충 훑어보더니 궁금한 듯 물었다.

    “소화양공이오. 몸을 단련하는 기본적인 공법인데, 자질이 뛰어날 필요도 없소. 한번 수련해 보시오. 마을에 수련하고 싶어 하는 자가 있다면 그들에게도 전수해 주시오. 최소한 체력을 기르는 데라도 도움이 될 거요.”

    심협이 대답했다.

    “심 대형, 정말 감사합니다! 방촌산과의 연락이 끊긴 이후로 마을 사람들이 수련할 만한 공법이 없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영락은 진심으로 감사해하며 소화양공을 소중하게 품에 챙겼다.

    “내 앞으로 한동안 폐관수련을 할 생각이오. 그동안 영락 낭자가 수고 좀 해주시오.”

    심협이 덧붙였다.

    “마을은 제가 보살필 테니 마음 놓으세요. 대형을 귀찮게 하지 않을 겁니다.”

    * * *

    시간이 흘러 심협이 장수촌에 온 지도 2년이 지났다.

    방촌산 산기슭. 잡초가 무성히 자라고 이끼가 잔뜩 낀 거대한 바위 아래로 검은 동굴이 있었는데, 그 안에서 거대한 잿빛 머리가 불쑥 나타났다. 두 귀는 둥근 형태에 입과 코는 뾰족하고 길었고, 입에는 서로 맞물린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했다. 영지가 깨인 큰 쥐였다.

    쥐는 잔뜩 경계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바위 위에서 돌연 한 사람이 빠르게 내려오더니 쥐의 머리를 밟았다.

    쥐가 힘껏 몸부림치며 찍찍거리자 녀석을 밟은 발이 조금 옆으로 옮겨가더니 힘이 실렸다. 그러자 가볍게 캭 하는 소리가 들리며 쥐의 숨이 끊어졌다.

    “심 대형, 원래는 산 위의 맹수들만 요괴가 되었는데, 이제는 땅속의 쥐마저도 요괴가 되었군요. 산 위의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겠지요?”

    자색 머리의 소녀가 다가와 허리를 굽혀 거대한 쥐 요괴를 내려다보며 근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자색 옷 위로 다 떨어진 오래된 갑옷을 두른 소녀는 바로 영락이었다.

    요괴를 밟아 죽인 심협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괴들이 마을을 빈번히 공격하고 또 갈수록 상황이 위험해지니, 이대로는 오래 버틸 수 없을 것이오. 어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소.”

    “그건 저도 잘 알고 있지만, 산 위의 광표는 응혼기 요괴잖아요? 지난번에 우리가 도망친 것도 요행이었지요. 만일 다시 광표를 만난다면 살아남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영락이 탄식하듯 말했다.

    “이번에는 지난번의 산길을 피해서 가보려 하오. 산골짜기 계곡을 낀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 며칠간 장마가 이어져 산 위의 못이 넘쳤지요. 산에 계곡이 생겼을 테니 그런 길을 찾기가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자연 이치의 도움을 받게 된 셈이구려.”

    심협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두 사람은 거대한 바위 아래 동굴로 들어가 보았다. 깨끗했던 동굴에는 지난 2년여 동안 온갖 짐승 뼈가 쌓여 있었고, 곳곳에 검푸른 인화(*磷火, 도깨비불)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동굴의 반대편 끝으로 나와 산길을 따라 백여 장을 올랐다. 그러자 첫 번째 갈림길이 나타났는데, 지난번과는 달리 좌측 갈림길을 택했다.

    비가 내린 뒤의 숲은 이상하리만치 습했다. 산길의 관목 잎에도 빗물이 맺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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