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혈투
심협은 크게 휘청거리며 몇 걸음을 물러난 후에야, 겨우 몸을 가눌 수 있었다. 진즉 앞을 막아선 덕에 진관보는 거센 기운에 직접 부딪히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때, 동굴 밖에서 자색 그림자가 쏜살같이 들어오더니 심협의 흉부를 공격했다. 그 그림자는 굵은 뱀 꼬리였다.
콰아아!
위세가 미인사보다 한참 위라 매서운 광풍에 굉음이 울렸다.
크게 놀란 심협은 진관보의 손을 끌어 동굴 안으로 던지듯 밀어 넣는 동시에 반대편 손목을 비틀었다. 그러자 은빛 반월환이 소매에서 튀어나왔다.
반월환은 마치 달그림자처럼 허공에 눈부신 은빛을 방출하여, 좁은 동굴을 환히 비추며 자색 뱀 꼬리를 공격해갔다.
깡!
놀랍게도 금속성 같은 굉음이 울렸다. 또한 반월환은 단단한 쇠기둥에 부딪힌 것처럼 튕겨 나왔다.
덕분에 자색 뱀 꼬리의 속도도 한결 늦춰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매섭게 다가오고 있었다.
퍼펑!
거대한 굉음과 함께 심협은 그대로 날아가 근처 석벽에 충돌했다. 그러자 동굴 전체가 흔들거렸다.
“쿨럭!”
심협은 피를 토하며 힘없이 쓰러졌다.
그때 자색 그림자가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그것은 거대한 자색 뱀 요괴였다.
이 요괴는 마치 용처럼 머리 옆에 박쥐 날개처럼 생긴 거대한 날개가 나 있었고, 몸통은 미인사보다 배는 굵었으며, 비늘 또한 훨씬 두꺼웠다. 비늘에는 잿빛 도안이 드러나 있어 더욱 흉폭해 보였다. 뿜어내는 기운 또한 미인사보다 한참 위협적이었다.
자색 뱀 요괴는 원한이 가득한 눈빛으로 입을 쩍 벌려 칼날처럼 날카로운 이빨로 심협의 머리를 물려고 했다.
그때, 거대한 철퇴가 허공을 가르며 뱀 요괴의 머리를 매섭게 내리쳤다.
깡!
추두의 철퇴는 금속성과 함께 튕겨 나갔으나, 뱀 요괴 또한 고개가 뒤로 훽 젖혀졌다.
“꺼져라!”
추두의 외침에 자색 뱀 요괴는 크게 노하여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더니 황색 빛이 번득이는 눈으로 매섭게 추두를 노려보았다.
그 순간, 추두의 눈빛이 흐릿해졌고, 동공이 풀어졌다.
그때 뱀 요괴가 무언가를 뱉어냈는데, 마치 실재하는 듯한 자색 빛이었다. 그 빛은 그대로 추두의 철퇴를 두들겼다.
까깡!
또다시 날카로운 금속성이 울리더니, 철퇴가 그대로 튕겨나가 추두의 흉부를 가격했다.
펑!
충돌음과 함께 추두가 튕겨 나갔다.
그 무렵, 힘이 풀린 듯 고개를 숙이고 있던 심협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러더니 눈은 꼭 감은 채 한 손을 결인했다. 이어서 그의 등 뒤에서 은색 빛이 쏘아져 나가, 자색 뱀 요괴의 목으로 향했다. 물론 반월환이었다.
반월환이 위잉 하는 소리를 내자, 은빛 무늬가 있는 진이 나타났다. 진에서는 눈이 시릴 정도의 은색 빛이 크게 방출되어 회전하더니, 은색 달빛 그림자로 변했다.
쉬이잇!
고막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미인사를 공격할 때보다 5배는 큰 달빛 그림자가 매섭게 뱀 요괴를 공격했다.
푸욱!
무언가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고, 피가 튀었다.
은색 달빛 그림자는 뱀 요괴의 몸을 반 척이 조금 넘게 파고들어가 멈추었다.
“키야아아!”
자색 뱀 요괴는 동굴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처참한 비명을 지르더니, 격렬하게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이어서 놈의 몸에서는 자색 빛이 빠르게 번득였고, 거대한 힘이 분출되었다.
퍼펑!
짧은 폭발음에 이어 반월환은 뱀 요괴의 몸에서 튕겨 나왔다. 거의 동시에 거대한 뱀 요괴는 몸을 날려져 순식간에 동굴 밖으로 사라졌다.
심협은 눈을 뜨더니 긴장을 풀지 않고 주위를 살피며, 석벽을 잡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한쪽에는 추두가 여전히 흐릿해진 눈으로 쓰러져 있었다.
그는 억지로 몸을 가누고 걸어가, 추두의 흉부에 손을 대로 누르며 체내의 웅후한 법력을 주입했고, 이 법력은 추두의 눈으로 이동했다.
추두는 몸을 한 차례 크게 떨더니, 서서히 두 눈이 제 빛을 찾았다. 하지만 여전히 어지러운지 머리를 흔들어댔다.
“신선 형, 어찌 된……?”
진관보가 조심스레 다가오며 묻다가 심협이 피를 토한 흔적을 보고는 두 눈에 걱정이 가득 담겼다.
심협은 손을 들어 밖을 가리킨 후, 입술로 손을 가져가 조용히 하라는 동작을 해 보였다. 그 뜻을 알아들은 진관보도 곧장 입을 다물었다.
심협은 귀를 기울여 밖의 상황을 들었는데, 안색은 조금 어두워진 상태였다. 이어서 그는 진관보에게 눈짓을 보내는 동시에, 땅에 고인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벽에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한편, 동굴의 7, 8장 앞 통로에서는 자색 뱀 요괴가 바닥에 엎드린 채 동굴을 노려보고 있었다. 요괴의 목 근처에 났던 상처에서는 이미 출혈이 멎은 상태였다. 녀석은 마치 다시 들어가 공격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듯했다. 저 안의 인간 수사는 자신의 꼬리에 맞았으니 비록 죽지는 않았더라도 중상을 입었을 터였다.
그런데 그때, 동굴 안에서 어린아이의 겁에 질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 신선 형…… 어찌…… 어찌 이리 많은 피가 흐르는 것이에요?”
그 목소리를 들은 자색 뱀 요괴가 눈을 빛내며 곧장 쳐들어가려는 듯 동굴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내 혀를 날름거리더니, 의심쩍은 눈으로 우뚝 멈춰 서서 다시 동굴 안의 상황에 귀를 기울였다.
동굴에서는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이내 다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그 요괴가 속지 않은 것 같…….”
“쉿!”
아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목소리가 재빨리 저지했다. 그리고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흥, 교활한 인간 같으니라고!”
자색 뱀 요괴는 분노로 눈을 번득이며 천천히 동굴에서 물러났다.
한편 동굴 안에서는 심협이 바깥의 동정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자색 뱀 요괴가 정말로 물러난 것을 감지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잔뜩 긴장해 있는 진관보를 보며 씩 웃었다.
“저놈이 제법 똑똑하구나. 만일 들어왔다면 내 그놈의 머리를 잘라버렸을 텐데 말이야.”
심협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한 마디를 보탰다. 그러고 나서야 그는 창백한 얼굴로 피를 토해냈다.
심협은 자색 뱀 요괴에게 공격을 받기 직전에 피수결(避水訣) 광막을 둘러 방어를 했다. 그럼에도 부상 정도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게다가 방금 추두를 구하기 위해, 법력을 운공하느라 부상은 더욱 심해진 상태였다.
뱀 요괴가 떠나자 다소 마음을 놓았던 진관보도 심협의 상태가 심상치 않자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심협은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괜찮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 요괴도 잠시 동안은 돌아오지 않을 게야. 그 사이에 서둘러 부상을 치료해야겠구나. 그러지 않으면 정말 위험해질 테니까.”
심협은 다시 손가락으로 바닥의 피를 찍어 벽에 무언가를 적었다. 이를 읽은 진관보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추두는 그제야 어지럼증이 좀 가셨는지, 말없이 철퇴를 들고 일어서더니 동굴 입구 쪽으로 가서 바깥을 경계했다.
심협도 더는 지체하지 않고 가부좌를 틀더니 눈을 감고 운공을 시작했다.
그의 온몸에 파란 빛이 일면서 단전 안의 법력이 온몸의 법맥을 따라 흐르기 시작했다. 마치 저수지에서 물꼬를 튼 것처럼, 온몸의 혈에 법력이 흘러들어갔다. 법력으로 부상을 치유하려는 것이다.
심협은 운공을 하면서 스스로도 놀랐다. 몸에 20개의 법맥을 가지게 되면서 수련 효율이 크게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회복 능력도 크게 증진됐기 때문이다.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부상은 거의 회복되었다.
자색 뱀 요괴는 그때까지도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심협은 소매에서 반월환을 꺼내 미리 준비했다.
반월환은 1층의 금제를 제련한 것만으로도 예상을 뛰어넘는 위력을 발휘했다.
‘나머지 층의 금제까지 제련한다면? 아마 수련이 벽곡기 최고봉에 이른 듯한 저 뱀 요괴를 상대하는 것쯤은 일도 아닐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심협은 양손으로 몸 앞에 원 형태의 결인을 맺더니 법력을 위아래로 조종했다. 그러자 반월환이 그의 양손 사이로 떠올랐다.
심협은 속으로 마 파파에게서 전수받은 구구통보결을 외며, 그 방법에 따라 최대한 신중하게 반월환의 제2층 금제를 제련해갔다.
반 각(刻)이 지나자 심협의 몸 앞에 떠 있던 반월환에서 돌연 가벼운 진동음이 들리더니 표면에 부적 문양이 스쳤다. 그러자 곧 달빛 같은 은색의 빛이 방대하게 뿜어져 나왔다. 동굴 안을 훤히 비출 정도였다.
심협이 양손을 안으로 모으자, 사방으로 발산되던 은색 빛은 다시 돌아와 반월환으로 거두어졌다. 제2층 금제의 제련을 마친 것이다.
진관보는 동경이 가득한 눈으로 말없이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심협은 정신을 가다듬고는 계속해서 속으로 구구통보결을 외웠다. 그럴수록 구구통보결을 더 깊이 깨달을 수 있었고 점점 능숙해졌다. 길어야 반 각 정도면 제3층 금제도 제련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심협이 돌연 표정이 굳어졌고, 입구를 지키던 추두도 입을 열었다.
“조심하시오. 그 요괴가 또 왔소!”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심협은 짧게 탄식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진관보는 곧장 물러나 동굴 안의 석벽 뒤로 몸을 피했다. 그러고는 긴장된 표정으로 새까만 눈을 크게 떠 통로를 주시했다.
“하찮은 인간 주제에 이 신사(蜃蛇)님을 기만하다니, 썩 나오지 못할까!”
분노로 가득 찬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어서 피비린내 나는 바람이 불어오면서 통로에 있던 짐승 뼈와 돌들이 휘날려 서로 부딪쳤고, 그 소리가 천둥처럼 동굴에 가득 울렸다.
그러나 심협도 지지 않았다. 그는 손을 들어 몸 앞에서 결인했다. 그러자 연신 금속성이 울리면서 반월환의 은색 빛이 어지럽게 떨리더니 한 차례 회전한 후 바람 소리가 들리는 통로로 쏘아져 나갔다.
통로에서 은색 빛이 춤을 추듯 날아다니면서, 무수히 많은 은색 달빛이 서로 교차했고, 허공에 칼로 벤 듯한 흔적들을 남기며, 피비린내 나는 바람을 부수어 버렸다. 그러고 나서도 반월환은 멈추지 않고 동굴 밖으로 날아갔다.
쾅!
곧이어 맹렬한 충돌음이 들려왔다.
심협은 얼른 양손을 결인하여 반월환을 불러들였다. 반월환은 맑은 쇳소리와 함께 돌아와 그의 손바닥을 에워싼 채 한참을 돌다가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안타깝구나! 반 각만 더 있었다면 제3층 금제를 제련해내 저 뱀 요괴를 단숨에 제압했을 텐데…….”
심협은 반월환을 내려다보며 안타까운 듯 읊조렸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추두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동굴은 협소하고 길지 않소? 저놈처럼 의심이 많은 요괴는 함부로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만 공격하겠지. 그러니 내 반 각 동안 저놈을 막아보겠소.”
“그럼 부탁하겠소.”
심협은 반가운 제안에 감격하며 부탁했다.
추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들고 있던 철퇴를 가로로 눕혀서 든 채 통로 입구를 막아섰다.
심협은 진관보에게 통로 근처로 가지 말 것을 신신당부하고는 다시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 반월환의 제3층 금제 제련에 집중했다.
신사(蜃蛇)는 방금 전 심협의 공격에 놀란 것인지 감히 들어오지 못했다. 대신 끊임없이 요력(妖力)을 시전하여 모래와 돌을 쏘아 보냈다.
추두는 동굴 입구에 서서 정신없이 철퇴를 휘둘러 그 공격들을 어찌어찌 막아냈다.
처음에는 철퇴와 돌멩이가 부딪치는 소리 때문에 불안했던 심협도 한동안은 추두가 버텨줄 듯하자, 마음 놓고 금제 제련에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