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마 파파의 보물
월륜 중앙에는 옛 전서체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마침 심협이 <무명천서>에서 본 적이 있는 글자들로, ‘반월(半月)’이라는 글자였다.
“이 노인네는 법력을 모두 잃었으니, 도우를 돕고 싶어도 도울 수가 없소. 대신 이 반월환(半月環)을 주겠소. 내 부친께서 남기신 법기인데, 9층의 금제가 있는 상급 법기라오.”
마 파파는 회상하는 듯한 얼굴로 월륜을 내려다보다가 심협에게 건넸다.
“9층의 금제와 상급 법기요?”
심협은 은빛 월륜을 받아들며 의아한 듯 물었다.
“그렇소. 왜, 무슨 문제라도 있소?”
마 파파 또한 이상하다는 듯 되물었다.
“제가 스승의 가르침을 받지 못하여 법기와 금제의 도리에 대해 아는 것이 부족합니다. 부디 마 파파께서 가르침을 주십시오.”
심협이 공수하며 말했다.
“뭣이라! 스승의 가르침을 받지 못했다고? 그럼 지금껏 홀로 수련해왔단 말이오?”
마 파파가 경악한 듯 외쳤다.
“그러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심협을 보며 마 파파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더니 심협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심협이 스승의 전수를 받지 않은 산수(散修)라는 말에,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또한 심협의 사문에 요청해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기대도 모두 사라졌다.
“껄껄! 이 노인네가 단전에 부상을 입기 전에는 스스로 타고난 자질이 괜찮다 여겼는데, 심 도우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구려. 나이도 스물 안팎인 듯그런데, 혼자서 그 경지까지 수련을 해내다니…….”
마 파파는 유쾌하게 웃으며 감탄했다.
“과찬이십니다. 어쩌다 보니 지금에 이른 것뿐이지요. 그러니 법기에 관한 일은 부디 가르침을 주십시오.”
심협은 재빨리 화제를 바꾸었다.
“좋소. 법기란, 안에 금제의 힘을 품고 있는 무기라오. 부기는 부적에 의지하지만, 법기는 내부의 금제에 의지하는 것이지. 위력을 비교하자면, 부기는 법기에 비할 바도 되지 못한다오.”
그 정도는 자신도 알고 있었기에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법기는 그 안에 담긴 금제에 기반을 두고 있소. 금제가 많을수록 법기의 등급도 더 높아지지. 금제가 1층에서 3층까는 하급, 4층에서 6층까지는 중급 법기라 하오. 7층에서 9층까지는 당연히 상급 법기라고 하지. 그러니 반월환은 최상의 상급 법기인 게요.”
마 파파는 개의치 않고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보물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제게도 법기가 하나 있긴 한데, 법기는 제련을 해야만 조종할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련하는 법을 전혀 알지 못하니 반월환의 위력을 발휘할 수 없을 듯합니다.”
심협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제련 방법을 모른다고? 괜찮소. 내 제련법결(祭煉法訣)을 알려주겠소.”
마 파파의 말에 심협은 고개를 번쩍 들었고, 크게 기뻐하며 허리를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술법은 방촌산의 비전이라오. 문규에 따르면 외부인에게 전해서는 안 되지. 그러나 방촌산이 이 모양이 되었으니 문규가 무슨 소용이겠소?”
마 파파는 짧게 탄식하더니 법결 한편을 외웠다.
구구통보결(九九通寶訣)이라는, 1천여 자밖에 되지 않는 짧은 법결이었기에, 심협은 금방 외울 수 있었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지금 바로 제련하고 아이를 구해주시오.”
마 파파의 말에 심협은 곧장 대답하고는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었다. 이어서 법결을 한번 왼 후 입을 벌려 법력을 뿜어 반월환에 들어가도록 했다. 동시에 양손을 결인하니 파란 빛이 손끝에서 발사되어 나와 반월환으로 떨어졌다.
반월환에서는 바로 반응이 나타났다. 은색 빛이 발산되더니 무수히 많은 은빛 부적 문양이 빽빽하게 떠올랐다. 개미만 한 부적 문양들은 반월환을 에워싼 채 회전하더니 9층의 은빛 무늬가 있는 진(陣)을 이루었다.
이 진은 매우 모호해 마치 헛것처럼 보였다.
심협은 눈을 빛내며 계속 법결을 운공했고, 머지않아 반월환 내부의 금제를 만나게 되었다.
이 금제의 느낌은 금빛 밧줄의 금제보다 훨씬 중후(重厚)했다.
심협은 운공을 멈추지 않고 법력을 금제로 침투시켰다.
그런데 놀랍게도 구구통보결로 한 번 부딪친 것만으로도, 법력은 수월하게 중후한 금제 안으로 들어갔다.
심협은 기뻐하면서도 계속 법결을 운공했다.
잠시 후, 반월환이 돌연 맑은 소리를 울리더니, 밝은 보광(寶光)을 내뿜으며 심협의 손에서 날아올랐다. 이어서 빠르게 회전하며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표면의 무수히 많은 은빛 무늬는 기이할 정도로 신비로워 보였다.
이 무렵, 반월환 주위의 무늬 진 9층 중 1층은 밝고 선명해져 있었고, 나머지는 여전히 모호한 상태였다.
심협이 손을 들자 반월환이 바로 날아와 그의 손 위에 떠 있었다.
심협은 번득이는 눈으로 반월환을 바라봤다. 이제 1층의 금제만을 제련했을 뿐인데도 그 위세과 기상이 이전에 얻은 그 어떤 보물보다도 압도적이었다.
심협은 반월환의 위력을 시험해보지도 않고 바로 결인하여 소매에 챙겨 넣고는 일어났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진관보를 구하려면 서둘러야겠습니다.”
“미인사는 교활하고 의심이 많으니 부디 조심하시오. 상황의 여의치 않다면 바로 돌아와야 하오. 우선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점, 명심하시오.”
마 파파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했다.
심협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몸을 솟구쳐 우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이어서 피수결을 시전하자 몸 표면에 파란 빛이 한 겹 일었고, 그는 우물물을 가르며 빠르게 가라앉아, 금세 우물 안의 통로 앞까지 갔다.
심협은 바로 들어가지 않고 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장심에서 파란 빛이 일었다. 통령지술을 운공한 것이다.
순식간에 그의 손바닥을 중심으로 우물 안에 회전하는 물 소용돌이가 나타나더니 짙은 요기와 함께 추두가 튀어나왔다.
“이보시오, 어째 내가 수련할 때마다 소환하는 것이오! 별일 아니라면 얼른 나를 돌려보내주시오!”
추두는 나타나자마자 불만을 터뜨렸다.
“이번에는 상황이 급박해 부른 거요. 나를 도와주시오!”
심협은 무표정한 얼굴로 통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더 따지려던 추두는 심협의 표정이 심각한 것을 보고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젓더니 등 뒤에서 거대한 추를 꺼내 들었다. 그러더니 몸을 굽혀 먼저 통로로 들어갔다.
심협은 몸 주위로 파란 빛을 일렁이며 추두의 뒤를 따랐다.
통로 안의 공간은 넓지도 않았고 어두웠다. 그럼에도 추두는 거리낌 없이 이동했다. 그의 꼬리가 한번 위아래로 흔들릴 때마다 2, 3장을 앞으로 나아갔다.
“추 도우, 너무 빨리 가지 마시오. 이번 적은 매우 강력한 뱀 요괴요.”
심협이 주의를 주며 말했다.
“흥! 고작 뱀 따위! 우리 동해에서 하급 종족에 불과하오. 용궁 문조차 들어갈 수 없는 것들이지. 그러니 내 무엇이 두렵겠소?”
추두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그렇게 조소하더니 속도도 줄이지 않았다.
심협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대신 양손을 소매 안으로 넣어 각각 금빛 밧줄과 반월환을 든 채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 앞에서 콸콸콸 물소리가 들려왔다. 급류가 있는 듯했다.
“조심하시오!”
심협은 긴장된 얼굴로 소리 높여 주의를 주었다.
이번에는 추두도 고집을 부리지 않고 조금 속도를 늦췄다.
다시 반주향(*半炷香: 향 반 대가 타는 시간, 약 15분)쯤 지나자 통로도 끝이 보였다. 앞에는 어두운 수역(水域)이 펼쳐졌는데, 물이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보아하니 지하 하류인 듯한데 어디로 통하는지 모르겠구려.”
심협은 사방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급하게 흐르는 물이 그의 몸을 두들겼지만, 그는 피수결을 약간 운공해 막아냈다.
“뱀 요괴가 어디 있단 말이오? 비늘 한 조각 보이지 않는데!”
추두는 전혀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서서는 뾰족하고 기다란 머리로 좌우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이에 심협이 막 대답하려던 그때, 날카로운 황색 그림자가 하류 아래에서 빠른 속도로 쏘아져왔다. 이 그림자는 모호한 잔영(殘影)을 남기며 심협의 가슴팍을 매섭게 찔렀다.
펑!
묵직한 굉음이 울렸고, 심협은 마치 철퇴의 공격을 받은 것처럼 몇 걸음이나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피수결 광막이 크게 요동쳤다가 곧 안정을 되찾았다.
추두의 반응은 기민해, 심협이 물러설 때 이미 그는 파랑추를 휘두르고 있었다.
쐐액!
파랑추가 지나는 자리에 물이 갈라지며 하얀 포물선이 그려졌다.
황색 그림자는 그 위세에 놀란 듯 수축되며 피하려 했다. 하지만 워낙 빨랐던 탓에 완전히 피해내지는 못했다.
펑!
또다시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끼야아!”
귀를 긁어대는 비명과 함께 황색 그림자는 뒤로 튕겨나갔다가 본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한 아름 정도 되는 뱀 꼬리였다. 이 꼬리는 몇 차례 흔들렸는데, 표면의 뱀 비늘에는 철퇴에 맞아 생긴 하얀 흔적이 뚜렷했다.
곧 이어 굵고도 긴 몸이 뱀 꼬리 뒤에서 나타났다. 길이가 5~6장에 이르는 물뱀으로, 몸 전체가 황토색이었다. 몸에는 두텁고 견고한 비늘이 덮여 있었는데, 투명한 빛이 그 위를 덮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몸통 위에는 머리카락이 노란 사람의 머리가 달려 있었다. 젊은 여자의 얼굴로, 매우 아름다웠지만 두 눈에는 냉랭한 빛이 이글거렸다.
이 무렵, 심협도 몸을 가누고 서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다가 뱀 요괴의 모습을 보고는 동공이 수축되었다.
“미인사!”
추두는 파랑추를 꽉 쥔 채 눈도 깜빡이지 않고 뱀 요괴를 살폈다. 그의 표정도 더없이 진지해져 있었다.
“장수촌에서 왔는가?”
미인사는 공격하는 대신 심협에게 물었다. 그 목소리는 날카롭고도 가늘었다.
“아이만 풀어준다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심협은 대답 대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 인간 수사 따위가 근본도 없는 새우 한 마리 데리고 와서 감히 나를 위협하다니!”
미인사는 심협의 언사와 태도에 격분한 듯 눈빛이 난폭해졌다.
심협도 더 이상 쓸데없는 말 없이 손을 굽혀 튕겼다. 그러자 소매에서 은색 빛 한 줄기가 곧장 미인사를 향해 날아갔다. 물론 반월환이었다.
미인사는 눈동자를 기이하게 번득이더니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돌진해왔다. 그러자 두 눈에서 갑자기 실재하는 듯한 황색 빛이 방출되더니 심협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위험하다!’
심협은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끼고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이미 한발 늦은 뒤였다. 미인사의 눈에서 나온 황색 빛이 빠르게 커지는 것 같더니 그 빛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이어서 머릿속에서는 윙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눈앞에 있는 미인사의 모습은 돌연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이내 네댓 개의 허상이 시야를 어지럽히면서 심협은 어떤 것이 진짜고 어떤 것이 가짜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되자 반월환 또한 날아가던 도중 어느 것을 공격해야 할지 몰라 순간 머뭇거렸다.
그 순간, 네댓 개의 미인사의 모습이 일렬로 서더니 심협을 향해 발사되어 왔는데, 그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환술(幻術)!’
심협은 바짝 긴장한 채 바로 피수결을 운공하며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그때, 추두가 심협의 앞을 막아서더니 파랑추를 맹렬히 휘둘렀다. 그러자 다가오는 뱀 그림자들가 모두 쓸려나갔다.
이때 심협의 눈에는 황색 빛이 요동치는 가운데, 추두가 그 뱀 그림자 몇 개와 뒤엉킨 것처럼 보였다. 여전히 어느 것이 진짜 미인사고 어떤 것이 헛것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황에서 거대한 굉음만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