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01화 (101/1,214)
  • 101화. 미인사(美人蛇)

    “심 도우, 부디 조심하시오.”

    마 파파가 당부하듯 말했다.

    심협은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어 보이고는 피수결을 운공했다. 그러자 몸 표면에 파란 빛이 일렁이며 빛이 한 겹 일었다. 그는 그대로 몸을 세운 상태로 우물로 뛰어들어 깊이 잠수해갔다.

    이를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은 이 신기한 법술에 분분히 감탄했다. 특히 마 파파는 눈빛이 번득였고, 이어서 무언가를 깊게 고민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 무렵, 심협은 피수결로 온몸을 보호한 채 순식간에 우물 밑바닥에 이르렀다. 그는 곧장 사방을 살펴봤지만, 앞서 잠수했을 때와 다른 점은 없었다. 우물 밑바닥과 우물 벽을 바른 흙도 그대로였다.

    “내 추측이 틀린 것인가?”

    그럼에도 혹시나 싶었던 심협은 묵묵히 피수결을 조종해 위로 천천히 떠오르면서, 사방의 우물 벽을 세세히 살피고 손으로 더듬어 보았다.

    “엇!”

    그렇게 2장 정도 위로 떠올랐을 때, 그는 무언가 발견한 듯 돌연 우물 벽을 더듬던 손을 멈추었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어서 심협은 다급히 두 손으로 우물 벽을 문질렀다. 그러자 누런 진흙이 떨어져 나와 시야를 흐렸다. 심협은 법술로 물을 요동치게 하여 진흙들을 떠내려가게 했고, 그러자 시야가 다시 또렷해졌다.

    앞의 우물 벽에는 맷돌만 한 누런 돌이 상감(象嵌)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모서리에는 얼핏 검은 틈이 보이는 듯했다.

    심협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손을 뻗어 그 돌의 모서리에 손을 집어넣어 세게 잡아당겼다. 그러자 누런 돌 전체가 우물 벽에서 떨어져 나오더니, 그 너머로 검고 큰 동굴이 나타났다. 안은 매우 어둡고 깊어, 어느 곳으로 통하는지 알 수 없었다.

    “역시 여기였구나!”

    심협이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안을 살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곧 통로의 가장자리에 머물렀다.

    그곳에는 두 개의 돌이 있었는데, 그 위로 머리카락 같은 것이 몇 가닥 감겨있었다. 손으로 들어서 살펴보니 미황색의 머리카락이었는데, 보통 사람의 것보다 훨씬 굵었다.

    심협은 머리카락을 가까이 가져와 냄새를 맡고는 눈빛이 변했다. 집 안에 남아 있던 비릿한 냄새였던 것이다.

    그는 머리카락들을 품에 챙겨 넣고는 빠르게 물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밖으로 튀어나왔다.

    “심 선사께서 나오셨다!”

    마을 사람들은 집 안으로 들어와 있다가 화들짝 놀라 외쳤다.

    “심 대형, 안의 상황은 어떤가요?”

    영락이 급히 물었다. 마 파파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눈빛에는 간절한 기다림과 기대가 담겨 있었다.

    심협도 지체하지 않고 급히 우물 안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우물 안에 통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다들 놀라는 분위기였다.

    “그 통로는 자연적인 것이 아닌 듯했습니다. 십중팔구 그 요괴가 팠겠지요. 보아하니 그 요괴는 줄곧 마을 근처에 잠복해 있었던 모양입니다.”

    심협이 추측한 바를 말했다.

    “어쩐지 두(杜) 어르신 집안사람들이 차례로 실종되더라니……. 그리고 풍소보도 갑자기 실종되었고……. 그 요괴가 잡아간 것이 분명해요.”

    영락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분노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동굴 입구에서 찾은 것인데, 요괴가 남긴 것과 같은 냄새와 납니다. 한번 보시지요.”

    심협은 품 안에서 미황색 머리카락을 꺼내며 말했다.

    “머리카락 같은데, 조금 굵기는 합니다.”

    영락이 그 머리카락을 받아들더니 의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길군요. 무슨 요괴가 머리를 이리 길게 길렀답니까?”

    청우도 영락이 들고 있는 머리카락을 보며 의아한 듯 말했다.

    “이…… 이것은……?”

    마 파파가 돌연 표정을 굳혔다.

    “마 파파, 이게 뭔지 아세요?”

    영락이 급히 물었다.

    “마…… 맞다. 분명 그 요괴의 머리카락이야. 그것이 다시 돌아왔어!”

    마 파파는 창백한 얼굴로 그 머리카락을 보며 부들부들 떨었다.

    심협은 마 파파가 이리 놀라는 모습을 처음 보자 자신도 모르게 긴장이 됐다.

    “마 파파, 무슨 요괴인지 아십니까?”

    영락 또한 마 파파의 표정을 보고는 긴장하며 물었다.

    “알다 마다. 내 법력을 모두 잃게 된 그 전투를 어찌 잊겠느냐! 이것은 미인사(美人蛇)의 머리카락이다!”

    마 파파는 감정을 추스른 채 차갑게 내뱉었다.

    “미인사요?”

    이어서 무언가 생각난 듯 영락의 고운 얼굴이 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마을 사람들 중에도 나이가 많은 몇몇 사람들의 표정은 굳었지만, 대부분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말씀하신 미인사가 어떤 요괴입니까?”

    심협이 끼어들었다.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오. 당시에는 나도 수사였지. 나 말고도 벽곡기의 수사 한 분과, 연기기 젊은이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었소. 당시 장수촌은 가난하긴 했어도 평안했다오. 그러나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못한다더니, 마을 사람 하나가 계곡으로 물고기를 잡으러 갔다가 어찌 된 일인지, 사람 머리에 뱀의 몸을 한 요괴를 건드리는 바람에, 그 요괴가 마을을 공격했소. 그 요괴의 얼굴은 아름다운 여인이라 우리는 미인사라고 불렀지.”

    마 파파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려왔다.

    “미인사는 매우 고강해서 나와 벽곡기 수도사가 함께 싸웠는데도 나는 단전에 부상을 입어 법력을 모두 잃었고, 같이 싸우던 도우는 돌아가셨소. 대신 미인사도 중상을 입고 도망쳤는데…… 다시 돌아올 줄이야.”

    마 파파의 목소리에 당시의 일을 기억하는 나이 많은 이들은 두려운 기억이 떠올라 몸을 떨었다.

    “요괴들이 마을을 공격한 것은 몇 년 전부터가 아니었습니까?”

    옆에 있던 청우가 물었다.

    “산 위의 요괴들이 마을을 습격한 일은 예전부터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수사들이 마을을 지킬 필요가 있었겠느냐. 하지만 그런 일이 매우 적어서 십여 년에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지.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산 위의 야수들이 요괴가 되면서 갑자기 그 횟수가 증가했을 뿐이야.”

    마 파파의 말에 청우는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 파파, 당시 어르신과 그 벽곡기 도우의 수련은 구체적으로 어느 경지에 이르렀습니까?”

    심협은 진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 당시 막 벽곡기에 진입했었네. 다른 도우는 나보다 수련이 더욱 깊었지만, 벽곡 중기에 이르지는 못했었지.”

    마 파파의 말에 심협은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두 명의 벽곡 초기 수사와의 싸움에서 중상을 입었다면 미인사의 수련은 당시 기껏해야 벽곡 중기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부상을 회복했다 해도 더 강해지지는 못했을 터. 그렇지 않으면 이리 몰래 일을 꾸밀 리도 없을 것이다.

    이미 벽곡기에 진입한 데다가 20개의 법맥을 응련해낸 심력은 법력의 웅혼함과 법술 시전의 위력만 놓고 본다면 벽곡 중기 수사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

    “미인사는 탐욕스럽고 잔인하오. 게다가 예전에 우리와 크게 원수를 졌으니 이번에 분명 곱게 물러나지 않을 게요. 우리 마을은 아마 또다시 환난을 맞이한 모양이구려.”

    마 파파의 근심스러운 목소리에 마을 사람들의 안색은 크게 어두워졌다.

    “도망친 길로 쫓아가면 그 요괴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빨리 진관보를 구해야지요!”

    영락이 급히 말했다.

    “그 뱀 요괴는 당시 벽곡기 수사 두 분이 함께 공격해도 결국 패하였소. 두 분 선사께 실례되는 말씀이오나, 두 분이서 그 요괴를 물리칠 수 있겠소? 가봐야 공연히 죽음만 당할 것 아니오!”

    심협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한 대머리 노인이 말했다.

    “맞소! 두 분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마을은 어떻게 하오?”

    또 다른 중년 사내가 말했다.

    “그 요괴가 아이를 잡아먹으려 한 거라면, 진관보는 십중팔구 벌써 일을 당했을 것이오. 그러니 선사께서는 그 요괴를 찾아가 헛수고하지 마시고, 차라리 그 요괴가 또 습격해올 때 막을 방법을 궁리해주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분분히 이야기했는데, 하나같이 심협과 영락에게 위험을 무릅쓰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심협은 마을 사람들을 한번 둘러보더니 눈을 내리깔고 입을 다물었다.

    한편, 영락은 사람들의 말에 처음에는 화가 났으나, 점차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에 머뭇거리고 있었다.

    “마 파파, 어르신께서는 견문이 넓으시니 어찌 해야 좋을지 말씀해주세요.”

    영락은 결국 마 파파에게 물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마 파파에게로 모였다.

    심협처럼 묵묵히 서서 고개를 숙인 채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마 파파는 영락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여러분 말씀도 일리가 있소. 그러나 내 생각에 진관보는 아직 살아있을 것 같소.”

    마 파파가 말했다.

    “그걸 어찌 아시오?”

    마을 사람 하나가 의아한 듯 물었다.

    “미인사는 마을 근처에 숨어 부상을 회복하고 있을 게요. 부상이 완전히 회복됐다면 마을을 뒤엎고도 남았을 것인데, 지금껏 숨어 있는 것을 보면 분명하오. 내가 알기로는 뱀 요괴의 체질은 음(陰)에 속하는데, 보름달이 뜨는 날 아이를 잡아먹어야 가장 효과가 크오. 내일이 바로 보름달이 뜨는 날이지.”

    마 파파의 말에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한편, 심협은 속으로 자신의 추측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그 뱀 요괴는 부상이 아직 다 낫지 않았을 테니, 지금이라면 상대하기 한결 수월할 것이다.

    “영락아, 너는 실력이 부족하니 미인사를 상대하기에는 한참 부족하단다. 그러니 경거망동하지 말아라.”

    마 파파가 영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진관보는 어떻게 해요? 아직 살아있는데…… 어찌 구하러 가지 않을 수 있어요?”

    영락이 급히 말했다.

    “심 도우, 우리 중 오직 도우만이 미인사의 적수가 될 수 있소. 그러니…… 진관보를 구하러 가줄 수 있겠소?”

    마 파파가 심협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물론입니다. 진관보는 제게 식사를 가져다주러 왔다가 잡혀간 것이니 제 책임도 있지요. 말씀하시지 않아도 구하러 갈 참이었습니다.”

    심협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니 되오! 심 선사에게 봉변이라도 생각한다면 마을은 어찌 되는 것이오? 마 파파, 그대의 아이만 생각해서 마을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는 거요?”

    대머리 노인이 절규하듯 외쳤다.

    “맞소! 마을은 어쩌라는 거요?”

    “심 선사님, 가지 마십시오!”

    몇몇 사람이 노인의 말에 호응했다.

    “여러분, 안심하시오. 이 노인네가 마을에 불리한 일을 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소? 내 심 도우에게 부탁한 것은 내게 진관보를 구하고, 마을의 안전도 위협하지 않을 방법이 있기 때문이오.”

    마 파파는 대머리 노인과 마을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 눈빛이 매우 삼엄해 대머리 노인과 마을 사람들은 압도당한 듯 입을 다물었다.

    한편, 심협은 의아했다. 마 파파가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러분, 미인사가 이 근처에 잠복하고 있으니 여기는 안전하지 않소. 모두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소식을 기다리시오.”

    마 파파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 마주 보더니 하나둘 떠나갔다.

    “영락아, 청우야, 너희도 우선 나가 있거라. 내 심 도우와 할 이야기가 있다.”

    마 파파는 아직 가지 않고 있던 영락과 청우에게 말했다.

    영락은 잠시 망설이더니 심협을 잠시 보다가 몸을 돌려 대문을 나섰다. 청우도 그 뒤를 따라 나가고 나니, 집 안에는 심협과 마 파파만 남게 되었다.

    “심 도우. 홀로 아이를 구하러 가게 하여 실로 부끄럽소.”

    마 파파는 씁쓸한 표정으로 탄식했다.

    심협은 그저 가볍게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 파파가 품속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냈는데, 손바닥만 한 은빛 월륜(*月輪, 무기의 일종)이었다. 눈처럼 하얗게 빛나는 월륜은 바깥 부분은 가늘고 날카로운 반면 안쪽은 비교적 두꺼웠다. 실로 범상치 않은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