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99화 (99/1,214)
  • 99화. 원숭이 왕의 복수

    일고여덟 번 호흡할 정도의 시간 만에 심협은 마을 입구에 이르렀다.

    그곳에서는 이미 죽고 죽이는 소리가 가득했다. 마을의 정예라 할 수 있는 장정들은 긴 나무창이나 조잡한 활을 들고 싸우는 중이었다.

    습격해온 짐승들은 이전에 봤던 회색 털 원숭이들이었는데, 수는 이전의 두 배에 이르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번에는 그 거대한 새들은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원숭이들이 당장 마을 안까지 쳐들어오지는 못할 터였다.

    그럼에도 그 수가 매우 많았고, 또 10여 마리가 멀리서 마을 울타리를 향해 돌을 던져대는 통에 굉음이 끊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10여 마리의 원숭이가 돌 방망이를 휘둘러, 나무 울타리를 부수고 있었다.

    쾅! 쾅!

    나무 울타리는 굉음이 울릴 때마다 크게 흔들리는 것이 곧 무너질 듯했다.

    울타리 뒤 높은 대에서는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활을 쏘거나 긴 창을 던졌다. 나무 울타리를 부수고 있는 원숭이들을 쫓으려는 것이었지만, 효과는 거의 보지 못하고 있었다.

    영락은 높은 대 위에 섰다. 하지만 곧장 공격에 나서기보다는 긴장된 표정으로 먼 곳을 내다보고 있었는데, 무언가를 경계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심 선사(沈 仙師)!”

    마을 입구에 있던 사람들이 심협을 발견하고는 희망에 차 외쳤다.

    형세를 훑어보던 심협은 굳건히 서서 양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마을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집의 우물에서 하얀 물줄기가 날아와 4개로 나뉘더니 각각이 하나의 물 화살을 이루었다.

    “가라!”

    심협이 손을 결인하자 4개의 물 화살이 울타리를 부수고 있던 원숭이들을 공격했다.

    “캬아악!”

    “끼야아!”

    물 화살이 워낙 빨라 원숭이들은 대응할 틈도 없이 가슴팍에 밥그릇만 한 구멍이 뚫린 채 비명을 내질렀고, 몇 차례 몸부림치더니 쓰러졌다.

    이 광경에 잠시 멍해져 있던 장수촌 사람들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환호했다. 반면 울타리 밖의 원숭이 무리들은 분노하여, 심협을 노려보며 가슴팍을 두드렸고, 맹렬히 포효했다.

    심협은 녀석들을 본 척도 않고 곧장 영락에게 다가갔다. 그의 눈은 영락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돌아갔다.

    마을 밖 저 앞으로 10장 정도 너머에 돌무더기가 어지럽게 쌓여 있었는데, 그곳에는 키가 족히 1장은 넘을 듯한 거대한 원숭이가 서 있었다. 몸 전체가 검었고, 눈동자는 검푸른 색이었다. 이 원숭이는 영락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눈빛 깊은 곳이 잿빛 털의 원숭이들과는 달리 맑았다. 영지가 크게 깨인 것이 분명했다.

    저 거대한 체구와 냉정하고 검푸른 눈빛에 매우 큰 위압을 느꼈는지, 영락의 새하얀 이마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이 거대한 원숭이도 곧 심협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심협은 덤덤한 표정으로 결인한 후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근처의 우물에서 물줄기가 솟구쳐 나와 이번에도 4개의 물 화살이 되더니, 저 멀리서 돌을 투척하던 네 마리의 원숭이를 향해 날아갔다. 이번에도 물 화살은 깔끔하게 원숭이들의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이 광경에 검은 원숭이의 눈빛에 살기가 비쳤고, 녀석은 양손으로 가슴을 마구 두드리며 우렁차게 포효했다.

    둥! 둥! 둥!

    “캬오오오!”

    그러자 마을 밖에 있던 원숭이 무리들은 마치 무슨 명령이라도 들은 것처럼 모두 공격을 중지하고 몸을 돌려 멀리 도망쳤다.

    그때, 또다시 4개의 물 화살이 허공을 가르더니 도망치던 원숭이들을 따라잡아 그중 4마리의 등을 뚫고 지나갔다. 피가 흩뿌려졌고, 녀석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즉사했다.

    “크르렁!”

    거대한 원숭이는 멀리서 이 광경을 보더니, 더욱 분노한 듯 굵은 팔뚝을 휘둘렀다. 그러자 검은 그림자가 발사되더니,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놀랄 만한 속도에 마치 검은 번개가 치는 것만 같았다.

    순식간에 수십 장을 뛰어넘어 심협의 몇 장 거리에서 나타난 그것은 사람 머리통만 한 검은 돌이었다.

    검은 돌이 이르기도 전에 거센 바람이 얼굴을 할퀴었고 옷자락이 휘날렸다.

    다소 놀란 심협의 몸에 파란 빛이 일었다. 피수결 광막을 시전하려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붉은 불덩이가 나타나 검은 돌을 막았고, 거대한 굉음과 함께 검은 돌은 불덩이 안에서 폭발했다.

    퍼펑!

    하지만 불덩이는 이내 무너졌고, 돌이 일으킨 거센 바람에 물러났다.

    무수히 많은 돌멩이가 돌이 일으킨 거센 바람을 타고, 울타리의 다른 쪽을 공격했다. 돌 조각들은 울타리 뒤의 대 위에 있던 사람들의 허벅지며 팔, 가슴을 두들겼고, 처참한 비명과 함께 몇 사람이 튕겨나가 추락했다.

    이 광경에 심협의 눈빛이 싸늘하게 번득였다.

    “심 대형, 조심하십시오. 저놈은 원숭이 왕입니다. 매우 고강한 원숭이지요. 아마 벽곡기에는 이르렀을 겁니다.”

    영락이 매우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며칠 전에 죽은 원숭이들의 복수를 하러 온 것이오?”

    심협은 검은 원숭이를 노려보며 영락에게 물었다. 녀석은 저 멀리서 자신의 공격이 실패하자, 나지막이 포효하고는 다른 돌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런 듯합니다. 원숭이 요괴 짐승들은 줄곧 무리를 이루어 행동해왔죠. 복수심도 매우 강하고요. 오늘은 정말 큰 위기로군요.”

    영락은 나지막이 말했는데, 아마 근처의 다른 사람들의 사기가 떨어질까 봐 목소리를 낮춘 듯했다.

    “보복심이 강한 짐승들이라……. 그렇다면 절대 도망치게 해서는 안 되겠소. 반드시 그 싹을 잘라야 하오.”

    심협이 나지막이 말했다.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영락은 심협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순간 멍하니 되물었다.

    “이곳을 지키고 계시오. 내 다녀오겠소.”

    심협은 더 이상의 설명 없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몸을 솟구쳐 마을 밖으로 내려섰다. 그러고는 원숭이 왕이 있는 곳을 향해 빠르게 질주했다.

    동시에 근처의 우물에서 촤악 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다시 한번 여러 개의 물줄기가 솟아 나왔다. 물줄기들은 허공에서 합쳐져 수룡(水龍)과 같은 모양이 되어 심협의 주위를 맴돌았다.

    원숭이 왕은 심협이 홀로 다가오는 것을 보자, 손에 들고 있던 돌을 내버리고 양손으로 옆에 있던 맷돌만 한 큰 돌을 쥐더니 힘껏 던졌다.

    큰 돌이 허공을 가르며 폭발할 듯한 소리를 내며 날아와 순식간에 심협 앞에 이르렀다. 아까보다 몇 배는 더 강한 바람이 일었다.

    그러나 심협은 안색도 변하지 않은 채 한 손을 결인했다. 다른 팔에서는 금색 빛이 거두어졌다.

    심협의 뒤에서는 결인에 따라 물줄기가 회전하더니, 길이 2장여의 푸르스름한 검으로 변해 하늘을 향해 솟구쳐, 마치 비검(飛劍)처럼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물의 검이 쏘아져 나가자 원숭이 왕이 던진 돌은 마치 두부처럼 잘려나갔다. 이어서 물의 검은 파란 빛줄기가 되어 원숭이 왕을 공격해갔다.

    “캬앗!”

    원숭이 왕은 놀라 크게 울부짖었다. 그러자 온몸의 털이 하나하나 곤두섰고, 그 안에서 검은 기운이 분출되었다. 그 기운은 한곳으로 모여 거대한 검은 방망이를 이루었고, 방망이는 마치 실재(實在)하는 듯했다.

    검은 방망이는 곧장 선회하며 날아가, 바람을 동반한 채 물의 검을 공격했다.

    펑!

    거대한 물의 검은 폭발음과 함께, 물방울로 산산이 부서져 허공을 뒤덮었다. 검은 방망이는 비록 부서지지는 않았지만, 뒤로 한참을 밀려났다.

    그런데 그때, 금색 빛줄기가 부서진 물방울 사이에서 발사되어 나왔다. 바로 금빛 밧줄이었다.

    밧줄이 재빨리 원숭이 왕을 감으려 하자, 녀석은 놀라 피하려 했다. 그러나 밧줄의 속도에는 이르지 못했고, 결국 두 발이 칭칭 감겨버렸다.

    10여 장 밖에서 이를 지켜보던 심협이 손으로 결인을 하자, 밧줄이 맹렬히 조여지면서 원숭이 왕을 뒤로 끌었다.

    “쿠오오오!”

    원숭이 왕의 거대한 몸이 흔들리며 중심을 잃었다. 하지만 종아리로 재빨리 바닥을 지탱한 덕에 완전히 쓰러지지는 않았다.

    이 무렵, 어느새 원숭이 왕 앞까지 다가온 심협은 양손을 결인해, 잡아 끄는 동작을 취했다. 그러자 사방에 흩어졌던 물방울이 허공에서 뭉치더니, 순식간에 거대한 물의 검이 되어, 원숭이 왕의 목을 향해 매섭게 내리쳤다.

    “키야악!”

    원숭이 왕의 표정은 놀람과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검은 기운으로 만들어낸 방망이로 막기에는 이미 늦은 것이다.

    위기일발의 순간, 원숭이 왕의 전신에서 털이 검게 빛나더니, 미친 듯이 자라났다. 털들은 서로 교차하며 순식간에 검은 갑옷을 만들어 온몸을 감쌌다. 특히 목 부위의 털 갑옷은 유달리 두꺼웠고, 점점 두꺼워졌다.

    그때, 거대한 물의 검이 원숭이 왕의 목을 묵직하게 내리쳤다.

    탕!

    단단한 것을 두들기는 듯한 소리가 울리며, 원숭이 왕의 털 갑옷은 절반 가까이 잘려나갔다. 어쨌든 결국 물의 검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를 보고도 심협은 차게 코웃음을 쳤다. 그 순간, 전신에서 20개의 파란 빛의 띠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어서 방금 전의 3배는 될 법한 법력의 파동이 그의 몸에서 폭발하더니, 물의 검 표면에 파란 빛이 가득 일렁였다. 진짜 검에서 나는 듯한 금속성까지 울렸다.

    찌익!

    놀랍게도 비단 찢는 듯한 소리가 울렸고, 원숭이 왕의 목을 감쌌던 털 갑옷의 나머지 절반도 단숨에 잘려나갔다. 거의 동시에 한 줄기 파란 검영(劍影)이 원숭이 왕의 목을 훑고 지나갔다.

    어지간한 맷돌보다 큰 원숭이 왕의 머리가 허공에 붕 떴다가 바닥에 떨어져 몇 번을 굴렀다. 크게 뜬 두 눈은 두려움과 경악으로 가득했다. 동시에 피가 분수처럼 잘린 목에서 뿜어져 나와 주위의 땅을 붉게 물들였다.

    원숭이 왕의 손발은 몇 차례 경련하더니 이내 차게 굳었다. 머리를 잃은 시신은 여전히 양손으로 땅을 받친 채 쓰러지기 직전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원숭이 왕의 죽음에 요란스러웠던 소리가 뚝 멈추더니 적막이 내려앉았다.

    멀리 마을에서 지켜보던 사람들도, 마을 밖에 모여 있던 잿빛 털의 원숭이들도 멍한 상태였다. 원숭이들은 심지어 도망치는 것도 잊은 상태였다.

    심협이 한 손을 휘두르자 금색 빛이 번득이더니 원숭이 왕의 양발을 묶었던 밧줄이 기민하게 거두어져 그의 오른팔에 감겼다.

    쿵!

    거대한 원숭이 왕의 시신이 쓰러지면서, 산이 뿌리째 흔들릴 것 같은 거대한 굉음이 울렸다. 그리고 이 소리를 신호로 하듯 장수촌 사람들이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

    “우와아! 원숭이 왕이 죽었다!”

    “신선님 만세!”

    환호성이 하늘을 찔렀고, 영락도 길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또한 심협을 보는 그녀의 눈빛도 조금 달라져 있었다. ‘내 다녀오겠소’라는 심협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살아나는 듯했다.

    한편, 잿빛 털의 원숭이들도 그제야 정신을 차리더니, 혼돈에 휩싸여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쳤다.

    “어딜 도망치느냐!”

    심협은 돌연 방향을 틀어 몸을 솟구치고 두 손을 결인했다가 떼자, 거대한 물의 검이 4개로 나뉘었다. 하지만 표면의 빛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상태였다.

    핑-!

    날카롭게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물의 검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 도망치는 원숭이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 검들은 날카롭기가 이를 데 없어, 지나는 곳마다 원숭이든 돌 방망이든 가릴 것 없이 모두 손쉽게 갈랐다. 여기저기서 처참한 비명이 울리고, 피가 흩날렸다.

    영락과 장수촌의 정예들이 심협을 돕기 위해 나왔는데, 그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원숭이들이 한 마리도 빠짐없이 죽은 상태였다.

    “심 선사! 정말 신통력이 대단하십니다!”

    “벽곡기의 원숭이 왕까지 쉽게 죽이시다니, 선사의 실력이 실로 놀랍습니다!”

    “조상님, 우리 장수촌을 보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심협을 에워싸고 찬양과 감격을 쏟아냈다. 어떤 이는 대놓고 큰절을 해 심협을 난감하게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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