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98화 (98/1,214)
  • 98화. 습격

    “누가 이기나 해보자!”

    심협은 차게 코웃음을 치더니 온 힘을 다해 운공했다. 그러자 온몸에서 20개의 법맥 빛의 띠가 모두 빛나면서, 법력이 마치 파도처럼 계속 주입돼 밧줄 안 무형의 장애물을 공격했다.

    펑! 퍼펑!

    실제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그는 머릿속으로 끊임없는 충돌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체내 법력의 절반 이상을 쏟아 부었음에도, 밧줄 안의 장애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보아하니 법기의 금제는 힘으로만 풀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그렇게 생각한 심협은 몸에서 20개의 법맥으로 동시에 천지영기를 흡수해, 순식간에 법력을 원래대로 회복했다.

    이어서 그는 마음을 가라앉힌 후, 밧줄을 들고 잠시 망설이더니, 다시 한 번 법력을 주입해 보았다. 법력은 금세 무형의 장애물과 마주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정면으로 충돌하지 않고 법력을 최대한 흩어지게 하여, 마치 흐르는 물처럼 장애물을 포위하여, 그 상태로 조금씩 무형의 장애물로 침투시켰다. 마치 물이 만물을 적시는 것처럼…….

    이번에는 밧줄의 장애물도 그리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자 법력이 어느 정도 침투되었다.

    “희망이 보이는구나!”

    심협은 눈을 번득이며 계속 법력을 운공하였다.

    하지만 이 방법도 문제가 있었다. 효과는 있으나 속도가 너무 느렸고, 심력(心力)의 소모가 컸던 것이다. 이에 체내 법력이 절반 이상 소모되었을 때, 그의 마음과 정신도 피로해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장애물은 아주 조금 풀어지는 듯한 기미를 보였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그만두지 않기로 결심한 심협은 계속 법력을 주입했다. 법력이 소진되면 다시 운공하여 회복하고, 마음과 정신이 피로하면, 눈을 감고 정신을 회복해가며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하루 밤낮이 꼬박 지났다.

    이 무렵, 밧줄 안의 장애물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운 상태가 되어 있었다. 완전히 무너지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심협은 마지막까지 마음을 놓지 않고 법력을 제어하여 조금씩 장애물 깊은 곳으로 침투시켰다.

    그렇게 반 시진 정도가 더 지나자, 심협의 손에 얌전히 놓여 있던 금빛 밧줄에 눈부시게 밝은 금색 빛이 일었다. 그 빛에는 개미만 한 금빛 부적 문양이 무수히 나타났고, 빽빽이 차 있어 몇 개나 되는지 알 수도 없었다. 부적 문양은 회전하다가 금빛 무늬가 있는 진(陣)을 이루더니, 윙윙거리는 소리를 냈다.

    심협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금빛 진을 바라보다가, 손을 결인하고 진을 점혈 하듯이 찍었다. 그러자 금빛 밧줄은 그의 손을 떠나 날아가더니, 허공에서 오가며 춤추듯 날아다녔다. 이는 마치 금빛 영사(靈蛇)가 허공에서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심협이 한 손으로 허공을 가리키자, 금색 빛이 번득였고 밧줄은 곧바로 그 방향으로 날아갔다. 이어서 순식간에 뽕나무를 몇 겹으로 감아 맹렬히 수축하기 시작했다.

    “됐다!”

    심협은 비록 법기를 제련(祭煉)하는 법을 알지는 못하나,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꾸준한 방법으로 결국 밧줄의 금제를 제어해낸 것이다. 다만 완전히 제어하기에는 아직 부족했기에 억지로 한번 조종해본 것뿐이었다.

    그러나 밧줄 안에는 방금 제어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또 다른 금제가 있었다. 워낙 복잡해 이번과 같은 방법으로는 뚫릴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심협은 시도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때, 대문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음식은 여기에 두자.”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선 오라버니가 집 안에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겠네. 벌써 열흘 넘게 안 나오셨지?”

    앳된 여자아이가 쭈뼛쭈뼛 물었다.

    “쉿! 일촌금(一寸金), 조용히 해! 영락 누나가 신선 형이 폐관수련 중이라 방해하면 안 된댔어. 이것만 놓고 빨리 가자.”

    남자아이가 가볍게 나무라는 목소리를 들으며, 심협은 눈썹 끝을 꿈틀거리더니 연못에서 나와 손을 결인했다. 그러자 그의 옷에서는 순식간에 물기가 증발됐다. 그의 몸과 옷에서 증발된 물방울들은 하나로 합쳐져 물 밧줄이 되더니, 그대로 날아가 대문을 열었다.

    밖에는 각각 키가 크고 작은 아이들이 서 있었다. 한 명은 허름한 푸른 베옷을 입은 남자아이로, 대나무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진관보였다.

    다른 한 명은 양 갈래로 머리를 땋고 여기저기 기운 흔적이 있는 붉은 옷을 입은 여자아이였다. 진관보보다 한두 살 어려 보였는데, 발그레한 얼굴에 두 눈은 그렁그렁했다.

    대문이 갑자기 열리자 두 아이는 화들짝 놀랐다. 여자아이는 반사적으로 진관보 뒤로 숨어 두 눈만 빼꼼 내밀었다.

    “신선 형, 먹을 것만 내려놓고 가려고 했어요. 방해하려던 건 아니에요.”

    진관보는 바로 정신을 차리고는 들고 있던 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고 심협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더니, 일촌금의 손을 끌고 가려 했다.

    “잠깐.”

    심협은 두 사람을 불러 세우고 대문가로 향했다.

    그가 바구니 덮개를 열어보니, 담황색 밀전병 두 장과 작은 그릇이 있었다. 그릇에는 아직 따뜻한 하얀 국물이 담겨 있었는데, 아직 따뜻했다.

    심협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가 비록 마을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본 적은 없지만, 이런 밀전병과 고깃국은 그들에게 귀한 음식일 것이다.

    “진관보, 영락 낭자에게 전하거라. 앞으로는 매일 먹을 것을 보낼 필요 없고, 열흘에 한 번씩만 보내주면 된다. 또한 보통의 음식이면 된다 전하고, 이 음식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거라.”

    그는 이미 벽곡 초기에 진입하여 더더욱 음식 섭취의 필요성이 적어진 것이다.

    “알겠습니다. 영락 누나에게 전하겠습니다.”

    진관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는데, 일촌금은 그 큰 눈을 깜빡였다. 심협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눈치였다.

    “이 음식은 너희가 먹으려무나.”

    심협은 슬쩍 웃더니 바구니를 두 사람 앞에 놓았다.

    두 아이는 바구니 안의 전병과 고깃국을 보더니 군침을 삼켜댔다. 때마침 일촌금의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울렸다.

    “신선 형, 이 음식은 형 몫입니다. 형과 영락 누나가 마을을 위해 요괴들을 물리쳐 주시는데, 저희가 어찌 신선 형의 음식을 욕심내겠습니까?”

    진관보는 음식을 바라보며 침을 삼키면서도 다부지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진관보를 보고 있노라니, 왠지 모를 감동이 느껴졌다. 진관보를 처음 보았을 때, 이 아이가 책임감도 있고 말하는 것이 조리가 있으며, 의지도 강하고 지혜로운 아이라고 느꼈다. 이 순간, 그 느낌이 더욱 확실해졌다.

    “내 비록 음식이 필요 없는 신선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너희처럼 매일 밥을 먹을 필요는 없단다. 나는 십여 일에 한 끼만 먹어도 괜찮아. 많이 먹으면 오히려 배가 아프단다. 아이고, 배야.”

    심협은 미간을 찌푸리며 아랫배를 잡더니, 배가 아픈 척을 했다.

    “그러니 나를 위해 이 음식들을 먹어주지 않겠니?”

    그러고는 웃으며 전병 두 장을 아이들의 손에 들려주었다.

    “진관보 오라버니, 신선 오라버니 말이 정말이야?”

    일촌금은 전병을 들고 진관보에게 조용히 물었다.

    “신선 형은 우리를 속이지 않아. 먹자.”

    진관보는 힘 있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신선 오라버니!”

    일촌금은 심협에게 허리를 숙이더니, 더는 참지 못하고 전병을 입에 욱여넣었다. 진관보도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전병을 다 먹어치웠다.

    심협은 그런 아이들을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어서 말없이 고깃국을 건넸고, 아이들은 그것도 순식간에 먹어버렸다.

    “됐다. 이제 얼른 돌아가거라.”

    심협은 진관보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일촌금에게도 웃어 보이고는 몸을 돌려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배가 조금 찬 덕인지 기분이 좋아진 일촌금은, 얼른 바구니를 챙기고 발걸음도 가볍게 걸었으나, 진관보는 제자리에 서서 멍하니 닫힌 대문을 보고 있었다.

    “오라버니, 어서 가요.”

    몇 걸음 가던 일촌금은 진관보가 따라오자 소리 높여 불렀다.

    “그래, 간다.”

    진관보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아쉬움을 감추고 일촌금의 뒤를 따랐다.

    한편, 다시 연못으로 돌아와 앉은 심협은 어째서인지 바로 금빛 밧줄을 제련하지 않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좀 전에 전병을 건네며 손이 닿았을 때, 그는 진관보의 몸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언뜻 느꼈다. 그리고 진관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시 확인한 후에야 그 느낌이 기우가 아님을 확신했다.

    진관보는 안색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분명 숨은 병이 있었다. 자신이 예전에 앓았던 것과 거의 비슷한 병이었다. 체내에 원기가 부족했던 것이다. 어떤 연유로 병에 걸린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특이한 침구술(針灸術) 같은 것이 크게 상한 원기를 봉(封)하고 있었다. 덕분에 병이 표출되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병을 봉한 이 방법은 매우 오묘했다. 분명 인체의 경맥과 오장육부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야 시전이 가능한 것으로, 지금 심협의 수련 수준으로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아직 연기기 수사인 영락은 더욱 불가능할 터. 그렇다면 누구란 말인가?

    “혹시…… 마 파파인가?”

    심협은 머릿속에 머리가 허옇게 센 노파의 모습이 스쳤다.

    진관보의 병증을 봉한 것이 정말로 그 노파라면, 그녀는 법력을 잃기 전에 분명 벽곡기 이상의 수준에 이르렀을 것이다.

    하지만 심협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별다른 도움도 되지 않는 생각은 접어두고, 다시 밧줄을 제련하려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집 전체가 갑자기 맹렬히 흔들리더니 땅이 요동치듯 울렸다. 마치 땅속에서 용이 몸을 뒤집는 것만 같았다. 이어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마을 어귀에서부터 전해졌다. 동시에 거대한 무언가가 마을로 접근하는 것이 느껴졌다.

    “설마…… 요괴 짐승들의 습격인가?”

    심협은 미간을 찌푸리며 빠르게 밧줄을 팔에 감고는, 벌떡 일어나 뛰쳐나갔다.

    이제 그는 장수촌의 일원이 되었으니, 요괴들이 습격을 좌시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마침 수련도 크게 증진되어 요괴들은 연습 상대로 적합했다.

    생각에 잠긴 채 빠르게 내달리던 심협은 얼마 가지 않아 우뚝 멈춰 섰다. 앞쪽 큰길에 왜소한 두 아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진관보와 일촌금이었다.

    일촌금은 접질린 것인지 발목이 발갛게 부은 채로 넘어져 있었다.

    “여기에 있지 말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거라!”

    심협은 두 아이에게 소리쳤다. 이곳이 마을 깊숙한 곳이라고는 하나, 조류 요괴가 있다면 결코 안전하지 않을 터였다.

    “신선 형, 일촌금이 발을 접질려서 걷지를 못해요.”

    진관보는 심협이 다가오자 다급히 말했다.

    심협은 소녀의 부어오른 발목을 보고는 말없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변에 다른 집이 있다면 우선 아이들을 피신시키려 한 것이다.

    하지만 심협의 거처가 너무도 외진 곳에 있던 터라 인근에는 집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마을 입구 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상황이 매우 급박한 듯했다. 이 아이들을 마 파파가 있는 곳으로 보내고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터였다.

    심협은 두 아이를 번쩍 안아 올려 재빨리 자신의 거처로 되돌아갔다.

    “둘 다 이곳에 숨어 있거라. 절대로 나와서는 안 돼! 내가 요괴들을 물리치고 돌아와서 치료해주마.”

    심협의 말에 진관보가 의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신선 형 안심하세요. 저희 이곳에 얌전히 있을게요. 제가 일촌금을 지키고 있을 거예요.”

    그 말에 고통스러워하던 일촌금의 표정이 다소 풀어졌다. 이 작은 여자아이도 용기를 얻은 듯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심협은 두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웃어 보이고는 몸을 돌렸다. 이어서 추풍보를 시전했다. 지난번에 광표에게 쫓기면서 목숨 걸고 도망치는 도중에, 추풍보에 대한 깨달음이 있었다. 게다가 벽곡기에 진입하여 체력도 증가하였기에 그의 보법(步法)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큰길로 가기보다는 마을 곳곳을 뛰어넘어 곧장 마을 입구로 향했다. 이어서 건물 지붕 위로 솟구쳐 올랐는데, 몸이 매우 가볍고 빨랐다. 그가 내달리는 길에 서 있던 사람들은 그저 바람 부는 소리만 들었을 뿐, 고개를 돌려 보면 심협은 이미 멀리 가버린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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