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97화 (97/1,214)
  • 97화. 피수결(避水訣)

    천지영기는 연못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천지간(天地間)에서 끊임없이 유입됐다. 보통의 경맥은 약간의 영기만 흡수할 수 있을 뿐이지만, 20개의 법맥은 마치 오는 영기라면 모두 빨아들이듯 손쉽게 영기들을 흡수했다. 특히 법맥에 분포되어 있는 혈들은 마치 식탐이라도 부리듯, 유입되는 영기들을 허겁지겁 흡수해댔다. 이전보다 10배는 더 빠른 속도였다.

    이 영기들은 법맥을 따라 체내를 빠르게 순환하다가 결국 단전으로 유입됐다.

    단전이 끊임없이 채워짐에 따라, 남은 법력들은 단전에서부터 흘러나가 20개의 법맥에 나뉘어 들어갔다. 그러자 심협의 몸에 일었던 파란 빛의 띠는 더욱 짙어졌다.

    약 1각 만에 단전과 20개의 법맥에 법력이 가득 찼고, 체내의 법력은 예전보다 두 배로 늘어 있었다.

    충만한 법력이 몸속에서 거대한 강처럼 흐르고, 단전에서 타는 듯한 작열감이 끊이지 않자, 심협은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내가 정말 이 20개의 법맥으로 벽곡기에 진입한 것인가? 최고 경지의 도체(道體)를 지닌 자도 불가능한 일인데…… 이 몸에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심협은 여전히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믿기 어려웠다. 하지만 체내에 일어난 변화는 분명 사실이라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심협은 서서히 눈을 뜨고 물 법술인 어수지술(御水之術)을 운공하며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오른팔 법맥 안에 있던 법력들이 솟구쳐 나가 순식간에 손끝에 이르렀고, 촤악 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발밑에서 연못의 물이 솟구쳤다. 물줄기는 그의 손끝을 맴돌았다.

    심협은 오른손을 내려다보며 눈빛을 빛냈다. 그가 손을 들 때부터 법술을 시전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거의 찰나였다. 어수지술의 시전 속도도 이전보다 몇 배는 빨라진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했다. 지금 그는 단전이 오른팔까지 자라난 것과 같은 상태이니 오른팔로 법술을 시전할 때 운공 시간도 줄어드는 게 당연했다.

    심협이 결인하자 그의 손끝에 맴돌던 물줄기는 순식간에 물 화살이 되어 허공을 갈랐다. 하얀 그림자가 희미하게 번지는가 싶더니 근처에 있던 뽕나무를 맞혔다.

    촥!

    경쾌한 소리에 이어 물 화살이 한 아름이나 되는 나무를 단숨에 관통하고 지나갔다. 그러고도 물 화살은 멈추기는커녕, 그 너머의 담장까지 그대로 관통하며 무너뜨렸다.

    심협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 화살의 위력에 감탄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가 파악하기로는 지금 자신의 체내 법력이 어지간한 벽곡 초기 수사의 3배는 될 터였다. 즉, 벽곡 중기의 수사와 비슷한 수준이리라. 그러니 어수지술이 이 정도 위력을 발휘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는 잠시 우물을 내려다보다가 갑자기 머릿속에 무언가 떠오른 듯, 그대로 연못 밖으로 나오더니 양손을 기이하게 결인하며 무언가 외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온몸에 파란 빛이 일었고, 곧 두께가 1촌에 이르는 반투명한 파란 빛의 막이 그의 몸을 둘렀다. 이 빛에는 파도 같은 파란 빛 그림자가 일렁이는 것이, 언뜻 보기에는 몸에 물결막이 생겨난 것 같았다.

    심협은 이 파란 빛의 막을 훑어보고는 손발을 움직여 보았다. 하지만 별다른 느낌은 들지 않았다. 마치 파란 빛의 존재 자체가 없는 것만 같았다.

    그는 우물로 다가가서 아래로 뛰어내려 몸을 꼿꼿이 편 채 안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물물에 빠질 때도, 물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의 몸을 두른 파란 막도 마치 거대한 물방울처럼,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우물물에 잠겼다. 심지어는 물결도 거의 일렁이지 않았고, 우물물은 파란 광막에 막힌 듯 전혀 침투되지 않았다. 게다가 심협은 마치 땅 위에서처럼 편하게 숨을 쉴 수 있었다.

    신기한 일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 파란 광막과 그 주위 우물물 사이에 어떤 연결이 생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에 심협이 법력을 운공하자 광막의 파란 물결이 갑자기 빛났고, 그 주위의 우물물도 영향을 받은 듯 요동치기 시작하면서 밀어내는 힘이 생겨났다.

    푹!

    기이한 소리에 이어 심협과 광막은 물속으로 잠겨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헤엄치는 것보다 훨씬 빨랐다. 보통 사람이 육지에서 달리는 것과 비슷할 정도였다.

    ‘이 피수결(避水訣)은 실로 오묘하구나!’

    심협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 전혀 물의 저항을 받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다. 그동안 물 안에서의 움직임이 고민이었는데, 피수결에 이런 뜻밖의 효과가 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우물은 깊이가 족히 7, 8장은 되었는데, 속도가 워낙 빠르다보니 금세 바닥에 이르렀다.

    심협은 우물물 바닥에 서서 어깨를 풀어보았다. 우물 안이 별로 넓지 않아 제대로 잠수해보기가 힘들었다.

    어쨌든 피수결의 오묘함은 놀라웠다. 이 정도 깊이까지 들어왔는데도 수압이 느껴지지도, 움직임에 제약이 생기지도 않았다. 이제 그에게는 물속과 땅 위가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심협은 제대로 시험해보고 싶은 충동이 생겨 두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는 과거 병치레를 하던 때에 수련이나 신선, 귀신에 관한 잡서만이 아니라 기문이지(奇聞異志)들도 읽었었다. 이때 그는 이 넓은 세상 각지에 수많은 생명체가 있으며, 영험한 곳에서는 각종 보물이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한 광활한 수역(水域)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육지보다 더 많고 다양한 생명체가 살고 있고, 보물들도 넘쳐난다고 했다. 사대주(四大洲)의 강과 하천, 호수 곳곳은 사실 무수히 많은 보물을 가지고 있는 보고(寶庫)인 것이다.

    다만 인간 수사는 물속에서 오래 머무를 수가 없어, 물속의 보물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이제 심협은 피수결을 익혔으니 물속에서 보물을 찾기가 매우 수월할 것이다.

    꼭 보물을 찾을 수 있다는 것 외에도 목숨이 위험할 때, 도피 수단이 하나 더 생긴 것이기도 했다. 지난번 고화령에게 쫓겨 도망 다녔던 때만 해도 그렇다. 그때 피수결을 완성했더라면, 고화령이 제아무리 빠르고 신묘한 추적술을 가졌다 한들 아무도 모르게 물속으로 도주하는 자신을 찾지는 못했을 것이다.

    심협은 이내 생각을 정리하고는 손을 결인하여 피수결을 조종했다. 그러자 광막이 회전하기 시작했고, 그는 순식간에 수면까지 떠올랐다. 하지만 우물 입구까지는 아직 거리가 꽤 있었다.

    심협은 한 손을 휘둘러 어수지술을 시전해 물 밧줄을 만들었다. 한쪽 끝은 우물 밖 뽕나무에 감고 반대쪽은 자신의 몸에 감은 후 밧줄을 이용해 나가려 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물 밧줄이 그의 몸을 두른 광막에 닿자 그대로 튕겨져 나갔던 것이다.

    “헛! 피수결에 방어 기능까지 있단 말인가?”

    심협은 조금 놀라 한 손으로 물 밧줄을 잡고 끌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광막이 위로 솟구쳤는데, 속도가 매우 빨라 미처 대비할 틈도 없이 물 밧줄을 감아둔 뽕나무에 충돌하고야 말았다.

    쿵!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는 나무에 세게 부딪치고는 반동력으로 튕겨 나왔다. 이에 비틀거리며 가까스로 넘어지지 않고 착지할 수 있었다.

    심협은 계속 요동치는 나무를 보고 이어서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는 광막을 보더니 입을 삐죽이며 한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연못에서 물 화살이 나타나 그의 오른쪽 허벅지를 향해 날아들었다.

    팍!

    물 화살은 파란 광막에 충돌하자 허무하게 터져나가 수많은 물방울이 되어 흩어졌다. 하지만 파란 광막은 약간의 흔들림만 보였을 뿐, 이내 원래 상태를 회복했다.

    “정말 대단하구나! 하하하!”

    심협은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는 다시 손을 들어 물 화살을 불러내 이번에는 온 힘을 다해 자신에게 발사시켰다.

    쐐애액!

    물 화살은 하얀 그림자만 남기고, 귀가 따가울 정도의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허공 갈랐다.

    퍼펑!

    조금 전보다 훨씬 큰 굉음에 이어 광막이 미친 듯이 요동쳤고, 파란 빛이 마치 파도처럼 일렁였다.

    심협은 화살에 직격당한 오른쪽 다리가 떨리는 것을 느끼며, 세 걸음을 물러선 후에야 겨우 몸을 가눌 수 있었다.

    그는 손을 결인해 팔에 있는 법력을 광막에 주입했다. 그러자 광막 표면에 파란 빛이 가득 차더니, 물 화살은 순식간에 터져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광막은 몇 차례 흔들리고는 다시 본래 상태를 회복했다.

    심협은 다시 파란 광막을 살피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방금의 물 화살은 전력을 다한 연기기 수사가 공격한 것과 맞먹는 것인데, 대수롭지 않게 막아내다니. 피수결에 피수(避水, 물을 피함) 기능 외에 이토록 뛰어난 방어력까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 했다. 이 정도라면 벽곡기 수사의 공격에도, 어느 정도 버텨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내게도 어엿한 방어 법술이 생겼구나!”

    지금까지는 어수지술(御水之術)로 물 방패를 만들어 방어했지만, 이는 보통의 방패 정도에 불과했으니, 어찌 피수결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심협은 결인하여 광막을 없앤 후 품속에서 금빛 밧줄을 꺼냈다.

    “이전에는 수련이 부족하여 이 밧줄을 조종할 수가 없었지. 그러나 이제 벽곡기에 진입했으니, 한번 제대로 위력을 시험해보자!”

    그는 곧장 공법을 운공하여 법력을 서서히 밧줄에 주입해 보았다.

    처음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법력이 점점 더 주입됨에 따라, 밧줄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표면에 조금씩 금색 빛이 일기 시작하더니, 그 빛이 점점 많아져 하나로 합쳐친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밧줄 전체가 금색 빛으로 반짝였다.

    심협은 두 눈을 빛내면서도,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부기를 조종하는 방법은 알아도, 법기를 조종하는 방법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부기의 조종법은 부적과 비슷한 반면, 그 안에 금제(禁制)가 포함된 법기는 특수한 수단으로 제련(祭煉)한 후에나 조종이 가능했다.

    ‘일단 한번 시도해보자. 실패하면 그때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그리 생각한 심협은 양손을 결인하여 부기를 조종하는 것처럼 금빛 밧줄 안의 금제를 자극했다.

    하지만 법력을 더 주입한 그는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금빛 밧줄 안에 무형의 힘이 있어, 법력이 더 주입되는 것을 막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이상의 법력은 그대로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아, 제련 방법이 없으니 조종할 수가 없구나!”

    심협은 밧줄을 어루만지면서 탄식했다. 못내 아쉬웠던 것이다.

    평소 같으면 여기서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수촌은 안전하지 않았다. 언제 막강한 요괴가 습격할지 모르지 않는가? 그때 쓸 만한 법기가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심협은 잠시 묵묵히 앉아 있다가, 다시 밧줄에 법력을 주입해보았다.

    하지만 달라질 것은 없었다.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법력이 주입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무형의 힘이 법력 주입을 막은 것이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이번에는 양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주위로 파란 법맥 빛의 띠가 6줄기 나타나더니, 조금 전의 몇 배나 되는 법력을 동시에 밧줄로 주입했다. 이를 통해 매섭게 무형의 금제를 공격했다.

    그러나 이 무형의 방해물은 그의 예상보다 훨씬 공고했다. 어떤 공격이든 마치 태산처럼 버티고 막아낸 것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