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96화 (96/1,214)

96화. 하늘도 놀랄 만한 자질

숨 몇 번 고를 정도의 시간 만에 심협의 단전 내 법력은 모두 액체 형태로 변해버렸고, 칼로 쑤시는 듯한 고통도 빠르게 사라졌다. 이제 오히려 매우 편안한 느낌마저 들었는데, 마치 단전에 따뜻한 물이 든 것만 같았다.

이러한 체내의 변화에 심협은 놀랐고, 무엇보다 기뻤다.

좀 전까지 이어지던 법력의 충돌은 기체 형태의 법력이 액체 형태로 전환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녹아든 법력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응결되어 점점 순도가 높아지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완전히 융화되면 결국 액체화된다.

심협은 마음을 가다듬고 묵묵히 무명공법을 운공했다. 단전 안의 법력도 점점 안정되어갔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때는 아니었다. 법력이 액체화된 것은 벽곡기 진입의 첫걸음일 뿐이다. 진정한 난관은 그다음의 응련법맥(凝練法脈)이다. 만일 여기서 실패한다면 지금껏 이룬 것은 모두 무용지물이 된다.

응련법맥이란, 체내와 단전을 서로 이어주는 경맥을 개조하는 것이다. 이렇게 개조된 경맥은 법력의 보양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경맥이 된다.

<무명천서>에 따르면, 문파마다 공법 수련 방법이 다르기에 응련법맥의 방법도 서로 다르다. 비교적 안전한 방법은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고, 반대로 빠른 시간에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상대적으로 위험이 크다. 그중 <무명천서>에 기재된 방법은 가장 직접적이면서 가장 격한 방법이기도 했다. 원래의 경맥을 파괴하고 법력으로 다시 그 경맥을 만드는 방법이다.

스스로 경맥을 파괴하는 것부터가 무척 위험 부담이 큰 것이다. 일이 틀어지면 최소한 장애가 생기거나 심하면 목숨까지 잃을 수도 있다.

심협은 조심스럽고 신중한 성격이라 다소 오래 걸리더라도 안전한 방식을 원했지만, 지금 그에게는 시간이 부족했다. 게다가 <무명천서>에 기재된 방법은 이 한 가지뿐이니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심협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는 잡념을 접어둔 채 서서히 두 눈을 감았다. 그는 계속해서 연못을 통해 천지영기를 흡수해 단전을 채웠고, 한편으로는 서서히 액체화된 법력을 조종하여 단전 안에 소용돌이를 만들어 운공의 속도를 높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단전 안에서 작열감이 들기 시작했다. 단전 안의 소용돌이가 점점 빨라짐에 따라 작열감도 커져갔다. 마치 단전 안에서 불덩이가 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심협은 당황하지 않고 계속 시도했다. 그러자 단전이 맹렬히 떨리면서 소용돌이 중심에서 법력이 줄기줄기 튀어나오더니 엄지손가락 굵기의 파란 액체 덩어리를 이루었다.

곧이어 파란 액체 덩어리가 단전에서부터 올라와 수삼양경(手三陽經) 중 하나인 수양명대장경(手陽明大腸經)에서부터 두 팔등까지 관통했다. 그리고 이내 양손 식지(食指, 집게손가락. 검지라고도 한다)에 이르렀다. 그 안에서는 열류(熱流)가 빠르게 요동쳤다.

순식간에 모든 경맥이 파란 법력으로 채워졌다.

“파괴!”

심협이 나지막이 외치자 수양명대장경 전체가 맹렬히 떨리더니 모조리 부서지면서 극심한 통증이 엄습해왔다.

그리고 그때, 여러 줄기의 가느다란 파란 선이 부서진 경맥 안에서 떠올랐다. 이 선들은 부서진 경맥 파편을 감싸더니 왕성한 생명력을 발산했다. 덕분에 부서진 경맥은 빠르게 회복되어갔다.

숨 몇 번 들이마시고 내쉴 짧은 시간에 새로운 경맥이 형성됐다.

그렇게 새로 형성된 수양명대장경 표면에는 어렴풋한 파란 빛이 있었다. 예전보다 더 확장되어 있었고 또한 더 견고해진 상태였다.

다음 순간, 이 경맥이 격렬히 떨리더니 다시 한번 부서졌다.

하지만 왕성한 생기로 가득한 파란 선들이 번득이며 부서진 경맥을 다시 형성시켰다.

그리고 그때부터 경맥은 떨리고, 부서졌으며, 파란 선들로 인해 다시 형성되기를 반복했다. 그런 일이 무려 아홉 차례나 반복된 후에야 모든 것이 멈추었다.

- 우우웅!

심협의 양팔에서는 기이한 소리가 울렸고, 등 위로는 맑고 투명한 파란 빛이 나타났다가 번득이며 사라졌다.

심협은 새로 생긴 법맥 안에서 마음대로 흐르며 요동치는 법력을 느끼고는 흥분을 감추기가 쉽지 않았다. 이토록 순조롭게 모든 과정이 이어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하지 않았던가.

비록 안을 직접 들여다볼 수는 없었지만,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수양명대장경 전체에는 이미 천지개벽 수준의 변화가 나타났다. 적어도 두 배는 확장되었고, 훨씬 견고해졌으며, 거의 소가죽만큼 탄성도 커졌다.

이제 이 두 손으로 법술을 시전하면 그 위력은 지금까지보다 배는 강력할 것이고, 시전하는 속도 또한 훨씬 빠를 터였다. 게다가 법맥은 천지영기도 더욱 빨리 흡수할 수 있고, 단전처럼 법력을 저장할 수도 있다. 그러니 몸에 법력을 저장할 공간도 더욱 커진 셈이다.

<무명천서>에 기재된 대로라면 새로 생겨난 법맥에 담을 수 있는 법력은 단전에 담을 수 있는 양의 1할 정도다. 하지만 수련을 이어간다면 더욱 확대되어 더 많은 법력을 저장할 수도 있게 된다.

‘다음 과정들도 지금까지처럼 순조로우면 좋겠구나.’

심협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애써 흥분을 가라앉혔다.

* * *

응련법맥이 벽곡기 진입의 상징이라고는 하나, 앞으로의 수련 성취를 결정하는 관건은 얼마나 많은 법맥(法脈)을 응련해 내느냐에 달려 있었다. 수사에게 응련법맥의 기회는 일생을 통틀어 단 한 번뿐이기 때문이다. 한번 법맥을 만들어 자리를 잡은 후에는 다시 응련법맥을 하기가 힘들었다. 하늘을 거스를 정도의 진귀한 보물이나 그에 준하는 기연이 있어야만 가능할 정도다.

얼마나 많은 법맥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주로 체내 법력의 양과 응련법맥 과정에서 제때에 천지영기를 흡수할 수 있는지에 따라 결정됐다. 이 두 가지는 수련하는 공법 그리고 수사의 자질과 큰 연관이 있다. 물론 훌륭한 단약의 도움까지 받는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무명천서>에 따르면, 평범한 수사들은 외력의 도움의 도움을 받을 경우 두 개에서 여섯 개의 법맥을 응련해 낸다. 도체를 지닌 자라면 간혹 여덟 개 이상의 법맥을 응련하는 자도 있다. 최고 경지의 도체를 지닌 자라 해도 열두 개의 법맥까지만 응련할 수 있다는 것이 <무명천서>의 설명이었다.

어쨌거나 법맥이 많은 것을 싫어할 수사는 없으니, 다들 이 기회에 최대한 더 많은 법맥을 응련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과도한 욕심이야말로 수많은 연기기 수사들이 벽곡기에 진입하지 못하게 하는, 나아가 오히려 중상을 입히는 원흉이었다.

심협은 머릿속으로 이러한 내용을 한차례 되짚어보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계속 법력을 조종하여 새로 만들어진 수양명대장경을 보양했다. 동시에 다시 공법을 운공해 수삼양경(手三陽經)에 속하는 수소양삼초경(手少陽三焦經)을 다시 만들고 있기도 했다.

수삼양경은 수삼음경, 족삼양경, 족삼음경과 함께 사람의 십이경맥에 속한다. 이는 기경팔맥과 마찬가지로 모두 단전을 중추로 삼고 있다. 대부분의 공법들은 시전할 때 주로 양손을 사용하므로, 절대다수의 수사들은 응련법맥을 할 때에도 가장 먼저 수삼양경과 수삼음경에 해당하는 여섯 경맥을 선택하곤 했다. 그러면 양손으로 법술을 시전하는 속도와 위력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경맥이 파괴되고 재형성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시간은 흘러갔다.

그러는 동안 심협은 계속해서 수삼양경과 수삼음경에 해당하는 여섯 경맥을 순서대로 재형성해갔다. 그는 이 과정들을 모두 단번에 성공해낸 덕에 자신감이 매우 높아진 상태였다. 비록 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입을 수도 있음을 알고 있지만, 자신의 단전과 법력 흡수 속도가 이를 충분히 감당하자 어쩔 수 없이 욕심이 들었다. 양발과 관련이 있는 족삼양경과 족삼음경의 여섯 경맥도 응련법맥을 해볼 생각이 든 것이다.

* * *

보름 후의 새벽.

심협이 머무는 집에서 청아하고도 호방한 휘파람 소리가 허공을 가르며 퍼졌다. 이 소리는 반주향(*半炷香: 향 반 개가 타는 시간, 약 15분)가량 이어지다가 점점 사라져갔다.

우물 옆의 연못 안에는 심협이 두 발을 벌리고 서 있었다. 그는 두 주먹을 허리 옆에 둔 자세로 고개를 천천히 숙였는데, 두 눈은 신기하리만치 빛나고 있었다.

방금 그는 십이경맥 중 마지막인 족소음신경(足少陰腎經)의 응련법맥에 성공했다. 이로써 열두 개의 법맥을 응련해낸 것이다. 달리 말해 이제 양손으로 법술을 시전하면 그 위력과 시전 속도 모두 예전의 6배에 달하게 됐다는 뜻이다. 게다가 양발의 능력 또한 크게 향상되었으니 답수결을 시전한다면 분명 물이 흐르는 반대 방향으로 몇 시진이나 달릴 수 있을 터였다!

“정말 상상도 못했다. 꿈속에서 내가 이러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니……. 이제 응련법맥은 거의 완성이다.”

심협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아마도 자신이 천지영기를 흡수하는 속도가 최고 경지의 도체를 지닌 자보다 더 빠른 것이 이런 성취의 원인이리라.

그런데 법력을 조종해 새로 형성된 경맥을 보양하려던 그의 갑자기 안색이 굳어졌다. 방금 전까지 단전 안에서 평온한 상태였던 법력이 어느 순간 그의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 운공되기 시작하더니 소용돌이를 이룬 것이다. 게다가 운공 속도가 점점 더 빨라져 이제 두어 번 호흡할 정도의 시간 만에 조금 전보다 몇 배나 빨리 운공되고 있었다.

“이, 이게 어찌 된 것인가?”

심협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르며 단전 안에서 요동치는 법력을 잠재우려 애썼다. 이 중요한 때에 단전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다면 아직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한 법맥들이 무너짐으로써 지금까지의 과정이 모두 물거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전 안의 법력 소용돌이는 이미 통제를 잃은 후라 심협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설마…… 너무 욕심을 부려서 역효과가 난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자 심협은 식은땀을 흘렸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런데 그때, 단전 안의 법력 소용돌이가 심하게 떨렸다. 이어서 가벼운 소리가 몇 차례 울렸고, 법력이 변한 파란 액체들이 소용돌이 안에서 떠올랐다. 그 액체들은 분분히 열류(熱流)가 되어 체내 경맥으로 파고들었다.

“기경팔맥? 서, 설마…….”

심협은 전신의 경맥을 따라 빠르게 흐르는 법력에 스스로도 놀랐다.

이 여덟 개의 경맥은 바로 임맥(任脈), 독맥(督脈), 충맥(衝脈), 대맥(帶脈)을 포함한 기경팔맥이었다. 전신의 요혈 6곳이 분포되어 있고 십이경맥과도 서로 통하여 거의 전신을 관통하는 경맥이었다.

이 경맥들은 십이경맥과는 달랐다. 십이경맥은 파괴되거나 중상을 입으면 서서히 회복시킬 수 있도 있지만, 기경팔맥이 파괴될 경우 제때 재형성되지 않으면 즉사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불길한 생각이 자꾸 들자 그는 슬쩍 겁이 났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해보기도 전에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발기는 듯한 통증이 전해졌다.

그는 심하게 경련했고, 양손으로 머리를 움켜쥔 채 바닥을 굴렀다. 허나 그토록 고통스러운데도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이대로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다음 순간, 청량한 기운이 부서진 여덟 경맥에 흐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심협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편안함을 느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의 몸은 다시 경련했고, 방금 전보다도 더욱 심한 통증이 엄습해왔다.

이처럼 죽을 듯한 고통과 더없는 편안함이 아홉 차례나 반복된 후에야 이 과정도 멈췄다.

이 무렵, 심협은 이미 기력이 다한 채 연못 안에 늘어져 있었다. 안색은 창백했고, 미동도 하지 못했다.

족히 반 시진은 지난 후에야 심협의 얼굴에는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제야 팔로 몸을 지탱해 겨우 몸을 일으켜 앉을 수 있었다.

지금의 심협은 온몸을 뒤덮었던 통증이 사라졌고, 단전 안에서 요동치던 법력도 가라앉은 상태였다.

그는 급히 가부좌를 틀고는 눈을 감고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자신의 체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아보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눈을 감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눈을 번쩍 떴다. 두 눈은 휘둥그레진 상태였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스…… 스무 개라니! 이건 꿈인가? 아…… 그렇지. 꿈은 맞아. 허나 아무리 그래도…… 게다가 꿈이면 또 어떠한가?”

심협은 감출 수 없는 기쁨과 흥분에 춤사위가 절로 나왔다.

곧이어 그는 다시 눈을 감고 단전에 집중한 채 무명공법을 운공해 보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몸 곳곳에서 연속으로 폭발음이 울렸다. 심지어 가부좌를 튼 그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몇 촌쯤 더 커지기도 했다.

그의 몸 앞뒤에는 수정처럼 투명한 파란 빛의 띠들이 나타났는데, 대략 스무 개 정도였다. 이 빛의 띠들은 서로 교차하며 둘러싸이더니, 심협의 사지와 머리를 관통했다. 그 안에서는 은은한 파란 빛이 끊임없이 흘렀다.

빛의 띠들은 서로 완전히 얽힌 상태였으나, 모두 단전 위치에서 서로 연결되고 있었다. 심협이 응련법맥으로 만들어낸 20개의 법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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