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95화 (95/1,214)

95화. 첫 시도

심협은 생각에 잠긴 채 연못에서 나와 뭍으로 올라왔다. 그가 발을 한번 구르자 물방울들이 순식간에 옷에서 떨어져 나와 주변 땅으로 스며들었다. 그의 옷은 마치 새것처럼 말라 있었다.

심협은 집 안을 두 바퀴 거닐고는 대문을 나서 영락의 거처로 갔다. 비록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혹시라도 벽곡기에 이르는 데 도움이 될 방법을 그녀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예전에 장수촌에 벽곡기 수사도 있었다고 하니 어쩌면 그가 유언이라도 남겼을지 모르는 일 아닌가.

잠시 후, 심협은 거처로 돌아와 다시 연못 안에 가부좌를 틀고는 가볍게 탄식했다. 역시나 영락은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보아하니 이 일은 오롯이 내 힘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겠군.”

마음을 가라앉힌 심협은 다시 한 손을 쫙 펼쳤다. 장심에서 파란 빛이 일렁였다. 그러자 연못물이 요동치더니 물의 구(球) 하나가 떠올라 그의 장심으로 들어갔다. 물의 구가 회전하자 그 안에서 검은 물 동굴이 나타났고, 곧이어 반인반수의 새우 요괴가 그 안에서 튀어나왔다. 추두였다.

추두는 땅에 내려서자마자 금황색 철퇴로 가슴 앞을 막고는 빙빙 돌며 주위를 살폈다. 머리 위에서는 두 개의 촉수가 요동쳤다.

“추두 도우, 당황하지 마시오. 적이 있어서 부른 게 아니오.”

심협은 추두가 바짝 긴장해 경계하는 모습에 웃으며 말했다.

“뭐요? 그럼 왜 부른 거요? 내 한창 수련 중이었단 말이오!”

추두는 언짢은 듯 따졌다.

“추두 도우가 이리 부지런히 수련하는 줄은 내 미처 몰랐구려! 하하하!”

심협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당연한 일 아니오? 우리 하족(蝦族)들의 옛말이 있소. 목숨이 끊어져야 수련도 끝난다. 실력이 부족하면 인간에게 노역을 당한다!”

추두는 아직 심협에게 감정이 좋지만은 않은 듯 마지막 말을 하며 눈을 번득였다.

“추두 도우, 우리는 노역을 시키고 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라 하지 않았소? 내 말한 것은 지키는 사람이오. 이번에 도우를 부른 것도 가르침을 받고 싶어서요. 혹시 벽곡기로 진입하는 데 도움이 될 방법이 있겠소?”

심협은 추두의 원망을 자르고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인간의 수련 방법은 나도 잘 모르오.”

추두는 고개를 꺾고 심협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심드렁하게 답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지금 곤란한 상황에 처해 반드시 벽곡기에 진입해야 하오. 도우가 도와준다면 내 훗날 필히 보답할 것이오.”

심협이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그대가 오늘 한 말을 꼭 기억하길 바라오. 그럼 내 수련에 대해 말해주겠소. 우리 동해 하족은 10년에 한 번씩 탈피하는데, 우리 종족의 비법으로 요력(妖力)을 벗겨진 허물에 주입했다가, 벽곡기로 진입해야 할 때 삼킨다오. 그러면 벽곡기로 진입할 확률이 크게 높아지지.”

심협의 말에 추두는 표정을 풀며 말했다.

인간이 단약을 복용하는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는 듯하구려. 혹 도우는 그 허물을 가지고 있소?”

심협은 추두의 껍질을 보며 물었다.

“내 것을 탐내지 마시오! 그건 내가 쓸 거요. 맞바꿀 게 없다면 내줄 수 없소. 그리고 그 방법이 인간에게도 효과가 있는지는 모른단 말이오.”

추두는 냉정해 보일 정도로 딱 잘랐다.

“그럼 추두 도우가 원하는 게 뭐요? 말해보시구려.”

심협이 다시 묻자 추두는 짧게 답했다.

“월화로(月華露).”

“월화로? 이런, 내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소. 허나 내 잊지 않고 훗날 꼭 챙겨주겠소. 그런데 도우는 동해에서 왔소?”

심협은 아쉬워하며 화제를 돌렸다.

“동해 하족이니 물론 동해에서 오지 않았겠소? 남해 하족이 남해에서 온 것과 마찬가지요. 그게 무슨 문제가 되오?”

추두가 반문했다.

“내 듣기로는 동해가 매우 드넓어, 천지의 보물이 수없이…….”

심협이 손을 비비며 이야기했다.

“그만하시오. 그대가 지난번에 직접 말한 것처럼 다른 물건과 교환해야 하오. 됐소. 다른 일이 없으면 어서 나를 돌려보내 주시오!”

추두는 귀찮다는 듯 심협의 말을 끊었다.

심협은 딱히 교환할 만한 물건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추두를 돌려보냈다. 꽤 실망이 컸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보아하니 통령역요로 부리는 요괴는 통령 계약의 제한을 받아 주인을 보호할 뿐, 진심으로 내 편이 되지는 않는 모양이구나.’

그럴 만도 했다. 누구든 자유롭게 살다가 갑자기 강제로 통령 계약을 맺고, 수시로 주인에게 불려가 알지도 못하는 적과 목숨 걸고 싸워야 한다면, 겉으로는 복종해도 진심으로 복종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만일 자신에게도 이득이 있다면 그제야 조금이나마 진심으로 한편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한때 사업을 했던 사람인만큼 심협은 추두를 비난할 마음이 없었다. 본래 서로 도움이 되어야만 관계도 오래갈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그런 생각이나 할 때가 아니었다. 우선은 눈앞에 닥친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어떻게든 벽곡기에 진입하지 못하면 이곳을 떠날 수 없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심협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영락을 찾아가 건량을 조금 얻어온 후, 대문을 닫아 걸고는 연못 안에 가부좌를 튼 채 3일 밤낮으로 체내의 법력을 운공했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두 눈이 수정처럼 빛났다. 정신과 기가 충만하여 체력과 정신 모두 가장 좋은 상태였다.

그는 우선 묵묵히 <무명천서>에 기재된 벽곡기 진입에 관련된 내용을 되뇌어 보았다. 그러고는 오른손을 들어 검결(劍結)을 하더니, 돌연 단전 주변의 몇 곳을 점혈하여 혈을 봉쇄했다. 그렇게 단전과 온몸의 경맥을 잠시 단절시켰다.

이어서 그는 양손을 몸 앞에 교차한 채 서서히 무명공법을 운공했다.

주변의 천지영기가 끊임없이 연못물을 통해 체내로 유입되어 법력으로 변해갔다. 그러나 심협이 단전 주변의 혈을 모두 봉쇄했기 때문에 법력들은 단전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기경팔맥(奇經八脈)에서 계속 맴돌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심협은 끊임없이 천지영기를 몸에 흡수하여 법력 안에 녹아들게 했다.

체내를 한 바퀴 운공할 때마다 경맥을 가득 채운 법력은 조금씩 더 강해졌다.

이것은 <무명천서>에 기재된 금교쇄관등루법(金橋鎖關登樓法)이라는 비술이었다. 경맥 안의 법력을 마치 누각의 계단을 오르듯 점점 더 고강하게 만들어 법력의 형태를 전환시키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는 비법이었다.

일견 쉬워 보이지만 꽤나 위험한 방법이기도 했다. 자칫하면 경맥과 단전에 부상을 입을 수도, 심지어 생명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법력을 조종하는 데 매우 뛰어나야 시도할 수 있었다. 또한 필요할 때는 반드시 제때 공법을 분산시켜야만 한다.

꿈속의 심협은 타고난 자질이 최고의 도체를 지닌 자보다도 한참 뛰어났지만, 그는 스스로 법력의 조종을 마음대로 거두고 운공할 만한 경지에 이르지 못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어쩔 수 없이 시도해보는 것이다. 물론 죽더라도 다시 부활할 수 있음을 알기에 시도하는 것이기도 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또다시 사흘이 지났다.

심협은 그때까지도 연못 안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만, 그의 경맥을 흐르는 법력은 이미 작은 물줄기에서 거세게 흐르는 큰 강처럼 변해 기경팔맥 안에서 끊임없이 솟구치고 있었다. 또한 전신의 경맥이 팽창할 대로 팽창한 것인지 찢어질 것 같은 극심한 통증까지 느껴졌다. 이미 견디기 힘든 상태라 이대로는 조만간 이 막강한 법력을 버텨내지 못할 것 같았다.

“거의 다 됐다!”

심협은 나지막이 중얼거리고는 천지영기의 흡수를 멈추었다. 그러고는 경맥 안의 지극히 진한 법력을 이끌어 사방에서 단전으로 유입되도록 했다.

이 법력들은 단전으로 향하던 중 봉쇄해둔 혈을 만나자 마치 고삐 풀린 야생마처럼 심협의 조종을 벗어나려 했다. 어찌 해볼 틈도 없이 법력들은 동시에 단전을 향해 충돌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봉쇄한 단전 주변의 혈들이 거의 동시에 열리더니 경맥 안의 법력들이 마치 둑 터진 물처럼 단전 안으로 흘러들었다.

단전 안의 법력은 이미 가득 찬 상태였기 때문에 경맥 안에 쌓여 있던 진한 법력들이 들어오자 순식간에 단전이 억지로 늘어났다. 마치 경맥이 그러했던 것처럼 단전에서도 극심한 통증이 전해졌다.

“으윽!”

심협의 두 뺨에는 비정상적인 붉은 기운이 몇 줄기 나타났고, 몸도 미세하게 경련을 일으켰다. 두 손도 떨리기 시작했고,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계속 흘렀다.

단전이 곧 터질 것 같자 심협은 깊이 숨을 들이쉬며 극심한 통증을 억지로 참았다. 그는 의식적으로 단전에 집중하면서 오른손을 들어 금교쇄관등루법으로 다시 단전 주변의 혈을 봉했다. 법력이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 순간, 더욱 강렬한 통증이 단전에서 쏟아졌다.

심협은 이목구비가 뒤틀리고 온몸에서 식은땀을 흘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양손으로 아랫배 단전 위치를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

그때, 단전에서 성긴 법력과 빽빽한 법력이 강하게 충돌했고, 심협의 복부에서는 거세게 북을 치는 듯한 거대한 폭발음이 울렸다.

그는 단전에서 생전 처음 받아보는 큰 충격을 받았다. 마치 무수한 작은 칼이 뱃속을 미친 듯이 들쑤시는 듯한 느낌이었다. 장기들이 찢어나가는 듯한 고통에 비하면 그전의 경맥과 단전에서 느껴졌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심협의 악다문 이 사이로 신음이 조금씩 새어 나왔다. 몸은 계속 덜덜 떨렸고, 콩알만 한 누런 땀방울이 쉴 새 없이 이마를 타고 흘렀다.

“어…… 어쩐지…… <무명천서에서>…… 굳건한 의지가…… 필요하다더니…… 이래서였나? 으윽.”

단전 안에서는 법력의 충돌이 점점 심해졌고, 고통도 갈수록 커졌다. 그럼에도 심협은 굳건한 의지로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고통으로 허리를 잔뜩 굽힌 채 단전을 부여잡은 양손을 꽉 움켜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기체 형태였던 두 법력이 단전 안에서 계속 충돌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줄어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법력이 적어짐에 따라 그토록 심했던 통증도 함께 사라져갔다.

“설마…… 실패로 역효과가 난 것인가? 그럼 힘들게 수련해 만든 법력도 모두 사라지는 건가? 그것만은 안 돼!”

고통이 사라졌음에도 심협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걱정을 하건 말건 단전 안에서는 여전히 법력의 충돌이 이어지고 있었다. 두 법력이 소모될수록 가득 차 있던 단전은 점점 비어갔다.

이제 심협은 육체적인 고통보다도 정신적인 고통이 더 컸다.

그런데 이때, 단전 안 가장 충돌이 심했던 곳에서 갑자기 두 법력이 충돌을 멈추었다. 이어서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졌다. 두 법력이 마지막으로 충돌한 후, 서로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서로 융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이게 무슨……?”

그 순간, 단전 안에서 은은한 빛이 일더니 투명하게 빛나는 액체 형태의 법력이 나타났다.

콰르릉! 쾅!

이 법력이 나타나자 마치 산을 뒤덮은 낙엽에 불씨가 떨어진 것처럼, 격렬하게 충돌하던 법력들이 모두 하나로 융화되어 액체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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