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94화 (94/1,214)
  • 94화. 수련

    한편, 심협은 폭포의 60여 장 아래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여덟 개의 물 밧줄이 그의 몸에 감겨 있었고, 반대쪽 끝은 산 벽의 바위에 걸려 있었다.

    영락은 심협의 등에 엎드려 있었다. 축축하게 젖어 풀어헤쳐진 머리카락 사이로 가볍게 깨문 입술이 보였다. 그녀는 남녀유별을 따질 겨를도 없이 심협의 어깨를 꼭 붙잡고 있었다.

    쾅! 쾅!

    마치 천둥이 치는 듯한 폭발음들이 저 위에서 연달아 들려왔다. 간간이 광표와 창응의 포효가 뒤섞였다.

    영락은 고개를 살짝 들어 위를 바라보았는데, 두 눈은 두려움으로 떨렸다.

    “보아하니 우리는 오늘 죽을 운명은 아닌가 보오. 꼭 잡으시오.”

    심협은 양손으로 물 밧줄을 잡았다. 그러자 그의 몸에 감긴 물 밧줄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의 촉수처럼 점점 아래의 바위를 차례로 감으며 이동했고, 두 사람은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게 됐다. 마치 여덟 개의 다리를 가진 거미가 빠르게 내려오는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계곡은 매우 깊었고, 위에 있는 두 요괴의 주의를 끌지 않으려 조심하다 보니 반 시진이나 걸려서야 겨우 바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너비가 족히 7장은 넘어 보이는 큰 하천이 흐르고 있었는데, 물살이 매우 빨랐다. 그리고 양 끝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길었다.

    법력이 거의 소진된 심협은 억지로 답수결을 시전하며 하천을 따라 달렸다. 그러다가 발을 내디딜 수 있는 곳을 찾아 영락을 내려놓고서야 겨우 한숨 돌리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죄송합니다. 심 대형께 폐를 끼쳤습니다.”

    영락은 손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쥐어짜며 그렇게 말했다.

    심협은 손으로 조용히 하라는 동작을 해보이고는 저 위쪽을 올려다봤다.

    더 이상 싸우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두 요괴의 싸움이 끝난 것인지 아니면 너무 멀어서 들리지 않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심협은 시선을 거두고는 하천으로 들어가 무명공법으로 법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영락이 조심스럽게 사방을 경계하며 호법을 섰다.

    오래 머물 곳은 아니었기에 심협은 법력이 약간 회복되자 곧바로 일어나 영락을 데리고 답수결을 이용해 달렸다.

    1각 정도를 달리니 계곡 입구였다. 시야가 탁 트인 앞으로는 꽤나 넓은 늪이 있었다. 하천의 물이 늪으로 모이고 있었다. 늪 주위로는 녹음이 우거진 것이 꽤나 아름답고 한적했다.

    “광표가 나의 내력에 호기심을 가진 듯한데, 아마 나를 가만두지 않을 것 같소. 그래도 보아하니 당분간은 안전할 모양이오.”

    심협은 사방을 둘러보고는 위험이 없는 듯하자 영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방촌산에 저리 무서운 요괴들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수도 적지 않은 것 같고요. 저 요괴들이 마을로 내려오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만약 내려왔더라면…… 백 개의 장수촌이 있다 해도 다 사라졌겠지요.”

    영락은 산봉우리를 올려다보며 두려운 듯 가볍게 몸을 떨었다.

    “산에 올라 길을 찾으려면 강력한 요괴들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을 듯하오.”

    마음이 무거워진 심협은 탄식했다.

    그 말에 영락의 얼굴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스쳐갔다.

    계곡 입구는 장수촌에서 그리 멀지 않았는지 두 사람은 금세 마을 근처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때, 저 먼 곳을 본 심협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10여 명의 장정이 허리에 포대를 걸고 손에는 바구니를 든 채 마을을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서쪽 방향을 향해 달리는 중이었다.

    “마을 서쪽 호수에 물고기를 잡으러 가는 겁니다. 가는 김에 흑화초(黑禾草)도 따오고요.”

    영락이 설명했다.

    “요괴가 출몰하는 곳인데 위험하지 않겠소?”

    심협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요괴들은 언제부터인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마을 주변에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어제 물리쳤으니 한동안은 안전할 겁니다. 게다가…… 위험한 걸 알더라도 누군가는 나가야만 하지요. 그러지 않으면 식량을 구할 수가 없으니까요.”

    영락의 표정은 어두워지다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낭자가 호송해야 하지 않겠소? 혹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지 않소?”

    심협이 다시 물었으나 영락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저들은 마을의 정예군이니 스스로를 지킬 능력이 있습니다. 게다가 제 임무는 마을을 지키는 것입니다.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마을을 떠날 수 없어요.”

    심협은 여전히 불안했으나 고개를 끄덕였다.

    장수촌이 비록 몰락한 데다가 사람도 많지 않지만, 제법 합리적인 규칙과 제도를 갖추고 있었다. 어쩌면 바로 그게 요괴의 끊임없는 위협 속에서도 마을이 유지된 비결일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곧 마을 입구에 이르렀다.

    긴 창을 들고 마을 입구를 지키던 청우는 두 사람이 무사히 돌아온 것을 보자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급히 문을 열었다.

    영락은 청우에게 물어 그 사이 마을에 별다른 일이 없었음을 확인한 후에야 심협과 함께 마을로 갔다.

    “미안하오. 아마 당분간은 나갈 길을 찾기가 어려울 것 같구려.”

    “심 대형, 그런 말씀 마십시오. 오히려 제 헛된 기대 때문에 하마터면 심 대형을 위험에 빠뜨릴 뻔했습니다. 심 대형은 앞으로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심협의 사과에 영락은 급히 손을 내젓고는 화제를 바꾸었다.

    “당분간 장수촌에 머물면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 하는데, 그래도 되겠소?”

    심협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물론이지요! 제가 마을 사람들을 대표하여 심 대형을 환영하겠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최대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영락은 기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이왕 머물게 됐으니 장수촌 사람들과 동고동락할 생각이오. 그러니 영락 낭자도 나를 특별히 대우해줄 필요 없소. 그저 거처나 하나 마련해주면 족하오.”

    “그건 문제없습니다. 심 대형의 수련에는 물이 필요한 듯한데…… 빈집 중 큰 우물이 있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이라면 지내실 만할 겁니다. 다만 여러 해 사람이 살지 않았으니 손을 좀 보도록 말해두겠습니다.”

    영락의 대답에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드리오.”

    심협이 웃으며 말하자 영락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드실지 우선 집을 보여드릴게요.”

    영락은 심협을 마을 동쪽으로 안내했고, 둘은 곧 마당이 딸린 작고 허름한 집에 이르렀다.

    끼익!

    낡은 대문을 밀자 삐걱거리는 소리가 울렸고, 먼지가 떨어졌다. 영락은 급히 한 손으로 코를 막고 다른 손으로 먼지를 이리저리 헤쳤다.

    반면 심협은 먼지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집으로 들어섰다. 집은 두 칸짜리 본채와 아래채 하나, 주방이 있는, 나름 갖춰진 작은 사합원(四合院)이었다.

    예전에 살았던 사람이 제법 신경을 쓴 티가 나는 집이었다. 오랫동안 비워둔 탓에 손봐야 할 곳들이 있었지만, 심협은 마음에 들었다.

    마당 왼쪽에는 나무 덮개가 씌워진 큰 우물이 있었다. 그 옆에 선 큰 뽕나무는 바람에 불 때마다 잎이 흔들리며 솨아아 하는 소리를 내었다.

    심협은 우물가로 가서 나무 덮개를 열어봤다. 신기하게도 우물물은 청량한 기운을 발산했다.

    “마음에 꼭 드는구려. 이곳에 머물겠소.”

    심협은 몸을 돌려 영락에게 와서 말했다.

    “그럼 사람들을 불러 정리하겠습니다.”

    심협이 만족하자 영락은 기뻐하며 밖으로 나갔다. 역시 결단력 있고 행동이 빠른 여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락은 일고여덟 명의 남녀를 데리고 돌아와 집을 청소하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심협을 공경해 마지않았던 사람들은 그가 여기 머물기로 했다는 말에 더욱 열심히 일했고, 덕분에 한 시진도 채 지나지 않아 집은 깨끗해졌다. 손볼 부분은 모두 말끔히 손을 본 상태였고, 심지어 창문에는 종이까지 새로 발라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이불과 그릇 등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가지고 오자 영락은 그들과 함께 심협에게 인사를 올리고 떠나갔다.

    홀로 남은 심협은 우물가에 앉았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망설임이 스쳤다.

    “지금 처지를 걱정만 하기 보다는 차라리 지금껏 꾼 꿈들에서 벌어진 일들 사이에 어떤 연결 고리가 있는지 알아내는 편이 낫겠지.”

    어쨌거나 꿈에서 깨면 현실로 돌아갈 수 있으니 지금의 처지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어쨌든 예전의 꿈에서 <무명천서>를 익히고 통령역요 술법을 깨달은 것을 통해 심협은 꿈속의 경험에 흥미가 생겼다. 만약 어떤 실마리를 찾게 된다거나 꿈에서 수련 경지가 더 오르게 된다면 현실로 돌아가서도 얻을 게 많을 터였다.

    “그런데 이전의 꿈들마다 그 안에 머물렀던 시간은 모두 달랐지. 짧게는 몇 시진, 길면 두 달 이상을 머물렀어. 꿈속에 머무는 시간에 규칙이 있긴 한 걸까? 이번 꿈에서는 또 얼마를 머물게 될 것인가?”

    혼잣말로 생각을 정리한 심협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한 손을 펼쳐 우물을 향해 허공에서 무언가를 끌어올리듯 움직였다.

    촤아악!

    맑은 소리가 울리더니 우물에서 물이 솟아나와 칼 모양을 이루었다. 우물물이 변한 칼은 그대로 우물 옆 땅을 찔러갔다.

    이어서 심협은 손으로 몸 앞에 원을 그렸다. 그러자 땅을 찌른 물의 칼은 심협의 손을 따라 움직이더니 땅 위에서 지름이 몇 장에 이르는 원을 그려놓고는 땅속으로 사라졌다.

    그 후로 몇 차례 묵직한 무언가를 찌르는 듯한 소리가 울리더니 땅속에서 흙으로 된 원기둥이 서서히 올라왔다. 높이가 반 장(丈) 정도인 흙의 원기둥 아래는 거울처럼 맑은 물이 받치고 있었다.

    원기둥이 옆으로 옮겨가자 땅에는 구덩이가 생겨났다. 우물 바로 옆에 있어서인지 구덩이 바닥에서부터 물이 차올랐다.

    심협이 손을 들어 물 법술을 펼치자 우물 안에서부터 물이 솟아나와 구덩이로 흘러들었다. 그리고 구덩이가 반 정도 차자 우물도 더 이상 흘러들지 않았다.

    심협은 새로 생긴 연못에 들어가 가부좌를 틀고는 무명공법을 운공했다.

    천지영기(天地靈氣)가 연못물을 통해 끊임없이 체내로 흘러들면서 비어 있던 단전이 차올랐다.

    이때 심협의 체내 경맥은 이미 모두 열려 있어, 순수한 법력이 그 안에서 점점 더 빠르게 운공되었다. 날아갈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당분간 떠날 수 없다면 그동안 수련에 매진하여 벽곡기에 이르러보자!”

    심협은 나지막이 중얼거리더니 두 눈을 감았다.

    그는 수련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는 않지만, 벽곡기가 얼마나 중요한 관문인지는 알고 있었다. 벽곡기에 이르면 수명이 200년 정도로 급격히 늘어날 뿐만 아니라, 오랜 기간 음식을 섭취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 또한, 체내 법력이 크게 증가하여 이때부터는 진정한 신통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법기를 조종하는 것과 같은…….

    벽곡기의 장점을 이야기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무수히 많은 사람이 이 경지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공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 관문을 넘어서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라서 100명 중 하나가 성공할 수 있을까 말까라는 말이 돌았다.

    특히 어려운 것은 체내 법력을 기체에서 액체 형태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는 그저 법력의 형태가 변한다는 의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로 천지개벽 수준의 탈바꿈으로, 이후의 수련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변화다.

    <무명천서>의 기록에 따르면, 벽곡기에 진입하려면 상당히 많은 것이 필요했다. 일정 수준의 자질이 있는 수사가 연기 후기의 최고봉에 이른 후로 단약 등 외물의 도움을 받고, 굳센 의지로 노력해야 하며, 운까지 따라 주어야 겨우 성공할 수 있는 것이라 했다. 그중 심협이 가진 것이라고는 아마도 최고 수준의 도체를 지닌 자질과 굳센 의지 정도일 터였으나, 그나마도 확신은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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