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85화 (85/1,214)
  • 85화. 백씨 집안

    백소천을 공격해가던 고화령은 자신에게 날아드는 황색 빛을 보고는 재빨리 삼첨조자를 휘둘렀다. 삼첨조자는 자수정으로 이루어진 손으로 변해 황색 빛을 잡으려 했다.

    황색 빛 안의 물건이 급격히 커졌는데, 바로 황토색 동전이었다. 동전은 순식간에 집채만 해져 자수정 손과 충돌했다.

    까깡!

    거대한 금속성이 울렸다.

    자수정 손은 마치 떨어지는 낙엽처럼 밀려나 다시 삼첨조자가 되었다.

    한 손으로 삼첨조자를 받아 쥔 고화령은 태산이 짓누르는 듯한 강력한 반동력에 연달아 세 걸음을 밀려난 후에야 겨우 제대로 설 수 있었다. 체내의 법력이 마치 끓는 물처럼 요동쳤고, 삼첨조자는 표면에 황색 빛이 어렴풋이 비치면서 매우 무거워져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게 됐다.

    “낙보동전(落寶銅錢)! 귀삼장군, 백강풍(白江風)이오! 얼른 철수하시오!”

    고화령은 고운 눈썹을 찌푸리며 귀장에게 외쳤다. 법력 전체를 애써 거두고서야 겨우 삼첨조자를 거둔 그녀는 곧장 허공으로 몸을 솟구쳤다. 그녀의 뼈 날개에 자색 빛이 마치 불타는 것처럼 크게 일렁였다. 순식간에 고화령은 자색의 긴 무지개가 되어 번개처럼 멀리 날아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낭생과 겨루던 귀장은 고화령의 목소리에 불만스러운 듯 냉소적으로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이내 물러서더니 검은 빛줄기가 되어 고화령의 뒤를 따랐다.

    하늘의 푸른 빛은 고화령과 귀장을 쫓지 않고 백소천 옆으로 내려왔다. 빛은 몇 번 번득이다가 사라졌고, 잿빛 옷을 입은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순 안팎의 노인은 왜소했고, 양 볼은 수척하게 꺼졌으며, 머리는 회백색이었다. 하지만 눈빛이 예리했고, 사람을 압도하는 분위기가 전신에서 흘렀다.

    잿빛 옷의 노인은 호수에 있는 심협은 신경도 쓰지 않고 몸을 굽혀 백소천을 살폈다.

    가까스로 한숨 돌린 심협은 낭생의 부상을 살폈다.

    낭생의 온몸에는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상처가 나 있었고, 푸른 피가 묻어 있었다. 한눈에 봐도 부상이 가볍지 않았다. 철퇴 두 개를 땅에 늘어뜨린 채 선 낭생은 흉부가 크게 요동치도록 숨을 고르고 있었다.

    심협은 급히 낭생의 등에 손을 대고 법력을 주입했다. 낭생은 정신이 조금 돌아온 듯 체내의 요기를 운공하자 몸 표면에 푸른 빛이 일었다. 상처가 아물지는 않았으나 출혈은 멈췄다.

    “낭생, 오늘 고생 많았네. 돌아가서 푹 쉬게.”

    심협은 손을 떼고 물 동굴을 만들어내 낭생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그제야 호숫가로 올라왔다.

    백소천을 에워쌌던 금색 빛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그는 핏기 없는 얼굴로 땅에 누운 채 이를 악물고 있었다. 이마에서 핏줄이 움찔거리는 것이 극심한 통증을 참고 있는 듯했다.

    백소천의 몸 위에는 아직 기이한 금색 빛 몇 줄기가 남아 있었는데, 발산되는 법력 파동이 고르지 못하고 높아졌다 낮아지기를 반복했다.

    “강신술은 몸에 부담이 커 벽곡기 이상이 된후 시전해야 한다고 집안에서 정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연기기에 이 술법을 시전하다니, 실로 무모하구나!”

    노인은 그렇게 꾸짖으면서도 황색 빛이 번득이는 손바닥으로 백소천의 단전을 누르고 있었다.

    잠시 후, 칙 하는 소리가 가볍게 울린 후에야 노인은 손바닥을 들었다. 그의 장심에는 머리카락 굵기의 검고도 작은 침이 붙어 있었다.

    “셋째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고통스러운 기색이 순식간에 사라진 백소천은 나지막이 감사 인사를 했다.

    “이는 현음침(玄陰針)이다. 암기(暗器)의 명문 영롱종(玲瓏宗)에서만 사용하는, 몸을 보호하는 영광(靈光)을 깨는 지극히 악랄한 암기지. 방금 그 여자는 영롱종 사람이냐? 그런데 내 보기에 인간 같지는 않더구나.”

    노인은 작은 옥합(玉盒)을 꺼내 현음침을 넣고는 눈처럼 하얀 단약을 꺼내 백소천에게 건넸다.

    “셋째 할아버지의 안목은 역시 예리하십니다. 아까 그자는 요족입니다. 영롱종 사람은 아니고요. 일이 꽤 복잡하여 짧게는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단약을 복용해 안색이 더 좋아진 백소천은 몸을 일으켜 앉으며 말했다.

    “하면 나중에 설명하거라. 우선 강신술 후유증을 가라앉혀 주마.”

    이어서 노인은 손바닥으로 백소천의 등을 눌렀다. 그러자 눈부신 금색 빛이 번득였다.

    백소천이 급히 눈을 감고 공법을 운공하자 어지럽혀졌던 기운이 점점 평온을 되찾아갔다.

    두 사람의 운공이 금방 끝날 것 같지 않자, 심협은 호숫가에 있던 봇짐을 등에 매고 가부좌를 튼 채 공법을 운공하며 법력을 회복했다.

    반 시진쯤 지나자 노인과 백소천은 동시에 손을 뗐다.

    심협 역시 운공을 멈추고 일어나 한쪽에 공손히 섰다.

    백소천은 이미 반 이상 회복되어 있었고, 몸에 남아 있던 기이한 금색 빛은 흔적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셋째 할아버지, 이제야 소개드립니다. 여기는 심협입니다. 저의 춘추관 동문 사제이지요. 심 사제, 이분은 내 셋째 할아버지이자 우리 집안의 백강풍 장로님이시네.”

    백소천은 심협이 다가오자 노인에게 소개했다.

    “백 선배님을 뵈옵니다.”

    심협은 예를 갖추었다.

    “심 소우는 젊은 나이에 수련이 매우 비범하군. 내 멀리서 보니 소우는 통령역요의 술법에 정통한 듯하던데, 역시 영웅은 젊은이에서 나오는구려. 자네 혹시 유화성(流華城)의 심씨 집안 자제인가?”

    백강풍은 손을 들어 심협을 일으키더니 위아래로 살펴보며 미소를 지었다.

    “과찬이십니다. 저는 춘화현 사람입니다, 선배님.”

    심협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백강풍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는데, 심협을 보는 시선에 다소 기이한 빛이 스쳤다.

    “셋째 할아버지께서 제때 와주셨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목숨도 부지하지 못할 뻔했습니다.”

    백소천은 자신의 가슴을 쳐 보이며, 아찔했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한 듯 외쳤다.

    “네가 전언(傳言) 법진으로 구조 신호를 보낸 것을 족장께서 보셨다. 마침 근처에 있었던 내게 너를 구해주라 명하셨지.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냐?”

    백강풍이 물었다.

    “전언 법진?”

    심협은 백소천이 치던 금빛 법진을 떠올리며 그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말씀드리자면 깁니다. 후우.”

    백소천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춘추관이 공격받은 일부터 다행히도 두 사람이 무사히 빠져나온 것, 고화령과의 쫓고 쫓기던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순양보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고화령이 두 사람을 쫓은 이유를 춘추관의 멸문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입막음을 하기 위함이라고 둘러댔다.

    곁에 선 심협은 내심 백소천에게 감격하고 있었다. 이미 <무명천서>를 가진 자신에게 <순양보전>은 그리 필요치 않았다. 그러나 사숙조와 맹세를 했으니 반드시 <순양보전>을 지킬 생각이었다.

    “뭐! 춘추관이 멸문을 당해?”

    백강풍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제가 떠나올 때에도 춘추관에는 환난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괴와 귀신의 세력이 막강해 아마도 대부분은 화를 피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백소천은 어두운 얼굴로 무겁게 말했다.

    “춘추관은 작은 문파가 아닌데…… 심상치 않은 일이로구나. 필히 가주(家主)께 알려야겠다. 어서 돌아가자꾸나!”

    백강풍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양손에 심협과 백소천을 각각 잡았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푸른빛이 발산돼 세 사람을 감쌌고, 곧장 하늘로 솟구쳐갔다. 이어서 빠르게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백씨 집안 장로와 함께인 만큼 심협과 백소천도 이제는 매일 전전긍긍할 필요도,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며칠 후, 이들은 드디어 건업성에 도착했다.

    건업성은 지어진 지 천 년이 넘은 곳이었다. 예로부터 장강(長江) 남쪽에 위치한 주요 도시로, 동해안과도 인접해 있었다. 심협이 어려서부터 자란 춘화현성과는 전혀 달랐다.

    멀리서 보니 성벽이 길게 이어져 있고 성곽이 높이 솟아 있었다. 성루에는 대당의 깃발이 휘날렸다. 하나같이 갑옷을 입은 보초병들이 손에 쥔 병기에서는 빛이 번득였다.

    심협과 백소천은 같이 마차에 탔으나, 한 사람은 창가에 앉아 휘장을 걷어 올린 채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구경하기 바빴고, 다른 한 사람은 맞은편 한구석에 기대어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백 형, 저기 있는 5층짜리 지붕이 뾰족한 건물은 어떤 곳이오?”

    이제는 백소천을 ‘백 사형’이 아닌 ‘백 형’이라 부르기 시작한 심협이 창밖을 가리키며 물었다.

    “거기는 팔앙루(八仰樓)일세. 건업성에서 꽤 이름난 주루이지. 사실 음식은 그저 그렇지만, 지위와 명성이 높은 자들이 드나들지. 달리 말해 저곳에 출입한다는 것 자체가 신분을 상징하는 것과 도 같다네. 허나 내 보기엔 실제보다 명성이 지나치게 높네. 실제로는 그 앞의 취선거(醉仙居)만도 못하지.”

    백소천은 팔앙루를 힐끔 보더니 콧방귀를 뀌었다.

    “도련님, 어쨌거나 우리 백씨 집안의 사업인데 그리 말씀하시면 어쩝니까?”

    마차를 몰고 있던 나이 든 시종이 당황한 듯 덧붙였다.

    “저곳이 백 형 집안의 주루요?”

    심협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우리 집안 셋째 어르신 쪽에서 하시는 사업이지. 큰 어르신 쪽에서는 관여하시지 않네.”

    백소천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백 형 집안은 퇴마세가 아니오? 어찌 주루 사업을 한단 말이오?”

    심협이 의아해하며 다시 물었다.

    “퇴마만으로 어찌 집안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세 어르신의 자제들을 모두 수선(修仙)의 길을 걷게 하기도 어렵지. 게다가 손님을 초빙하거나 식솔을 부양할 때도 돈은 필요하지 않은가?”

    백소천이 웃으며 말했다.

    “백 형 집안에 응혼기 어르신이 있는데도 누굴 초빙하거나 부양할 필요가 있단 말이오?”

    심협이 또 물었다.

    “우리 백씨 집안의 수선자들만으로는 한계가 있네. 건업성 제일의 세가 위치를 공고히 하려면 권세와 재력이 모두 필요하니까.”

    백소천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오?”

    “이런 것이지. 우리 집안의 큰 어르신 쪽은 수선 쪽을 담당하시고, 둘째 어르신 쪽은 조정에 나가 관직에 계시며, 셋째 어르신 쪽은 사업으로 돈을 버신다네. 이 셋이 모두 모여 지금의 백씨 집안이 있는 것이지.”

    백소천의 설명에 심협은 생각에 잠긴 채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자 조금 감개한 심정이었다. 큰 집안을 돌보기란 쉽지 않은 것이었다.

    * * *

    중심부로 들어갈수록 길 양쪽으로 큰 건물들이 더 많아졌고, 더욱 번화해져 갔다.

    “큰 도시는 역시 다르오. 춘화현에서는 3층 건물도 보기 힘든데 이곳에는 길가에 널려 있다니. 길에도 마차며 말, 사람이 붐비는구려.”

    심협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지낸 곳이라 이런 광경에 익숙해져 있네. 오히려 춘추관에서 지낸 2년이 더 좋았지. 산에 올라 수련하고, 하산하여 한잔하고……. 사람이 적으니 서로 친해지기도 쉽고……. 매번 토집진에 가면 술 파는 춘수 아주머니가 술을 반 냥치씩 덤으로 더 줬는데…….”

    백소천은 그리운 듯 탄식했다.

    “그게 자주 만나고 친해져서 그리 해준 것이란 말이오? 백 형이 토집진 제일 미남이라서가 아니고? 갈 때마다 그 아주머니가 백 형 손을 더듬지 않았소?”

    심협이 놀리듯 말했다.

    “하하! 그야 물론이지. 내 대당 제일 미남으로 이름을 날릴 수도 있으니 말일세. 겸손하고자 그런 허울 좋은 이름을 차지하려 들지 않았을 뿐.”

    백소천은 심협의 놀림에도 도리어 웃으며 말했다.

    마차가 청석 깔린 넓은 길을 가다가 모퉁이를 돌았을 때였다. 백소천이 돌연 몸을 일으켜 앉더니 마차를 세우게 했다. 그러고는 심협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마차에서 내렸다.

    잠시 후, 백소천은 우피(牛皮)로 포장한 물건과 백자(白磁) 술병을 하나 들고 마차로 돌아왔다.

    “지난번 내 급히 돌아오느라 옥취루의 매화주도 마시지 못했네. 내 이것이 생각나 죽는 줄 알았어. 이건 장기포자(張記鋪子) 가게의 선육탕포(鮮肉湯包)일세. 한번 먹어보게. 맛이 아주 일품이라네.”

    백소천이 우피 포장을 풀자 하얗고 큰 고기 포자 만두 두 개가 있었다. 진한 고기 냄새에 심협은 절로 식욕이 돋아 사양하지 않고 덥석 베어 물었다. 입 안 가득 육즙이 퍼졌다. 백소천의 말대로 그 맛이 일품이었다.

    백소천은 그런 심협을 보며 포자 만두는 내버려둔 채 활짝 웃더니 술병 마개를 열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고기 냄새를 덮는 계화(*桂花, 계수나무의 꽃) 향기가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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