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84화 (84/1,214)
  • 84화. 귀장(鬼將)

    고화령은 주문을 외느라 두 사람의 공격을 신경 쓰지 못했다. 그러나 삼첨조자에가 자색 빛을 내뿜더니 그녀의 몸을 에워싼 채 선회하여 자색 광막을 만들어어 동전검과 송곳 앞을 막았다.

    쨍! 챙강!

    두 차례 굉음에 이어 송곳과 동전검이 모두 광막에 부딪혀 튕겨나갔다.

    그때, 휙 소리와 함께 새가 날아들 듯 그림자가 솟구쳤다. 바로 낭생이었다.

    낭생은 놀랄 만한 속도로 튀어 올랐으나, 고화령이 있는 곳에는 이르지 못하고 그 5장 아래에서부터 추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떨어지기 직전, 낭생은 낮게 포효하며 오른팔을 반 바퀴 휘둘렀다. 그러자 철퇴 하나가 검은 빛줄기가 되어 광풍을 몰아치며 순식간에 고화령을 감싼 자색 광막을 공격했다.

    꽈르릉!

    천지가 흔들릴 법한 거대한 힘이 발산되었고, 굉음과 함께 자색 광막이 심하게 떨리다가 무너졌다. 이에 고화령은 방어막 없이 그대로 드러나게 됐다.

    자색 광막을 무너뜨린 후로도 철퇴에 담긴 힘은 아직 남아서 고화령을 공격하려 했다. 철퇴의 광풍에 고화령의 옷이 미친 듯 펄럭였다.

    그런데 그때, 검은 기운이 감도는 기다란 칼이 갑자기 고화령 앞에 나타나더니 매섭게 허공을 내리쳤다.

    꽝!

    순간 거대한 굉음이 울렸고, 철퇴는 맹렬히 튕겨나가 추락했다. 검은 기운의 칼은 잠시의 틈도 두지 않고 한 줄기 도광(刀光)으로 아직 착지하기 전인 낭생을 공격해갔다.

    그때, 멀리서 푸른 빛 한줄기가 날아와 낭생의 발아래에서 회전하는 소용돌이가 되었고, 낭생은 그 소용돌이로 떨어지더니 바로 사라졌다.

    곧이어 도광이 스치자 소용돌이는 그대로 부서졌고, 그 아래의 지면도 쩍 갈라지면서 길이가 1장에 이르는 균열이 생겨났다.

    낭생이 위험에 처하자 심협이 급히 통령역요의 술법을 시전해 돌려보낸 것으로, 조금만 늦었다면 큰 낭패를 볼 뻔한 순간이었다.

    그때, 하늘에서 기다란 칼이 날아가더니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검은 갑옷과 투구를 갖춰 입은 기세등등한 갑사(甲士)였다.

    갑사의 얼굴은 검었고, 눈동자가 있어야 할 곳에서는 하얀 화염이 번득이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니었다.

    심협과 백소천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들은 이 광경을 모두 똑똑히 지켜봤다. 저 갑사 귀장(鬼將)은 고화령 뒤에 생겨난 소용돌이에서 날아온 것으로, 고화령이 통령(*通靈, 영을 통함)하여 불러낸 귀신이 틀림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봤는데, 상대의 눈에서 불길한 예감을 읽을 수 있었다.

    “무슨 일로 나를 불러낸 것인가?”

    귀장은 고화령을 보며 웅웅 울리는 불분명한 목소리로 물었다.

    “귀삼(鬼三) 장군, 행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녀 지금 강적을 만나 장군의 행차를 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화령은 귀장에게 존중과 경의를 담아 인사한 후 말했다.

    “강적? 그래, 어디 있느냐? 내 그들을 쓸어버리겠다.”

    그렇게 으름장을 놓으며 귀장이 칼을 한 차례 휘두르자 안와(*眼窩, 눈구멍)의 하얀 화염이 순식간에 크게 불어났다.

    “저 사람입니다.”

    고화령은 주저하지 않고 바로 심협을 가리켰다.

    귀장은 심협을 힐끔 보았다. 그리고 분명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는데도 바로 거대한 검은 기운이 심협에게 발사되어 갔다.

    동시에 고화령은 뼈 날개를 펼치더니 백소천에게 돌진했다.

    “그래, 와라!”

    백소천은 크게 일갈했다. 어느새 손으로 돌아와 있던 동전검과 간이 하나로 합쳐져 거대한 붉은 간이 되었고, 체내의 법력이 주입되면서 어마어마한 붉은 화염을 일으켰다.

    백소천이 팔을 휘두르자 5장에 이르는 한 줄기 검기가 붉은 간에서 발사돼 고화령을 찔러갔다.

    달려들던 고화령은 돌연 옆으로 몸을 틀어 마치 물고기가 헤엄치듯 머리카락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을 만큼 검기에 밀착하여 공격을 피했다. 이어서 순식간에 백소천 앞에 이르더니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자색 빛줄기가 발사되었는데, 바로 삼첨조자였다.

    삼첨조자가 맹렬한 기세로 가슴팍을 향해 날아오자 백소천은 얼굴이 굳었다. 그로서는 고화령이 어떤 수를 쓴 것인지 알 수도 없었지만, 어쨌든 자색 빛이 몸 앞에 이르렀으니 방어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붉은 간으로 삼첨조자를 내리쳤다.

    꽈르릉!

    이때 거대한 굉음이 울렸다.

    백소천의 붉은 간에는 금갑 장군의 위력이 담긴 만큼 그 기세가 상당해 삼첨조자는 진동하며 튕겨나갔다. 반면 백소천은 그리 큰 충격을 받지 않은 듯 비틀거리며 두 걸음 물러났을 뿐이다. 그러나 백소천이 물러난 것은 삼첨조자에 담긴 힘 때문이 아니었다. 간과 삼첨조자가 충돌한 순간, 자색 빛 한 줄기가 삼첨조자에서 튀어나와 그의 가슴팍을 두들겼기 때문이었다. 금갑 장군이 빙의되어 있지 않았더라면, 분명 중상을 입었을 터였다.

    “빌려온 힘은 어디까지나 외력(外力)이다. 네가 제어할 수 있는 게 아니지. 그러니 아무리 강하다 한들 무슨 소용이겠느냐?”

    고화령은 냉소하더니 다시 한번 물고기가 헤엄치는 듯한 움직임으로 날아와 백소천을 덮쳐갔다.

    백소천은 어두운 얼굴로 짜증 섞인 코웃음을 쳤다. 그러자 붉은 간이 여러 줄기의 그림자를 내뿜으며 휘몰아쳤다.

    한편, 다른 한쪽에서는 귀장의 검은 기운이 눈 깜짝할 사이에 심협 앞에 이르러 있었다.

    심협은 답수결로 급히 후퇴하는 동시에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거대한 물 손바닥이 호수에서 튀어나와 검은 기운을 두들겼다. 하지만 귀장이 화한 검은 기운은 멈추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그대로 물 손바닥을 통과해 심협 앞까지 덮쳐 온 것이다.

    검은 기운에서 긴 칼이 발사돼 심협을 매섭게 찔러갔고, 칼의 몸체에서는 검은 빛이 나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칙칙 소리가 울렸다.

    칼에 찔리기 직전, 심협의 몸 앞에 물결이 심히 요동치더니 거대한 바다거북이 나타나 막아섰다. 당연히 소귀였다.

    심협은 두 손을 소귀의 몸에 붙인 채 체내의 법력을 마구 주입시켰다. 그러자 소귀의 등껍질은 빠르게 검은색으로 변했고, 검은 빛까지 나타났다.

    하지만 칼은 매우 빨라, 소귀의 등껍질 전체가 검은색으로 변하기도 전에 찔러왔다. 소귀의 등껍질에는 한 가닥 칼자국이 생겨났고, 피가 솟구쳤다.

    “우오오오!”

    소귀는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 등껍질에 검은 빛이 번득이더니 칼의 힘이 2배는 더 강한 반동으로 돌아갔다.

    펑!

    묵직한 소리가 울리면서 귀장의 큰 칼은 그대로 폭발해 버렸고, 귀장이 화한 검은 기운도 뒤로 조금 밀려났다.

    검은 기운은 잠시 요동치더니 다시 귀장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귀장이 칼을 들고 있던 오른팔은 팔꿈치 아래부터 사라진 채였다. 하지만 피도 흐르지 않았고, 팔이 부러진 부분에는 검은 기운들이 짙게 감돌더니 순식간에 새로운 팔이 자라났다.

    이를 본 심협은 급히 물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그러자 소귀가 사라지고 등적색 그림자가 튀어와 철퇴로 귀장을 공격했다. 낭생을 다시 소환한 것이다.

    귀장은 발을 옮겨 옆으로 이동했다. 동시에 오른손에 검은 기운이 감돌며 요동치더니 다시 큰 칼을 만들어내 낭생에게 휘둘렀다.

    낭생은 그 자리에서 몸을 돌려 칼을 피하더니 철퇴를 뒤로 반 바퀴 휘둘러 뒤에서 귀장의 등을 공격했다.

    펑!

    굉음과 함께 귀장의 등 쪽 갑옷에 큰 구멍이 생겨났고, 몸의 반쪽이 거의 훼손되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귀장은 왼손을 펼쳐 낭생의 흉부를 향해 뻗었다.

    파지직!

    기이한 소리와 함께 낭생의 피갑이 뜯겨나갔다. 그리고 흉부에는 다섯 줄기의 깊은 상처가 생겨나 푸른 피가 솟구쳤다.

    “으아아아!”

    낭생은 분노로 포효하며 철퇴를 휘둘러 귀장의 머리를 내리쳤다.

    펑!

    그러자 귀장의 몸이 무너져 내려 작은 검은 조각들로 변했다. 하지만 잠시 후, 검은 기운들은 한곳에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검은 빛이 한 번 번득이자 다시 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도 손상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 광경에 낭생은 잠시 멍해져 있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공격했다. 이번에는 양손의 철퇴를 각각 귀장의 머리와 흉부를 향해 휘둘렀다. 이에 귀장이 칼을 번개처럼 휘두르자 칼 그림자가 나타나 허공을 갈랐다.

    펑! 펑!

    두 차례의 묵직한 소리가 울리면서 귀장의 몸은 다시 한번 부서져 검은 기운들로 변했다. 하지만 칼은 철퇴에 깊지도, 얕지도 않은 칼자국을 만들어냈다.

    검은 기운이 다시 요동치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때, 근처 호수 위에서 촤라락 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일고여덟 개의 물로 된 검이 호수에서 발사되어 요동치는 검은 기운을 공격했다. 심협이 손을 쓴 것이다. 이어서 심협의 몸에서는 가느다란 붉은 빛이 나타나 검은 기운을 함께 공격해갔다.

    하지만 송곳과 물로 된 검들 모두 검은 기운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 채 그대로 통과했다. 검은 기운은 다시 뭉쳐 귀장의 형상이 되더니 곧장 낭생을 덮쳐갔다.

    낭생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철퇴를 휘둘러 맞섰다.

    순식간에 낭생과 귀장이 뒤엉키더니 철퇴가 날리고, 칼의 빛이 번득였으며, 검은 기운이 휘날리는가 싶더니 피가 튀었다.

    귀장의 몸은 철퇴에 맞을 때마다 훼손됐지만, 그때마다 순식간에 회복됐다. 겉보기에는 낭생이 몰아붙이는 것 같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낭생은 점점 부상이 심해졌고 움직임도 느려지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심협은 조급해졌다. 하지만 물 법술이나 송곳 부기로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터였다. 당장 다른 수가 없으니 그저 초조함을 억누르며 귀장의 주변을 맴돌 수밖에 없었다.

    한편, 백소천도 열세에 처한 상태였다. 그의 몸을 감쌌던 찬란한 금빛은 많이 어두워졌다. 심지어 그는 이미 여러 곳에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백소천이 강신술의 힘을 빌려 잠시 벽곡기의 실력을 지니게 됐다고는 하나, 고화령의 말대로 본래 자신의 힘이 아닌 만큼 그 힘을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는 없었다. 고화령은 몸놀림이 남달라 백소천은 그녀의 옷자락을 잡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였다. 게다가 보기에 힘들이지 않고 설렁설렁하는 것 같은 고화령의 공격은 실제로는 위험천만하기 그지없었기에 백소천은 계속 후퇴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보다 큰 문제는 강신술은 정신과 육체 모두에게 부담이 큰 술법이었고, 시간적 한계도 있다는 점이었다.

    “어디 끝장을 보자!”

    백소천은 마음을 가다듬고 크게 소리치더니 들고 있던 붉은 간을 가로로 휘둘렀다. 그러자 붉은 화염이 마치 성난 파도처럼 고화령을 덮쳐갔다.

    하지만 고화령은 몸을 좌우로 흔들며 수월하게 공격을 피해냈다. 동시에 번개처럼 백소천 앞으로 다가와 삼첨조자로 가슴팍을 찔러갔다.

    “헛!”

    백소천은 다급히 후퇴하면서 수중의 간으로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나 그 순간, 고화령이 마치 그림자처럼 딱 달라붙은 채 손가락을 뻗어 바람 소리와 함께 번개처럼 백소천의 아랫배를 찍었다. 그러자 침처럼 가느다란 검은 빛줄기가 고화령의 손끝에서 발사되더니 백소천의 몸을 감싼 금색 빛을 찔러갔다. 검은 빛은 그대로 금색 빛을 뚫고 들어가 순식간에 백소천의 단전으로 파고들었다.

    “크윽!”

    백소천은 신음을 내질렀고, 몸이 크게 떨리더니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가 이마에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그대로 쓰러지자 금색 빛이 심하게 요동치더니 빠르게 줄어들었다.

    “내 원래 네가 백씨 집안 사람임을 생각해 목숨만은 살려주려 했다. 허나 이리 된 이상 어쩔 수 없구나!”

    싸늘하게 뇌까린 고화령은 다시 손을 결인하며 손가락을 뻗었다. 그러자 삼첨조자에서 자색 빛이 크게 방출되더니 백소천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려 했다.

    그때였다.

    “누가 감히 우리 백씨 집안 사람을 해치려 하는가? 당장 멈추지 못할까!”

    멀리서부터 천둥 같은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 목소리는 신기하리만치 웅장하여, 이곳에 있는 이들은 그 진동에 귀가 윙윙 울렸다.

    그 목소리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저 멀리서 푸른 빛이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아마도 비둔부의 빛이리라.

    그런데 푸른 빛이 이르기도 전에 황색 빛이 먼저 발사되어 왔다. 그 안에는 원반 같은 물건이 있는 듯했는데, 매우 빠른 속도로 선회하며 고막을 찢을 듯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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