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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83화 (83/1,214)
  • 83화. 또 하나의 새우 요괴

    팅!

    가벼운 굉음과 함께 금색 빛 한 겹이 백소천의 왼편 종아리에 일었다. 골침 세 개가 그 위에 꽂혔는데, 조금도 파고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골침에 담긴 힘 때문인지 백소천은 비틀거리며 옆으로 두 걸음이나 물러났다. 동시에 그가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지면에서 황색 빛이 발산되었다. 그곳에는 황색의 부적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는 비둔부만큼이나 복잡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지박부(地縛符)! 네놈이 감히 나를 함정에 빠뜨리려 해?”

    고화령은 고운 눈썹을 치켜세우며 뼈 날개를 펄럭였다. 그런데 그녀가 몸을 띄우기도 전에 가느다란 붉은 빛이 나타나 뱀의 혀처럼 그녀의 목을 공격했다.

    고화령의 손에 자색 빛이 번득이더니 삼첨조자가 나타나 그녀의 목을 방어했다. 순식간에 붉은 빛은 펑 소리와 함께 튕겨나갔는데, 그것은 붉은 빛을 발하는 송곳이었다.

    10여 장 밖에서 심협이 결인한 손을 휘두르며 검붉은 송곳을 장심으로 거두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거대한 힘이 송곳에서 새어 나와 기혈이 요동쳤다.

    방해를 받은 고화령은 곧장 날아오르지 못했다. 그리고 이는 백소천이 발밑의 부적을 발동시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우웅!

    가볍게 울리는 소리에 이어 지박부의 황색 빛이 몇 배는 더 밝아졌다. 그러더니 이내 황색 빛이 물 흐르듯 지면에 녹아들었다. 곧이어 부적 반경 10여 장의 지면에 미세한 황색 빛이 무수히 나타나 고화령과 심협, 백소천을 에워쌌다.

    심협은 두 발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는데, 마치 무수히 많은 무형의 밧줄이 발을 묶은 것만 같았다. 아무리 힘을 써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고화령도 양발이 황색 빛에 감싸여 있었다. 금제의 중심부에서는 벗어난 곳이었음에도 그녀의 얼굴은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이동이 불가능해지자 그녀는 다른 수를 쓰려는 듯 두 손을 빠르게 결인했다.

    그때, 날카로운 쉭 소리가 울렸다. 붉은 검 그림자가 허공을 가르며 고화령의 두 다리를 베려고 했다. 검 그림자 속에는 동전검이 어렴풋이 보였다.

    백소천은 동전검을 따라 몸을 솟구쳐 고화령을 덮쳐갔다. 그는 황색 빛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백소천의 복숭아뼈에 각각 하나씩 붙은 부적을 보고야 심협은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고화령은 굳은 얼굴로 결인을 맺던 것을 멈추고 두 손을 휘둘렀다.

    챙!

    삼첨조자가 날아와 공중에 자색 포물선을 그리며 동전검을 막아냈다.

    그 무렵, 이미 고화령 앞에 이른 백소천이 소매를 휘두르자 화염검기(火焰劍氣) 4개가 소매에서 쏘아져 나갔다. 하나하나의 위세가 동전검에 뒤지지 않는 4개의 검기는 각각이 고화령 전신의 요혈들로 향했다.

    심협은 발을 움직일 수는 없었으나, 다시 한번 송곳을 조종해 고화령의 등으로 발사했다.

    꽈르릉! 꽝!

    우렛소리가 두 번 울리더니, 소뢰부가 번개로 변해 허공을 가르며 고화령의 앞뒤를 공격했다.

    이와 거의 동시에 근처 호수가 요동치더니 거북이가 머리를 내밀고 물 화살을 발사했다.

    순식간에 사방에서 공격당하게 된 고화령의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고개를 젖히며 입을 벌려 무언가를 뱉어냈다.

    펑!

    하얀 빛에 휩싸인 작은 옥 부적 하나가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와 폭발했다. 그러자 크기가 한 말에 이르는 8개의 부적 문양이 나타나 찬란한 하얀 빛으로 고화령을 에워쌌다. 그러다가 순식간에 옅은 백색 광막을 만들어내 고화령을 보호했다.

    펑! 펑!

    검기와 송곳, 번개, 물 화살이 모두 백색 광막에 가로막혔다. 그럼에도 광막은 조금 요동치다가 잠잠해졌다.

    백소천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우뚝 멈춰 섰고, 심협은 약간 좌절했다.

    “내 본래 동문의 정을 생각해 목숨만은 살려주려 했다. 그런데 나의 소옥령부(素玉靈符)를 낭비하게 만들었으니, 본 낭자가 옛정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말거라!”

    고화령은 분노하여 호통 치더니 양손으로 맹렬히 결인했다. 그러자 그녀의 뼈 날개에 돌연 자색 빛이 크게 일렁이더니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자색 인광(磷光)이 조금씩 퍼져 나왔다. 인광은 순식간에 타오르더니 자색 인화(磷火)가 되어 공중으로 떠올랐다. 바로 요골인화였다.

    고화령이 결인한 양손을 휘두르자 요골인화들이 비처럼 사방으로 발사됐다.

    요골인화의 위력을 익히 알고 있었던 백소천은 급히 뒤로 물러나 움직일 수 없는 심협을 안은 채 지박부가 에워싼 범위 밖으로 나갔다.

    요골인화가 지면에 떨어지면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인화의 화염이 칙 소리를 내며 타오르자 실처럼 뻗어 있던 황색 빛들이 빠르게 타버리기 시작했다.

    지박부의 황색 빛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완전히 사라질 듯했다.

    심협은 지박부의 범위를 벗어나자 비로소 양발이 가벼워졌다. 그러자 바로 쏜살처럼 호수로 달려가 소귀를 챙기고 한 손은 호수에 넣어 급히 통령역요의 술법을 운공했다. 방금 굴복시킨 연기 후기의 요괴를 소환하려는 것이었다.

    “벽곡기 수사는 역시 대단하군. 아무래도 이 수를 써야겠어.”

    그때 백소천이 나지막이 중얼거리더니 돌연 두 손을 하늘을 향해 높이 치켜들었다. 발로는 칠성강보를 밟으면서 그 자리에서 빙 돈 그는 절을 올리며 크게 외쳤다.

    “제가 금일 법술을 시전하여 하늘을 여니, 육정육갑(六丁六甲)께서 강림하시옵소서. 머리에 열두 개의 철모를 쓰고 몸에 열두 개의 금갑을 입은 여러 대장군들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제자를 도와 신 앞에 나타나게 해주십시오. 갑자태세금변대장군(甲子太歲金辨大將軍)을 삼가 모시옵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천지의 영기가 바로 요동치기 시작하더니 금빛 구름이 하늘에 소리도 없이 나타났다. 이어서 금빛 구름에서 금색 빛이 한줄기 발사되어 백소천의 몸에 떨어졌다.

    백소천의 온몸은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밝게 빛나는 금색 빛에 휩싸였다. 그 금색 빛은 한 번 회전하자 금갑을 입은 신장(神將)의 모습으로 화하였는데, 마치 백소천의 몸에 빙의된 것 같았다.

    이 신장은 수척해 보였고, 다섯 가닥의 긴 수염이 특이했다. 또한 두 눈 안에 작은 손이 나 있었다. 그의 양손에는 각각 큰 금색 간(*鐧, 무기의 일종. 길고 날이 없음)을 들고 있었다.

    금갑의 장군이 빙의되자 백소천의 기운이 크게 증가하여 벽곡기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동시에 동전검도 그의 손으로 돌아왔다.

    금갑 장군의 손에 있던 간의 그림자가 동전검을 에워싸더니 검광과 간의 그림자가 그대로 융합됐다. 이어서 쨍 하는 소리와 함께 붉고 긴 간으로 변했다.

    ‘이것이 바로 강신술인가!’

    호수 위에서 백소천의 변화를 보며 심협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심협도 소환술을 마쳐서 그가 손을 담근 호수가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 안의 검은 물 동굴에서 푸른 요기(妖氣)가 뿜어져 나오더니 등적색의 요괴가 튀어나왔다. 반은 사람, 반은 새우의 모양인 이 반인반수는 마치 답수결을 시전한 것처럼 물 위에 섰다.

    심협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추두와 같은 새우 요괴였라니!

    하지만 이번 요괴는 추두보다 키가 훨씬 크고 훤칠했다. 추두는 철퇴가 하나뿐이었지만, 이번 요괴는 칠흑처럼 검고 광이 나는 동 철퇴 두 개를 가지고 있었다. 그 위세도 추두보다 더 대단했으니, 분명 수련이 벽곡기에 이른 듯했다.

    심협은 새우 요괴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자 갑자기 심장이 떨렸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새우 요괴가 먼저 인간의 말로 인사를 건넸다.

    “낭생(浪生)이 주인님을 뵈옵니다!”

    심협은 순간 멍해졌다. 이 새우 요괴는 물뱀이나 추두와는 달리 무척 공손하여 마음이 놓였다.

    “이름이 낭생인가? 수족(水族)에 어울리는 이름이로구나.”

    심협의 말에 낭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주인님께 아뢰옵니다. 제 항렬이 첫째이기 때문에 원래는 낭대(浪大)라 불렸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 때문에 많은 화를 당했으니, 집안에서는 그 이름이 수행에 불리하다 여겨 후에 낭생으로 개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자네의 수련이 어째서 더 오른 것인가?”

    처음 통령을 시도할 때 이 새우 요괴의 수련 수준은 분명 연기 후기였다.

    “주인께 아뢰옵니다. 예전에 적이 저의 체내에 저주를 걸어 법력이 연기 후기 수준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주인의 통령 술법 강행으로 저주가 깨져 실력이 다시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저로서는 주인님의 통령 술법 덕을 본 것입니다.”

    낭생의 공손한 대답에 심협은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다. 어깨의 해골 문신이 나서지 않았다면 자신이 어찌 벽곡기 요괴를 통령할 수 있었겠는가.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대화는 나중에 하지. 내 지금 강적을 만났으니 나를 좀 돕게.”

    심협은 여러 질문을 삼키며 바로 낭생에게 분부했다.

    “네!”

    낭생은 짧은 대답을 남기고는 곧장 몸을 솟구쳐 호숫가로 향했는데, 그 움직임에 힘이 넘쳤다.

    “심 사제에게 이리도 강한 통령지수가 있었을 줄이야! 어째 예전에는 부르지 않았던 겐가?”

    막 강신술을 완성한 백소천은 강력한 새우 요괴가 호숫가로 나오는 것을 보고는 의아한 듯 물었다.

    “내 방금 동해 용왕에게서 빌려온 구원병이오. 어떤 위력을 가졌는지도 모르겠소.”

    심협은 호수 위에 선 채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꽈릉!

    거대한 굉음이 울리더니 지박부의 황색 빛이 완전히 훼손되어 버렸다.

    속박에서 벗어난 고화령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그녀는 등 뒤의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올랐으나, 백소천과 심협의 형세를 보더니, 돌연 움직임을 멈췄다.

    그런데 그때, 낭생이 사뿐히 솟구쳐 놀랍도고 신속하게 고화령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더니 고화령을 감싸고 있는 백색 광막을 철퇴로 두들겨 부수기 시작했다.

    꽝! 꽈광!

    굉음 사이사이로 백색 광막은 치익 소리를 내며 움푹 파였다. 그럼에도 찢어지거나 부서지지는 않았다.

    뜻밖의 상황에 잠시 멍해진 고화령이 미처 대응을 하기도 전에 낭생의 철퇴 두 개가 두 줄기 빛이 되어 번개처럼 연신 광막을 내리쳤다.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두 번으로 안 되면 세 번을 같은 곳을 내려쳤는데, 어찌나 빠른지 사실상 거의 동시에 내려치는 수준이었다.

    꽈광! 쾅! 꽈르릉!

    거대한 굉음이 연신 천둥처럼 울렸다. 그리고 기어이 펑 소리와 함께 백색 광막이 폭발해 버렸다.

    고화령은 크게 놀라 뼈 날개를 활짝 펼쳐 뒤로 솟구침으로써 위험천만한 철퇴의 연이은 공격을 피해냈다.

    하지만 그녀는 그리 멀리 가지 못했다. 등 뒤에서 금색 빛이 요동치더니 어느새 백소천이 나타난 것이다.

    그는 붉은 빛을 내뿜는 간을 힘껏 휘둘렀다.

    고화령의 손에서 삼첨조자가 급히 튀어나가더니 순식간에 맷돌 크기로 불어나 붉은 간과 충돌했다.

    콰쾅!

    거대한 굉음이 울리면서 눈부신 자색 빛과 붉은 빛이 동시에 폭발했고, 삼첨조자는 충격에 튕겨나갔다.

    고화령은 붉은 간에서 기이하리만치 강렬한 힘이 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을 피하는가 싶더니 곧이어 양손을 빠르게 결인하고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그러자 허공에서 음기가 빠르게 요동치더니 그녀의 몸 뒤로 모이기 시작했다. 음기는 순식간에 검은 기운의 소용돌이를 이루어 기이한 소리를 울렸다. 어떤 비술을 시전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하늘을 날지 못하는 백소천은 일격을 가한 후 사뿐하게 땅에 내려서더니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붉은 간이 날아가 다시 동전검으로 돌아갔다가 붉은 그림자가 되어 고화령을 공격했다.

    심협도 재빨리 결인했다. 그러자 송곳이 매우 가느다란 붉은 빛이 되어 하늘로 솟아올랐다가 쏜살같이 고화령에게 발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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