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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82화 (82/1,214)
  • 82화. 강신술(降神術)

    심협은 목표로 정한 요괴에게 신식을 뻗어갔다.

    “크르릉!”

    감정이 섞인 경고의 포효가 전해졌다. 심협의 가슴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포효만으로도 이 요괴의 영지가 물뱀보다 더 뛰어남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굴복시키기도 더욱 힘들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포기할 수는 없어 그는 빽빽한 검은 부적 문양을 쏘아 보냈다.

    요괴도 바로 분노로 포효하면서 온 힘을 다해 저항했다. 더욱이 이 요괴는 물뱀과 달리 제법 영리했다. 처음에는 조급하게 반응하는 듯하더니 이내 침착하게 통령역요의 술법을 방어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둘의 싸움은 소모전 양상이 된 것이다.

    심협은 이를 예상하고 있었기에 당황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통령역요의 술법을 운공해 상대를 제압해갔다.

    시간이 흘러 심협의 법력은 금세 2할 정도가 소모되었으나 요괴의 저항력은 조금도 약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심협은 조금 더 운공의 강도를 높였다. 그러자 법력이 절반가량 남았을 때부터 요괴의 저항력이 점차 약해지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요괴는 한계에 이른 듯 저항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해 점점 통령역요 술법에 압도되고 있었다. 하지만 심협의 법력도 슬슬 바닥을 보였다.

    지금이 성패의 갈림길임을 눈치챈 심협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단번에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기로 마음먹고 적절한 기회를 엿보았다. 외나무다리에서 마주치면 결국 더 용감한 자가 승리하는 법이다.

    “어디 한번 해보자!”

    심협은 이를 악물고 체내에 남은 법력을 전부 끌어모아 미친 듯이 통령역요의 술법을 운공했다. 전보다 배는 더 짙어진 검은 부적 문양들이 마치 성난 파도처럼 요괴에게 몰려갔다.

    그때, 요괴 쪽에서 뭔가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가볍게 울리더니 저항력이 한층 약해지면서 결국 통령역요의 술법에 압도됐다.

    심협은 그제야 긴장을 조금 풀고 검은 부적 문양을 계속 내보내며 요괴를 완전히 굴복시키려 했다.

    그런데 그때, 낮은 포효가 심협의 뇌리에 전해지더니 요괴의 저항력이 다시 나타났다. 게다가 전보다 훨씬 강해져 부적 문양의 공격을 쉽게 막아내고 있었다. 약해져가던 숨결도 돌연 폭발적으로 강해지더니 처음 수준을 회복했다. 그뿐 아니라 숨결은 점점 더 강해지더니 금세 벽곡 초기의 수준을 돌파해 벽곡 초기의 최고봉이 되어서야 확장세를 멈추었다.

    “이, 이게 어찌 된 것인가!”

    심협은 경악해 외쳤다. 설마 요괴가 실력을 숨기고 자신을 희롱했단 말인가? 아니면 통령역요의 술법으로 굴복시키려다가 오히려 요괴의 수련 수준을 올려준 것은 아닐까?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 이유가 아니었다. 심협은 이미 법력이 거의 바닥나 더 이상 통령역요의 술법을 운공할 수가 없었다. 체내 경맥들에도 점점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때, 심협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통령역요의 술법이 역효과를 낼 때 나오는 증상이었다.

    보통은 이런 역효과가 있더라도 한동안 와병 생활을 하면 그뿐이다. 그러니 그다지 걱정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고화령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 아닌가! 지금 쓰러진다면 분명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심협은 그제야 무리하게 모험을 강행한 것이 후회가 됐다. 그럼에도 이를 악물고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때, 상황이 갑자기 급변했다!

    심협은 어깨가 조금 차가워진 것을 느꼈는데, 곧이어 한기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이 한기는 팔을 따라 몸으로 주입되더니 텅 비어 있던 경맥을 순간 가득 채웠고, 경맥의 통증도 빠르게 가라앉혔다. 이제 더없이 편안한 상태가 된 것이다.

    심협은 이 한기가 무엇인지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바로 자신이 통법성을 이룬 후 어깨의 해골 문신에서 흘러나왔던 한기가 아닌가!

    곧이어 통령역요의 술법이 스스로 운공되기 시작했다. 심협이 직접 운공할 때보다 몇 배는 강력했다. 무수한 부적 문양들이 쏟아져 나왔다. 마치 진짜로 검은빛의 성난 파도가 일어난 것처럼, 하늘을 뒤덮을 것처럼 높은 수준으로 요괴를 덮쳐갔다.

    “크아아!”

    처참한 비명이 울렸다. 요괴에게서 새로 생겨났던 저항력은 잠시 더 버티는 듯하더니 그대로 무너져 버렸다. 그리고 곧장 항복의 뜻이 전해져왔다. 심지어 공격을 멈춰줄 것을 애원하고 있었다.

    심협은 급히 무명공법으로 체내의 한기를 제어하려 했다. 그러나 이 한기는 심협이 수련해 만든 법력이 아니었기에 그의 의지대로 제어가 되지 않았다.

    요괴의 비명은 점점 더 처참해졌고, 급격히 약해지기까지 했다.

    심협은 급히 마음을 다잡고 통령역요 술법의 운공에 끼어들어 보았다. 다행히 이번에는 가까스로 한기를 제어할 수 있었다. 심협은 급히 통령 표기를 만들어 요괴에게 전달했다.

    요괴는 재빨리 통령 표기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요동치던 검은 부적 문양들이 서서히 멈추기 시작했다.

    심협은 그제야 마음을 놓고 이번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보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한기가 돌연 빠르게 줄어들더니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마치 나타난 적도 없었던 것처럼, 단전에서도 한기가 모두 사라졌다.

    심협의 눈앞이 어그러졌고, 신식이 순식간에 푸른 공간에서 나와 현실로 돌아왔다.

    체내의 경맥은 텅 비어 있었고, 정신력이 크게 소모되어 머릿속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심지어 온몸에 힘이 풀려 쓰러질 듯했다.

    “사제, 괜찮은가?”

    백소천이 재빨리 다가와 부축했다. 언제부터인가 그의 옆에 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멀지 않은 곳의 호수가 돌연 요동치더니 거대한 솥뚜껑 같은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 그림자에서 물 화살이 하나 튀어나와 백소천에게 날아들었다.

    “헛!”

    백소천은 화들짝 놀라 소매를 휘둘러 동전검을 소환함과 동시에 물 화살을 쳐냈다.

    땅!

    귀를 찌르는 굉음과 함께 물 화살은 그대로 부서져 버렸다. 하지만 동전검도 반 척 정도 밀려났고, 표면의 붉은 빛은 은근히 떨렸다.

    “소귀, 멈춰! 이분은 내 친구다!”

    심협은 급히 입을 열었으나, 무력한 상태라 목소리에도 기운이 없었다.

    물속의 검은 그림자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물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백소천은 혀를 차며 손을 휘둘러 동전검을 불러들였다.

    “통령지수가 주인을 보호하려 한 것이니 사형이 양해해 주시오.”

    심협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 통령지수는 꽤난 날렵하구먼. 하하! 그런데, 자네 괜찮나?”

    백소천이 손을 내저으며 물었다.

    “괜찮소. 방금 비술을 시전하느라 법력을 소모했을 뿐이오.”

    고개를 돌릴 힘조차 없었던 심협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화령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니 얼른 회복하게. 이번에는 내가 경계를 서지.”

    백소천의 말에 심협은 고맙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천천히 가부좌를 틀고 양손을 결인해 무명공법을 운공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심협의 체내에는 법력이 점점 차올랐고, 정신력도 많이 회복되어 머릿속의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심협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런데 백소천을 발견한 순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백소천의 손목과 목을 비롯해 노출된 피부마다 옅은 금빛 문양이 나타나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부적 문양처럼 보였는데, 신비한 느낌이 들었다. 좀 전에는 너무 무기력하고 정신도 들지 않아 이제야 눈치챈 것이다.

    “준비가 헛되지 않았어. 결국 완성했네.”

    백소천은 심협이 눈을 뜨자 양손의 금빛 문양을 보며 다소 흥분된 듯 말했다.

    “백 형, 몸의 그 문양은 어찌 된 것이오? 법술을 시전했소?”

    심협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우리 백씨 집안의 강신술(降神術)인데, 나도 처음 시전해본 것이네. 오랜 시간을 들여서야 겨우 완성했지. 우리 아버지가 보시면 분명 모질게 혼내실 것이야. 어쨌든 그 요녀가 나타나면 내 강신술의 위력을 맛보게 해주겠네!”

    백소천은 웃으며 먼 하늘을 올려다봤다.

    심협은 그가 화제를 돌리는 듯해 더는 묻지 않았다.

    이미 깊은 밤이었다. 하지만 환한 달빛에 주변은 그런대로 밝았다.

    심협은 사방을 둘러봤는데, 호숫가의 금빛 법진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백소천이 숨겨놓은 모양이었다.

    심협과 백소천은 고화령이 나타나면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 논의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 회색 인영이 저 멀리 허공에 나타났다. 마치 회색의 큰 새 같은 물체가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고화령!”

    백소천은 짧게 외쳤으나,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흥분된 모습이었다.

    “결국 왔군!”

    그는 나지막이 중얼거리더니 무언가를 꺼내 심협의 손에 찔러 넣었다. 손가락 두 개 정도 길이의 검은 송곳이었다. 끝부분에는 검붉은 부적이 붙어 있었다. 이는 백소천이 사용하던 부기였다.

    “사제의 부기는 이미 망가지지 않았는가. 물 법술만으로 고화령을 상대하기에는 너무 위험하네. 우선 오령추(烏靈錐)를 쓰게나.”

    백소천의 말에 심협은 당황했지만, 거절하게 않고 고맙게 받아들었다. 이어서 몰래 법력을 주입해 송곳의 힘을 익혀 보았다.

    그 무렵, 고화령이 둘 앞의 멀지 않은 곳에 내려섰다. 지금 그녀는 조금 초췌했고, 고생한 기색이 역력했다. 분명 급히 쫓아온 모양새였다.

    “두 분 사제의 모습을 보아하니 나를 기다린 모양인데?”

    고화령은 눈꺼풀을 떨며 두 사람, 특히 백소천을 살피며 그렇게 말하고는 웃었다.

    “고 도우 말씀이 맞소. 나와 심사제는 도우와 상의할 일이 있어 기다렸소.”

    백소천이 환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심협은 백소천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끼어들지 않고 고화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었다.

    “말해보게. 내 들어볼 것이니.”

    고화령은 턱을 약간 들더니 초승달 같은 눈웃음을 지으며 앵두 같은 입술을 살짝 열어 말했다.

    “내 순양보전을 줄 수 있소. 하지만 그전에 도우는 우리 두 사람을 안전하게 보내주겠다고 맹세해야 하오.”

    백소천의 말에 고화령만이 아니라 심협도 크게 놀랐다.

    “그렇다면 순양보전이 백 사제에게 있다는 말인가?”

    고화령은 눈을 가늘게 뜨며 눈빛을 빛냈는데, 기쁜 것인지 화가 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심협은 자신이 바닥에 놓아둔 봇짐과 백소천을 곁눈으로 살폈다. 하지만 봇짐은 열어본 흔적은 없었고, 매듭도 자신이 직접 묶어둔 상태 그대로였다.

    백소천은 환하게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는데, 아기 주먹만 한 유백색 옥 조각이었다.

    심협은 그제야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화령은 백소천이 꺼낸 옥 조각을 보더니 느닷없이 깔깔거리고 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눈빛만은 더없이 차가워져 있었다.

    “고 사저는 왜 웃으시오? 순양보전에 흥미가 없어진 게요?”

    백소천이 담담히 말했다.

    “백소천, 내가 순양보전의 진위도 가리지 못할 것이라 보느냐? 아무것이나 꺼내 나를 속이려 들다니!”

    웃음을 거둔 고화령의 얼굴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이어서 그녀가 한 발을 미세하게 움직이자 핑 하는 소리가 세 차례 울렸다.

    쉬익!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가는 반투명 골침 세 개가 고화령의 발밑에서 발사되었다. 골침은 지면에 밀착된 채 백소천에게로 향했다. 고화령이 예전에 썼던 세 개의 골침으로, 매우 빠르게 다가가 그대로 백소천의 종아리를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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