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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80화 (80/1,214)

80화. 도망

“내 듣기에 마(魔)는 생령(生靈)이 변한 존재라 했네. 원래는 인간 수사(修士)였을 수도 있고, 또 위력이 대단한 요족이었을 수도 있지. 또 어쩌면 강력한 귀신이었을 수도 있어. 원래 무엇이었든 마물로 변하게 되면 그 위력이 막강해질 뿐 아니라 성정도 지극히 잔인해진다고 하네. 생령을 보면 아무 이유도 없이 공격하기도 하지.”

백소천은 잠시 생각한 끝에 마지못해 자신이 아는 것을 더 설명해 주었다.

“그렇다면 마물은 요족이나 귀신보다 훨씬 위험한 존재겠구려.”

심협은 진중해진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더구나 그건 그저 보통 마물들 이야기일세. 정말 강력한 마물은 다른 생령들을 마(魔)로 변화시키기도 한다네. 그들이 일을 벌인다면 상황은 더욱 안 좋아질 게야.”

백소천이 말했다.

“그런데도 대당의 천하는 태평하니, 조정과 수선(修仙) 종파들이 힘을 쓰고 있는 것 같구려. 그렇소?”

심협은 돌연 육화명이 떠올라 불쑥 물었다.

“조정에서 어찌 대응하고 있는지는 나도 모르겠네만, 주요 도시에는 우리 백씨 집안 같은 퇴마세가가 한두 곳씩 있어 암암리에 마물과 맞서고 있네. 다만 일반 백성들이나 수련이 낮은 수선자들은 이를 접할 일이 없었을 뿐이지.”

“퇴마세가가 그리도 신비로운 곳이라니, 내 백 형 집에 가는 것이 마음이 놓이는구려. 아, 그런데 백 형의 집이 어디에 있는지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소.”

심협은 깊이 한숨을 내쉬더니 화제를 돌렸다.

“그래? 내 우리 집이 건업(建鄴)에 있다는 이야기를 안 했던가?”

백소천은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말 안 했소! 그런데 건업이라……. 내 가본 적은 없지만 꽤 먼 곳으로 아는데……. 준마를 타고 밤낮으로 달려도 보름 이상 걸리는 곳 아니오?”

심협은 다시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 정도로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걸세. 우선 뱃길을 통해 가세나. 백련하를 따라 내려가다가 강여현(江余縣)에서 말을 달리면 열흘 내에 도착할 수 있지.”

“그게 좋겠소. 그렇게 한다면 도중에 요괴가 쫓아와도 내 물 법술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소.”

심협은 생각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상의를 마치고는 북두칠성을 보고 백련하 방향으로 향했다. 그리고 어선을 하나 사서 강을 따라 강여현 방향으로 몰았다.

그런데 의외로 백소천이 노를 제법 잘 저었다. 심협보다도 훨씬 위였다.

두 사람은 번갈아 노를 저어가며 강을 따라 내려갔고, 반나절도 되지 않아 70리 가까이 갈 수 있었다.

백소천이 노를 저을 차례였다. 심협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은 채 법력을 회복하기 위해 운공을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뒤쪽에서 물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두 사공이 몰고 있는 배가 빠르게 따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심협은 귀를 움찔하더니 불길한 예감에 눈을 뜨고 일어났다.

그가 일어나자마자 그들을 쫓던 배에서 잿빛 그림자가 솟구치더니 마치 독수리처럼 덮쳐왔다. 허공에 떠 있는 잿빛 그림자의 손에서 어두운 자색 빛이 나타나 심협과 백소천이 탄 어선으로 향했다.

심협은 그 빛 안에 무엇이 있는지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매우 익숙했다.

“제길! 백 사형, 고화령이오!”

심협은 크게 외치고는 주저 없이 강으로 뛰어들었고, 백소천이 뒤를 이었다.

콰쾅!

그들이 강에 몸을 담그기가 무섭게 거대한 굉음이 울렸다. 자색 빛에 가격당한 어선은 산산이 부서졌다. 더욱이 고화령은 이들이 물속에서 제대로 몸을 가누기도 전에 자색 화염을 쏟아냈다.

“요골인화(妖骨磷火)!”

백소천의 경악에 이어 요골인화가 그의 정수리로 떨어져 내렸는데, 놀랄 만큼 빠른 속도였다.

그때, 백소천의 옆에서 소용돌이가 일었다.

콰쾅!

이어서 3장에 이르는 물결이 요동치며 요골인화를 튕겨냈다.

치익!

뜨겁게 달군 쇳덩이에 물을 들이붓는 듯한 소리가 크게 울리더니 요골인화는 순식간에 반 이상 증발해 버렸고, 나머지도 물결에 밀려가 버렸다.

여덟장정도 너머에서 심협은 물 밖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한 손으로 결인을 하고 있었다. 급히 법술을 시전하느라 얼굴을 반쯤 뒤덮은 옷도 치우지 못한 채였다.

“심 사제의 물 법술은 실로 고명하군! 소녀 심히 탄복했소! 고작 춘추관 따위에 와호장룡이 숨어 있었군!”

고화령은 허공에서 뼈 날개를 펄럭이며 웃었다. 요골인화가 떠내려간 것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때, 물속에서 겨우 몸을 가누고 있던 백소천이 돌연 고개를 돌리며 크게 외쳤다.

“심 사제! 물속을 조심하게!”

백소천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좁고 긴 자색 빛이 심협의 바로 앞 수면에서 발사되었다. 그 빛은 삼첨조자였다.

삼첨조자는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르게 그대로 심협의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촤락!

“심 사제!”

백소천이 절규했고, 심협의 푸른 옷은 그대로 찢겨나갔다. 그러나 놀랍게도 핏방울 하나 보이지 않았다. 삼첨조자에 관통당한 심협은 사실 정교한 수인(水仁)이었던 것이다.

수인이 물로 변해 강으로 유입되는 것을 본 고화령의 표정이 싹 굳어졌다.

그때, 백소천의 바로 옆에서 내의만 입은 심협이 불쑥 나타나더니 백소천을 잡아 끌며 나지막이 외쳤다.

“갑시다!”

백소천은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리더니 손에 끼워뒀던 비둔부를 급히 조종했다. 그러자 가슴 앞에 푸른 빛이 가득 차더니 두 사람을 감싸고 하늘로 솟구쳤다. 푸른 빛은 포물선을 그리며 멀어져갔다.

“어디까지 도망칠 수 있는지 두고 보자!”

고화령은 그렇게 외치며 손을 휘둘러 삼첨조자를 다시 불러들였다. 그리고 등 뒤에 뼈 날개를 펼쳐 자색 빛을 일렁이며 곧장 두 사람을 쫓아갔다. 그러나 속도는 많이 느려진 상태였다.

고화령이 타고 있던 배에서는 두 명의 뱃사공이 거의 사색이 되어 벌벌 떨며 세 사람이 멀어져가는 모습을 멀거니 지켜보고 있었다.

* * *

일다경(*一茶頃,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짧은 시간) 후, 심협과 백소천을 감쌌던 푸른 빛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두 사람은 또다시 추락해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느 길에 떨어졌다.

“그 요녀는 정말 끈질기구나!”

백소천은 분을 참지 못하고 바닥을 걷어차며 말했다.

“그 요녀는 요족이니 분명 특유의 추적술이 있을 것이오.”

심협이 추측했다.

“어쨌거나 그 요녀는 하늘을 날 수 있으니 문제일세. 내 비둔부가 빠르기는 하나 이제 몇 번 쓸 수가 없네! 얼른 가세!”

백소천은 먼저 길을 따라 달려 나갔다.

“가만 보니 고화령이 추적술을 쓰려면 준비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소. 아니면 그 뼈 날개로는 오래 날 수가 없거나. 사형, 비둔부는 이제 몇 번 쓸 수 있소?”

심협은 백소천을 따라가며 물었다.

“아마 네댓 번 정도 사용할 수 있을 걸세. 그 이후에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볼 수밖에…….”

백소천은 한숨을 쉬며 답했다.

동틀 무렵, 길을 따라 쉴 새 없이 이동한 둘은 작은 고을에 도착했다.

* * *

육로로 이동하기로 한 두 사람은 역참에서 준마 네 필을 구입했고, 길을 나서기 전에 몸을 깨끗이 한 후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심협은 자신과 백소천이 입었던 옷들을 다른 방향으로 가는 화물 수레 안에 몰래 밀어 넣었다. 그가 본 고화령은 만에 하나 자신의 잔머리가 들어맞아 저 수레를 쫓는다 해도 수레 주인들을 해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두 사람은 말을 달렸다. 각자 말 두 필을 두 시진마다 갈아타며 강행군을 한 덕에 금세 2백여 리를 이동할 수 있었다. 그때까지 고화령은 나타나지 않았다.

“보아하니 그 요녀는 정말 후각으로 추적하는 것 같군. 추적을 따돌린 모양이야! 하하하!”

백소천은 기뻐하며 말했으나 심협은 아직 불안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나도 그러길 바라오.”

심협이 막 그렇게 말을 마친 순간, 갑자기 가늘게 몸을 떨더니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하늘 저 멀리 잿빛 점 하나가 나타나 빠르게 커졌다.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고화령이 아니면 누구이겠는가?

그 무렵, 백소천도 고화령을 발견하고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내 입이 방정이군. 망할 요녀 같으니라고.”

이미 두 차례나 맡붙어본 결과 백소천은 고화령이 자신들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바로 말을 달려 심협에게 다가가 잡더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비둔부의 효과를 발휘해 하늘로 솟구쳤다.

고화령은 2리 정도를 더 날더니 뼈 날개의 자색 빛이 빠르게 어두워지다가 완전히 사라지면서 추락했다. 그러나 마치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는 것처럼 사뿐하게 길 위에 내려섰다.

그녀는 가늘게 뜬 눈으로 저 멀리 달아나는 네 필의 준마를 바라봤지만, 그리 분노한 표정은 아니었다.

“너희가 비둔부를 얼마나 더 쓸 수 있는지 두고 보자.”

고화령은 코웃음을 치더니 달리기 시작했다.

* * *

이후 며칠간 심협과 백소천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고화령을 따돌리려 했다. 상인들 무리에 섞여 이동하기도 했고, 자신들과 닮은 사람에게 돈을 주고 자신들의 옷을 입혀 교란작전을 써보기도 했다. 그러나 고화령의 추적술이 워낙 고명하여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짧으면 반나절, 길어야 하루 만에 고화령은 두 사람을 따라잡았다.

매번 따라잡힐 때마다 백소천과 심협은 곧장 비둔부를 써서 멀리 도망쳐 버렸다. 솔직히 힘들어 죽을 지경이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쳤고 배도 고팠지만, 한곳에 오래 머물 수가 없으니 방법이 없었다. 그저 백소천의 집에 빨리 도착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 * *

청화산에서 천여 리 떨어진 청마진(靑馬鎭)이라는 작은 고을. 고을 밖의 청마호(靑馬湖)라는 호수 때문에 같은 이름을 얻은 곳이었다. 주민들은 어업을 생계로 삼아 해가 뜨면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쉬는, 평온한 마을이기도 했다.

노을이 질 시각. 일하던 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 적막해진 청마호의 하늘에서 돌연 푸른 빛이 나타났다. 이 빛은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날아와 허공에서 요동치기 시작하며 빠르게 어두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몇 차례 번득이고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비틀거리며 호숫가에 떨어졌다. 바로 심협과 백소천이었다.

백소천은 손에 푸른 빛이 어렴풋이 보이는 부적을 들고 있었는데, 부적 문양이 어두워진 상태였다. 칙 소리가 울리더니 부적이 스스로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재가 되어 바람에 날려 흩어졌다.

이미 예상한 일이었음에도 백소천의 표정은 말이 아니었다.

“백 사형, 여기서 건업성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오?”

심협도 어두운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아직 사흘 정도는 더 가야 할 걸세. 그런데 비둔부가 사라졌으니 이번에 고화령에게 따라잡히면 목숨 걸고 싸워야겠군. 그 요녀에게 조금이라도 부상을 입히고 다시 도망친다면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지.”

백소천은 턱을 매만지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좋소! 나 심협도 목숨 걸고 함께하겠소!”

심협도 고개를 끄덕이며 결연하게 답했다.

“지체할 시간 없네. 가세나.”

백소천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걸음을 떼려는데 심협이 앞을 막아섰다.

“잠깐! 이렇게 쉬지도 못하고 가다가 고화령에게 따라잡히면 지칠 대로 지쳐 제대로 싸워볼 수도 없을 것이오. 차라리 여기서 쉬면서 대비하는 게 낫겠소.”

“음…… 맞는 말일세. 시간이 있으니 내 손을 좀 써보겠네.”

백소천은 손바닥을 비비며 사방을 둘러보더니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곧 심협이 지켜보는 가운데 품에서 검은 포대를 하나 꺼냈다. 표면은 지극히 매끄러웠고 물고기 비늘 같은 무늬가 있었다. 딱 봐도 평범한 물건은 아닌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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