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79화 (79/1,214)
  • 79화. 퇴마세가

    고화령은 살기를 일으키며 한 걸음 내딛었다. 그러자 백소천의 발아래 땅이 쩍 갈라지더니 갑자기 나타난 두 개의 손이 발목을 붙잡았다. 백소천은 백골이 그대로 드러난 두 손에 잡힌 채 아래로 끌려갔다.

    동시에 고화령도 백소천을 쫓아가며 백골로 된 비수를 꺼내 들었다. 비수는 자색 빛이 한 겹 뒤덮인 채 백소천의 미간을 향해 날아들었다.

    쐐액!

    그 가공할 속도에 동전검을 불러들일 틈도 없었다.

    그런데 백골 비수가 백소천의 머리를 찌르기 바로 직전, 돌연 날카로운 물 화살이 나타나 그 비수를 맞혀 떨어뜨렸다. 뒤이어 또 하나의 물 화살이 고화령의 얼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감히!”

    고화령의 싸늘한 목소리에 이어 그녀의 장심에 자색 빛이 일더니 손이 칼처럼 변했다. 그 손을 비스듬히 휘두르자 물 화살은 그대로 흩어져 버렸다.

    그때, 저 멀리 어둠 속에서 검푸른 바다거북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천히 기어오는 거북의 옆에는 손을 결인한 심협이 서 있었다. 그의 뒤에는 몸길이가 2장에 이르는 물 늑대가 요동치며 강에서부터 따라오고 있었다.

    심협은 진중한 표정으로 양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뒤에 있던 물 늑대가 튀어 오르더니 머리는 그대로인 채 물줄기가 되어 고화령을 덮쳐갔다.

    백소천은 놀라는 와중에도 자신의 발아래에 물이 솟구치는 것을 발견했다. 물은 순식간에 소용돌이가 되어 그의 몸을 끌려가던 구멍 위로 점점 떠올렸다. 그는 급히 동전검과 송곳을 소환해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던 해골들을 벤 후 심협 곁으로 다가갔다.

    그 무렵, 심협은 물 늑대을 조종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고화령 앞까지 이르자 물보라 속에서 늑대 머리가 갑자기 요동치더니 굵기가 사람 종아리만 한 물뱀들로 변해 고화령을 공격해갔다.

    고화령은 순간적으로 물뱀들의 허실을 분간할 수 없었기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뒤로 물러나며 삼첨조자를 불러내 공격했다.

    이 모습을 본 심협은 한 걸음 성큼 내디디며 양손을 다시 결인하자 물뱀 하나하나가 물 늑대가 되어 좀 전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고화령을 쫓았다.

    “소용없다!”

    고화령의 삼첨조자가 가장 앞에 있는 물 늑대를 공격했다.

    펑!

    폭발음과 함께 물 늑대는 물방울이 되어 흩어졌다.

    “흥! 겉모습만 그럴 듯하군!”

    고화령은 비릿하게 웃으며 더는 물러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기 시작했다.

    그 순간, 심협이 손 모양을 바꾸자 물 늑대들의 몸에 순식간에 날카로운 침이 잔뜩 돋아나더니, 무수히 많은 물 화살처럼 고화령에게 발사되었다.

    고화령이 가볍게 손목을 떨었다. 그러자 삼첨조자가 조금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고화령의 몸 앞에 그림자가 겹겹이 나타나 물 화살들을 손쉽게 부수었다. 그런데 물 화살들 틈에는 조금 다르게 생긴 물 화살 2개가 섞여 있었다. 그리고 이 화살들은 고화령이 부주의한 틈을 타 삼첨조자의 그림자를 뚫고 그녀의 얼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퍼펑! 펑!

    두 차례의 폭발음이 이어졌다. 소귀가 발사한 두 개의 물 화살이 폭발한 것이다.

    고화령은 폭발의 충격에 몸이 뒤로 젖혀졌지만, 큰 지장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백소천이 어느새 칠성강보를 밟아 고화령 옆까지 다가갔다. 그는 양손으로 동전검을 잡은 채 고화령의 목을 향해 휘둘렀다.

    그러나 동전검을 감싼 화염이 고화령의 목 3촌 앞까지 다가갔을 때, 백소천은 돌연 허리를 조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물로 된 밧줄이 자신의 허리를 감은 채 잡아당긴 것이다.

    백소천은 붕 떴다가 심협 옆에 가볍게 내려섰다.

    치익!

    달궈진 쇳덩이에 물을 부은 듯한 소리가 크게 울렸다. 방금 전까지 백소천이 있던 자리가 어두운 그림자로 뒤덮여 있었는데, 자세히 보면 자색 가루들이었다. 이 가루들이 땅에 떨어지자 바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고, 땅에 큰 구멍이 생길 정도였다.

    “요골인분(妖骨磷粉)!”

    백소천은 그 가루가 무엇인지 확인하고는 식은땀을 흘리며 외쳤다. 만일 방금 전에 심협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그는 완전히 타서 재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몸에 아주 조금만 묻더라도 완전히 불살라 버리는 것이 요골인분의 위력이었다.

    그때, 돌연 고화령이 날아오르더니 뼈 날개를 맹렬히 펼쳤고, 두 개의 회오리가 요골인분을 감싼 채 심협과 백소천을 향해 날아들었다.

    심협이 양손을 위로 휘두르자 땅에 있던 물들이 솟구쳐 벽을 이루더니 심협과 백소천의 앞을 막아섰다.

    그런데 요골인분은 물에 닿자마자 하얀 연기를 피어올리며 그대로 물속에서 타기 시작했다. 물의 벽도 순식간에 증발해 큰 구멍이 생겨났고, 이어 더 많은 요골인분이 그 구멍을 통해 날아들었다.

    날아든 요골인분은 자색 빛의 통제를 받으며 두 사람을 에워쌌다.

    “이제 물러날 곳이 없다. 그러니 순양보전을 내놓아라. 한때 동문이었던 정을 생각해 목숨까지 거두고 싶지는 않구나.”

    고화령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거짓말 마라!”

    심협은 짧게 외치며 한 손을 결인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귓가에 돌연 백소천의 의기소침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통령지수를 돌려보내게. 우리가 졌네. 우리는 고 사저의 상대가 되지 않아!”

    그러자 고화령이 기쁜 기색으로 한 손을 휘둘러 두 사람을 향해 서서히 다가오던 자색 빛과 요골인분의 움직임을 둔화시켰다.

    “순양보전만 내놓는다면 내가 한 말은 지킬 것이다! 너희를 놓아주마!”

    백소천이 심협 앞으로 다가가 고화령을 등지고 서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졌어. 일단 살아야 하지 않겠나? 순양보전을 고 사저에게 넘기세!”

    심협은 고민하는 듯 백소천과 고화령을 번갈아보다가 침통하게 말했다.

    “내 백 사형의 말을 듣겠소. 부디 고 사저도 약속은 지켜주시오!”

    심협은 두 손을 허공에 그어 물 소용돌이로 소귀를 돌려보냈다.

    소귀가 돌아가자마자 백소천의 가슴 앞에 돌연 푸른 빛이 비치더니 매우 복잡한 부적 문양이 중앙에서 나타났다.

    곧이어 바람이 몰아치더니 심협과 백소천은 푸른 빛에 싸여 하늘로 솟구쳤다. 그렇게 두 사람은 밤하늘에 큰 포물선을 그리며 번개처럼 멀어져갔다.

    “앗!”

    고화령이 일순 당황했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푸른 빛이 그려낸 포물선이 이미 밤하늘에서 사라진 뒤였다.

    * * *

    심협은 귓가의 바람과 사방에서 흐릿하게 지나치는 경치를 보고 느꼈다. 얼마나 멀리 날아온 것인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백소천의 가슴 앞에서 부적 문양이 점점 사라짐에 따라 두 사람은 서서히 추락했고, 결국 굵고 비스듬히 기울어진 나무에 등을 부딪히고는 땅에 처박혔다.

    “으으……. 사제, 괜찮은가?”

    두 사람은 나무 아래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일단은 안도했다.

    “사형, 이리 좋은 보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진작 쓰지 않았소? 우리 둘 다 꼴이 말이 아니지 않소.”

    심협이 불만스런 목소리로 투덜댔다.

    “비둔부(飛遁符)는 내 목숨을 건질 최후의 수단이었는데 어찌 쉽게 쓸 수 있겠는가? 게다가 고화령이 그리 대단할 줄 어찌 알았겠어?”

    백소천은 심협을 노려보며 퉁명스럽게 답했다.

    “사형이야 최후의 수단이 있으니 어쨌든 살았겠지만, 나는 하마터면 죽을 뻔했소.”

    심협은 여전히 조금은 화가 난 목소리로 따졌다.

    “자네도 비장의 수단이 적지 않던데 뭘 그러나. 비둔부가 빠르기는 해도 지속시간이 너무 짧다네. 그래서 사실 그리 멀리 도망치지는 못했어. 고화령이 다시 따라올 게야.”

    백소천은 걱정스러운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약수문으로 가려던 우리 계획은 이미 탄로 난 것 같소. 그러니 약수문으로 가려 하면 더욱 위험할 것이오.”

    “자네 말이 맞네!”

    백소천이 진지한 표정으로 일어나 앉으며 답했다.

    “그렇다면 다른 문파에 구조요청을 해야 할 텐데, 근처에 다른 문파가 있소?”

    “등주 경내에는 갈 곳이 없네. 됐어, 우리 이대로 같이 돌아가세.”

    백소천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불쑥 그렇게 말했다.

    “돌아가다니요?”

    심협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인가 싶었다.

    “그래, 돌아가자고. 함께 우리 집으로 가자는 말일세.”

    “아니, 왜 백 형의 집으로 간다는 것이오? 그러다가 저놈들에게 가족들까지 화를 입으면 어쩌려고 그런단 말이오?”

    심협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저들이 쫓아온다면 오히려 잘된 일이지! 사실 우리 백씨 집안은 예로부터 이름난 퇴마세가라네. 전반적으로 춘추관보다 조금 더 강하다고 할 수 있지. 집안 어르신 한 분은 응혼기 수사시라네.”

    심협은 백소천의 말에 안도하면서도 의아했다.

    “그렇다면 더 이상하군요. 집안이 그리 대단한데 왜 춘추관에 입관했소? 집안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굳이 멀리서 구한 것 아니오?”

    심협은 ‘응혼기 수사’라는 말에 눈을 빛냈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었다.

    “자네가 모르는 게 있네. 춘추관은 그 힘이 우리 백씨 집안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소모산의 한 계파를 전승한 곳이네. 순양검결은 요괴와 귀신을 처단하는 효과가 대단하고 말이야. 게다가 우리 집안 선조들은 춘추관과 인연이 깊으셨지. 그래서 나를 춘추관으로 보내 수련하도록 하신 게야.”

    백소천의 설명을 듣고서야 심협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려. 이제야 알겠소. 저들이 저리 목숨 걸고 순양보전을 얻으려 한 이유가 있었구려. 그러나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소. 내 춘추관에 2년여를 지내면서 사부님을 따라 하산한 적이 있소. 게다가 춘추관에 변고가 일어나면서 보고 들은 것은 모두 요족과 귀신과 관련이 있었지. 그러나 여태껏 마(魔)의 존재는 본 적이 없소. 백 형 집안이 퇴마세가라면 마에 대해서도 알고 있지 않소?”

    심협의 물음에 백소천은 머뭇거리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자네가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도 사실 마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네. 나뿐 아니라 나의 부모님과 같은 항렬의 어르신들도 마물(魔物)을 제대로 본 적이 없지. 그분들이 평소에 하시는 일은 춘추관과 별다를 것이 없다네. 요괴를 잡고 귀신을 물리치는 것이지.”

    백소천은 조금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하면 백씨 집안은 어찌 퇴마세가의 명성을 얻게 된 것이오?”

    심협은 머리를 긁적이며,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더 위 항렬의 분들이 마(魔)를 물리치신 적이 있다네. 그때 우리 집안에는 백씨삼진(白氏三眞)이라 불리는 세 분의 벽곡기 수사들이 있었지. 그러나 세 분이 함께 마를 물리치러 가셨다가 결국 한 분만 살아 돌아오셨네.”

    백소천의 탄식에 심협은 놀란 듯 되물었다.

    “벽곡기 수사 세 분이 힘을 합쳤는데도 두 분이나 돌아가셨단 말이오? 도대체 마물을 몇이나 상대하셨기에!”

    “몇? 음…… 단 하나였네. 어르신께서는 돌아오신 후로 그 일에 대해 전혀 언급하시지 않았지. 그저 더욱 수련에 매진하셔서 응혼기에 접어드셨을 뿐. 이후 우리 집안도 더는 흥성할 수가 없었지.”

    백소천의 탄식을 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던 심협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마(魔)는 정말 가공할 만한 존재들이군! 그것들이 어디서 왔는지 혹시 아시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