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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78화 (78/1,214)
  • 78화. 합체

    요견은 몸부림치며 쫓아오다가 이내 더는 버티지 못하고 쓰려져 몇 차례 경련하다가 숨이 끊어졌다.

    심협은 작살을 불러들여 자세히 살펴봤다. 작살에는 울퉁불퉁하게 부식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손잡이의 부적은 더욱 퇴색되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심협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백소천을 도우러 가려 했다. 하지만 백소천은 이미 요견의 머리를 벤 후 피가 잔뜩 묻은 검을 닦는 중이었다.

    심협은 안도하며 요견에게 다가가더니 작살을 찔러 넣어 배에 구멍을 내고는 그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사제, 지금 무얼 하는 겐가?”

    백소천이 다가오며 의아한 듯 물었다.

    “요괴의 배 안에 내단이 있는 것 아니었소? 내 그것을 찾아보려는 것이오.”

    심협이 대답했다.

    “공연히 힘 빼지 말게. 이렇게 수준도 낮고 영지(靈智)도 거의 깨이지 않은 요괴에게 어찌 내단이 있겠는가?”

    백소천은 조금은 어이가 없는 듯 말했다.

    “그렇다면 수련 수준이 어느 정도 되어야만 내단도 생겨난다는 말이오?”

    “그건 나도 잘은 모르네. 어쨌거나 이 요견들에게는 없을 게야. 이 녀석, 도대체 얼마나 많은 능력을 숨기고 있는 거야? 이 요견 한 마리가 내가 죽인 요견 두 마리를 합친 것보다 더 위험해 보이는데?”

    백소천이 혀를 차며 혼잣말처럼 물었다.

    “사형이야말로 좀 전의 그 불은 어찌 된 것이오? 무슨 부적을 썼소?”

    심협은 대답 대신 오히려 되물었다.

    “아, 그건 폭렬부(爆裂符)일세. 뇌부(雷符, 번개 부적) 계열이 아니라 화(火) 계열의 부적이지.”

    백소천은 거리낌 없이 말했다.

    “그렇군. 혹시 남은 게 있다면 내게도 몇 장 줄 수 있소?”

    심협은 실실 웃으며 농을 건넸다.

    “어림도 없네. 딱 한 장 남은 걸 방금 써버린 거지. 어쨌거나 시간을 더 지체할 수 없으니 얼른 길을 나서야겠네. 일단 말부터 찾아보세.”

    하지만 말들은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고, 2리 정도를 가서야 놀라 도망치던 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은 다시 말을 타고 송번현 방향으로 달렸다.

    그렇게 10여 리를 갔을 때, 멀리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백련하 근처까지 온 것이다.

    “앞쪽이 바로 백도교(白渡橋)요. 저기를 지나 두 시진쯤 가면 춘화현 경계를 벗어나는 것이오.”

    심협은 말고삐를 당기며 멀리 보이는 강가를 가리켰다.

    그런데 말을 멈추며 심협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던 백소천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왜 그러시오?”

    심협은 백소천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긴장하며 물었다.

    “저쪽에 누군가 있네.”

    백소천이 나지막이 말했다.

    눈을 비비고 그곳을 다시 자세히 살펴보니 둥근 돌다리 어귀에 삿갓을 쓴 사람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돌기둥에 등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 비록 달빛이 환했지만 거리가 멀어 심협의 시력으로는 그 모습이 또렷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어렴풋이 보이는 그의 옆모습이 어쩐지 눈에 익은 듯했다.

    심협과 백소천은 서로 한번 마주 보고는 다리를 향해 말을 달렸다.

    심협과 백소천이 가까이 다가오자 삿갓을 쓴 사람이 돌연 몸을 일으켜 천천히 다리 앞으로 걸어오더니 길 중앙에 서서 두 사람의 앞길을 막았다.

    심협과 백소천은 굳은 얼굴로 말고삐를 당겼다.

    “두 사제는 어디를 이리 급히 가는 게요?”

    낭랑하고 고운 목소리가 울렸다.

    “고화령…….”

    심협의 안색은 이제 완전히 하얗게 변해버렸다.

    상대가 삿갓을 벗어 한쪽으로 치우자 아름다운 소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녀는 하얀 원령포를 입었고, 허리에는 옥대(玉帶)를 차고 있었다. 완전한 남자의 복장이었으나 날씬한 체형과 가녀린 자태, 자색 단발머리는 분명 여자의 모습이었다. 언뜻 보면 격식에 맞지 않는 듯한 모양새였지만, 어쩐지 색다른 매력이 있어 보였다.

    “두 분 사제는 모두 총명한 사람이니 내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겠네. 순양보전은 누구에게 있지? 순순히 내놓는다면 내 동문의 정을 생각해 목숨만은 살려주겠네.”

    고화령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살려주시겠다니, 그 은혜에 감사하오. 그런데 사형의 모습은 남자 요족인지 아니면 여자 요족인지 모르겠소. 순양보전이 무엇인지는 더더욱 모르겠고.”

    백소천은 고화령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심 사제, 자네에게는 다른 답을 기대해도 되겠나?”

    고화령은 눈가를 미미하게 떨면서도 바로 손을 쓰지 않고 이번에는 심협에게 물었다.

    “고 사저, 저 역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소. 순양보전이 대체 뭐요? 설명이라도 좀 해주시오.”

    심협은 목숨을 살려준다는 고화령의 말을 당연히 믿지 않았다. 그는 머리로는 양측의 전력(戰力)을 가늠하며 모호하게 답해 시간을 끌었고, 두 손은 소매 안에 넣어 작살을 쥐었다.

    고화령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돌연 몸에 자색 빛이 번득이더니 다시 모습이 변해갔다. 자색 치마, 등 뒤에 돋아난 작은 뼈 날개, 냉랭한 눈빛!

    “고 사저가 이리도 절세의 미모를 지닌 요족일 줄은 생각도 못 했소. 내 본래 미색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이나, 안타깝게도 정말 내게 무슨 보전이라는 것은 없소.”

    백소천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고화령의 아름다운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손으로는 턱을 문질러댔다.

    심협은 백소천 또한 실없는 말로 시간을 끄는 것을 보고는 신호를 보내 같이 손을 쓸 기회를 잡으려 했다. 그런데 그때, 백소천이 오른손을 조심스레 뒤로 돌려 은밀하게 무언가를 가리켰다. 쉽게 알아차리기 힘든 동작이라 놓칠 뻔했으나 다행히도 눈치챈 심협은 곁눈질로 백소천이 탄 말의 등을 슬쩍 살폈다.

    ‘폭렬부!’

    백소천의 뜻을 알아챈 심협은 말을 타고 그의 곁으로 다가가 티 나지 않게 폭렬부를 소매에 챙겨 넣었다.

    그런데 그때, 돌연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심협과 백소천 앞의 땅이 갈라지더니 두 구의 해골이 튀어나온 것이다.

    해골들은 뼈로 된 창을 들어 단숨에 말의 복부를 찔렀다. 두 자루 창은 두 마리 말의 배를 단숨에 관통했다. 백소천과 심협은 거의 동시에 몸을 뒤로 젖힌 덕에 창에 찔리는 것은 피할 수 있었지만, 말들이 고통에 몸을 뒤트는 바람에 바닥을 구르고 말았다.

    아직 제대로 서기도 전에 두 구의 해골이 창을 버리고 돌진해오자 심협은 급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작살을 조종하기에는 늦은 상황이라 그는 어쩔 수 없이 손으로 해골의 손을 밀어냈다.

    그런데 그때, 자색 그림자가 스치는가 싶더니 고화령이 마치 귀신처럼 순식간에 다가와 다섯 손가락을 펼쳐 심협의 명치를 맹렬히 공격해갔다.

    “멈춰!”

    백소천은 심협이 위기에 처한 것을 보고는 곧장 칠성강보를 밟으며 쫓아와 동전검으로 고화령의 등을 찔러갔다. 하지만 고화령은 심협을 먼저 잡기로 결심한 것인지 백소천의 공격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백소천의 검이 막 찔러오는 순간, 고화령의 등 뒤에 돋아났던 뼈 날개들이 돌연 수축하더니 마치 두 개의 방패처럼 동전검을 막아냈다.

    카캉!

    그러는 동안에도 그녀의 손은 마치 귀신처럼 심협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그 순간, 심협은 이를 악물었다.

    “덤벼라!”

    그는 호기롭게 포효하며 손을 펼쳐 고화령의 손바닥에 그대로 마주쳐갔다.

    꽝!

    심협은 몸이 크게 뒤흔들리며 튕겨나가듯 뒤로 밀려났다.

    그런데 고화령은 심협을 쫓는 것이 아니라 당황한 듯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장심에 붙은 이 부적은……?

    퍼펑!

    폭렬부가 작동하며 거대한 폭발음이 울렸다.

    심협은 작렬하는 열기에 급히 몇 걸음을 물러났다. 폭발이 일어난 곳을 보니 불에 탄 시커먼 흔적뿐이었다. 해골들도 불에 타 가루가 된 후였다.

    그런데 그때…….

    “조심하게!”

    백소천의 외침과 거의 동시에 등 뒤에서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심협이 화들짝 놀라 급히 몸을 돌려보니 어두운 자색 삼첨조자(*三尖爪刺, 세 개의 날카로운 끝을 가진 무기)가 찔러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야말로 코앞이었다.

    심협은 급히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소매에서 양기의 기운이 일면서 작살 부기가 하얀 빛을 번득이며 빠르게 발사되었다.

    자색과 백색, 두 줄기 빛이 충돌했다.

    펑!

    폭발음에 이어 작살 위 부적 문양이 빠르게 타들어가더니 마치 불꽃처럼 마지막 빛을 발하고는 이내 폭발하고 말았다.

    그 폭발력에 뒤로 날아간 삼첨조자는 허공에 자색 빛을 그리며 천천히 백옥 같은 손으로 떨어졌다.

    심협은 터져나간 작살을 보고는 안타까웠으나, 그보다는 너무도 놀라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삼첨조자가 날아간 쪽을 보니 고화령이 허공에서 날개를 펄럭이고 있었다. 옷의 앞섶이 크게 타 버리기는 했으나, 전혀 부상은 입지 않은 것 같았다.

    백소천이 불쑥 다가와 심협 앞을 막아서며 물었다.

    “사제, 아직 싸울 수 있겠나?”

    그렇게 묻는 동안에도 백소천의 눈은 고화령에게 박혀 있었다.

    “물론 싸울 수 있소!”

    심협이 말했다.

    “좋네! 그런데 저 삼첨조자는 법기야. 그러니 우리는 적수가 못 되지.”

    백소천은 동전검을 든 채 긴장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더니 돌연 싸늘한 얼굴로 동전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동전검에 붉은 빛이 일더니 앞을 쓸어갔다.

    쩌쩡!

    동전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울리더니 동전검은 어떤 힘에 의해 조금씩 뒤로 물러나 백소천 앞으로 다시 날아왔다.

    심협이 살펴보니 동전검의 검신(劍身)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느다란 반투명 골침(骨針) 세 개가 깊게 박혀 있었다.

    이때 백소천이 손을 결인하고 검자루를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돌연 검신에 빛이 일며 골침들이 모두 뽑혀 나갔다. 이어서 백소천은 품을 뒤져 푸른 부적을 하나 꺼내 두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검 자루에 붙였다.

    “부적의 불과 하늘의 번개여, 영(靈)을 검으로 인도하여 귀신을 물리쳐라!”

    백소천이 주문을 외며 손가락을 모아 동전검을 문지르자 붉은 화염이 검신에 뻗어 나갔다. 그러자 곧 검신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공격해!”

    백소천이 외치자 동전검이 활활 타오르는 상태로 고화령에게 날아들었다.

    거의 동시에 고화령의 손에 들린 삼첨조자에도 자색 빛이 번득이더니 쏘아져 나갔다.

    채챙! 펑!

    짧은 순간 동전검과 삼첨조자가 허공에서 연달아 일고여덟 번을 맞부딪치면서 굉음에 이어 폭발음들이 울렸다. 동전검은 부기에 불과했으나 부적의 힘을 빌려 법기인 삼첨조자와 대등하게 맞섰다.

    심협의 눈이 백소천에게로 향했다. 이미 땀을 흘리는 것이 법력 소모가 적지 않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심협은 잠시 망설이다가 몸을 일으키더니 뒤쪽으로 미친 듯이 달렸다. 그가 홀로 도망치려 한다고 여긴 고화령은 재빨리 삼첨조자의 방향을 틀었다.

    그 순간, 백소천이 이를 악물더니 맹렬히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동전검은 붉은 빛이 되어 삼첨조자를 쫓아갔다.

    이때 고화령은 몸을 날려 허공을 가르더니 백소천 앞에 사뿐히 내려섰고, 그가 한 손으로 앞을 찌르자 소매에서 백골로 된 비수가 튀어나와 마치 독사처럼 맹렬히 백소천의 명치로 날아들었다.

    그러나 백소천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듯, 몸 뒤에 숨긴 채 결인하고 있던 손을 휘둘렀다.

    “가라!”

    그러자 백소천의 가슴 앞에 걸려 있던 장식품에서 붉은 빛이 번득이더니 고화령보다 한 발 앞서 발사되었다. 그 장식품은 손가락 두 개 정도 길이의 가느다란 송곳으로 변해 순식간에 고화령의 목을 찔러갔다.

    “헉!”

    워낙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고화령은 머리를 기울였다.

    핑!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면서 붉은 송곳이 고화령의 목을 스치며 지나갔고, 고화령의 목덜미에서는 한 줄기 핏방울이 맺혔다. 곧이어 고화령은 반격을 하기도 전에 백소천의 발에 아랫배를 걷어차였다.

    “큭!”

    뒤로 한 바퀴를 구른 후에야 몸을 가누고 일어선 고화령은 분노에 가득 찬 눈으로 백소천을 노려보며 천천히 말했다.

    “이제 보니 네놈도 지금껏 실력을 숨기고 있었구나! 동시에 부기 두 개를 조종하다니, 수련이 최소 연기 후기에 이른 것 아니냐?”

    백소천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표정은 어두웠다. 방금 전의 공격은 비장의 한 수였는데 고화령에게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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