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77화 (77/1,214)
  • 77화. 보전(寶典)의 행방을 쫓다

    “제대로 본 것이 맞느냐? 심협이라는 자가 홀로 강시와 맞붙었느냔 말이다! 그리고 그다음은 어찌 되었느냐?”

    왕청송은 전철생의 시신을 가리키며 정화에게 물었다.

    “맞습니다. 심협 혼자 강시와 겨뤘습니다. 그런데 강시를 죽인 것은 나중에 온 백소천입니다. 제가 평소에 심협과 사이가 좋지 않아 굳이 나서지는 않았지요. 그 두 사람은 저쪽으로 도망쳤습니다.”

    정화는 급히 한곳을 가리켰다.

    “나는 부상을 입었으니 요양할 곳을 찾아 회복해야 한다. 고화령, 너는 변화술에 능하고, 요족의 기운을 숨길 수 있으니, 그 두 사람을 쫓는 일은 네가 해 줘야겠다.”

    왕청송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에 입을 열었다.

    “그들이 떠난 지 얼마나 되었느냐?”

    고화령은 정화를 노려보며 물었다.

    “아직 일주향(*一炷香: 향 한 대가 연소되는 시간, 약 30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정화의 다급한 대답에 고화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곧 따라잡을 수 있겠군. 네 추적술이라면 문제도 아닐 게다. 순양보전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너도 잘 알고 있겠지? 그들이 이리도 많은 요괴와 귀신들을 보내 우리를 도운 것은 단순히 공법 하나 때문이 아니다. 반드시 완전무결한 상태로 순양보전을 가지고 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 둘 다 곱게 죽지 못할 것이야!”

    왕청송이 그 어느 때부다 엄숙한 목소리로 신신당부했다.

    “호호. 보아하니 순양보전의 비밀을 알고 계시네요? 안심하세요. 연기기 수사 두 놈 상대하는 것은 일도 아니니 보전을 반드시 가지고 오겠습니다.”

    고화령이 자신만만하게 말을 마치자마자 자색 빛이 번득이더니 뼈 날개가 사라졌고, 몸은 옅은 자색 연기에 휩싸였다. 연기가 걷힌 후, 고화령은 예전의 그 준수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아…… 다, 당신은……?”

    정화는 고화령을 보고는 넋이 나간 듯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고화령은 정화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몸을 솟구쳐 십여 장을 날아가 숲속으로 사라져갔다.

    “자질도 떨어지고 기개도 없는 네놈 따위는 죽어 마땅하나, 말 잘 듣는 사람 하나쯤은 필요하지. 당분간 나를 따르거라.”

    고화령이 멀리 사라진 것을 확인한 왕청송은 정화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말했다.

    “네, 네! 앞으로 사백님 말씀만 따르겠습니다!”

    왕청송의 말에 정화는 죽다 살아난 심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 * *

    날이 어두워졌을 무렵, 심협과 백소천은 토집진까지 도망쳐온 상태였다. 그러나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기에 급히 건량과 준마 두 필을 구해 떠났다.

    “백 사형, 요마(妖魔)들의 기세에 사숙조마저 당하고 마셨으니 사부님도 아마 살아계시지는 못할 것 같소. 이제 어떻게 해야 하오?”

    심협은 말을 재촉해 몰며 물었다.

    “아직 소식이 퍼지지 않아 춘추관이 고립무원 처지에 놓였을 뿐, 요마들이 일을 벌인다면 다른 수선자들도 수수방관하지 않을 걸세. 등주(登州) 경내에서 거리가 가장 가까운 문파는 약수문일세. 그리로 가서 구원을 요청해보세.”

    백소천은 미리 생각해둔 듯 바로 답했다.

    “사형 말씀대로 지금은 그 방법밖에 없겠구려. 늦지 않게 도착하면 좋으련만. 그런데 약수문은 정확히 어디에 있소?”

    “약수문은 수법(水法)에 정통한 문파네. 그 종문(宗門)은 만수하와 백련하가 시작되는 곳, 오궁현(吾宮縣) 경내에 있지. 그들의 명성이 우리 춘추관보다 잘 알려져 있고 위치도 상대적으로 찾기 쉬운 곳에 있네. 현성에서 동쪽으로 가다가 천평현(天平縣)과 대량현(大良縣)을 지나면 바로 도착할 것이네.”

    백소천이 대답했다.

    “왕 사백이 내 정체를 알게 됐으니 현성 쪽으로는 가면 안 될 듯하오. 아무래도 밤새 춘화현 경계를 벗어나 송번현을 돌아서 가는 것이 좋겠소. 돌아가면 더 멀긴 해도 더 안전할 것이오.”

    심협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그래, 아무래도 돌아가는 편이 더 안전하겠지.”

    백소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두 사람은 각자 생각을 정리하느라 더는 말을 나누지 않았다. 그저 채찍을 휘둘러 말을 달릴 뿐이었다.

    “백 사형, 내게 갑자기 법력이 생긴 것을 보고도 왜 아무것도 묻지 않소?”

    심협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먼저 불쑥 물었다.

    “사제가 어떤 기연(機緣)을 만났건 그건 자네의 기연이네. 이야기하고 싶다면 언젠가 이야기하겠지. 또한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아직 말할 때가 되지 않은 것일 테고. 게다가 자네도 수사가 되었으니 이제 수명 걱정도 없어졌고, 나도 자네 때문에 걱정할 필요도 없어졌으니 모두가 좋은 일 아닌가? 하하하!”

    백소천은 다소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백 사형, 지금껏 보살펴준 은혜에 감사하오. 때가 되면 내 사형에게 모두 이야기하리다.”

    심협은 백소천이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하자 다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우리는 벗 아닌가. 서로 마음에 거리낄 것만 없으면 되지. 그렇다고 비밀이 없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네. 내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으니 말일세.”

    백소천은 씩 웃으며 심협을 바라보았다. 그는 평소 진지함과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 한 번도 심협에게 허언을 한 적은 없었다. 절로 믿음이 가는 말에 심협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때, 백소천이 코를 몇 번 찡그렸다. 심상치 않은 냄새를 맡은 듯했다.

    “결국 따라왔군.”

    백소천이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심협 역시 긴장해 채찍으로 말의 둔부를 내리치며 뒤를 돌아봤다.

    그들이 달려온 길 수십 장 뒤편의 허공 3척 정도 높이에서 푸른 광점(光點)들이 둥둥 뜬 채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추격해오고 있었다. 어찌나 빠른지 열 번을 호흡하기도 전에 상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거리가 좁혀졌다.

    달빛을 빌려 자세히 보니, 그들을 쫓는 것은 온몸이 칠흑처럼 검고 눈동자가 짙푸른 요견들이었다. 체구도 보통 사냥개보다 두 배는 컸고, 온몸은 검은 안개에 휩싸여 있었으며, 삐죽 솟은 날카로운 이빨이 허옇게 번들거렸다. 지독한 비린내는 그 이빨에서 번들거리는 침에서 나는 것인 듯했다.

    “사제, 어차피 말로는 요견을 따돌릴 수 없다네. 우선 내리자고.”

    백소천의 말에 심협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맹렬히 말고삐를 당겼다. 그러자 말이 앞발을 번쩍 들어 허공에 두어 차례 휘두르더니 우뚝 멈췄다.

    백소천은 말 등을 한 차례 치더니 그대로 솟구쳐 공중에서 몸을 틀더니 안정적으로 착지했다. 그 민첩하고 가벼운 움직임에는 여유가 넘쳤다.

    심협도 몸을 돌려 백소천을 따라 말에서 내렸다.

    세 마리 요견은 두 사람이 멈추자 더욱 맹렬히 짖어대며 속도를 높여 먹이를 덮치듯 공중에서 두 사람을 덮쳐왔다.

    백소천이 불쑥 앞으로 나아가더니 칠성강보를 밟았다. 그러자 그의 모습이 희미해졌고, 다음 순간 가장 앞에 있는 요견에게 공격을 쏟아냈다.

    “크르릉!”

    갑작스런 공격에 요견은 당황했으나, 재빨리 백소천을 물어뜯으려 했다.

    반면 백소천은 침착했다. 그는 고개를 틀어 요견의 공격을 피하더니 곧장 오른손을 쳐들었다. 손은 흐릿한 푸른 빛을 발하며 돌연 배로 커지더니 요견의 배를 두들겼다. 청양수의 일식이었다.

    텅!

    북을 두드리는 것 같은 둔탁한 소리가 울렸고, 요견의 흉부가 돌연 푹 꺼지며 10여 장을 훌훌 날아가 땅에 처박혔다. 뼈가 몇 개는 부러진 듯했다.

    백소천의 청양수는 생전에 전철생이 보인 것보다 훨씬 위력적이었다.

    그러나 그가 공격했던 손을 거두기도 전에 옆에서 검은 그림자가 스쳤다. 다른 요견이 곧장 달려와 그의 팔을 물어뜯으려 한 것이다.

    피할 겨를이 없었던 백소천은 법력을 운공해 팔을 보호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하얀 빛줄기가 그의 팔 아래를 지나더니 순식간의 요견의 머리에 꽂혔다.

    펑!

    “커헝!”

    요견은 애처롭게 울부짖더니 몸을 뒤집으며 바닥을 굴렀다. 하얀 빛줄기는 물론 심협의 작살 부기였다.

    백소천은 심협을 돌아보며 미소를 짓고는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소매가 순식간에 붉은 빛으로 가득 차더니 동전검이 나타났다. 동전검은 심협의 작살을 스쳐 지나더니 그대로 쓰러진 요견을 찔러갔다.

    심협도 구경만 하지는 않았다. 그는 손을 들어 작살을 조종해 공중에서 한 바퀴 돌게 하더니 막 자신을 공격해 들어오던 요견을 찔러갔다. 그 요견은 다른 두 마리보다 체구가 훨씬 컸고, 미간에는 세로로 된 하얀 무늬까지 있었다. 꿈속에서 본 삼안을 생각나게 하는, 세로로 된 눈 같은 무늬였다.

    그 거대한 요견은 작살 부기를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짙푸른 눈동자를 굴리더니 돌연 입을 벌려 무언가를 뿜어냈다. 그러자 검푸른 물 화살이 발사되어 심협의 작살과 맞부딪쳤다.

    치익!

    작살 표면에서 갑자기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심협은 일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법력과 작살 사이의 연결이 끊어졌다가 이어지기를 반복한 것이다. 작살은 통제를 잃고 허공에서 위아래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요견은 간단하게 작살을 피하더니 심협을 덮쳐왔다.

    깜짝 놀란 심협은 다시 작살을 조종해보려 했지만, 그러기에는 늦었음을 깨닫고는 곧장 몸을 웅크렸다. 그대로 요견의 아래에 위치하게 된 그는 양기를 운공해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쾅!

    둔탁한 굉음이 울렸다.

    심협은 철판을 두들긴 것 같은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다행히 요견은 주먹질에 뒤로 제법 밀려나기는 했지만, 별다른 충격은 없는 듯 가뿐히 내려서더니 곧장 다시 공격해왔다.

    심협은 자신이 요견의 적수가 되지 못함을 알고는 몸을 피했다.

    그런데 그때, 백소천이 있던 곳에서 돌연 폭발음이 들려왔다.

    퍼펑!

    이어서 화염이 하늘로 솟구쳐 황야를 환하게 비추었다.

    요견은 갑자기 밝아진 상황에 적응되지 않는지 동공이 축소됐고, 동작도 약간 느려졌다.

    심협은 이 틈에 얼른 백소천 쪽을 살폈다.

    백소천은 동전검을 든 채 요견 한 마리와 맞붙고 있었다. 근처 땅에는 아직 불길이 남아 있었는데, 부적이 폭발한 흔적 같았다. 그 불 옆에는 요견 한 마리가 온몸이 검게 탄 채 누워 있었다. 몸은 이미 폭발에 동강 난 상태였다.

    이 상황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찾은 심협은 서너 걸음 정도 떨어져 있는 작살로 곁눈질을 했다. 그리고 자신을 덮쳐오는 요견을 향해 같이 달려나갔다.

    “크르릉!”

    요견은 광기가 폭발한 듯 울부짖었다.

    심협은 칠성강보를 밟을 줄 모르니 백소천보다는 한참 느렸지만, 있는 힘껏 세 걸음을 달린 후 낮게 일갈하며 두 발을 박차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온 힘을 다한 덕에 요견보다도 높이 오를 수 있었다.

    그 순간, 심협은 어느새 꺼낸 부적을 든 채 요견의 이마를 향해 매섭게 내리쳤다.

    꽈릉!

    거대한 굉음에 이어 하늘에서 돌연 하얀 번개가 요견의 머리로 떨어졌다. 심협은 양손을 결인하며 크게 외쳤다.

    “공격!”

    그러자 바닥에 있던 작살에 하얀 빛이 일더니 쏜살같이 날아가 그대로 요견의 심장을 관통했다.

    “커헝!”

    요견은 고통에 울부짖었으나, 바로 쓰러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중상으로 인해 광기가 더욱 폭발한 듯 다시 입을 벌려 심협을 향해 무언가를 뿜어댔다. 그러자 짙푸른 액체가 땅 곳곳에 뿌려지면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심협은 연신 뒷걸음쳐 피해 다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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