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76화 (76/1,214)
  • 76화. 의심

    심협은 양손을 수레바퀴 모양으로 결인했다. 그러자 작살에는 하얀 빛이 가득 차오르며 엄청난 한기(寒氣)를 발산했고, 얼음 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철생을 감싼 물은 거대한 얼음 구(球)가 되어 강 위로 떠올랐다. 전철생은 기괴하게 뒤틀린 자세로 얼음 구에 갇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심협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소귀의 부상을 살폈다.

    소귀는 아까 심협 체내의 법력을 받아들이면서 부상이 어느 정도 회복된 상태였다. 그러나 삐죽이 내민 머리를 보니 입가에는 피를 토한 흔적이 보였고, 눈꺼풀이 축 쳐진 것이 매우 지친 듯했다.

    심협은 급히 정신적 파동으로 소귀를 위로하고는 한 손을 등껍질에 올린 채 법력을 주입해 주었다. 그러자 소귀는 조금 정신을 차리고는 고맙다는 듯 머리를 심협의 몸에 비볐다.

    “소귀, 아까 적의 공격을 튕겨낸 능력은 도대체 뭐였어?”

    심협은 소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물었다.

    소귀는 알아들을 수 없는 꺽꺽 소리를 냈는데, 아마도 득의양양한 웃음 같았다. 이어서 정신적 소통으로 질문에 답을 했다. 뒤죽박죽이라 알아듣기 쉽지는 않았지만, 대략 요약하면 이랬다. 그 힘은 소귀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신통력이다.

    자기가 견뎌낼 수 있는 정도의 힘이라면 등껍질이 그 힘을 흡수해 몇 배나 강한 반동력으로 반격할 수 있다. 다만 이 신통력은 법력의 소모가 커서 지금 자신의 법력으로는 시전할 수가 없기에 심협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설명을 들은 심협은 매우 기뻤다. 알고 보니 소귀의 등껍질은 공격과 수비가 모두 가능한 것이다. 더구나 적이 예상치 못한 능력이니 물 화살 공격보다도 훨씬 가치 있는 능력인 셈이다.

    전철생의 마지막 공격은 아마도 연기 후기의 위력에 이를 듯했다. 소귀의 수련은 연기 초기 수준인데도 그 공격의 반동으로 상대의 팔을 부러뜨렸으니, 훗날 소귀의 수련이 더욱 진보하게 된다면 놀라운 일이 벌어질 듯했다.

    심협은 소귀의 이 신통력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우선 소귀에게 아낌없이 칭찬을 해준 후, 통령역요 술법을 시전해 돌려보냈다.

    심협은 전철생이 갇힌 얼음 구로 다가갔다. 그런데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어지러움을 느끼며 속이 울렁거렸고, 체내가 텅 빈 듯한 허탈감이 전해져왔다. 통령역요 술법만으로도 법력 소모가 큰데, 방금 소귀가 절반을 흡수해 갔으니 체내의 법력이 바닥난 것이다.

    심협은 깊게 숨을 들이마셔 억지로 정신을 차린 후에 얼음 구로 다가갔다. 자기가 사용한 신통력의 흔적을 치워버린 후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붉은 빛 한 줄기가 순식간에 눈앞까지 날아왔다.

    “요괴들이 벌써 추격해온 것인가?”

    심협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붉은 빛이 무엇인지 살필 틈도 없이 결인한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손에 쥔 작살에 하얀 빛이 가득 차더니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 와중에도 심협은 도망칠 방법을 생각하느라 바빴다.

    그러나 그 붉은 빛이 노린 것은 심협이 아니었다. 그 빛은 얼음 구를 향해 날아들더니 마치 진흙이라도 찌르는 것처럼 간단하게 파고들어 전철생의 머리에 꽂혔다.

    그제야 붉은 빛이 사라지고 본래 모습이 나타났는데, 바로 동전검이었다.

    “이건……?”

    심협이 동전검의 정체를 알아본 순간…….

    “크아악!”

    고막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비명이 얼음 구에서 퍼져 나왔다. 듣는 것만으로도 무수히 많은 침이 귓속을 찌르는 것처럼 윙윙 울렸다. 이어서 전철생의 몸 위에는 돌연 검은 사람 모양 그림자가 일었으나, 머리가 동전검에 찔린 상태라 못 박힌 것처럼 벗어나지는 못했다.

    심협은 경악한 얼굴로 귀를 막으며 급히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설마 전철생의 몸에 저런 것이 숨어 있었을 줄이야!

    “저건 시영귀(尸影鬼)라는 것이네. 실력이야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감쪽같이 산 사람의 몸에 깃들어 그 육신을 점차 강시로 만들지. 육신을 파괴해도 시영귀는 죽지 않네. 저놈들은 다음 목표를 찾으면 그만이니까. 자네가 방금 조금만 더 가까이 갔더라면 자네 몸에 깃들었을 게야.”

    낭랑한 목소리와 함께 하얀 그림자가 다가왔다. 백소천이었다.

    백소천의 하얀 옷은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다. 분명 엄청난 격전을 치렀을 터였다. 다행히도 행동에 불편함이 없어 보이니 본인의 피는 아닌 듯했다.

    그러나 심협은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 치며 경계의 눈빛으로 백소천을 바라봤다.

    “심 사제, 자네 괜찮은가?”

    백소천은 심협의 태도에 당황한 듯했다.

    “당신이 백소천이라는 것을 어찌 증명하겠소?”

    심협이 다소 날이 선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 하룻동안 기이한 일을 너무도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고화령과 전철생이 적으로 돌변했다. 게다가 그 둘은 모습도 바꿀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니 심협은 지금 누구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아, 내가 가짜일까 봐 그러는 건가? 좋네. 그럼 이건 어때? 우리는 거의 같은 날 춘추관에 입관했고, 영관전에서 처음 만났지. 서로 알게 된 다음 날, 우리는 함께 뒷산에서 술을 세 단지나 마셨어. 그리고 셋째 날에는…….”

    심협이 왜 자신을 경계하는지 알게 된 백소천은 둘만이 알 만한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심협은 차차 경계심을 풀었지만, 완전히 풀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뒤로 물러서기까지 했다.

    “청화산 전체가 잿빛 광막에 싸여 있는데 어떻게 도망쳐 나온 것이오?”

    심협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계속 질문했다.

    “아, 그 일에 대해서는 자네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네. 내 방금 종문(宗門) 대전에서 요괴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멀리서 자네와 전 사형이 하산하는 것이 보이기에 따라 내려왔지. 마지막에는 장문인의 도움으로 나올 수 있었지만. 그런데 안타깝게도…… 장문인의 생사는 알 길이 없네.”

    백소천이 침울하게 말했다.

    그의 말을 자세히 되짚어봐도 이상한 부분이 없자, 심협은 그제야 마음을 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내 대단한 요괴를 너무 많이 봤소. 그중에는 외모를 바꾼 요괴도 있었기에 경계할 수밖에 없었소. 사형이 부디 양해해주시오.”

    심협이 공수하며 말하자 백소천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네. 그렇게 조심하는 게 마땅하지..”

    이어서 백소천은 검은 그림자로 눈을 돌리더니, 살기를 내뿜으며 손을 결인하여 동전검을 조종했다. 그러자 동전검에서 붉은 검광이 여러 줄기 뿜어져 나와 검은 그림자의 체내를 찔러 들어갔다.

    검은 그림자는 순식간에 조각조각이 났고, 검은 기운으로 변해 흩날렸다. 날카로운 비명도 사라졌다.

    전철생의 몸이 떨리더니 음기(陰氣)가 솟구쳐 나왔다. 그러자 거대했던 체구가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해 금세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전철생의 죽음에 침울해진 심협은 작살 부기를 조종해 얼음 구를 깨고 사형의 시신을 꺼냈다. 이어서 부기를 이용해 백소천과 함께 큰 구덩이를 팠다. 그러고는 전철생, 우 사형, 정원의 시신을 매장했다.

    심협은 우 사형과 정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같은 춘추관 제자였던 그들에게 죽은 후에까지 자잘한 악감정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보아하니 그들은 푸른 털들에 심장을 관통당해 죽은 듯했다.

    사형제들의 시신을 매장한 심협과 백소천은 곧장 자리를 떴다. 그들이 뒷모습은 이내 저 멀리 황야로 사라졌다.

    * * *

    심협과 백소천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각, 그들이 있던 자리. 한 쌍의 남녀가 말없이 서 있었다. 자색 치마를 입은 여자의 등 뒤로는 작은 뼈 날개가 솟아 있었다. 남자는 체구가 장대하고, 얼굴이 검었다. 바로 고화령과 왕청송이었다.

    “결국 한 발 늦었네요.”

    고화령이 사방을 둘러보더니 검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우리가 나 사제를 얕잡아보았구나. 그에게 이리도 많은 시간을 뺏기다니.”

    왕청송은 살기를 번득이며 말했다. 그의 손에는 피로 물든 장검, 다른 손에는 원형의 법반이 들려 있었다. 나 씨 도인이 사용하던 법반이었다.

    고화령은 강가에 남은 결투의 흔적을 훑어보더니 한 손을 들어 허공을 향해 움켜쥐었다. 그러자 그녀의 손이 향한 강가 땅바닥이 갈라지더니 세 구의 시신이 커다란 자색 손에 잡혀 끌려 나왔다. 물론 방금 심협과 백소천이 묻어준 전철생 등의 시신이었다.

    고화령은 정원과 우 사형의 시신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전철생의 시신 앞에 반쯤 쭈그려 앉아 자세히 살폈다.

    “시영귀는 능력이 비범한 데다가 은닉과 도주에 능하니 벽곡기 수사라 해도 쉽게 죽일 수 없습니다. 장문인과 나 씨 도인은 우리 손에 있고 사숙조는 뒷산에서 죽었는데, 춘추관에 누가 있어 이 시영귀를 죽일 수 있단 말입니까?”

    고화령은 코를 찡그리며 의아한 듯 물었다.

    “춘추관에서 법력을 지닌 자는 몇 없지. 하물며 제자들 항렬에서는 홀로 시영귀를 죽일 수 없어. 이곳의 흔적을 보아하니, 최소한 두 명의 연기기 제자가 힘을 합친 듯하구나. 한 사람이 견제하고, 한 사람이 습격한 것이겠지.”

    왕청송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천천히 분석했다.

    “백소천과 정화일까요? 그렇다면 순양보전은 아마 그들에게 있겠군요.”

    고화령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어쨌거나 이번에 이렇게 크게 일을 벌였으니 이 일에 참여한 요족과 귀신을 모두 철수시켜야 한다. 시간을 끌다가는 다른 수선자들에게 발각될 게야.”

    왕청송은 심각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마음이 무거운 듯했다.

    “춘추관에 남아 있는 제자들은……?”

    고화령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모두 죽여 입을 막아라. 시신들은 모두 가져가 흔적을 모두 없애고.”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고화령이 어리둥절한 듯 물었다.

    “웃기는 소리! 내가 얼마나 큰 위험을 무릅쓰고 사문을 배반한 것인지 아느냐? 이제 나는 숨을 곳을 찾아다녀야 하는 신세다. 이 일이 알려지는 날에는…… 흥! 인간이 배반자를 벌하는 수단은 너희 요족들보다 더할 것이다.”

    왕청송이 차게 웃으며 말했다.

    이 말에 고화령은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말이 없어졌다.

    왕청송은 돌연 고개를 돌려 어느 곳을 바라봤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여 장 밖에 해골 요괴와 쥐 요괴가 온몸에 핏자국이 가득한 이를 잡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잡혀 온 이는 정화였다.

    정화는 고화령을 알아보지 못했으나 왕청송만은 바로 알아봤다.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듯 해골 요괴와 쥐 요괴의 속박에도 불구하고 크게 소리쳤다.

    “사백님, 살려주십시오!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지금 정화는 꼴이 말이 아니었다. 평소의 냉정함과 오만함은 찾아볼 수도 없는 상태였다.

    “순양보전이 너에게 있느냐?”

    왕청송은 정화를 발끝으로 차 쓰러트린 뒤 그의 가슴 위를 한 발로 밟으며 냉랭하게 물었다.

    정화는 땅바닥을 구르다가 전철생 등의 시신에 부딪혔고, 이내 해골 요괴와 쥐 요괴에게 손발을 붙잡혔다. 그러더니 순간 당황하여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멍하게 왕청송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저자는 아닙니다. 순양보전은 아마 백소천에게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백소천은 누구와 힘을 합쳐 시영귀를 죽인 걸까요?”

    고화령은 땅에 쓰러져 있는 정화를 깔보듯 흘겨보고는 나지막이 물었다.

    “보아하니 춘추관에 나도 모르는 인물이 있었던 모양이구나. 아무튼 저자는 순양보전을 갖고 있지 않을 테니 살려둘 필요가 없겠구나.”

    왕청송은 발을 들어 정화의 머리를 매섭게 밟으려 했다.

    “저를 죽이지 마십시오! 저도 쓸모가 있습니다. 저도 쓸모가…….”

    정화는 단단히 붙잡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지만, 입만은 죽기 살기로 떠들었다. 방금 전까지 요괴와 귀신들의 잔인한 살육을 직접 목도한 그는 완전히 겁에 질려 있었다.

    “네가 무슨 쓸모가 있다는 것이냐?”

    왕청송이 담담하게 물었다.

    “찾으시는 물건이 누구에게 있는지 압니다. 알려드리면 목숨은 살려주실 수 있습니까?”

    정화가 머리를 들며 두려운 눈빛으로 애걸하듯 말하였다.

    “이야기해 보거라.”

    왕청송은 대답 대신 눈을 가늘게 뜨며 이야기했다.

    “백소천에게 있습니다! 저는 저의 친형인…… 정원 형님을 포함한 네 사람의 뒤를 몰래 따라왔습니다. 그런데 산문을 나서서 오는 길에 그들 중 한 사람이 강시로 변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 강시의 손에 제 형님과 또 한 명의 사형이 죽었고…… 그 후 심협이라는 기명제자와 맞붙었지요. 그런데 이 심협이라는 놈이 무슨 법술을 배운 건지 위력이 대단했습니다! 그때 조금 멀리 있었지만, 강시가 분명 순양보전을 언급하는 것을 어렴풋이 들었습니다.”

    정화는 정원 등의 시신을 힐끗 보고는 다급히 말했다.

    고화령과 왕청송은 서로를 마주 보았는데, 모두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보아하니 심협이라는 자도 의심스럽군요. 기명제자 놈이 어떻게……? 설마 나원진이 계획해 둔 예비 인물일까요?”

    고화령이 의심스러운 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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