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75화 (75/1,214)
  • 75화. 푸른 털의 강시

    심협은 등을 타고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기이한 꿈속에서의 사투들 덕에 보통 사람보다 반응이 예리해지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저 푸른 손에 목을 붙잡혔을 것이다.

    심협은 앞으로 연달아 두 걸음을 뛰어나간 후 몸을 돌렸다. 그러나 이내 그의 표정은 방금 전보다도 더욱 딱딱하게 굳을 수밖에 없었다.

    몇 걸음 떨어진 곳, 전철생이 의외라는 듯한 표정으로 푸른 털이 가득한 오른팔을 서서히 거두고 있었던 것이다.

    우 사형과 정원은 강가에 엎드려 물을 마시던 자세 그대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시는 숨을 쉴 수도, 물을 마실 수도 없는 상태가 된 후였다.

    “전 사형, 어찌 된 일이오? 아니, 당신은 전 사형이 아니군. 대체 누구요?”

    심협은 두 사형의 죽음보다도 전철생의 상태에 더 놀랐으나,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냉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흐흐, 사제의 몸놀림이 대단하군. 그래서 사부가 순양보전을 자네에게 준 모양이야. 자, 순양보전을 내놓게. 그러면 자네와 사형제로 지내온 정을 보아 최대한 편안히 보내주겠네.”

    전철생은 심협의 물음에 답하는 대신 웃으며 말했다. 그러는 동안 왼손도 빠르게 굵어지면서 푸른 털이 빽빽하게 자라났다. 이제 두 팔은 거의 허리만큼 굵어져 몸과 균형이 맞지 않아 보였다. 그 팔뚝 위의 구불구불한 근육들을 보고 있노라면 오싹해질 지경이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사제는 도통 모르겠소.”

    심협은 전철생의 변화에 놀라면서도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다.

    “사제, 모르는 척할 것 없네. 내 제법 큰 대가를 치르고 감양령부(感陽靈符)를 얻었지. 순양보전을 감지하기 위한 부적이니 나를 속일 생각 말게.”

    이어서 전철생이 왼손을 펼치자 그 손에 하얀 부적이 들려 있었다. 부적에서는 하얀 영광(*靈光, 영적인 빛)이 일었다.

    어떤 법술을 시전한 것인지 보이지도 않았는데 하얀 부적이 돌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심협은 등에 맨 봇짐의 석합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심지어 붉은 빛이 안에서 새어 나오자 심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봇짐에 있었군. 흐흐, 그 멍청한 것들. 춘추관 사람들도 바보가 아니거늘, 이런 상황에 순양보전을 고강한 자들이 들고 있을 리가 있나? 내 심혈을 기울여 진즉부터 춘추관에 잠입해온 것이 헛되지 않았구나! 순양보전을 가져가 대인께 바친다면 그들의 표정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구나. 하하하하!”

    전철생은 탐욕에 물든 눈으로 심협의 봇짐을 보며 광소했다.

    한편, 심협은 만감이 교차했으나 마음을 가라앉히며 몸을 돌려 강가로 갔다.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크흐흐.”

    전철생은 잔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그의 다리에도 푸른 털들이 자라났고, 그 상태로 심협을 쫓았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몇 장을 뛰어넘어 순식간에 심협을 따라잡더니 푸른 털이 가득한 두 손으로 공격해왔다.

    하지만 그 순간, 심협 앞에 돌연 밧줄처럼 생긴 하얀 그림자가 스쳤다. 그러자 심협의 속도가 돌연 빨라져 전철생의 공격을 피하고 몸을 솟구쳤다가 그대로 강으로 뛰어들어 모습을 감추었다.

    전철생은 일순 놀라서 급히 따라갔으나, 넘실거리는 강물을 보고는 더는 쫓아가지 않았다.

    “강에 뛰어들어 목숨을 구해보겠다? 흐흐, 하지만 이 좁은 강에 숨을 수 있을 것 같으냐? 강가에는 몸을 숨길 초목조차 없는데 말이다. 크하하!”

    전철생은 냉소적으로 웃더니 밥공기만 한 돌을 몇 개 집어든 채 강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몇 장 밖의 강물이 요동치더니 검은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전철생은 눈빛을 빛내며 몸을 뒤로 조금 기울이더니, 오른손을 세게 휘둘렀다. 그러자 그가 던진 돌이 잿빛 그림자가 되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날아갔다. 돌은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날아가 검은 그림자를 맞췄다.

    꽝!

    거대한 굉음이 울렸다.

    돌은 암초에 부딪힌 물거품처럼 산산조각 났지만, 놀랍게도 검은 그림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멈추지 않고 떠올랐다. 그리고 순식간에 맷돌만 한 검푸른 거북이 등껍질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북이?”

    전철생은 당황하다 못해 황당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때, 강가가 일렁이더니 돌연 집채만 한 파도가 일어 전철생을 맹렬히 덮쳐갔다. 워낙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미처 피하지 못한 전철생은 파도에 그대로 부딪히고는 휘청거렸다.

    “무, 무슨 짓이냐!”

    전철생은 화들짝 놀라 펄쩍 뛰어서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그의 몸은 솟아오른 것보다도 맹렬히 떨어져 땅바닥에 처박혔다. 어느새 강물이 족히 손목 정도 굵기의 투명한 사슬이 되어 그의 발목을 감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슬의 반대쪽 끝은 강 속에 연결되어 있었다.

    “물 법술! 네게 법력이 있다니!”

    전철생은 굳은 안색으로 몸을 일으켜 앉더니 발목을 묶은 사슬을 양손으로 잡아 끊어내려 했다.

    그때, 검푸른 등껍질의 거북이, 소귀가 완전히 물 밖으로 나와 천천히 입을 벌렸다. 그러자 하얀 물 화살이 발사되어 순식간에 전철생 앞에 이르면서 날카로운 기운이 덮쳐왔다.

    “헛!”

    전철생은 물 사슬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급히 팔을 들어 막았다. 어느새 피부에는 푸른 비늘이 더 생겨난 상태였다.

    깡!

    물 화살과 전철생의 팔이 충돌하자 금속끼리 맞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충돌의 충격을 견디지 못한 전철생은 얼굴을 위로 향한 채 쓰러졌다. 그의 양팔에는 살점이 떨어져나가 밥그릇 정도 되는 구멍이 생겨나 있었고, 피가 콸콸콸 흘렀다. 뼈가 허옇게 드러날 정도였다.

    “크아아! 네놈이 감히!”

    전철성은 분노의 포효를 내질렀다. 그러자 푸른 빛이 그의 몸을 감쌌고, 온몸 곳곳에서 푸른 털들이 자라났다. 근육도 빠르게 커지면서 팔의 상처도 순식간에 아물었다.

    다음 순간, 전철생은 순식간에 키가 9척에 이르는 거대한 푸른 털 강시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비천강시처럼 눈에서는 영지(靈智)가 느껴졌다.

    전철생은 벌떡 일어나더니 몇 배로 커진 두 다리를 뒤흔들었다. 그 힘에 땅이 흔들릴 정도였다. 발목을 감고 있던 물 사슬도 단숨에 부서져 무수히 많은 물방울로 변해 사라졌다.

    “물 법술에 이어 통령지수까지? 어느 것 하나 춘추관의 공법이 아니로구나! 너는 누구냐? 어느 문파에서 보낸 자냐? 나와라! 거래를 하자!”

    전철생은 목소리 또한 체격만큼 커진 것인지 쩌렁쩌렁 울리면서 강물 속까지 메아리쳤다.

    하지만 강물은 여전히 고요했고, 심협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직 소귀만이 미동도 없이 물 위에 엎드려 있었다.

    “흥! 강물에 숨어 있으면 내가 너를 어찌할 수 없을 것 같으냐?”

    전철생이 차게 코웃음을 치자 온몸의 근육이 맹렬히 불어나기 시작했다. 푸른 털들은 모두 꼿꼿하게 펴져 마치 푸른 금속 침처럼 보였다.

    이어서 그가 양팔을 휘두르자 그 푸른 털들이 발사되면서 허공을 갈랐다. 날카로운 소리가 반경 10여 장의 강 위를 에워쌌다.

    그때, 검푸른 거북이 근처의 수면이 일렁였고, 동시에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바로 심협이었다. 그는 무언가 말하는 듯 입술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자 소귀는 사지와 머리를 모두 등껍질 안으로 넣고 수면 위에 반쯤 선 자세로 굴러가 심협의 앞을 방패처럼 막았다.

    무수히 많은 푸른 털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강 수면에는 순식간에 무수히 많은 구멍이 생기면서 잔잔한 파도가 일었다. 강가도 푸른 털에 뒤덮이면서 바위에도 바늘구멍처럼 작은 구멍들이 생겨나더니 이내 돌 부스러기가 되어버렸다.

    소귀의 등껍질도 무사하지는 않았다. 수백수천 개의 푸른 털이 빽빽하게 제법 깊게 꽂히면서 소귀는 애처롭게 비명을 질러댔고, 고통으로 몸을 떨었다.

    전철생은 이 광경을 지켜보며 잔인한 미소를 짓더니 훌쩍 몸을 날려 마치 매가 사냥하는 듯한 모양새로 소귀를 덮쳐왔다. 그의 양팔 근육이 다시 한번 배로 커지더니 두 주먹으로 매섭게 소귀의 등을 내리찍었다.

    쐐액!

    주먹이 허공을 가르자 우레 치는 듯한 소리가 울려왔다!

    심협은 비처럼 쏟아지던 푸른 털들의 공격이 끝나자 슬쩍 고개를 내밀어 상황을 살폈다. 그러고는 작살 부기를 꺼내 전철생을 공격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머릿속에 돌연 소귀의 감정 파동이 전해져왔다. 자신의 체내에 법력을 주입해달라는 것이었다.

    심협은 생각할 틈도 없이 두 손을 소귀의 배에 올린 채 법력을 주입했다.

    “흠!”

    심협의 표정이 급변했다. 소귀의 체내에서 돌연 방대한 흡입력이 생겨나 심협 체내의 법력을 순식간에 절반이나 흡입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 순간, 소귀의 몸에 검은 빛이 한 겹 일었다. 그러자 녀석의 등껍질에 박혀 있던 푸른 털들이 뽑혀져 나갔다. 동시에 소귀의 몸이 두 배나 팽창했고, 검푸르던 등껍질은 돌연 검은빛으로 변하면서 금속 같은 광택이 나타났다.

    전철생은 이 갑작스런 변화에 당황했지만, 내리치던 기세를 거둘 수 없어 결국 두 주먹으로 검은 거북이 등껍질을 치고 말았다. 그 난폭한 주먹질의 위력이 그대로 소귀의 몸에 전해졌다.

    하지만 놀랍게도 굉음은 울리지 않았고, 소귀의 등껍질 무늬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심지어 조금의 진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경악할 만한 주먹질의 위력이 그대로 사라져버린 듯했다.

    그런데 그때, 소귀의 등에서 검은 빛이 번득이며 흐르기 시작해 등껍질 모서리 쪽으로 모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 검은 빛이 흐름을 멈추더니, 마치 큰 고래가 물을 빨아들이듯 다시 돌아왔다. 그러자 무어라 형용하기 힘든 반발력이 솟구쳐 그대로 전철생의 주먹을 공격했다.

    펑!

    이번에는 굉음이 울렸다. 그리고 놀랍게도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전철생의 거대한 체구가 거의 10장을 튕겨나가 강에 빠졌다. 두 팔이 모두 부러져나간 것을 심협은 똑똑히 보았다.

    이 놀라운 광경에 심협은 기뻐하며 양손을 결인했고, 파란 빛이 번득이는 손을 재빨리 물속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전철생이 떨어진 곳 근처의 강물이 요동치며 그의 몸을 에워싸고 빠르게 회전하면서 거대한 물의 구(球)를 만들어냈다. 이 구는 미친 듯 빠른 속도로 회전하고 있었다.

    “으윽!”

    전철생은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물로 된 구의 급류에 휩싸여 빙빙 도느라 제대로 설 수도 없었다.

    그 사이에 심협의 손에서 좁고 긴 하얀 빛이 발사되면서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하얀 빛은 그대로 전철생의 가슴을 찔러 들어갔다. 하얀 빛에 싸여 있는 것은 바로 작살 부기였다!

    몸을 제대로 가눌 수도 없고 시야까지 가려져 있었던 전철생이 작살 부기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피하기에는 늦은 상태였다. 다급해진 그는 온몸에 푸른 빛을 둘렀다. 그러자 가슴팍에서 푸른 털들이 쑥쑥 자라나 순식간에 푸른 보호막을 만들어냈다. 급한 대로 급소는 막은 것이다.

    그때, 작살 표면에서 회백색 빛이 번쩍이면서 부적 문양의 빛이 흐르며 요동치더니 순식간에 크기가 서너 배로 커졌다.

    펑!

    폭발음과 함께 작살은 푸른 털로 만들어진 전철생의 보호막을 마치 종잇장처럼 꿰뚫고 곧장 가슴까지 찔러 들어갔다. 전철생의 몸에 일었던 푸른 빛은 그대로 산산이 부서져 흩어졌다.

    파직!

    크지는 않지만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오더니 작살은 선홍빛 핏자국과 함께 전철생의 가슴을 뚫고 나왔다. 전철생의 몸에는 주먹만 한 구멍이 생겨났다.

    “쿨럭!”

    전철생은 가늘게 몸을 떨더니 피를 토해냈고, 눈빛은 빠르게 생기를 잃어갔다. 그 순간에도 그의 몸은 물의 구에 휩싸여 돌고 있었다.

    그러나 심협은 아직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아까 두 팔에 뼈가 드러날 정도로 심각했던 상처도 순식간에 회복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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