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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74화 (74/1,214)
  • 74화. 사방에 닥친 위기

    심협과 전철생은 어느덧 산문 근처에 이르렀다. 산 전체를 감싼 거대한 광막의 끝부분이었다. 광막에는 잿빛 기운이 요동쳤고, 삼엄한 음기가 발산되고 있어 아직 거리가 제법 있는데도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였다.

    전철생은 앞뒤 재지 않고 낮게 이를 갈더니 잿빛 광막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의 손에 들린 칼이 검은 그림자처럼 광막을 찔렀다.

    그러나 광막은 약간 흔들렸을 뿐, 곧 본래의 상태를 회복했다. 심지어 잿빛 기운이 반격하듯 전철생의 칼을 휘감고는 탁탁거리는 소리를 냈고, 검신(劍身)에 잿빛 결정체가 생겨났다. 잿빛 결정체는 순식간에 칼을 잡고 있는 전철생의 팔까지 뻗어갔다.

    “헉!”

    전철생이 표정이 급변해 급히 칼을 빼려 했지만, 칼은 얼어붙은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야압”

    전철생이 기합을 내지르자 팔이 돌연 배로 굵어졌다. 그 상태로 잡아당기자 그제야 칼이 뽑혔으나, 검신의 절반은 이미 결정체가 엉겨 붙은 상태였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심협은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이 잿빛 광막은 예상보다 더욱 강력했던 것이다.

    그때, 산 정상에서 금색 빛이 번득였다. 그러더니 금빛 검광(劍光)이 한 대전의 하늘을 향해 뻗어갔다. 그 안에 누군가 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이는 듯했다.

    “장문인의 금룡검(金龍劍)이다!”

    전철생이 기뻐하며 외쳤고, 심협도 눈빛을 빛내며 지켜봤다.

    하지만 다음 순간, 자욱한 검은 기운이 아래에서부터 뻗어 나와 금빛 검광을 쫓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따라잡힌 금빛 검광과 검은 기운이 뒤엉켰다.

    금빛 검광은 눈부시게 찬란하고 기세가 압도적이라면, 검은 기운은 비록 볼품없어 보이지만 놀랄만 한 신통력을 지니고 있었다. 검기의 공격에도 흩어지지 않고 물러났다가 다시 뭉치니, 열세에 처하기는커녕 오히려 금빛 검기를 계속 후퇴하게 만들었다.

    전철생과 심협의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역시 풍양진인도 고수 요괴와 겨루는 중이었군.’

    심협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흐흐, 풍양진인! 금룡검이 고작 이 정도냐? 정말 실망이로구나!”

    검은 기운 안에서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검은 기운에서 검은 빛이 발사되더니 쏜살같이 금빛 검광을 맞추었다.

    콰쾅!

    거대한 굉음이 울렸고, 금빛 검광은 튕겨나가듯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검은 빛은 그 뒤를 바짝 따라가더니 금빛 검광을 에워쌌다.

    칙! 치이익!

    요란한 소리와 함께 금빛은 마치 불에 물을 부은 것처럼 절반이나 사라졌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검광을 공격하던 검은 빛도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금빛 검광은 근처의 암벽에서 사라졌고, 그 안에서 풍양진인이 나타났다. 손에 든 3척 정도의 금검에서 찬란한 금빛이 발산되고 있었다. 그라나 풍양진인은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로 가슴이 크게 요동치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게다가 어깨에서 솟은 피가 도포를 붉게 물들였다.

    “현음귀기(玄陰鬼氣)! 너는 도대체 누구기에 상고시대의 음독술을 부릴 줄 아는 것이냐?”

    풍양진인이 근엄하게 꾸짖듯 외쳤다.

    검은 기운 속에서는 괴이한 웃음소리가 울리더니 곧장 다시 요동치며 풍양진인을 덮쳐갔다.

    풍양진인은 표정을 조금 굳히며 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는 마침 산문이 있는 곳으로 날아와 결인한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손에 있던 금검이 곧장 날아가더니 덮쳐오는 검은 기운을 공격했다.

    화르륵!

    금검은 날아가던 도중 금색 빛이 늘어나더니 금빛 화염이 됐다.

    검은 기운은 그 금빛 화염을 심히 두려워하는 듯 재빨리 피했다.

    그런데 그때, 금검에서 금색 빛줄기가 발사됐다. 이는 금색 부적이었는데, 쏜살처럼 빠르게 검은 기운을 공격했다.

    꽈르릉!

    부적은 돌연 어마어마한 양의 금색 빛을 사방으로 방출하더니 넓고 성대한 정기(正氣)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검은 기운은 금색 빛이 비치자 빠르게 흩어져 갔다.

    “크으윽! 수, 순양진부(純陽眞符)?”

    고통스러운 외침이 울리더니 검은 기운이 심하게 요동쳤다. 이어서 검은 기운에서는 그윽한 검은 빛이 나타나 부적의 금색 빛을 막았다.

    그 순간, 금빛 비검이 번개처럼 날아들어 검은 기운을 매섭게 공격했다. 그러자 검은 기운이 두 동강이 나면서 검은 인영이 나타났고, 인영의 온몸은 칠흑처럼 검었다. 미세한 검은 비늘로 얼굴까지 빽빽하게 뒤덮여 있었다. 두 눈은 피처럼 붉었고, 이빨은 개와 비슷했다.

    그것은 분명 강시였으나 보통의 강시들과는 달랐다. 눈빛이 살아 있어 영지(靈智)가 깨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등 뒤로 검은 날개까지 달려 있어 더욱 기괴해 보였다.

    “말로만 듣던 비천강시(飛天僵尸)가 아닌가!”

    전철생이 경악해 외쳤다.

    심협의 낯빛도 어두워졌다. 그는 어느 서적에서인가 비천강시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비천강시는 하늘을 날거나 땅으로 숨을 수 있는 등 일반 강시보다 훨씬 위협적인 존재였다.

    “감히 나의 시운(尸雲)을 훼손하다니! 목숨으로 갚으라!”

    비천강시의 눈에서 붉은 빛이 터져 나왔는데, 날개가 펼쳐진 순간 검은 그림자가 되어 지극히 빠른 속도로 풍양진인에게 발사되어 갔다. 이어서 비천강시의 입에서는 검은 빛기둥이 나와 풍양진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피하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 풍양진인은 양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소매에서 금색 빛이 번득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불어나 넓고 거대한 두 개의 막이 되어 검은 빛기둥을 막아냈다.

    퍼펑!

    굉음과 함께 금빛 막이 깊게 파이며 점점 팽팽해져갔다. 그럼에도 찢어지거나 터지지 않고 검은 빛 기둥을 계속 막아낸 것으로 보아 그 소매 역시 보물인 듯했다.

    그러나 풍양진인이 숨을 돌리기도 전에 검은 빛기둥 주위로 음풍(陰風)이 일더니 검은 소용돌이가 생성됐다. 소용돌이 안에서는 거대하고 검은 귀신의 손이 뻗어 나오더니 금빛 막을 매섭게 공격했다.

    콰쾅!

    굉음이 울리며 금빛 막은 결국 더 버티지 못하고 구멍이 뚫렸다. 그러자 검은 귀신의 손은 그대로 밀고 들어가 풍양진인의 가슴팍을 가격했다.

    “큭!”

    풍양진인은 피를 토하며 그대로 추락해 산문 근처의 잿빛 광막에 부딪힌 후 심협과 전철생이 있는 곳 근처에 떨어졌다. 도포에는 어느새 잿빛 결정체가 생겨나 있었다.

    둘의 등장부터 지금까지 고작 몇 차례 호흡할 정도의 짧은 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장문인!”

    심협과 전철생은 급히 달려가 풍양진인을 부축했다.

    풍양진인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는데, 심협에게는 시선이 꽤 오래 머물러 있었다. 의아한 듯한 눈빛이 스쳤지만 곧 사라졌다.

    그때, 음풍으로 만들어진 소용돌이에서 비천강시가 튀어나왔다.

    “크하하! 결국 이 정도였나?”

    득의양양한 광소를 터뜨린 비천강시의 등 뒤로 날개가 펼쳐졌다. 풍양진인의 목숨을 완전히 끊으려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돌연 비천강시의 머리 뒤에서 뜨거운 바람이 불었다. 기척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지만, 금빛 비검이 뒤에서 공격해온 것이다. 이에 비천강시는 급히 옆으로 몸을 피했다.

    풍양진인은 춘추관 장문인답게 수련의 경지가 심후했다. 비록 중상을 입었다고는 하나 반격조차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심협과 전철생의 부축을 받으며 한 손을 결인하여 금빛 비검을 조종함으로써 비천강시가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몰아붙였다.

    한편, 그제야 도착한 우 사형과 정원은 이 광경에 아연실색하여 눈동자를 굴리더니 도우려 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멀리 물러섰다.

    “나는 괜찮다. 오늘 춘추관이 화를 당하여 대세가 이미 기운바, 너희는 어서 가거라. 살아남아 춘추관을 위해 명맥을 이어야 한다! 어서 가라!”

    풍양진인은 억지로 심협과 전철생을 밀어내며 다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그의 소매에서는 일고여덟 개의 부적이 날아가 허공에서 부서지더니 수박만 한 금빛 불덩이들로 변했다. 불덩이는 불처럼 순수하고 농후한 순양(純陽)의 정기(正氣)를 발산하며 그대로 근처의 잿빛 광막을 공격했다.

    꽈르릉! 꽝!

    천둥보다 거대한 굉음들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금빛 불덩이가 부딪힐 때마다 잿빛 광막은 격렬하게 떨리며 점점 옅어졌다. 금빛 불덩이에 담긴 순양의 정기는 잿빛 광막과 상극인 듯했다.

    콰직!

    마지막 금빛 불덩이가 부딪힌 순간, 광막에는 결국 지름이 1장에 이르는 구멍이 생겨났다. 그러자 구멍 가까이 있던 광막의 잿빛 안개가 이를 감지한 듯 요동치며 몰려왔다. 이어서 회색 빛이 번득이더니 구멍이 점점 작아졌다.

    심협은 결심을 굳히고는 풍양진인에서 작별의 예를 올린 후 광막의 구멍이 사라지기 전에 재빨리 빠져나가 멀리 도망쳐갔다. 그러나 전철생은 망설이며 풍양진인의 소매를 잡아 끌었다.

    “장문인, 저희와 함께 가십시오.”

    “허튼소리 말고 어서 가라!”

    풍양진인이 소매를 떨치자 어떤 힘이 전철생을 휘감아 구멍 밖으로 내쳤다.

    “장문인,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저희가 방법을 찾아 춘추관을 계승하겠습니다.”

    우 사형과 정원도 다급히 광막의 구멍으로 빠져나가며 외쳤다.

    풍양진인은 광막의 구멍 앞을 막아선 채 비천강시를 노려보았다. 그의 눈에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 * *

    광막에서 빠져나온 네 사람은 잠시도 쉬지 않고 내달렸다. 감히 큰길로 가지 못하고 작은 길을 골라서 십여 리를 달린 후에야 청화산에서 멀리 벗어날 수 있었고, 그제야 작은 강 근처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심협은 쉴 생각이 없었지만, 우 사형과 정원은 더 이상 뛸 기운이 없는지 쉬었다 가자고 애원을 했다. 이미 간이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그들은 결코 자기들끼리 남아 있지 않으려 했다.

    심협은 차갑게 거절하려 했으나, 두 동문이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던 전철생마저 잠시 쉬었다 갈 것을 제안하니 심협도 거절할 수 없었다.

    주변은 온통 황야였다. 마을은 아주 먼 곳에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우 사형과 정원은 강가에 도착하자마자 고개를 처박고 물을 마셨다.

    심협은 전혀 피로가 느껴지지 않았기에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주위를 둘러봤다. 저 멀리 잿빛 광막에 휩싸인 청화산이 또렷이 보였다. 멀리서 보니 잿빛 광막의 거대함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치 잿빛 거인이 우뚝 서 있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적들이 이리도 막강하니 춘추관이 정말 제대로 화를 당한 것 같네.”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너 멀리 청화산을 바라보던 전철생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우리가 어쩔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소.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그러니 사형도 너무 상심하지 마시오. 그나저나 이제 어찌할 계획이오?”

    심협은 전철생을 위로하고는 화제를 바꾸었다.

    “우선 고향에 돌아가 피해 있을 생각이네. 사제는?”

    전철생이 슬픔을 억누르며 되물었다.

    “나도 우선 집에 돌아가 보아야 하지 않겠소?”

    심협의 눈빛이 조금 아련해졌다. 그는 이제 수선(修仙)의 길에 접어들었으니 새로운 세계가 앞에 펼쳐질 것이다. 그러니 이제 보통 사람처럼 장가가서 자식을 낳고 살아가는 삶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터였다. 그럼에도 집에는 꼭 가볼 생각이었다. 그 이후 어찌할 것인지는 아직 생각해볼 틈도 없었다.

    “그 요괴들은 하늘을 날고 땅으로 숨을 수도 있으니 여기도 안전하지는 않을 테니 여기서 헤어지는 편이 좋겠소.”

    심협은 상념들을 접으며 이야기했다.

    “그러지. 두 분 사형, 우리 여기서 헤어집시다.”

    전철생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우 사형과 정원을 돌아보며 외쳤다.

    “알겠네. 자네들 먼저 가게나. 아, 일전에는 미안했네!”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과 두려움 끝에 이제야 안전해졌다고 느낀 탓인지 긴장이 풀리며 기력이 빠진 우 사형은 힘없이 말했다.

    “나는 움직일 힘도 없어. 조금 더 쉬어야겠네.”

    심협은 본래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우 사형과 정원을 기다려줄 마음은 없었기에 지체 없이 전철생에게 포권으로 작별 인사를 고하고는 몸을 돌렸다.

    그런데 막 두 걸음을 내디뎠을 때, 심협은 돌연 안색이 굳었다. 그러더니 곧장 어깨를 흔들며 옆으로 3척 정도를 이동했다.

    화르륵!

    허공에서 거대한 푸른 손바닥이 나타나더니 방금 전까지 심협이 서 있던 곳을 움켜쥐면서 공기가 타들어갔다. 이 손바닥은 보통의 손바닥보다 서너 배는 굵었고, 구불구불한 근육이 이어진데다가 굵고 뻣뻣한 푸른 털이 빽빽해 끔찍하면서도 혐오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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