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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73화 (73/1,214)

73화. 추격

심협은 손을 휘둘러 작살을 다시 불러들였다. 그의 눈빛에는 방평의 죽음으로 인한 분노와 슬픔 외에도 작은 기쁨도 엿보였다. 지금껏 작살 부기를 원활하게 조종한 적이 없었는데, 지금 예상치 못한 성취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꿈속 깨달음과 연관이 있는 걸까?”

궁금하긴 했지만 원체 다급한 상황인 만큼 깊이 생각할 여력은 없었다. 그는 얼른 작살을 챙기고 다시 거처로 걸음을 옮겼다. 안타깝지만 방평의 시신은 그 자리에 둘 수밖에 없었다.

심협은 금방 자신의 거처에 도착했다. 이곳은 워낙 외진 곳이라 아직 침입자들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듯했다.

그는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문을 잠그고는 침상 밑에서 석합과 옥침을 꺼냈다. 이어서 석합을 열어 옥침을 그 안에 넣었다. 옥침은 바로 하얀 빛에 감싸여 주먹 크기로 줄어들더니 석합 안으로 쏙 들어갔다.

가장 우려했던 옥침마저 무리 없이 석합에 들어가는 것을 본 심협은 마음을 놓고 순양보전 옥패와 부적 제조 용품들을 비롯해 쓸 만한 서적과 옷 두어 벌을 챙겼다. 그러고는 그 모든 것이 담긴 석합을 잘 챙겨 봇짐에 넣고 등에 멨다. 더는 지체할 수 없었기에 곧장 문을 열고 나왔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그에게 달려왔다.

“심 사제, 역시 여기 있었구나! 정말 다행이야!”

발달된 감각 덕에 이미 예상했던 대로 달려온 사람은 전철생이었다. 그는 몸의 절반이 피에 흥건히 젖은 채 손에는 칼을 들고 있었다. 숨을 헐떡이는 것이 분명 한바탕 사투를 벌인 듯했다.

“전 사형, 괜찮으시오?”

심협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걱정 말게. 모두 그 괴물들의 피라네.”

전철생은 피가 잔뜩 묻은 소매를 휘두르며 별일 아니라는 듯 웃어보였다.

“전 사형, 대체 어디서 이리도 많은 요괴들이 나타난 것이오?”

“나도 모르겠네. 어쨌든 저 요괴들이 너무도 강력하여 보통의 제자들은 상대도 되지 않더군. 내 자네가 걱정되어 와 보았네. 그런데 어째서 사부님과 장문인, 사숙조는 나서시지 않는 게지? 제자들은 더 버티기 힘든데 말일세.”

전철생은 다급한 듯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보아하니 저놈들은 우리를 아예 전멸시키려는 것 같소. 사부님과 사백님은 물론이고 장문인도 경황이 없을 것이오.”

심협은 사부와 사숙조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애써 삼키고는 그렇게 답했다. 다행히 전철생은 잠시 굳은 얼굴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렇게 물었다.

“그럼 어찌하지?”

전철생이 물었다.

“사형, 혹시 춘추관 밖으로 통하는 비밀통로가 있소?”

심협이 나지막이 물었다.

“모르겠군. 내 사부님께도 비밀통로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네. 그런데 비밀통로는 왜 찾는 겐가?”

“지금 춘추관에 요괴가 가득하니 우리 힘으로 상대할 수가 없소. 선대(先代)가 아직 나타나지 않으시는 걸 보면 아마 제자들까지 신경 쓸 여력은 없으신 듯하오. 그러니 우리도 우선 목숨을 보전할 방법부터 생각하는 것이 좋겠소.”

심협이 무거운 목소리로 답하자 전철생이 눈을 빛내며 뭔가 말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짐승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캬오오!”

이어서 앞뒤 길목에서 시랑(*尸狼, 늑대 시체가 화한 괴물)이 한 마리씩 튀어나와 곧장 달려들었다.

“사형, 우선 도망칩시다!”

심협은 자신에게 법력이 생긴 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에 급히 전철생을 이끌고 정실 뒤쪽으로 도망쳤다.

두 마리 시랑이 외부로 통하는 길을 막고 있으니 심협과 전철생은 벼랑 쪽의 갓길을 따라 걸으며 이곳을 빠져나갈 궁리를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도망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앞에 검은 그림자가 스쳤다. 대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알 수 없는 시랑이 두 사람의 앞길을 막아섰다. 이데 도합 세 마리의 시랑이 앞뒤에서 압박해오기 시작한 것이다.

녀석들은 두 사람이 곤경에 빠진 것을 알아챈 듯, 바로 달려들지는 않고 계속해서 울부짖기만 했다.

“사제, 짐승들 따위에게 도망치느니 목숨 걸고 싸워보는 게 낫겠네!”

전철생은 피할 길이 없다는 생각에 칼을 고쳐 쥐며 튀어나가려 했다.

“길이 있소. 나를 따라오시오!”

심협은 다급히 전철생을 잡아끌고는 손으로 험준한 산 벽 가까이 붙어 있는 낭떠러지를 가리켰다. 경사는 완만한 편이었고, 겨우 발을 딛고 설 수는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중간이 큰 바위로 가려져 있어 그 뒤의 형세는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심협은 벼랑으로 달려가더니 석벽에 튀어나온 돌들을 딛으며 경사로로 내려갔다. 그의 모습은 순식간에 벼랑 뒤로 가려졌다.

“캬오오!”

심협이 갑자기 사라지자, 세 마리 시랑은 더 속도를 내 달려들었다.

전철생도 이를 악물고 심협을 따라 벼랑을 내려갔다.

둘은 그렇게 벼랑을 따라 조심스레 걷다가 길을 막은 바위를 돌아 지나갔다. 그런데 그 뒤로는 시야가 확 트인 데다가 경사 또한 더욱 완만했다. 심지어 저 아래 산문의 용머리가 어렴풋이 보였다.

“전 사형! 이쪽이오.”

심협은 뒤따라 내려오는 전철생에게 손짓을 했다.

“심 사제, 자네…… 내려가는 길을 어찌 알고 있는 겐가?”

전철생이 급히 걸어오며 물었으나 추궁한다기보다는 궁금한 기색이었다.

“내 방이 이 근처 아니오? 하니 별일 없을 때면 나와서 종종 바람을 쐬곤 했소. 그때 우연히 발견한 것이오.”

심협은 다급히 걸으면서 돌아보지도 않은 채 답했고, 전철생은 전혀 의심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군, 다행이야!”

시랑들은 벼랑을 내려올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두 사람을 포기한 듯했다.

심협과 전철생은 완만한 경사로를 내려왔다. 그러자 눈앞에 큰 바위가 많은 석림(石林)이 펼쳐졌다.

“심 사제, 이 석림이 이리도 은밀한 곳에 있으니 여기서 잠시 숨어 있는 것이 어떠한가?”

전철생의 질문에 심협은 주위를 둘러봤다. 확실히 사형의 말대로 석림은 사방이 산에 둘러싸여 있고 어두워 몸을 숨기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게다가 춘추관을 습격한 요괴들이 저리도 요란하게 기승을 부리는 모양새가 아무래도 오래 머무르지는 않을 터. 그러니 여기 숨어 있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했다.

“그것도 좋겠…… 응?”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돌연 말을 끊고는 석림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제, 왜 그러는가?”

전철생은 의아한 듯 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오. 가십시다.”

심협은 다시 고개를 돌리고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이 석림으로 조금 더 들어갔을 때, 저 앞의 큰 바위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까만 얼굴의 중년 남자. 바로 산문을 지키는 우 사형이었다.

“너희들이었구나! 너희가 여길 어찌 찾은 것이냐?”

우 사형은 검을 든 채 의아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살피면서도 경계하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우 사형!”

전철생은 동문 사형제를 만나자 무척 기쁜 듯했다.

심협은 그리 기쁘지는 않았으나, 방금 인기척을 느꼈던 곳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쪽에서도 발소리가 들리더니 두 사람이 나타났다. 한 사람은 정원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심술궂게 생긴 청년으로 심협이 모르는 자였다.

“이곳은 우리가 먼저 발견했다. 그러니 너희는 꺼져라!”

정원이 눈을 부라리며 외쳤다. 그러자 우 사형과 심술궂게 생긴 청년도 살기 어린 눈으로 병기를 고쳐 잡았다.

“석림이 이리도 크니 열 사람이 숨어도 충분하오. 우리 모두 동문 사형제 아니오? 지금 다 같이 환난을 당하였으니, 함께 이 난관을 해쳐갑시다.”

전철생이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예의를 갖춰 말했다.

“퉷! 시끄럽다! 사람이 많을수록 발각될 위험도 커지는 법! 썩 꺼져라!”

우 사형은 심협을 노려보며 바닥에 침을 뱉더니 위협하듯 장검을 휘둘렀다.

“계속 버티겠다면 우리도 더는 예의를 차릴 수 없다!”

심술궂게 생긴 청년이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받았다.

전철생은 좋게 대화로 풀어가려 했음에도 상대가 이런 식으로 나오니 낯빛이 어두워졌으나, 걸어오는 싸움을 피할 생각은 없었다. 동문 사형제간의 칼부림이 일기 직전이었다.

“전 사형, 됐습니다. 저들이 반기지 않는 듯하니 우리는 저쪽으로 갑시다.”

심협은 뒤쪽을 힐끔 보더니 불쑥 말하고는 기다리지도 않고 걸음을 옮겼다.

전철생은 분이 채 풀리지 않았지만, 심협의 말대로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흥! 그래도 눈치는 있구나.”

우 사형은 득의양양하게 웃더니 장검을 거두고는 다시 숨으려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커헝!”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방금 심협과 전철생을 쫓던 세 마리 시랑(*尸狼, 늑대 시체가 화한 괴물)이 완만한 경사로에서 석림으로 질주해왔다.

“요괴! 제기랄, 분명 그놈들을 뒤쫓아 온 게야! 망할 놈들!”

우 사형이 굳은 얼굴로 외쳤다.

“우 사형, 그럼 이제 어떻게 합니까?”

정원 일행이 당황하며 물었다.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하겠느냐? 얼른 도망쳐야지. 우리가 그놈들보다 빨리 도망치면 되는 것 아니겠느냐!”

우 사형은 차게 웃더니 재빨리 심협과 전철생이 사라져 간 방향으로 내달렸다. 정원과 청년이 급히 뒤를 따랐다.

이 무렵, 심협과 전철생은 이미 석림을 빠져나와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한참이나 간 상태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산비탈이 돌연 가팔라져 더는 앞으로 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심협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는 왼편으로 조금 돌아서 가더니 가파른 벽 앞에 섰다. 산 벽은 무척 험준하긴 했으나, 중간 중간 튀어나온 돌과 나무들이 많아 충분히 타고 오를 만했다.

“여길 오르면 하산하는 길까지 갈 수 있소. 우리 산문으로 가서 한번 봅시다. 어쩌면 그곳에 나갈 길이 있을지도 모르오.”

심협이 말했다.

“다행히 심 사제가 길을 잘 알고 있었구나. 내 자네를 찾길 잘했어. 하하하!”

전철생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산 벽을 절반쯤 올랐을 때, 전철생은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저 아래로 우 사형을 비롯한 삼인방이 세 마리 시랑에게 쫓겨 헐레벌떡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곧 잡힐 것처럼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세 사람은 이곳의 지리에 어두운 데다가 전철생과 심협을 발견하지도 못해 길이 끊기자 당황하고 있었다. 이제 시랑들이 코앞까지 따라온 상태였다.

“거기 세 분, 이쪽이오!”

전철생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방금 세 사람이 자신을 그렇게 모질게 대했음에도 눈앞에서 사형제들이 죽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심협은 나지막이 탄식했지만, 말리지는 않았다.

한편, 세 사람은 전철생의 목소리에 급히 고개를 돌렸다가 암벽을 오르는 심협과 전철생을 발견하고는 재빨리 뒤를 따랐다.

“아악!”

처참한 비명에 고개를 돌려 보니 험상궂은 청년이 가장 덩치가 큰 시랑에게 다리를 물려 아래로 끌려 내려가고 있었다. 세 사람 중 덩치 큰 청년의 실력이 떨어져 암벽을 오르는 것도 느렸던 것이다.

이내 나머지 두 마리 시랑도 달려들어 순식간에 청년의 시신을 조각내서 뜯어먹기 시작했다.

우 사형과 정원은 이 광경에 몸을 떨더니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 암벽을 올랐다.

암벽을 오를 수 없었던 시랑들은 네 사람이 멀어져가는 모습을 보며 으르렁거리다가 이내 다른 곳으로 갔다.

네 사람은 머지않아 암벽 정상에 올랐다. 그 너머에는 굽이치며 아래로 향하는 산길이 있었다. 춘추관 산문으로 통하는 길로, 이 산길은 워낙 외진 곳에 있는 탓인지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니 한동안은 요괴들의 공격도 없을 터였다.

사실 우 사형과 정원은 심협과 전철생을 대하기가 껄끄러웠다. 그러나 자존심 때문인지 사과를 하지도 않았다.

심협은 그 둘을 무시한 채 말없이 전철생과 함께 산문 방향으로 갔다.

“우 사형, 우리는 어쩌지요?”

정원이 조심스레 묻자 우 사형은 저 위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죽고 죽이는 소리가 아까보다 많이 줄어든 상태였으나, 여전히 요괴들의 포효가 가득했다.

가늘게 몸을 떤 우 사형은 멀어져가는 심협과 전철생을 바라보다가 결심한 듯 말했다.

“저들과 함께 간다.”

정원은 자기 의견이라는 게 없는 듯 급히 우 사형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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