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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71화 (71/1,214)
  • 71화. 중차대한 명

    나씨 도인은 무어라 말하려다가 돌연 표정이 굳더니 오른손으로 몸의 대혈(大穴) 몇 곳을 빠르게 점혈했다. 동시에 왼손을 뒤집어 부적을 꺼내 왼쪽 가슴에 붙였다. 부적에서 푸른 빛이 번득이며 몇 줄기 빛이 나와서 체내로 들어갔다. 그러더니 그의 얼굴에도 푸른 빛이 일었다.

    한편, 심협 또한 나씨 도인의 미간이 마치 멍이라도 든 것처럼 어렴풋이 검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얼굴로도 그 검은빛이 뻗어갔고, 그 위로 어두운 자줏빛 핏줄이 툭툭 불거져 있었다. 방금 생겨난 푸른 빛이 번득이며 이를 억제하는 듯했지만, 그럼에도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검게 변하고 있었다.

    ‘사부님이 중독됐다!’

    심협은 심장이 맹렬히 뛰었다.

    “자네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해약을 얻고 싶다면 순양보전을 내놓게! 하하하!”

    왕청송은 껄껄 웃더니 맹렬히 소매를 떨쳤다. 그러자 도포의 소매에서 한 줄기 번개의 줄이 나씨 도인을 향해 뻗어갔다.

    나씨 도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두 다리에 두 줄기 빛이 일었고, 그는 칠성강보(七星罡步)를 밟았다. 그러자 그의 몸이 가뿐하게 번개 줄을 피하더니 순식간에 정원으로 향했다. 이어서 그가 맹렬히 소매를 떨치니 부적 하나가 날아갔다. 위험을 알리는 신호 부적이었다.

    핑!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부적의 빛은 마치 불꽃처럼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리고 높은 곳까지 올라 폭발하려 했다.

    그 순간, 돌연 그림자가 번득이더니 그대로 공중에서 부적을 움켜쥐었다.

    고개를 들어 그림자의 주인을 확인한 심협은 안색이 굳었고, 속으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림자의 주인은 바로 고화령 이었다.

    고화령은 자색 치마를 입고 있었고, 검고 길었던 머리는 귀까지 오는 짧은 자색 머리카락으로 변해 있었다. 눈썹은 봄을 머금은 먼 산과 같은 모양이었고, 눈빛은 가을 강물을 옮겨 담은 듯 빛났으며, 미간에는 꽃무늬를 붙인 듯한 자색의 둥근 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지금 고화령은 아리따운 여자의 모습이었다.

    그보다 경악스러운 것은 고화령의 등 뒤에 생겨난 작고 정교한 뼈 날개였다. 이 날개는 계속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요족!”

    나씨 도인이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맹렬히 외쳤다.

    심협이 다시 자세히 보니 고화령의 미간에 있는 것은 꽃무늬가 아니라 손가락 끝마디 크기의 해골이었다. 지금 고화령에게서는 매우 짙은 요기(妖氣)가 발산되고 있었다.

    “위험 신호를 보내겠다고? 이미 늦었다!”

    왕청송은 나지막이 외치더니 한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소매 안에서 빛이 번득이더니 단극(短戟, 짧은 창의 일종)이 나씨 도인의 가슴을 향해 발사되었다.

    나씨 도인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소매를 떨쳤다. 그러자 붉은 빛의 동전검이 나타나 단극을 찔러갔다.

    챙! 챙!

    정원 안에는 순식간에 두 개의 부기가 공중에서 조금의 양보도 없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가득 울려 퍼졌다.

    그런데 그때, 나씨 도인의 발아래 흙이 부드럽게 일렁이더니 허연 뼈만 남은 귀신의 손이 튀어나와 그의 종아리를 잡았다. 나씨 도인의 다리에는 순식간에 끔찍한 혈흔이 몇 개나 생겨났다.

    이미 중독된 상태였던 나씨 도인이 귀신의 손에 기습까지 당하자 일순 동전검의 조종이 느슨해졌다. 그러자 단극은 그 틈에 동전검을 밀어내고는 나씨 도인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위기일발의 순간!

    꽈릉!

    돌연 우렛소리가 울렸다.

    굵기가 팔뚝만 한 하얀 번개가 하늘에서 내리쳐 단극을 두들겼다. 이에 단극은 땅에 처박혔다.

    찰나의 순간, 정원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적막에 휩싸였다. 그리고 세 사람의 시선이 순식간에 심협에게 집중되었다. 지금껏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받던 기명제자가 번개 부적을 사용하다니,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시선이 집중되니 심협은 당황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여 오른손을 살피고는 쓰게 웃었다.

    “네놈이 지금껏 실력을 숨기고 있었구나!”

    왕청송은 눈빛이 싸늘해지더니 손을 떨쳤다. 그러자 장심에서 자욱한 검은 안개가 나와 요동치기 시작했다. 안개 속에서는 흉측한 귀신의 얼굴이 생겨나더니 빠른 속도로 심협을 덮쳐왔다.

    나씨 도인이 재빨리 심협 앞으로 다가와 양손을 결인하여 앞으로 뻗었다. 그의 손에서는 커다란 빛이 일었고, 농후한 순양(純陽)의 힘이 용솟음쳤다.

    삼엄한 귀기를 발산하던 검은 안개는 나씨 도인의 손에서 발산된 빛에 닿자마자 햇빛을 만난 눈처럼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가뜩이나 상태가 좋지 않았던 나씨 도인은 갑자기 힘을 쓴 탓에 비틀거렸고, 얼굴에도 검은 기운이 가득했다.

    “사부님, 괜찮으십니까?”

    심협이 다급히 물었다.

    “네가 스스로 부적술을 습득했을 줄은 생각도 못 했구나. 이제 보니 이 사부가 너를 얕잡아보았다. 내 오늘 너를 정식 내문제자로 거두고자 한다. 너도 원하느냐?”

    나씨 도인은 심협을 바라보며 소매에서 법반(法盤) 모양의 물건을 꺼내며 엄숙하게 말했다.

    “물론 제자 또한 원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선 도망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심협이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걱정 말거라. 내 이미 너를 제자로 거두었으니 네 목숨은 지켜줄 것이다. 내게 다 방법이 있느니라! 하하하!”

    나씨 도인은 일촉즉발의 상황이라는 것도 잊은 듯 껄껄 웃더니, 돌연 입을 벌려 수중의 법반을 향해 선혈을 뿜었다. 그러자 법반은 홀연히 날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자 순식간에 하얀 빛이 일어 높이가 1장에 이르는 몽롱한 빛기둥을 만들어냈다.

    “가거라!”

    그는 심협의 등을 밀었다. 그러자 심협은 비틀거리며 빛기둥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큰일이다! 어서 막아!”

    왕청송은 다급히 외쳤다. 그의 두 소매 안에서는 검은 안개가 요동쳤다.

    고화령은 어느새 땅으로 내려와 손목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지하에서 여러 구의 백골이 튀어나오더니 나씨 도인을 덮쳐갔다.

    그때, 나씨 도인은 입조차 열지 않았는데도 심협의 머릿속에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증표를 가지고 사숙조를 찾아뵙고 지원을 요청하거라!」

    심협이 어찌 된 일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나씨 도인이 손바닥만 한 옥패(玉佩)를 던졌다. 그 옥패가 품속으로 들어온 순간, 심협은 천지가 회전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빛기둥이 돌연 줄어들었고, 자신 또한 줄어들며 법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은 곧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일을 마친 나씨 도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 순간, 뒤에서 검은 안개가 습격해왔다. 그는 다시 칠성강보를 밟아 빠져나갔다. 도포는 벗겨진 채 그 자리에 남아 있었는데, 검은 안개가 뻗어오자 순식간에 부패해 재가 되었다.

    “너는 가서 그놈을 죽여라!”

    왕청송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고화령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등 뒤의 뼈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나가려 했다.

    “내 허락 없이는 떠날 수 없다, 망측한 요괴놈아!”

    나씨 도인이 맹렬히 외치며 크게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한 줄기 빛이 그의 손에서 뻗어 나가 대청 문머리에 걸려 있던 팔괘경(八卦鏡)을 향해 날아갔다. 팔괘경이 빛을 향해 휙 뒤집어지더니 빛을 반사하여 앞뜰 문루(門樓)에 있는 또 다른 구리거울(銅鏡)로 뻗어갔다.

    이 구리거울 또한 빛을 반사했고, 그렇게 빛은 뜰 안 곳곳으로 퍼져가면서 나씨 도인의 거처 전체를 뒤덮었다. 이에 따라 지면에는 가운데 거대한 팔괘 그림자가 생겨났다.

    막 날아오르던 고화령은 보이지 않는 광막(光幕)에 머리를 부딪쳐 제자리로 돌아왔다.

    “금제(禁制)?”

    “됐다. 기명제자 한 놈일 뿐이니 신경 쓸 것 없다. 먼저 저놈을 제거하자.”

    왕청송이 굳은 얼굴로 한 걸음씩 나씨 도인을 향해 다가갔다.

    * * *

    천지가 뒤집히는 가운데 심협은 끊임없이 추락하는 느낌이 들었다. 눈앞은 온통 끝없이 펼쳐진 하얀 빛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의 두 발이 땅을 딛고 섰다. 동시에 하얀 빛도 사라져갔다. 그럼에도 한동안은 어지러워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심협은 제대로 서기도 힘들어 비척거리며 걸었다. 지탱할 곳을 찾아 손을 뻗어보니 거친 석벽이 만져졌다.

    그렇게 잠시 서 있으려니 현기증이 사라졌고, 시야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곳은 낯설고 어두운 석실이었다. 사방의 벽에는 등잔불이 걸려 있었는데, 어떤 기름으로 태운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연기는 나지 않았다. 또한 달짝지근한 향이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런데 심협은 석실 한구석에 시선이 닿은 순간 온몸이 굳어졌다.

    그곳에는 너덜너덜한 검은 옷을 입은 기괴한 사람이 둘 있었는데, 온몸에는 자욱한 검은 안개가 감돌았고, 몸은 비스듬히 허공에 떠 있었다. 두 사람 다 앞을 향해 팔을 뻗고 있었는데, 마치 앞에 있는 무언가를 죽이려는 것 같았다.

    심협은 경계하며 조금 더 가까이 가 보았다. 두 사람은 벽 모퉁이에 선, 회백색 도포를 입고 오악관(五岳冠)을 쓴 수척한 노인을 협공하고 있었다. 노인은 손을 결인한 채 두 사람과 대치하는 중이었다.

    노인의 앞 허공에는 새빨간 도목검이 떠 있었다. 도목검에는 심협이 알아보지 못하는 부적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평범한 물건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허공에 떠 있는 도목검과 대치 중인 세 사람 모두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마치 그대로 멈춰버린 저주에 걸린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심협은 조심스레 더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그제야 허공에 떠 있는 두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는데, 그들은 눈이 있어야 할 곳에서 녹색 빛을 뿜는 해골 귀신이었다.

    그때, 마치 거문고 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자세히 살펴보니, 수척한 노인의 몸은 눈으로 보기도 힘든 검은 실에 에워싸여 있었다. 노인의 도포 위로 빛나는 얇은 청광(靑光)이 검은 실을 막고 있었다.

    해골 귀신들이 크게 벌린 입에서 검은 실들이 뿜어져 나와 붉은 도목검을 꽉 묶어두고 있었다. 그 주위로는 검은 안개가 자욱하게 일렁였다. 빽빽한 붉은 부적 문양들이 끝없이 요동치며 괴물들을 공격하고 있었는데, 마치 서로 공격하고 수비하는 대군들처럼 서로 조금의 양보도 없이 싸우는 형국이었다.

    ‘이 셋은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미묘하게 힘의 균형을 이룬 상태라 누구도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이구나.’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심협은 망설임 없이 양손을 결인하여 맹렬히 소매를 휘둘렀다.

    “공격!”

    심협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의 소매에서 바람 소리가 크게 울리더니 하얀 빛이 쏜살처럼 발사되었다.

    펑!

    하얀 빛이 감도는 작살 부기가 왼쪽에 있는 귀신의 뒷머리에 꽂히면서 짧은 굉음이 울렸다. 뒤이어 머리가 통째로 날아간 해골 귀신은 석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석벽에는 비틀리고 형체가 모호한 녹색 귀신 그림자가 작살에 꿰뚫린 채 박혀 있었다.

    “캬아아악!”

    귀신 그림자는 작살이 발하는 하얀 빛에 닿자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걸쭉한 액체로 변해버렸다. 이어서 남아 있던 몸도 연기처럼 사라져 너덜너덜한 검은 옷만 남아 바닥에 떨어졌다.

    팽팽했던 균형이 깨지자 수척한 노인은 두 눈을 번득이더니 한 손으로 몸을 에워쌌던 검은 실들을 치워버렸다. 그러고는 다른 손으로 남은 귀신을 앞으로 끌어다가 꽃을 드는 듯한 모양의 결인을 해 그 이마를 찍었다.

    “캬아아!”

    노인의 손가락이 닿자마자 귀신은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온몸이 순식간에 붉은 부적 문양에 포위되었고, 검은 안개가 심하게 요동치며 사라져갔다.

    노인은 실을 치웠던 손으로 허공에서 초식을 펼쳤다. 그러자 붉은 도목검이 노인의 손으로 들어갔다.

    샥!

    노인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귀신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붉은 금이 생겨났다. 반으로 갈라진 것이다. 이어서 귀신의 몸은 붉은 화염에 휩싸여 타오르더니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라졌다.

    심협은 노인이 곤경에서 벗어난 것을 보고, 급히 인사를 올렸다.

    그런데 노인은 부릅뜬 눈으로 심협을 바라보더니 도목검 끝을 그에게로 향했다.

    심협은 당황해 우뚝 멈추고는 뭔가 말하려 했다. 그때, 노인이 허공에서 무언가를 잡는 듯 반대편 손의 손가락들을 미세하게 굽혔다. 그러자 강한 흡입력이 다가오더니 심협의 옷섶에서 무언가가 날아갔다. 나씨 도인이 심협을 이곳에 보내며 마지막 순간에 던져 주었던 증표 옥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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