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70화 (70/1,214)
  • 70화. 불청객

    바다거북이 비록 사람의 말은 하지 못해도 통령하여 약간의 소통은 가능했기에 심협은 그 감정 파동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네게 이름이 없다면 내 너를 소해(小海)라 부르마. 어떠하냐?”

    심협은 호기심에 거북이에게 다가가 등껍질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그 말에 바다거북이은 조금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다시 못가를 향해 올랐다.

    “싫으냐? 그럼 소귀(小歸)는 어떠하냐?”

    심협이 뒤를 따라가며 다시 물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꽤 만족하는 듯한 거북이의 감정 파동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네게 어떤 능력이 있는지 보여줄 수 있겠느냐?”

    거북이는 걸음을 멈추고는 고개를 돌려 심협을 올려다봤다. 그러더니 아예 머리를 돌려 저 앞을 주시하며 입을 열어 근처의 돌을 향해 무언가 뿜어냈다.

    심협은 눈앞이 어지러워졌고, 거북이의 입에서 하얀 빛이 발사되는 것만을 볼 수 있었다.

    카각!

    거북이가 겨냥한 돌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심협은 급히 가서 살펴보고는 눈을 빛냈다. 십여 장 앞에 있던 돌의 정중앙에 엄지손가락 굵기의 구멍이 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무엇이냐? 어떻게 한 것이야?”

    심협은 기쁨을 감추며 물었다. 그러자 소귀는 입에서 다시 하얀 빛을 발사하여 아까의 그 돌을 맞혔다. 그러자 돌에는 또 하나의 구멍이 생겼다.

    이번에는 심협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거북이가 입에서 발사한 하얀 빛은 다름 아닌 1척 길이의 투명한 물 화살이었다.

    심협도 물 법술로 물 화살을 쏠 수는 있지만, 이토록 빠르고 정확하게 쏘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단하구나, 대단해! 소귀야, 또 다른 능력이 있느냐? 모두 보여주어라.”

    심협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소귀는 내밀었던 머리를 쑥 집어넣더며 다시 못가의 해가 드는 곳으로 올랐다. 그러더니 엎드려서 미동도 하지 않고 햇볕을 쬐었다.

    심협은 소귀 곁에 서서 이리저리 위협도 하고 회유도 해보았지만, 결국 수전(水箭) 이외에는 어떤 능력도 볼 수 없었다. 아마도 소귀의 능력은 그것 하나뿐인 듯했다.

    심협은 옆에 앉아 함께 햇볕을 쬐다가 통령 술법으로 물 동굴을 만들어내 소귀를 돌려보냈다.

    <무명천서>에 따르면, 지금 심협의 미약한 법력으로는 이 바다거북 정도와의 통령이 적당했다. 더 많거나 강력한 요괴와 통령 계약을 맺으려다가는 위험해질 가능성이 컸다.

    * * *

    이후 며칠 동안 심협은 매일 이 얕은 못에서 수련했다. 꿈속의 경험 덕에 제2층 공법의 수련 속도는 예전보다 훨씬 빨라졌다. 하지만 완성의 경지까지는 아직 멀었다.

    심협은 일찍 수련을 마치고 뒷산에서 돌아왔다. 하지만 자신의 거처로 바로 돌아가지 않고 사부가 기거하는 곳으로 향했다.

    심협은 대문에 이르러 보니, 나씨 도인은 두 눈을 감고 기마자세를 한 채 정원 중앙에 서 있었다. 두 손으로 몸 앞에서 허공을 누르는 듯한 자세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무언가를 수련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심협이 문밖에 서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으려니 나씨 도인이 눈을 뜨고 물었다.

    “무슨 일이냐?”

    “사부님, 제자 청이 있어 왔습니다.”

    심협은 급히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들어오너라.”

    나씨 도인은 그 말을 남기고는 뒷짐을 지고 안으로 들어갔다. 심협은 재빨리 대문을 넘어 사부의 뒤를 따라 대청으로 들어갔다.

    “네 호흡이며 걷는 자세, 안색 등을 보아하니 소화양공이 또 정진했나 보구나. 혹시 이미 완성한 것은 아니냐? 그래서 내게 순양검결을 전수해달라고 온 것이로구나? 내 이전에도 말했지만, 여기에는 장문 사형의 허락이 필요하다. 그러니 너무 큰 기대는 말거라.”

    나씨 도인은 대청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사부님. 제자 소화양공의 완성은 아직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이번에 뵙기를 청한 것은 그저 춘추관의 호신 무예를 배우고 싶어서입니다.”

    심협은 급히 손을 저으며 말했다. 꿈속에서 삼안과 싸웠을 때 호신술의 필요성을 통감했던 것이다. 무명공법을 수련한 기간이 짧으니 위력에 한계가 있고, 부적을 그리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그러니 호신 무예를 익힌다면 강시나 쥐 요괴 등을 상대하기에는 좋을 듯했다.

    “무예를 배우겠다고?”

    나씨 도인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의아한 듯 물었다.

    “그렇습니다. 사부님께 청양수의 수련 구결을 청하옵니다.”

    심협은 허리를 굽혀 예를 갖추었다.

    “청양수를 배우는 것이야 불가능하지는 않지. 그리 큰 자격요건이 필요한 공법은 아니니까. 체내에 양기만 있다면 수련이 가능하다.”

    심협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였다.

    “제자 최근 몸이 많이 회복되어 사부님과 춘추관의 보살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미 집안에서 편지를 보내 말하기를, 조만간 춘추관에 작은 성의를 보이겠다 하오니 사부님께서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이 말에 나씨 도인은 여덟 팔(八)자로 기른 콧수염을 매만지며 미소를 짓더니 일어나서 내당으로 향했다. 그러더니 잠시 후, 얇은 푸른색 책을 들고 나왔다.

    “청양수의 수련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단,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때는 철생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철생은 청양수를 여러 해 수련하였으니 나름 깨달은 바가 있을 것이다.”

    나씨 도인은 그렇게 말하며 책을 넘겨주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제자 명심하겠습니다.”

    심협도 급히 양손으로 책을 받으며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주의해야 할 것이 또 있다. 청양수는 양기를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지만, 양기의 소모 또한 적지 않다. 그러니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나씨 도인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

    “사부님, 안심하십시오. 제자 반드시 능력에 맞게 사용하겠습니다.”

    심협이 공손하게 답했다.

    “나는 그동안 너의 근면함을 높이 사 왔다. 그렇기에 오늘 네게 이리 많은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다만 네 타고난 자질이 부족한 것이 아쉽구나.”

    나씨 도인은 심협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제자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그리고 제자 한 가지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심협은 나씨 도인의 표정을 살피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말해보아라.”

    나씨 도인이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사부님, 세상에는 남들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수련 속도가 빠른, 그야말로 절대적인 천재도 있습니까?”

    심협이 물었다.

    “물론 있다. 다만 극히 드물어, 수백 년에 한 번 나오기도 어렵지. 대부분은 전대(前代)의 고수가 환생한 것이거나, 말로만 들어본 ‘도체(道體)’를 지니고 있는 자이니라.”

    나씨 도인은 질문 내용에 의아해하면서도 설명해 주었다.

    “세상에 정말로 도체가 있는 것입니까?”

    “너도 도체(道體)를 아느냐?”

    나씨 도인이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잡서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옛날에 도체를 지닌 이가 있었는데, 자신의 도체에 부합하는 공법을 찾아 십여 년을 수련한 것만으로 신선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너무도 황당한 이야기라 제자는 그저 허무맹랑한 전설일 뿐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오늘 사부님께서 이를 확인해 주셨습니다.”

    심협의 말에 나씨 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고 경지의 도체를 지닌 수련자는 분명 하늘을 거스를 정도의 속도를 보인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나도 이야기만 들은 것뿐이라 진위는 알지 못한다.”

    “최고 경지…… 그렇다면 도체에도 높고 낮음이 있단 말입니까?”

    심협은 의외라는 듯 물었다.

    “물론이다. 낮은 등급의 도체를 가진 수사는 자질이 보통 사람보다 좀 더 뛰어날 뿐이다. 수련 속도도 보통 사람보다 조금 빠를 뿐이지. 그러나 최고 경지의 도체를 가진 수사는 수련 속도가 평범한 사람의 십여 배까지 빠를 뿐만 아니라 각종 신통력을 타고났다고 한다. 그 둘의 차이는 매우 크다고 알려져 있지.”

    나씨 도인의 설명에 심협은 속으로 헤아려봤다. 그런데 꿈속에서 자신의 수련 속도는 사부가 말한 최고 경지의 도체를 지닌 수사보다도 더 빠른 듯했다. 그럼에도 자신이 어떤 능력을 타고났는지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것을 묻느냐?”

    나씨 도인은 심협이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자 불쑥 물었다.

    “그저 호기심이 생겼을 뿐입니다. 만일 제게도 그러한 자질이 있다면 수명을 연장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협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최고 경지의 도체를 지닌 수행자는 오륙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다. 그러니 헛된 생각은 할 필요가 없느니라. 앞으로도 성실하게 수련에 매진하거라.”

    나씨 도인은 엄숙한 표정으로 근엄하게 말했다.

    “사부님의 가르침 명심하겠습니다. 제자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쉬십시오.”

    심협은 예를 갖추며 말했다.

    “그래, 이만 가 보거라.”

    나씨 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심협은 꿈속의 일을 떠올리며 그곳을 나왔다.

    그런데 그는 대청 입구의 대문 밖에서 두 사람을 발견했다. 그들은 몸을 훌쩍 날려 정원 안에 섰다. 한 사람은 체구가 당당했고 낯빛은 검었다. 태극도포(太極道袍)를 입고 머리에는 연화관을 쓰고 있었다. 짧은 회백색 수염 아래의 입을 꾹 다문 것이 고집스러워 보이는 얼굴이었는데, 여기에 표정마저 엄숙했다.

    ‘왕청송 사백?’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들어온 자는 준수한 청년으로, 바로 왕 사백의 제자 고화령이었다.

    “왕 사백님과 고 사저를 뵈옵니다.”

    심협은 일전의 일이 떠올라 두려웠지만, 겉으로는 태연하게 고개를 숙여 공경하게 인사했다.

    두 사람은 심협이 여기 있다는 사실에 당황한 듯한 눈빛이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는 않았다.

    심협이 그들을 지나쳐 대문으로 향하고 있을 때, 뒤에서 나씨 도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형, 여기까지 어쩐 일이오?”

    나씨 도인도 왕 사백과 고화령이 온 것이 의외인 듯했다.

    심협은 지난번 뒷산에서의 일 이후로 그들이 매우 껄끄러웠기에 지금도 더 엮이지 않고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막 대문 앞에 이르렀을 때, 쾅 소리와 함께 저절로 대문이 닫혀버렸다.

    심협이 당황하여 뒤를 돌아보니 왕 사백이 손을 들고 있었고, 소매가 펄럭였다. 그가 술법을 써서 문을 닫은 것이 분명했다.

    “사형,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나씨 도인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물었다.

    “나 사제, 길게 떠들 여유가 없네. 빨리 순양보전(純陽寶典)을 내놓게.”

    왕청송이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순양보전? 그건 또 무슨 공법이란 말인가? 순양검결을 말하는 것인가?’

    심협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것이다.

    “왕 사형, 지금 사형이 무슨 짓을 벌이려는 것인지 아시오?”

    나씨 도인이 굳은 표정으로 싸늘하게 말했다.

    “보아하니 내놓지 않겠다는 게로군?”

    왕청송의 눈빛이 더욱 냉랭해졌다.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을 느낀 심협은 몰래 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그 작은 움직임에도 고화령이 미간을 찌푸리며 노려보는 바람에 심협은 우뚝 멈춰야 했다. 마치 독사 앞에 선 개구리처럼 오싹했다.

    “사형도 잘 알고 있겠지만, 순양보전은 우리 춘추관을 지키는 법전이오. 필요하다 해도 장문 사형께 가서 찾을 일이지 어찌 내게 와서 찾는 것이오?”

    나씨 도인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물었다.

    “나원진(羅元眞), 너야말로 우리 항렬의 전승(傳承) 수호인(守護人)임을 내가 정말 모를 줄 알았더냐? 풍양진인은 그저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이름만 달아놓은 꼭두각시 장문인임을 내 정녕 모를 거라 생각했단 말이냐!”

    왕청송이 천천히 말했다.

    “내 사형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소. 황당하구려.”

    나씨 도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 차게 코웃음을 쳤다.

    “네가 인정해도 좋고, 인정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어차피 입증할 방법이 있으니까.”

    왕청송은 비릿하게 웃었다.

    “왕청송, 설마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하겠다는 것이오?”

    나씨 도인은 앉은 자세에서 허리를 펴며 말했다. 호칭 또한 사형에서 상대의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물론! 수련으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내 사제에게 상대가 되질 않았으니 우습겠지?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왕청송은 다른 속내라도 있는 듯 여유롭게 말했다.

    “사형의 제자가 합세하면 승산이 있으리라 보는 게요? 고화령이 아니라 제자 열 명을 데려와도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오.”

    나씨 도인은 고화령을 흘겨보며 말했다.

    “나 사숙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이 후배가 어찌 사숙님 앞에서 경거망동하겠습니까? 그런데 사숙님, 어째서 미간이 검어지셨습니까? 아이고, 낯빛도 조금 검어지셨네요.”

    고화령이 나씨 도인을 향해 공수하며 미소를 지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