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67화 (67/1,214)
  • 67화. 되살아난 요괴

    십여 장 앞에 검은 갑옷을 입은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앞으로 조금 몸을 숙인 채 서 있었다. 분명 오파갑이었으나 국(國)자형 얼굴은 완전히 변해 있었다. 턱 끝은 뾰족했고, 코는 짧은 데다가 검었다. 귀 또한 길게 변해 있어 흡사 여우와 같은 모습이었다. 더욱 기괴한 것은 미간의 살이 벌어진 채 그 가운데에 세로로 된 호박색 눈이 박혀 있었다는 것이다.

    “삼안! 아직 죽지 않은 것이냐?”

    심협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며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삼안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심협 뒤편의 연못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마도 금색 해골의 손가락뼈를 보는 것 같았다.

    “저자의 숨결이 조금 이상하오.”

    추두는 심협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며 의아한 듯 말했다.

    “삼안이라는 여우 요괴가 인간 수사의 몸에 들어간 것이오. 수사와 함께 죽은 줄 알았는데…….”

    심협이 손가락으로 삼안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삼안은 비웃는 듯한 얼굴로 이 모습을 힐끔 보더니 쉰 목소리로 말했다.

    “따지고 보면 내 너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이지. 네가 나를 땅속에 묻어준 덕에 충만한 영력(靈力)을 흡수하고 오파갑의 육신을 완전히 차지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공연히 덤비지 말고 내 노예가 되어라. 그러면 내 너의 목숨만은 살려줄 수도 있다.”

    심협은 그 말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추두를 바라봤다.

    “저자의 숨결이 아직 안정되지 않았으니, 이는 혼과 몸이 아직 완전히 융합되지 못했다는 증거요. 분명 제 실력을 내는 데에도 영향이 있을 터.”

    추두는 나지막이 말했다.

    “그럼 우리에게도 승산이 있겠소?”

    심협이 물었다.

    “승산이 큰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없는 것도 아니지.”

    추두는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이 말에 심협은 내심 안도했으나, 돌연 눈빛을 번득이며 몸을 숙였다. 그러자 그의 머리 위로 찬바람이 스쳐가며 정수리의 머리카락 몇 가닥을 잘라버렸다. 삼안이 나타난 순간 망설임 없이 소매 안에 피로 구귀부를 써둔 덕에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목숨을 바쳐라!”

    삼안은 기습이 실패하자 더는 숨길 것 없다는 듯 포효하며 꼬리를 드러냈다. 꼬리의 길이는 삼안의 키와 비슷했고, 무척 굵었다.

    이때 삼안의 몸에 황색 빛이 번득이자 삼안의 꼬리 두 개가 순식간에 길어지더니 좌우에서 매서운 바람을 만들어냈다. 동시에 각각 심협과 추두를 향해 공격해왔다.

    심협은 공격에 맞서지 않고 뛰어올라 피했다. 반면 추두는 맹렬하게 돌진하며 양손으로 황금색 철퇴를 끌다가 휘둘렀다.

    꽈릉!

    거센 바람과 함께 철퇴와 삼안의 꼬리가 맞부딪치자 우레 소리가 울렸다.

    곧이어 삼안의 꼬리는 큰 충격에 휘말리며 거둬졌다. 심지어 삼안의 몸까지도 휘청거릴 정도였다.

    추두는 이어서 바로 뛰어오르더니 양손으로 철퇴를 쥐고 위에서 내리찍었다.

    삼안은 급히 세 개의 꼬리를 거두어 몸 앞을 겹겹이 막아 방어했다.

    쿵!

    굉음이 울리고, 추두의 거대한 철퇴에 삼안의 전신이 떨렸지만, 방어는 깨지지 않았다.

    이에 삼안은 섬뜩한 미소를 짓더니 세 개의 꼬리를 동시에 뻗어 추두를 잡고 허공으로 던져버렸다. 동시에 미간의 눈동자에서는 피처럼 붉은 빛이 일더니 붉은 광선이 발사되었다. 이 광선은 놀라울 정도로 빨라 허공에 떠 있던 추두는 피할 겨를도 없었다.

    추두가 붉은 광선에 직격당하기 직전, 갑자기 짙푸른 빛이 나타나더니 비취색 반투명한 액체가 날아와 마치 방패처럼 추두의 앞을 막았다.

    펑!

    붉은 광선과 충돌한 비취색 액체는 순식간에 무수한 물방울이 되어 사방으로 휘날렸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흩어진 것뿐이었다.

    추두는 이 틈에 치명타는 피할 수 있었지만,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처박히고는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심협이 다가가보니 추두의 피갑이 부식된 채 뚫려 있었고, 구멍이 생겨난 곳에서는 푸른 액체가 흐르고 있었다. 아마도 피인 듯했고, 제법 큰 부상을 입은 것이 분명했다.

    삼안이 멈추지 않고 미간의 눈동자에서 다시 붉은 광선을 발사하자, 추두가 꼬리를 튕기며 일어나더니 철퇴를 휘둘러 광선을 막았다.

    그 틈에 심협은 손을 들어 결인하더니 연못에서 끌어들인 비취색 물로 물 늑대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삼안이 꼬리를 한번 휘두르자 물 늑대는 그대로 무수한 물방울로 부서졌다.

    삼안은 이 틈에 물방울들을 뚫고 심협을 공격했으나, 공중에 흩어졌던 물방울들이 다시 모여 물 늑대가 되더니 뒤에서 삼안을 공격했다.

    “큭! 꺼져라!”

    삼안은 생각지 못한 물 늑대의 공격에 목덜미를 물려 신음하더니, 이어서 분노의 포효를 내지르며 물 늑대의 머리를 손으로 눌러 터뜨렸다.

    물 늑대는 곧장 폭발하며 물방울이 되어 흩날렸다. 이어서 삼안이 꼬리로 쓸어버리자 물방울들은 안개가 되어 다시는 뭉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순간 심협이 미처 방어 준비를 하기도 전에 삼안 전신의 털들이 발사됐다. 이 털들은 공중에서 여섯 개의 투명한 큰 칼이 되어 심협을 향해 공격해갔다.

    이때 추두가 몸을 날려 심협의 앞을 막아서며 양손으로 철퇴를 회전시켰다. 그러자 철퇴에서 파란 소용돌이가 일어 네 개의 칼을 튕겨냈다.

    심협은 자신을 공격해오는 칼을 피해 연못가로 몸을 굴렸다. 그러더니 재빨리 화염창 두 자루를 잡고 교차하여 앞을 막았다.

    챙! 챙!

    이로써 마지막 두 자루의 칼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세 개의 꼬리가 거대한 바람을 일으키며 다가왔다. 그중 하나는 추두가 일으키는 소용돌이를 파괴했고, 다른 하나는 추두를 5, 6장 밖으로 날려버렸다. 공교롭게도 추두가 떨어진 곳은 연못가의 법기가 쌓여 있는 곳이었다.

    마지막 꼬리는 심협을 공격해갔다.

    심협은 수중의 화염창 두 자루를 몸 앞에 교차했다. 그러자 창에서 화염이 일었다.

    삼안의 꼬리는 화염창에 닿기 직전에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곧장 휙 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여우 털이 변한 일고여덟 자루의 반투명한 칼이 매섭게 몰려왔다.

    일촉즉발의 순간, 심협은 반사적으로 창을 마구 휘둘렀고, 손발을 정신없이 휘두르려니 몸까지 흔들거렸다. 덕분에 대부분의 칼을 막아냈지만, 결국 허벅지에 칼이 박히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으윽!”

    심협은 고통에 신음하며 반쯤 꿇어앉게 됐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무의식적으로 물이 모여 있는 곳을 빠르게 훑어봤다.

    “주제 파악을 못하는군!”

    삼안은 비웃으며 심협의 허리를 꼬리로 감아 끌어당겼다. 삼안의 미간에서는 세 번째 눈이 피처럼 붉은 빛으로 일렁이면서 심협의 머리를 조준하고 있었다.

    그 순간, 심협이 한 손을 들고, 장심을 삼락 미간의 눈으로 향하게 한 후 외쳤다.

    “내리쳐!”

    꽈릉!

    우레와 같은 소리가 지하 동굴 전체에 울려 퍼졌다. 동시에 굵기가 팔뚝만 한 백색광이 심협의 장심에서부터 쏘아져 나가 삼안의 미간 정중앙에 있는 눈을 정확히 찔렀다.

    “끄아아아!”

    삼안은 오장육부가 찢어지는 듯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몇 걸음을 물러섰다. 그러면서도 분노를 참지 못하고 꼬리를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퍽!

    “쿨럭!”

    심협은 그 눈 먼 꼬리에 맞고 튕겨나가 하얀 석순에 등을 부딪치고는 왈칵 피를 토했다.

    그때, 삼안의 뒤편 허공에 추두가 나타났다. 아까 연못가로 튕겨나간 그가 몰래 뒤로 다가간 것이다.

    그는 양손으로 황금색 철퇴를 쥐고 삼안의 머리를 맹렬히 공격했다.

    쾅!

    삼안은 가까스로 꼬리 하나를 들어 막았으나, 철퇴에 담긴 힘이 어찌나 강했던지 머리까지 울렸다. 이에 심협을 묶고 있던 꼬리가 느슨해졌다.

    심협은 반쯤 꿇은 자세로 바닥에 내려섰고, 부상이 심했으나 미처 살필 겨를도 없이 손바닥을 들었다. 그러자 장심에서 하얀 빛이 번득이더니 또다시 삼안의 얼굴을 향해 하얀 번개가 폭발적으로 발사되었다.

    꽈릉!

    “끄아아악!”

    번개가 얼굴을 가득 메우자 삼안은 처참한 비명을 내질렀고, 꼬리를 휘두르는 것조차 잊은 듯 우뚝 멈추었다.

    “추두 도우! 공격하시오!”

    심협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추두가 손을 휘두르자 파란 빛이 번득였다. 그러자 투명한 한창이 쏜살같이 날아오더니 삼안의 가슴을 꿰뚫고 지나갔다.

    심협이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들어보니 삼안의 가슴에는 큰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러나 상처 부위가 순식간에 얼어버린 탓에 피는 조금도 흐르지 않았다.

    쿵!

    삼안이 뒤로 쓰러졌다. 꼬리들도 법력을 잃은 듯 빠르게 수축되어 원래대로 돌아갔다.

    심협은 다가가는 대신 손바닥의 소뢰부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삼안의 머리를 향해 번개를 발사했다.

    꽈르릉! 꽝!

    우렛소리가 두 차례 울렸고, 삼안의 머리는 완전히 검게 탄 채 푸른 연기를 피워 올렸다.

    심협은 모든 법력을 소모한 탓에 서 있기도 힘들었고, 혼절하기 직전이었다.

    “완전히 죽었소.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 번 더 철퇴로 내리치겠소.”

    추두가 철퇴를 들고 절뚝거리며 걸어왔다. 피갑이 여러 군데 부서진 상태였다. 분명 부상이 가볍지 않을 터였다.

    “이번에 신세 많이 졌소.”

    심협이 창백한 얼굴로 공수했다.

    “내 이미 통령 계약을 맺었으니 그대에게 무슨 변고라도 생긴다면 내게도 영향이 있소. 그나저나 이 요괴가 다른 이의 몸에 깃들고도 이리 위력이 대단한 것을 보면 분명 요사스러운 단약을 가지고 있을 것이오. 이 시신의 단전 안에 있을 것 같구려.”

    추두는 삼안의 시신을 살피며 말했다.

    심협도 힘겹게 일어나 시신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몸을 숙여 한창을 뽑은 후, 삼안의 의복을 풀어헤쳤다. 이어서 창으로 시신의 아랫배를 가볍게 그었는데, 역시나 그 안에는 동그란 분홍색 구슬이 있었다. 크기나 모양은 진주와 흡사했으나, 요력(妖力)의 파동을 발하고 있었다.

    “내 이곳에서는 부상을 치료하기 어려우니 돌아가 보아야겠소.”

    심협은 그 요사스러운 단약의 쓰임새를 묻고 싶었지만, 추두의 상태를 알기에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좋소. 내 도우를 돌려보내 주겠소.”

    심협은 묻고 싶었던 말을 삼키고 두 손을 결인했다. 그러자 얼마 남지 않은 연못물이 통령역요의 술법에 따라 허공에서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추두도 곧장 몸이 파란 빛으로 화하여 소용돌이로 들어갔다. 잠시 후, 소용돌이가 닫히며 사라졌다.

    심협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쉰 후에야 겨우 일어나서 연못가로 갈 수 있었다. 그는 연못 중앙에 놓인 금색 손가락뼈를 보며 고민에 빠졌다. 비록 저것이 범상치 않은 물건임은 분명하나 함부로 가서 취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때, 연못 중앙에서 돌연 금색 빛이 번득이더니 그 손가락뼈가 갑자기 심협을 향해 날아왔다.

    “헛!”

    심협은 화들짝 놀라 다급히 옆으로 피했다. 그러나 그 손가락뼈는 돌연 방향을 틀어 심협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크윽!”

    심협은 가슴팍에 마치 예리한 것에 찔린 듯한 통증을 느꼈고,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혼미해져가는 머리를 흔들어 애써 정신을 차리려 했다. 무력해진 두 손은 잡고 버틸 무언가는 찾으려 했지만, 결국 시야가 완전히 캄캄해지며 쓰러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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