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66화 (66/1,214)
  • 66화. 새우 요괴

    심협은 숨죽인 채 정신을 집중하여 온 힘을 다해 통령 술법을 운공했다.

    이 술법을 운공할 때는 모든 마음과 정신을 사용해야 했다. 정신을 분산해 천지영기를 호흡할 여력이 없다. 전적으로 자신의 법력에 의지해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지금 심협의 체내에는 법력이 심후해 통령역요의 술법을 오랫동안 운공할 수 있었다.

    금세 한 시진이 지나고 두 시진이 지났으나 소모전의 양상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었다.

    세 시진이 지났을 때, 심협의 법력은 절반 이상이 소모된 상태였다.

    지난 세 시진 동안 전력을 다해 운공하다 보니 통령 술법에 대한 깨달음이 깊어졌고, 그만큼 시전하는 데에도 능숙해져갔다. 처음에는 법력을 완전히 쏟아야만 얻을 수 있었던 위력을 지금은 7할의 법력만 사용하고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발전에 심협은 매우 기뻐하면서도 더욱 공을 들여 통령 술법을 운공했다.

    또다시 두 시진이 지났다. 심협은 통령 술법에 대한 깨달음이 더욱 깊어져 이제는 절반 정도의 법력만으로도 처음에는 전력을 쏟아야 했던 것과 같은 위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반면 요괴의 저항력은 눈에 띄게 약해지기 시작했다.

    “이, 이럴 수가…… 네놈은 분명 나보다 약한데…… 그런데 어찌 아직도 힘이 남아 있단 말이냐!”

    요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 소모산의 통령비술은 정묘하여 너희 같은 수족 따위가 감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라. 이쯤에서 나의 통령지수가 되어라. 그러면 약속했던 조건은 모두 유지해 주마!”

    “꿈도 꾸지 마라! 네가 얼마나 버틸 수 있나 볼 것이다!”

    요괴는 기진맥진한 목소리로 외치더니, 갑자기 저항력을 몇 할은 끌어올렸다.

    심협은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기뻐했다. 이러한 소모전에서 조급함은 금기사항이다. 점점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으니 이대로 물러나지 않으면 원하는 바를 이루게 될 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했던 대로 요괴의 저항력은 눈에 띄게 약해졌다. 심지어 요괴는 낮은 신음까지 내뱉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요괴의 저항력은 계속해서 약해졌고, 신음은 점점 처참한 비명으로 바뀌어갔다. 그럼에도 여전히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홉 시진정도 지났을 때, 요괴는 더 이상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숨결이 느껴지지 않았다면 심협은 요괴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심협의 상황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체내의 법력은 이제 1할도 남지 않아 거의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내보내는 검은 부적 문양은 처음과 같이 빽빽했으나, 요괴는 여전히 굴복할 뜻을 보이지 않았다.

    “네놈이 이리 어리석을 줄은 몰랐구나! 안 되겠다. 어리석은 놈은 통령지수로도 필요가 없으니. 이렇게 된 바에야 내 너의 영지(靈智)를 말살해버리겠다!”

    심협은 조급함을 감추고 짐짓 위협적으로 외쳤다. 이어서 체내에 조금 남은 법력을 긁어모아 발동시켰다. 그러자 검은 부적 문양이 왕성해지면서 천지를 뒤덮을 기세로 요괴를 폭격했다.

    그때였다. 지극히 약한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저항하던 힘도 완전히 사라졌다.

    “아, 안 돼! 내…… 내 투항하겠소. 그대의 통령지수가 되겠…….”

    이 말에 심협은 남은 법력으로 급히 통령역요 술법을 운공했다. 동시에 신식의 힘을 운공해 그 안에 섞이게 했다. 그러자 바로 통령 표기가 생겨나더니 요괴의 체내에 유입됐다.

    그 순간, 심협과 요괴 사이에는 순식간에 심신(心神)의 소통이 생겨났다.

    심협은 긴장을 풀며 통령 법술의 운공을 멈추었다. 그러자 눈앞이 다시 어지러워지더니 그의 신식 의념은 다시 지하 공간으로 돌아왔다.

    이제 체내에는 법력이 조금도 남지 않아 단전이 텅 빈 상태였다. 정신력의 소모도 심각했고, 어지러웠다. 이 정도로 기력을 크게 소모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심협은 가부좌를 틀고 앉으려 했지만, 몸조차 가누지 못해 결국 하늘을 바라보며 대(大)자로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심협은 서서히 깨어났다.

    단전은 여전히 비어 있었고, 사흘 밤낮을 굶은 것처럼 뱃가죽이 등에 붙을 지경이었다.

    심협은 정신을 가다듬고 벽곡단 한 알을 복용한 후 가부좌를 틀었다. 그런데 그가 뭔가를 하기도 전에 연못 바닥에 남아 있던 물이 바로 모여들어 심협의 몸을 에워쌌다. 연못물이 줄어들면서 지하 공간의 천지영기도 줄어들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충분히 짙은 상태였다.

    심협은 눈을 감은 채 무명공법을 운공하여 천지영기를 들이쉬고 내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심협이 다시 눈을 뜨자 눈동자가 빛으로 번득였다.

    법력이 완전히 회복됐음을 확인한 심협은 급히 연못 밖으로 나가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장심에 녹색 연못물이 모여들었고, 심협은 남은 손을 그 물에 댄 채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그러자 연못물이 그의 손바닥을 중심으로 회전하면서 손바닥만 한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소용돌이는 심협의 손을 떠나 날아가더니 점점 커져 순식간에 맷돌만 해졌고, 소용돌이 중심부에서는 묵직하고도 낮은 짐승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열려라!”

    심협이 결인한 손으로 가리키자 소용돌이 중심부에 돌연 검은 물로 된 동굴이 나타났다. 그 안에서 푸르스름한 요기(妖氣)가 느껴졌는데, 그 안에는 어떤 생명체가 싸여 있는 것 같았다.

    펑!

    이 생명체가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요기가 거두어지자 길이가 4척에 이르는, 반은 사람이고 반은 새우의 모습을 한 괴물이 나타났다.

    괴물의 머리는 단단한 새우 머리였는데, 두 개의 더듬이가 뒤쪽으로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몸은 사람이었고, 손발도 모두 있었다. 몸에는 등적색 피갑(皮甲)을 입은 채였고, 둔부 뒤에는 활처럼 휜 새우 꼬리가 달려 있었다.

    이 새우 요괴는 한 손에 심협의 키만 한 황금색 철퇴를 들고 있었다. 철퇴에는 굵고 긴 가시가 달려 있어 무척 살벌해 보였다. 게다가 안에서 파란 빛이 새어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보통 병기는 아닌 듯했다.

    새우 요괴가 나타난 후, 물 소용돌이는 몇 차례 요동치더니 곧 동굴이 닫히며 사라져버렸다. 소용돌이로 변했던 물도 모두 소모되어 버린 듯했다.

    심협은 약간 거리를 두고 서서 요괴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반면 요괴는 말없이 새까만 눈으로 심협을 힐끔거렸는데, 눈빛에는 두려움이 어려 있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오?”

    심협은 새우 요괴를 살펴보다가 시선을 거두고 물었다.

    “추두(錐頭).”

    새우 요괴는 잠시 침묵하다가, 내키지 않는 듯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추두? 머리가 송곳처럼 뾰족해서 붙여진 이름인가?”

    심협은 추두의 태도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그의 뾰족한 머리를 보며 말했다. 웃음이 나올 뻔했으나 겨우 참았다.

    그러나 추두는 이 기색을 눈치챘는지 화가 난 듯 철퇴를 꽉 움켜쥐었고, 더듬이가 파르르 떨렸다.

    “추두 도우, 성내지 마시오. 자신만 신경 쓰지 않는다면 그까짓 머리 모양이 대수겠소? 세상에 외모가 특이한 자는 드문 만큼 도우는 분명 기인이오! 자, 도우가 앞으로 나를 잘 돕는다면 나 또한 도우를 섭섭지 않게 대하겠소.”

    심협은 상대가 화를 내기 전에 달래듯 말했다.

    “흥! 인간은 모두 우리 요족(妖族)들을 이용할 뿐이지. 그대의 헛소리는 듣지 않을 것이오!”

    추두는 코웃음 치며 경멸 어린 눈으로 심협을 노려보더니 연못 위에 떠 있는 금색 해골로 시선을 옮겼다.

    이번에는 심협의 얼굴에서도 웃음기가 사라졌다.

    “이미 계약은 성사됐으니 내 훈계를 좀 해야겠구나.”

    심협이 차갑게 내뱉자 그의 눈동자에 돌연 검은 빛이 일었다.

    “으윽!”

    이어 추두의 미간에도 역시 검은 빛이 일었다. 동시에 추두는 머리를 감싸 쥐고 쓰러져 고통에 신음하며 경련했다.

    심협은 쓰러진 추두를 담담하게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눈동자에서 검은 빛이 서서히 사라졌고, 추두의 미간에 일었던 검은 빛도 사라졌다.

    경련을 멈춘 추두는 가쁜 숨을 헐떡이며 두려운 눈으로 심협을 바라봤다.

    “머, 멈추시오!”

    추두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 천천히 일어났는데, 더 이상 오만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추두 도우, 미안하지만 방금은 어쩔 수 없었소. 통령 계약은 이미 성사되었으니, 이 또한 우리의 인연인 셈. 그러니 서로 얼굴 붉힐 필요는 없지 않소? 내 처음 이야기했던 조건은 여전히 유효하오. 필요할 때 도우가 나를 돕는다면 내 반드시 보답할 것이오. 추두 도우도 만일 육지의 영재(靈材)가 필요하다면 이야기하시오. 내 반드시 최선을 다해 구해주겠소.”

    심협은 다시 미소를 머금고 상냥한 표정으로 말했다.

    “좋소. 재수 없게 걸린 내 잘못이지. 그대 말대로 하시오.”

    추두는 심협의 돌변에 적응이 되지 않는 듯 멍하니 있다가 대답했다.

    “물론 나 또한 수역의 영재에 관심이 많소. 만일 추두 도우에게 남는 것이 있다면 내게도 구경시켜 주시겠소? 서로에게 없는 것을 나눈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 될 테니 말이오.”

    심협이 말을 마치자 추두가 고개를 들어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불쑥 물었다.

    “나는 수행의 동반자가 있었으면 하오. 그대가 할 수 있겠소?”

    “흠, 나를 시험하지 마시오. 나는 우리가 즐겁게 협력할 수 있기를 바라오. 악수하겠소?”

    심협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추두는 내키지 않는 듯했으나 어쨌든 집게를 내밀었다. 심협은 손을 가볍게 집게에 넣었다.

    심협이 부드럽게 대하자 둘 사이의 분위기는 한결 나아졌다.

    “심 도우, 무슨 일로 나를 불러낸 것이오?”

    추두가 물었다.

    “별일 없소. 그저 추두 도우를 직접 만나보고 언젠가 함께 싸워야 할 때 참고할 수 있도록 도우의 능력을 알아보고 싶었을 뿐이오.”

    심협의 대답에 추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황금 철퇴를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금빛 철퇴 그림자가 흔들리는 가운데 웅장한 바람이 일어 수 장 밖까지 뻗어나갔다.

    심협은 몇 보 물러나 있었는데, 웅장한 바람이 다가오자 얼굴에 칼로 베는 듯한 통증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이에 급히 뒤로 더 물러나면서도 추두의 힘에 놀라는 동시에 기쁨도 느꼈다.

    “아…… 허허! 대단하구려!”

    심협이 감탄하고 있는데, 돌연 추두가 두 발로 바닥을 세게차더니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러더니 두 손으로 철퇴를 잡고 거대한 석순 하나를 내리찍었다.

    꽝!

    거대한 굉음이 울리더니 굵기가 3척도 넘어 보이는 석순이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나면서 파편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심협은 제법 먼 거리에서도 그 엄청난 기세를 느끼고는 재차 감탄했다.

    “나는 별다른 능력이 없소. 그저 힘이 셀 뿐. 이 파랑추(破浪錘)로 때려 부수는 게 내 능력이오.”

    추두는 철퇴를 거두며 말했다. 그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추두 도우의 신력에 실로 탄복했소! 도우의 수련이 어느 경지에 이르렀기에 이와 같은 신력을 지녔는지 궁금하구려.”

    심협은 찬사와 함께 질문을 던졌다.

    “벽곡초기요. 중기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지.”

    추두의 대답에 심협은 눈빛을 빛냈다. 추측이 거의 맞아떨어진 것이다.

    “심 도우, 또 무슨 분부가 있소?”

    추두가 다시 물었다.

    “없소. 내 그대를 돌려보내주겠소. 일이 있다면 다시 부르지.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주시오.”

    심협은 말을 마치자마자 곁눈으로 연못에 얼마 남지 않은 물을 바라보며 결인했다. 통령역요의 술법으로 동굴 통로를 열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돌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윙- 윙-!

    심협은 급히 소리가 나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연못 위 허공의 해골 표면에서 금색 빛이 요동치고 있었다. 게다가 소리가 점점 커졌고, 금색 빛 안에 있는 해골도 그 소리와 함께 진동하고 있었다.

    심협은 놀라 숨을 들이켰고, 반사적으로 한 손을 결인한 채 우선 뒤로 몇 보 물러나 금색 해골을 주시했다.

    펑!

    폭발음이 울리더니 느닷없이 금색 빛이 부서져 사라졌고, 해골은 그대로 연못 바닥으로 추락해 산산조각이 났다. 게다가 무수히 많은 뼛조각에서 불씨가 일더니 순식간에 재가 되어버렸다.

    심협은 급히 정신을 가다듬고 경계했다. 그러나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 연못 중앙 바닥에서 금색 빛이 번득였다. 해골이 재가 되면서도 손가락뼈 하나는 남아 있었던 것이다.

    심협은 다가가서 살펴봐야 할지 고민에 잠겼다. 그런데 뒤에서 추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심하시오!”

    이어서 바로 뒤에서 바람 소리가 일더니 추두가 돌연 몸을 날려 심협의 몸 뒤를 막아섰다.

    황색 빛 한 줄기가 등까지 다가왔다가 추두가 휘두른 철퇴에 맞았다.

    파지직!

    순식간에 기묘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하얀 연기가 한 줄기 피어올랐고, 무언가 부식한 듯한 짙은 비린내가 사방으로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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