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통령(通靈)
순식간에 2개월 정도가 지났다. 그러는 동안에도 심협은 여전히 연못 안에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연못물은 크게 줄어 거의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심협의 얼굴에서는 어렴풋한 파란 빛이 회전하며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심협은 돌연 몸을 떨었고, 체내에서 갑자기 콩 볶는 듯한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그러더니 몸에 점 같은 파란 불빛들이 일어나 빽빽하게 온몸으로 퍼져갔다.
이 파란 불빛들 사이로 파란 선들이 이어졌는데, 어떤 것은 굵고 어떤 것은 가늘었다. 이 선들 또한 온몸 곳곳으로 퍼져갔다.
파란 선은 밝은 파란 빛을 발하고 있어 옷 위로도 또렷하게 보였다.
이런 이상한 현상은 나타난 것만큼이나 빠르고 갑작스레 사라졌다.
두세 번 호흡할 시간이 지나자 얼굴에 나타났던 파란 빛은 사라졌고, 전신 경혈에서 나온 빛도 함께 사라졌다.
심협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눈동자에서는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당할 정도의 빛이 폭발적으로 번득였다. 지난 2개월여의 수련으로 결국 무명공법 제3층을 완성한 것이다. 법력이 모든 맥에 흐를 수 있게 됐으니, 이로써 연기기 9층에 이른 셈이다.
심협의 법력은 체내의 모든 경맥을 흘러 다니며 막강한 파동을 발산했다. 이는 적어도 두 달 전에 비해 3배 이상 증가한 양이었다.
심협은 눈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을 갈무리하며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그의 장심에서 파란 빛이 번득이더니 연못에 남아 있던 물을 모두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물은 연못에 고여 있던 형태 그대로 떠올랐고, 바닥과 벽에 한 방울의 물도 남지 않았다. 만일 물 다루는 법술인 어수지술(御水之術)에 능통한 고수가 봤다면 기겁했을 광경이었다.
물을 조종해 들어 올리는 것은 흔한 기술이다. 하지만 이처럼 연못물을 형태의 변화 없이, 게다가 물 자국조차 남기지 않고 들어 올리는 것은 지극히 정교한 조종 능력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수행이 벽곡후기(辟穀後期), 심지어 출규기(出竅期)에 이른다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그때, 연못 위에 떠 있는 금색 해골 주위로 금색 빛과 함께 밀어내는 힘이 뿜어져 나왔다. 허공으로 떠올랐던 연못물은 이 밀어내는 힘과 충돌하자 무수히 많은 물방울로 변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런데 물방울들이 주변 바닥에 뿌려지려던 순간이었다. 심협이 양손을 가볍게 휘두르자 그의 장심에서 파란 빛이 번득였고, 동시에 이리저리 흩날리던 연못물이 우뚝 멈추었다. 모든 물방울과 물줄기, 그리고 물방울로 이루어진 안개까지 그대로 멈춘 것이다.
이렇게 멈춰 있던 물은 심협이 손을 슬쩍 들어 올리자 모두 한곳에 모여들더니 기다란 물줄기를 이루었다. 이 물줄기는 금색 해골이 아닌 심협을 에워싸고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다.
이어서 심협이 결인한 손으로 석순을 가리키자 물줄기 중 하나가 그곳으로 날아갔다. 순식간에 날카로운 칼이 되더니 쏜살처럼 석순을 스쳐 갔다.
슥!
날카로운 소리에 이어 석순에는 가느다란 금이 생겨났다. 절반 정도가 잘려나갔는데, 마치 날카로운 병기로 가른 것만 같았다.
심협은 이전에도 물로 뱀이나 매 등을 만들어낸 적이 있으나 위력은 약했다. 하지만 지금은 같은 동물 형태로 바꿔도 위력이 예전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심협의 어수지술(御水之術)이 이토록 위력적이 된 이유는 첫째로 그의 수련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고, 둘째로 그의 자질이 향상되었기 때문이었다. 심협 또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현실 세계라면 그가 연기기의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른다 해도 이러한 위력의 어수지술을 발휘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혹시 통령역요(通靈役妖) 술법도 시전이 가능할까?”
심협은 돌연 통령역요의 술법을 떠올렸다. 예전에 몇 차례 시도해봤지만 매번 실패했다. 그러나 지금이라면 통령역요 법술도 완성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의욕이 생겨난 심협은 조심스레 물줄기들을 다시 연못으로 되돌려놓고는 그 위에 손바닥을 얹은 채 묵묵히 통령결(通靈訣)을 운공했다.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그의 신식이 칠흑 같은 식해(識海)의 공간에 등장했다.
기이한 소리가 끊임없이 울렸고, 파란 불빛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크기가 모두 다르고 빽빽해 마치 밤하늘에 뿌려진 무수한 별 같았다.
그런데 지난번과 조금 달라진 광경에 심협은 다소 의아함을 느꼈다. 파란 불빛은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고, 그 크기 또한 달라져 있었던 갓이다. 예전에 통령역요의 술법을 시도했을 때 식해 공간에 나타난 파란 불빛은 커봐야 콩알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계란 크기에 이르는 것도 있었다.
심협은 가장 큰 불빛을 바라보고, 공법을 운공하며 신식을 이끌어 그리로 가져갔다. 법술이 실패했을 때 법력이 흩어져 나오는 고통을 알고 있는 그는 절로 긴장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수련은 매우 순조로웠다. 그의 신식이 순조롭게 뻗어 나가 너무도 쉽게 파란 불빛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러자 파란 불빛이 돌연 수천수백 배로 커지더니 순식간에 심협이 감지할 수 있는 모든 영역을 가득 채웠다.
심협은 눈앞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어찌 된 일인지 파악도 하기 전에 눈앞에 새파란 공간이 펼쳐졌다.
“여기는……?”
이 공간은 곳곳에 물결 같은 파란 빛이 가득했다. 세차게 흐르는 것이 마치 파란 바다 같았다.
이 파란 바다 안의 곳곳에는 생령(生靈)의 숨결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거리가 너무 먼 탓인지 뚜렷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심협은 주변을 둘러보며 흥분을 감추려 애썼다. 통령역요의 술법이 절반은 성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무명천서>에 따르면, 눈앞의 이 광경은 통령(通靈)의 술법이 그의 신식을 어느 수역(水域)으로 이끌고 온 것이 틀림없었다. 물속에서 느껴지는 숨결은 수역 안 요괴의 것이다.
요괴와 통령(通靈)하려면 먼저 그 요괴를 굴복시키고 통령 계약을 맺어야 한다. 이에 심협은 신식을 확장하여 요괴를 찾기 시작했다.
그의 신식은 퍼져가면서 해저 요괴의 숨결에 반응했다. 그 숨결에는 강한 것도 있고 약한 것도 있었다. 대부분은 심협보다 강한 것이었고, 두려울 정도로 막강한 요괴들의 숨결도 간혹 있었다. 그 숨결은 하늘보다 높고 대지보다 두터웠다. 얼마나 강할지 짐작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나씨 도인이나 오파갑, 삼안처럼 수련이 벽곡기에 이른 자들도 그 요괴들에 비하면 약한 존재였다.
“이 요괴들의 수련은 대체 어느 경지에 이른 것인가? 응혼기? 출규기?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심협의 신식은 막강한 숨결을 감지하고는 바로 두려움에 떨며 자리를 떴다.
심협은 자신보다 약한 요괴들은 무시하기로 했다. 자신보다 조금 더 강한 요괴를 찾을 생각이었다. 무명천서>에 따르면, 통령역요의 법술은 기본적으로 자신과 실력이 비슷하거나 자신보다 약한 요괴를 굴복시킨다고 했다. 하지만 통령의 술법이 정통한 경지에 이른다면, 자신보다 조금 더 강한 요괴를 굴복시킬 수도 있다고 적혀 있었다.
심협은 한참을 물색한 끝에 목표를 정했다. 숨결이 자신보다 조금 강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강하지는 않은 요괴였다.
심협은 조금 전처럼 신식의 힘을 천천히 투사했다. 그러자 금방 목표와 접촉할 수 있었고, 순식간에 웅장한 요기가 전해져 왔다. 그런데 막상 느껴지는 요기는 방금 감지한 숨결보다 더 강했고, 심지어 삼안 요괴에 뒤지지 않는 듯했다.
심협은 망설였다. <무명천서>에 이르기를, 통령역요의 술법으로 요괴를 굴복시키지 못할 경우 그 대가는 엄청나다. 법력을 크게 소모하는 것은 물론이고 체내의 법력과 신식의 힘이 모두 몸을 상하게 할 터였다.
그렇게 몸을 상하게 되면 지난번 식해의 파란 불빛과 통하지 못하여 몸이 상하는 것에 비할 수 없었다. 체내 경맥이 모두 손상되어 최소한 1개월 이상 요양해도 회복될까 말까였다.
그러나 심협은 과감히 시도해보기로 했다. 어쨌든 이곳은 꿈속이니 설령 실패한다 해도 직접적인 위험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는 천천히 통령의 법술을 운공하며 신식과 요괴가 소통하도록 시도했다. 그러자 그 요괴의 숨결은 잠시 동요하다가 이내 고요해졌다. 심협을 상대하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듯했다.
심협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통령의 법술을 운공하여 신식의 힘을 투사해갔다. 그렇게 연달아 몇 차례 소통을 시도하자, 상대방도 인내심이 바닥났다.
“누구냐! 감히 나의 수련을 방해하다니!”
묵직한 목소리가 전해져왔는데, 그 진동에 심협의 식해는 미세하게 떨렸다.
심협은 예상보다 강한 요괴의 실력에 바짝 긴장했다.
“나는 소모산 한 계파의 수사 심협이오. 지금 통령의 술법을 수련하고 있소. 수족(水族) 도우께서 혹시 나와 통령 계약을 맺을 의향이 있으시오?”
심협은 소모산의 명성을 끌어들여 말했다.
“통령 계약? 나를 모욕하려는 것이냐?”
묵직한 목소리의 대노(大怒)한 포효에 심협의 신식도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심협은 당황하지 않았다. <무명천서>에 따르면 요괴들은 대부분 거칠고 포악하여 길들이기 어려운 족속이다. 또한 통령의 법술은 그들의 자유를 억압하여 노예로 삼는 듯한 느낌을 줄 테니 영지(靈智)가 깨인 요괴라면 통령 계약을 맺으려 하지 않는 게 당연했다.
“그리 노할 필요 없소. 도우가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보장하겠소. 게다가 도우를 부를 때마다 원하는 보상을 줄 것이오.”
심협은 자신의 조건을 설명했다.
“이놈! 네가 소모산 계파의 제자임을 생각해서 이 무례를 따지지는 않겠다. 당장 물러가거라!”
요괴는 성난 목소리로 포효했다.
“정말 고려해보시지 않겠소? 나의 통령지수(*通靈之獸, 통령 계약을 맺은 짐승)가 된다면 좋은 점이 많소. 내 육지에 있어, 수역에는 없는 수많은 영재(*靈材, 영험한 재료)를 가지고 있소. 도우의 수련에 큰 도움이 될 것이오.”
심협은 천천히 말했다.
“크아아!”
요괴는 귀청을 찢을 듯한 포효로 대답을 대신했다. 보통 포효가 아니었다. 그 포효에서는 격렬한 진동이 전해졌는데, 마치 커다란 망치로 심협의 식해를 친 것만 같았다.
“큭!”
심협은 식해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러자 자신도 모르게 분노가 치솟았다.
“좋소. 이리 비협조적이니, 나의 통령 술법을 막아낼 수 있는지 한번 보시오!”
심협은 차갑게 코웃음 치더니 통령역요 술법 중 강행수복(*强行收服, 강제로 굴복시킴)의 법술을 운공했다.
심협이 속으로 주문을 외우자 검은 부적 문양이 그의 신식을 따라 요괴에게 침투되어 갔다.
“끄아악!”
갑작스런 고통에 요괴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곧 심한 진동이 심협의 식해를 향해 반격해왔다.
심협은 미리 방비하고 있다가 돌연 신식의 힘을 거두어들여 무형의 보호벽을 만들어냈다.
펑!
충돌음에 이어 심협의 식해가 크게 진동했다. 하지만 별다른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심협은 통령역요 술법의 운공을 더욱 강화했다. 그러자 검은 부적 문양이 더욱 많이 생겨나 요괴에게 침투해 갔다.
이번에는 요괴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방어를 한 모양이었다.
“네깟놈의 수련 수준으로 나를 강제로 굴복시키겠다고? 하하하!”
요괴는 멸시가 가득한 목소리로 심협을 비웃었다.
심협은 이에 반응하는 대신 통령 술법을 쉬지 않고 운공했다. 다량의 검은 부적 문양이 끊임없이 생겨나 요괴에게 침투해갔다.
요괴도 더는 떠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성난 반격도 하지 않고 그저 통령 술법을 방어했다.
심협과 요괴의 소모전이 이어지며 주위는 고요해지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일주향(*一炷香: 향 한 대가 타는 시간, 약 30분)이 지났다. 심협이 내보내는 검은 부적 문양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많아졌다. 그러나 요괴의 저항력도 갈수록 굳건해졌다.
어차피 예상했던 바였다. 상대는 벽곡기 요괴일 테니 쉽게 굴복시킬 수 없을 터였고, 애초에 심협은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