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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64화 (64/1,214)
  • 64화. 불가능은 없다

    심협은 주위에 위험 요소가 없음을 확인한 후에야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곧바로 연못에 들어가지는 않고 곳곳을 주의 깊게 살폈다.

    이 공간은 중앙의 연못과 금색 해골 외에는 특이한 구석이 전혀 없었다. 사방에는 석순뿐이었고 어디에도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나갈 수 없는 곳이란 말인가?”

    심협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이건 어차피 꿈속이다. 실제로 갇혀 있는 것은 아니야! 앞선 두 번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시간이 지나면 이곳을 벗어나 현실로 돌아가게 될 테지.”

    다만 이번 꿈에서는 계속 이곳에 머물 수밖에 없을 듯했다.

    심협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연못가로 가서 금색 해골을 살피다가 다시 연못물로 시선을 옮겼다.

    “어쨌거나 법력을 회복하고 볼 일이지.”

    그런데 가까이에서 관찰해보니 연못물의 짙푸른 빛이 어딘가 기이해 보였다.

    심협은 돌을 들어 던져 보았다. 돌은 풍덩 소리와 함께 가라앉았다. 별다른 이상은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심협은 마음이 완전히 놓이지 않아 잠시 망설이다가 쭈그려 앉아 왼손 손가락 하나만 물에 담가보았다. 오른손으로는 검붉은 단도를 꽉 쥐고 있었다. 만일 이상이 생기면 단숨에 손가락을 잘라내 목숨만은 지킬 생각이었다.

    그러나 연못물은 조금 차갑다는 점만 빼면 보통의 물과 다를 바가 없었다.

    심협은 한동안 그대로 손가락을 담그고 있다가 아무런 이상이 없자 그제야 마음을 놓고는 법기 등을 한쪽에 모아둔 채 연못물로 들어갔다.

    그때였다. 연못 위 허공에 떠 있던 해골이 발산하던 금색 빛이 조금 더 밝아졌다. 그 빛은 심협을 비추고 있었는데, 돌연 심협을 밖으로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밀어내는 힘이 그리 강하지 않아 무리 없이 버틸 수 있었다.

    심협은 고개를 들어 의아해하며 금색 해골을 살폈다.

    사실 심협은 손가락을 연못물에 담그고 있을 때도 금색 해골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여태껏 아무런 이상도 발견하지 못했다.

    “누군가 저 해골을 중심으로 법진을 쳐놓은 것일까?”

    심협은 마음을 다잡고 다시 연못 중앙으로 조금 더 들어갔다.

    그때 돌연 기이한 소리가 울렸다. 이어서 해골의 금색 빛이 다시 번득였고, 밀어내는 힘이 두 배는 강해졌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리 강력한 힘은 아니라서 심협은 한 번 휘청거렸을 뿐, 곧바로 중심을 잡고 설 수 있었다.

    “역시 기이하구나!”

    심협은 금색 해골을 바라보며 중얼거리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해골의 금색 빛은 다시 폭발적으로 불어나더니, 마치 위험을 감지한 듯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동시에 금색 빛에서는 강력한 힘이 생겨나 심협을 밀어내려 했다.

    “음!”

    심협은 버텨보려 했지만 어쩔 수 없이 한 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그런데 고작 한 걸음 물러선 것만으로도 해골의 금색 빛은 많이 어두워졌고, 밀어내는 힘도 많이 약해졌다.

    심협은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연못 중앙에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겠지? 어쩌면 이곳을 벗어나는 열쇠가 있을지도 모르고, 대단한 보물이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법력을 모두 소진해버린 심협으로서는 더 이상 다가갈 방법이 없었다.

    심협은 가볍게 한숨을 내뱉고는 연못 가장자리로 물러나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고 무명공법을 운공했다.

    꽈릉!

    굉음과 함께 주위의 농후한 천지영기에서 강렬한 파동이 일었다. 그러더니 마치 홍수에 둑이 터진 것처럼 맹렬하게 심협을 향해 모여들었다.

    심협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천지영기가 모이는 속도가 지금껏 수련했을 때보다 백배는 더 빨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협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무명공법의 운공을 더 재촉했다. 이토록 짙은 천지영기를 최대한 많이 흡수해 법력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이 과정은 의심스러울 정도로 순조로웠다. 천지영기가 단전으로 들어가자마자 곧장 법력으로 화한 것이다.

    텅 비어 있던 단전은 빠르게 채워지더니 순식간에 가득 찼다.

    “아무리 이곳의 영기가 농후하다고 해도 이리 순조로울 수 있는가?”

    심협의 눈에는 놀라움과 의심이 뒤섞였다.

    법력을 완전히 회복한 그는 다시 공중의 금색 해골을 바라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검붉은 단도를 가져와 결인하여 조종했다. 단도는 그의 손을 떠나 날아가면서 가볍게 진동했다.

    “공격!”

    심협이 손가락을 굽혀 결인하자 검붉은 단도는 곧장 붉은 빛살이 되어 금색 해골로 향했다.

    그런데 단도와 해골의 거리가 2장 정도로 줄어든 순간, 윙 하는 소리가 울렸다!

    금색 해골은 단도의 공격에 반응하듯 금색 빛을 방출했다. 그러자 검붉은 단도는 늪에 빠진 것처럼 속도가 급격히 느려지더니 고작 1척 정도를 더 날아간 후로는 공중에서 우뚝 멈춰 더는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연못 가장자리에 앉아 있던 심협은 금색 빛에 휩싸이긴 했어도 밀어내는 힘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아무래도 저 밀어내는 힘은 가까이 다가오는 것에게만 반응하는 모양이군.”

    단서를 찾아낸 심협이 결인을 하자, 검붉은 단도는 다시 1촌 정도를 더 나아갔다. 그리고 그 순간…….

    펑!

    폭발하는 듯한 소리와 함께 단도는 뒤로 튕겨나가 바닥에 처박혔다. 단도의 빛도 많이 어두워진 것이 큰 손상을 입은 듯했다.

    “윽!”

    심협 또한 누군가에게 몽둥이로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머릿속에 고통이 울렸고, 눈앞은 캄캄해졌다. 두 눈을 감고 묵묵히 운공한 후에야 겨우 정신이 들었다.

    심협은 길게 한숨을 내뱉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금색 해골은 빛도 발하지 않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묵묵히 제자리에 떠 있었다.

    심협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한 손을 물에 넣고 법술을 운공했다. 그러자 금색 해골 바로 아래 수면에서 파도 소리가 일었고, 1장에 이르는 녹색 물의 손이 물살을 가르고 나타나 순식간에 해골에게 날아갔다.

    그 순간, 금색 해골 주위로 금색 빛이 번득이더니 너무도 쉽게 물의 손을 없애버렸다. 이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심협은 두 손을 모두 물속에 집어넣었다.

    퍼펑!

    엄청난 소리와 함께 연못 곳곳의 물살이 갈라졌고, 물로 이루어진 녹색 손과 밧줄, 뱀 등이 사방에 금색 해골을 향해 날아올랐다. 그러자 금색 빛이 더욱 왕성해지면서 심협이 일으킨 물의 법술을 모두 파괴했다.

    “하아. 이 정도로는 안 되는 건가? 나의 수행이 오파갑이나 사부님 수준에 이르렀다면 이렇게 속수무책은 아니었을 텐데…….”

    심협은 씁쓸하게 웃으며 멍하니 금색 해골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화염창 두 자루와 한창 한 자루를 들고 일어나 입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반 시진이 채 지나지 않아 심협은 다시 연못가에 나타났다. 그의 안색은 침울했고, 입가와 팔뚝에는 긁힌 듯한 상처가 잔뜩 나 있었다.

    “설마 이대로 여기 갇혀 있어야 하는 것인가?”

    체내의 법력이 충만한 김에 팔괘광진을 깨보려 했지만, 광진은 미동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심협은 탄식하며 다시 연못으로 들어가 가부좌를 튼 채 두 눈을 감았다.

    어차피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면 무명공법 제2층을 완성해볼 생각이었다. 천지영기가 이토록 충만한 곳이니 꿈속에서라도 무명공법 제2층을 먼저 수련해본다면 현실 세계의 수련에도 도움이 될 터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심협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단 한 번의 시도로 법력이 자궁혈(紫宮穴)을 반 이상 연 것이다. 지금껏 아무리 공을 들이고 법력을 쏟아부어도 꿈쩍 않던 자궁혈 아닌가!

    심협은 놀란 와중에도 운공을 멈추지 않고 계속 법력으로 자궁혈을 뚫었다. 그리고 몇 차례의 시도 끝에 완전히 여는 데 성공했다!

    심협은 기쁨을 억누르며 계속해서 임맥을 따라 법력을 운공했다. 그러자 다음 관문인 천돌혈(天突穴) 역시 한 번의 충돌로 금세 헐거워졌다. 그리고 몇 차례의 충돌 끝에 활짝 열렸다.

    심협은 숨을 길게 내쉬었지만,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자궁혈만 해도 놀라운데 천돌혈까지 이리도 쉽게 뚫다니! 절대 우연이나 행운은 아닐 터였다.

    ‘꿈속에서는 나의 자질이 크게 향상되는 걸까?’

    심협은 조심스레 추측해 보았다. 생각할수록 이 추측이 맞는 듯했다. 소뢰부와 구귀부의 위력을 발휘하는 데 처음 성공한 것도 기이한 꿈속에서였다. 좀 전에 발휘해본 물 법술 또한 현실에서 보다 열 배는 더 강력했다. 방금 천지영기를 흡수할 때도 더없이 쉽지 않았던가!

    이 모든 것은 현실에서보다 자질이 훨씬 뛰어나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자질이 갑자기 좋아진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기이한 꿈을 꾸는 것 자체가 의문투성이 아니던가! 몇 번이나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은 가능한 일이던가? 그러니 이 기이한 꿈속에서는 무슨 일이 발생하든 불가능한 일이라고 치부할 수 없으리라.

    심협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체내의 법력을 운공해 <무명천서>에 쓰인 대로 혈을 하나하나 뚫어 갔다.

    * * *

    지하 공간 입구의 석벽은 이미 무너졌으니 농후한 천지의 기운도 순식간에 동굴 통로로 이동해 동굴 입구까지 퍼져갔다. 동굴 입구 근처에 돌 파편과 흙이 쌓여 생긴 작은 흙무더기가 흔들리더니 흙과 작은 돌들이 굴러 떨어졌다.

    그러나 수련에 완벽히 집중하고 있던 심협은 이런 변화를 알아차리기는커녕 시간의 흐름에도 둔해져 있었다. 그는 배가 너무 고파 견딜 수 없을 때에만 수련을 멈추고는 벽곡단을 한 알씩 복용했다. 그러면 배고픔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루를 꼬박 수련하자 꽤나 큰 성과가 있었다. 이미 임맥의 경혈 중 3할 정도는 뚫은 것이다. 이런 속도라면 열흘 안팎으로 무명공법 제2층을 완성할 터였다. 비록 하룻밤 사이에 제1층 공법을 완성했던 것처럼 경악할 빠르기는 아니지만, 현실 세계의 수련 속도와 비교하면 천지 차이였다.

    심협은 흥분을 억누르며 다시 두 눈을 감고 며칠 동안 모든 것을 잊은 채 수련에 전념했다. 끊임없이 연못의 천지영기를 호흡했고, 법력을 운공하여 경혈을 뚫었다. 법력 또한 큰 폭으로 증가하는 것이 느껴졌다.

    순식간에 십여 일이 지났다.

    심협이 눈을 뜨며 자신도 모르게 긴 숨을 내뱉었다. 이 소리는 웅장하게 끝없이 이어지면서 순식간에 지하 공간에 메아리쳤다.

    그렇게 반주향(*半炷香: 향의 절반 정도가 탈 시간, 약 15분)이 지나서야 심협은 긴 숨을 모두 내뱉었다.

    예상했던 대로 임독양맥의 모든 혈을 뚫는 데는 열흘이 걸렸다. 이로써 무명공법 제2층이 완성됐고, 체내의 법력도 곱절은 강해졌다.

    무명공법 제2층 구결은 연기기의 4층, 5층, 6층 세 가지 경지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를 십여 일 만에 완성했으니 경악할 만한 빠르기였다.

    심협은 단전에서 솟구치는 법력에 웃음이 나오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연못가에 있던 검붉은 단도를 쥐고는 결인했다.

    쐐액!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단도는 살아 있는 생물처럼 튀어 올랐다.

    단도 끝의 부적에서는 전보다 몇 배는 밝은 회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단도에서는 회색 도광(刀光)이 나타나 허공을 갈랐다.

    “공격!”

    심협이 손가락을 굽혀 결인하자 검붉은 단도는 곧장 발사됐다. 회색 빛이 번득이자 단도는 순식간에 십여 장을 날아갔다. 단도가 스쳐간 굵고 큰 하얀 석순에서 뚝 소리가 울리더니 미끄러져 내려와 땅에 처박혔다. 석순이 잘린 곳은 마치 거울처럼 매끈했다.

    심협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검붉은 단도를 불러들였다.

    그런데 연못 한쪽을 힐끗 살피던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반 척 정도의 연못 벽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어째서…… 연못물이 줄어든 것이지?”

    연못에 들어갈 때만 해도 분명 물이 가득했다. 그런데 최근 십여 일간 수련에만 매진하느라 주위의 변화에 신경 쓰지 못하는 동안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설마 내가 수련하면서 일으킨 일인가?”

    의혹은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꼭 답을 알아야 하는 일은 아니었기에 그는 얼른 다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여 무명공법 제3층 법결을 되뇌었다.

    무명공법 제1층은 기관사지(*氣貫四肢, 기가 사지를 관통함), 제2층은 통달임독(*通達任督, 임독양맥을 통달함)이고, 제3층은 체내에 남은 경맥과 경혈을 모두 뚫어 기가 모든 경맥을 통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벽곡기로 진입하기 위한 기초를 다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제3층 수련은 경맥, 경혈과 관련이 깊어 뚫어야 할 경맥과 경혈이 많이 분산되어 있다. 그러니 어렵기로는 이전의 2개 층을 합친 것보다 더했다.

    하지만 심협의 현재 수련은 신이 돕는 것과 같았으니 걱정할 것은 없었다. 심협은 제3층 법결을 두 차례 자세히 되뇌어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후에야 수련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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