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의외의 소득
심협은 무명공법을 운공하며 결인한 손을 휘둘렀다. 화염창(火焰槍)을 날려보려 한 것이지만 창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몇 번을 더 해봐도 반응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 화염창 역시 법기인 듯하구나. 수행이 벽곡기에는 이르러야 겨우 사용할 수 있는 모양이다.”
심협은 아쉬움을 달래며 화염창을 몇 차례 휘둘러본 후, 창끝으로 석벽을 가볍게 그어 보았다. 그러자 마치 진흙 위에 그림이라도 그린 것처럼 석벽에는 불에 탄 흔적이 생겨났다.
“제아무리 단단한 석벽도 이 창 앞에서는 소용없군! 좋구나, 좋아! 하하하!”
심협은 크게 기뻐하며 화염창을 자세히 살폈다. 가공할 만한 작열감이 창끝에서 발산되어 얼굴까지 따끔거릴 정도였다. 마치 불에 달군 쇳덩이 같았다.
이번에는 한 줄기 붉은 빛으로 화한 창을 들어 석벽을 찔러갔다. 그러자 화염창은 거의 절반 가까이 석벽에 박혀버렸다.
“역시 법기는 다르구나! 아주 조금의 위력만을 발휘시켰을 뿐인데도 이 정도라니!”
심협은 팔에 힘을 주어 화염창을 뽑아내더니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공격력만 따진다면 이 화염창은 작살 부기보다도 한참 위였다. 다만 지금의 심협은 체내의 법력이 많지 않아 오래 사용할 수는 없었기에 금세 내려놔야 했다.
그는 이번에는 투명한 소창(小槍)을 들었다. 전체가 눈처럼 하얀색에 더없이 차가운 한창(寒槍)이었다. 법력을 주입하지도 않았는데 주변에 하얀 한기가 서린 모습은 아름다울 지경이었다. 오파갑에게서 챙긴 물건들 중 가장 화려한 것 또한 바로 이 한창이었다.
심협은 한창을 손에 들고 한참 만지작거리다가 천천히 법력을 주입해 보았다. 그러자 방금 전의 화염창과는 달리 이 한창은 법력이 주입되자 밝은 백색광을 뿜어냈다. 동시에 한기가 퍼지기 시작해 주위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심협은 놀라면서도 곧 한창이 반응한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수련한 무명법결은 물의 속성을 지녔으니 그와 상극인 불 속성의 화염창보다는 한기를 지닌 한창과 잘 맞는 것이리라.
이 점을 알고 나니 심협은 자신의 한창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그는 법력을 충분히 운공하여 한창에 주입했다. 창이 발하던 박색광이 몇 배는 더 강력해졌고, 주위는 한층 서늘해지더니 공기 중에 하얀 안개까지 일었다.
심협이 팔을 휘두르자 한창은 한 줄기 백색광이 되어 옆의 석벽을 찔러갔다.
팍!
가벼운 소리였다. 그러나 결과는 놀라웠다. 투명한 한창의 창끝이 뚫고 들어간 것은 몇 촌 정도에 불과했으나, 그 지점을 중심으로 석벽에는 하얀 성에가 생겨났던 것이다.
심협은 볼수록 한창이 마음에 들었으나 일단 옆에 내려놓은 후 이번에는 금색 밧줄에 법력을 주입해 보았다. 그러나 밧줄에는 밝은 금색 빛이 일었을 뿐,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보아하니 이것은 속박용 법기로구나. 그러나 정확한 효과는 알 수가 없군.’
심협은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밧줄을 내려두었고, 마지막으로 남은 검붉은 단도 세 자루를 살폈다. 우선 한 자루만을 들어 법력을 주입해봤는데, 단도는 바로 떠오르면서 검붉은 빛을 발산했다.
“공격!”
심협이 손을 결인하자 단도는 순식간에 수 장 거리를 날아가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석벽에 꽂혔다. 어찌나 강력했는지 칼자루까지 묻혀버렸다.
심협이 결인하며 부르자 검붉은 단도는 곧바로 석벽에서 튀어나와 돌아오더니 허공에 우뚝 멈췄다.
‘작살 부기보다 조종하기가 훨씬 쉽구나!’
심협은 속으로 감탄했다. 마치 자신의 손발을 움직이는 것처럼 쉽고 편했던 것이다. 자칫하면 통제력을 잃어 추락해버리는 작살 부기와는 분명 달랐다.
심협은 너무 간단하자 오히려 믿기 힘들어 다시 한번 결인을 했다. 이어서 자신의 주변을 맴돌게도 해보고, 위아래로 움직이며 날게 해보기도 했다. 역시나 손발을 움직이듯 너무도 쉬웠다.
이 무렵, 연달아 법기들을 시험하고 나니 가뜩이나 많지 않았던 법력은 거의 바닥을 보였다. 그제야 심협은 단도를 거둬들였다.
“이상하군. 부기를 조종하는 것이 어찌 이리 수월해졌단 말인가? 아까 삼안과의 전투 때도 물 법술 시전이 현실보다 훨씬 수월했지. 그리고 소뢰부도…….”
의문투성이였지만, 심협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단창과 밧줄, 단도 등을 챙겼다. 그러고는 오파갑의 시신 앞에 내려놓고는 말했다.
“오 통령, 당신은 요괴가 몸에 들어 죽었으니 이리 시체가 드러나 있는 것은 흉한 징조요. 내 당신을 묻어주겠소. 당신 법기들을 얻은 보답이라 여겨주시오.”
심협은 옆에 있는 큰 구덩이에 넣기 위해 오파갑의 시신을 안아 들었다. 그런데 오파갑의 시신에서 뭔가가 툭 하고 떨어졌다.
“이것은…… 웬 헝겊 주머니인가?”
심협은 오파갑의 시신을 내려놓은 후 헝겊 주머니를 주워서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하얀색과 파란색, 노란색의 약병이 각각 하나씩 들어 있었다. 하얀 약병에는 ‘벽곡단(辟穀丹)’이라 적혀 있었다.
“벽곡단!”
심협의 눈이 빛났다. 춘추관에서도 본 단약이었다. 백소천에게 듣기를, 이 단약을 복용하면 온종일 배고픔이 느껴지지 않으며, 곡식류를 직접 먹는 것보다 훨씬 좋다고 했다.
마개를 열어보니 병 안에는 새끼손가락만 한 유백색 단약이 총 10알가량 들어 있었다. 단약 특유의 맑은 향기에 머릿속까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심협은 이 꿈속에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마침 허기가 진 상태였다. 이에 벽곡단을 한 알 꺼내 복용해보았다. 단약에 대해 해박한 그가 보기에 이 단약의 향기로 미루어 유익무해(有益無害)한 단약이 틀림없었다.
단약은 뱃속으로 들어가자마자 녹아서 온기를 퍼뜨렸다. 그러자 배고픔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오히려 약간의 포만감마저 느껴졌다.
‘훌륭하구나! 역시 영단묘약이야.’
심협은 기뻐하며 병의 마개를 잘 막아놓았다.
나머지 두 개의 약병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심협은 약병을 각각 열어 보았다. 파란 병에 담긴 것은 파랗고 투명한 단약이었다. 엄지손가락만 한 이 단약들은 벽곡단의 맑은 향과는 전혀 다르게 짙은 약 냄새를 풍겼다.
노란 병에는 은회색 단약 두 알이 들어 있었는데, 매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심협의 지식과 경험으로 미루어, 이 두 가지 단약은 벽곡단보다 훨씬 진귀할 터였다. 다만 구체적인 약효는 알 수가 없었다.
주머니 안에는 3병의 단약 외에도 부적 4장과 은자, 그리고 자색 요패가 들어 있었다. 부적 중 2장은 검붉은 단도에 붙어 있는 것과 같았다. 문양도 선명한 것으로 보아 아직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이 틀림없었다. 나머지 2장 중 1장은 오파갑이 삼안의 환술을 깨기 위해 사용했던 붉은 부적이었다.
마지막 1장은 금색 부적이었는데, 부적 문양이 심히 오묘했고, 용도는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괜히 시험해봤다가 그 한 번으로 효력이 사라지면 아까울 게 분명했고, 어차피 법력도 바닥났으니 따로 시험해보지 않았다.
은자는 힐끗 보기만 했을 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대신 마지막 남은 자색 요패를 들어 살폈다. 요패에는 호랑이 머리 도안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다른 면에는 전서체로 ‘정국(定國)’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호랑이 머리와 정국……. 설마…… 오파갑이 관아 사람이란 말인가?”
심협은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요패를 몇 번 더 살핀 후에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이어서 주머니를 통째로 챙긴 그는 돌과 흙을 가져다가 오파갑의 시신을 덮기 시작했다.
심협은 화염창 등을 들고 계속 더 깊은 곳으로 가려다가 문득 오던 길을 돌아보았다. 왠지 모르지만 팔괘광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화염창과 한창 모두 위력이 대단하니 광진을 깰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는 아직 수선계(修仙界)에 대한 지식이 짧아 팔괘광진이 누가 쳐놓은 것인지도 알 수 없었고, 법기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괜히 광진을 깨보겠다고 나섰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저 안쪽으로 들어가보는 편이 나을 듯했다. 어쩌면 출구가 있을지 아는가?
심협은 한창과 화염창을 챙겨 들고 동굴 안으로 향했다.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지세는 점점 낮아졌고 공기도 점점 답답해지는 것이 꼭 땅속으로 들어가는 듯했다.
그러던 중 심협은 돌연 걸음을 멈추고 사방을 둘러봤다.
“엇!”
어떤 기척을 느껴서가 아니라 돌연 주변에 천지영기(天地靈氣)가 훨씬 농후해졌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집중해보니 저 앞쪽의 영기가 더욱 짙었다.
“설마…… 대단한 보물이라도 있는 것인가?”
심협은 이런 생각에 다소 들떴지만, 애써 경거망동을 자제하고 걸음을 옮겼다.
서른 걸음도 채 가기 전에 하얀 석순들은 점점 작아졌고, 주변은 더욱 어두워졌다. 천지영기만이 더욱 짙어져갔다.
앞으로 조금 더 가자 저 앞에 부드러운 녹색 빛이 나타났다. 주변이 어두운 탓에 그 빛은 더욱 눈에 띄었다.
“여기가 끝인가?”
그는 경계심을 높인 채 손에 든 두 개의 창으로 앞뒤를 방어하며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예상대로 역시 길이 끝나는 지점이었다. 석벽이 길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 부드러운 녹색 빛이 석벽 틈에서 새어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석벽 뒤에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을 듯했다.
심협은 손으로 조심스레 석벽을 두드려 봤다.
통! 통!
가벼운 메아리가 울렸다. 그제야 심협은 한창을 내려놓고는 양손으로 화염창을 쥔 채 남아 있는 법력을 주입했다. 창신(槍身)에 붉은 빛이 일었다.
팍!
경쾌한 소리와 함께 화염창은 붉은 그림자가 되어 자루까지 석벽에 박혔다. 손끝에 느껴지는 감각으로 미루어 석벽의 두께는 1척 정도 될 듯했다.
심협은 화염창을 뽑아서 다시 한번 찔러갔다. 몇 번을 반복하자 석벽에는 일고여덟 개의 구멍이 생겨났다. 이 무렵, 체내의 법력이 완전히 소진되어버렸다.
심협은 뒤로 돌아갔다가 커다란 돌을 들고 왔다. 소화양공을 운공해 양손에 붉은 빛이 일어난 상태로 돌을 들어 석벽의 구멍에 내리쳤다.
꽝!
거대한 굉음과 함께 석벽에는 맷돌만 한 구멍이 생겨났다. 이어서 심협이 다시 한번 내려치기도 전에 석벽에 쫙쫙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렸다. 돌 파편이 튀었고, 먼지가 흩날렸다.
다행히 심협은 재빨리 물러난 덕에 낙석을 피할 수 있었다.
그의 시선은 아직 다 흩어지지 않은 먼지 너머로 향했다. 그곳은 확 트인, 광활한 지하 공간이었다. 반경이 60여 장에 이르렀고, 곳곳에 백광을 발산하는 거대한 석순이 동굴 천장을 받치고 있었다. 석굴 중앙에는 가로세로가 각각 8장에 이르는 정사각형 연못이 있었고, 그 안에는 안이 다 들여다보일 만큼 맑고 짙푸른 물이 가득했다.
부드러운 녹색 빛은 연못물에서 발산된 것으로, 지하 공간을 가득 채웠다.
더욱 신기한 것은 연못 위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사람 해골이었다. 해골은 죽어 생명이 없는 것인데, 어찌 공중에 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뼈들은 하나하나가 투명해 마치 유리 같았다.
심협은 금색 해골을 한참이나 살피다가 시선을 짙푸른 연못물로 돌렸다.
“물이 있어서 다행이로군.”
물이 있으니 수련을 통해 법력을 빠르게 회복시킬 수 있을 터였다. 이곳은 천지영기가 다른 곳의 10배는 될 만큼 짙었다. 수련하기에는 최상의 장소였다.